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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2007년 2월 11일 / 대예배 / 겔 37:1-10
■ 대구 지하철 방화 대형참사 /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城內洞) 중앙로역 구내에서 50대 남자가 플라스틱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져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린 대형참사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일어났습니다. 사고원인은 50대 중반의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하다 판단착오로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방화범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南山洞) 명덕역에서 지하철을 탄 뒤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는 틈을 타 갑자기 불을 질렀습니다. 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 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타고 있어서 인명피해도 엄청나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여기저기서 공공건물을 폭파하겠다는 협박과 모방 범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신병을 비관한 정신병자의 정신 나간 행동 때문이라고 말만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 경제의 불안정과 더불어 사회의 안전 불감증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좌절과 절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화범 김대한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사실은 절망이라는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사탄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절망의 재료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불치의 질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살하는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에도 침투한 적이 있습니다.
▶ 20세기의 위대한 성자라고 불리우던 존 조웨트라는 사람도 이렇게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삶에 기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내가 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며 또 영적으로 계속 성숙해가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나는 매사에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음 깊이 더럽혀져 있는 자신을 보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일컬어지던 스펄전이라는 분도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때때로 너무나 깊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여러분만은 제발 나와 같은 이런 극한 상태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용사 다윗도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시편 69편 2절입니다.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나 발을 디딜 곳이 없습니다. 내가 깊은 물에 빠졌는데 큰 물결이 나를 덮칩니다.”
■ 수정된 그림 / <만종>, <이삭줍기> 등 소박한 농민과 평화로운 농촌 들녘을 담은 밀레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밀레는 18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면서 농민과 농촌 들녘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명 화가로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따스한 시선만은 언제나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함으로써 호사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화폭은 여전히 농민들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캔버스 위 농촌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박한 일상과 평화로운 들녘 곳곳에는 가난과 배고픔, 질병과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슬픔이 스며있었습니다. <만종>은 그러한 농민 생활의 슬픔을 대표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만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 숙인 부부의 발 아래로 작은 망태기 하나가 보입니다. 씨감자로 가득 채워진 바구니를 보면 부부가 하루의 노동에 대한 신의 대가에 감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 이 작품이 그려졌을 때 그림 속 망태기에는 갓난아기의 시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배고픔으로 죽어간 아기를 땅에 묻기 직전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면인 것입니다. 밀레는 완성한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며 감상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림을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잔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도저히 그림을 똑바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기 시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 그리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습니다. 결국 밀레는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바구니 안을 씨감자로 수정했다고 합니다.
★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메소포타미아 그발 강가에 나라를 잃고 잡혀와 살던 한 포로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스겔이었습니다. 주전 606년 경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약탈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다니엘이 잡혀갔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유대왕국은 8년 후인 주전 598년에 바벨론으로부터 독립하려고 계획을 세우다가 다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여호야긴 왕을 비롯해서 더 많은 귀족들과 나라의 지도자들이 잡혀갔습니다. 이 포로들 가운데 제사장의 꿈을 키우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 포로로 잡혀와 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제사장이 되겠다던 꿈도 깨져버렸습니다. 무심히 흐르는 그발강의 강물처럼 그의 인생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눌려서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발 강가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권능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절망의 재를 털고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587년에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 본문은 유다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들어 올려 백골이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자세히 살펴보게 하셨습니다. 뼈가 심히 많았습니다. 초토화된 전쟁터에 버려진 채 죽은 군인들의 해골과 뼈가 널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저 많은 주검 속에 혹시 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질 수가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살려볼 수 있는 부상자도 없습니다. 신음 소리가 끊긴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시신도 없습니다. 누구의 해골인지, 손발 뼈인지 알 수 없는 흩어져 있는 뼈 조각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적막한 정적을 깨뜨리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뼈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화살에 맞은 사람도 아니고 창에 찔린 사람도 아니고 뼈 조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이것을 가능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마른 뼈를 보고 살 희망이 있다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뼈에도 희망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무엇을 아신다는 말입니까? 마른 뼈가 살지 못한다는 것은 에스겔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시면 마른 뼈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시겠다는 의향만 있으시다면 살 수 있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마른 뼈를 살리실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라면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7:4 /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뼈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에스겔은 주께서 이르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 이미 어떤 소리가 에스겔에게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뼈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연결되면서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에스겔은 그때 그 마른 뼈들 위에 힘줄과 살이 돋고 그 위에 피부가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37:9 / 그때에 주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생명의 영을 불러오너라! 내 이름으로 생명의 영에게 명령하여 생명의 영이 사방에서 이 전사한 사람들에게로 불어와서 그들을 다시 살려내게 하여라!'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이 숨을 쉬기 시작하며 다시 살아나서 모두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군인들이었습니다.
▶ 물론 이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환상이었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그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바벨론을 쳐부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루었다면 애들 만화영화 시나리오로 딱 맞을 겁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이 환상은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희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37:11-14 /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뼈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다 말라 버리고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 하고 탄식한다. 12)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는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가 직접 너희의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내 백성으로 데리고 나와 몸소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13) 내가 너희의 무덤들을 열고 이렇게 너희를 무덤 속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으로 삼으면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에게 내 영을 불어넣어 다시 살려 놓고 몸소 다시 너희의 땅으로 데려가면 그제서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죽음 같은 절망을 깨뜨리고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죽을 고생을 하던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과 소망 그리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 회색은 희망의 색입니다
1986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사이의 정상회담 이틀 전, 전 세계 인권 단체들로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은 소련의 여류시인 ‘이리나 라투신스카야’의 석방 소식이었습니다. 그녀는 석방된 후, 서방으로 나와서 처음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은 “회색은 희망의 색입니다(Gray Is the Color of Hope)”라는 책입니다.
이리나는 어렸을 때 선생님, TV, 라디오, 신문으로부터 끊임없이 ‘하나님은 없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난리를 치니까 어린 이리나의 마음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운동을 저렇게 계속 펼칠까? 도깨비나 귀신이 없다고 얘기할 때는 한두 번 얘기하고 끝내면서 왜 하나님이 없다는 얘기는 저토록 자주 할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 이리나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세 되던 어느 날, 그녀는 무엇인가 신비한 기운이 자신의 영혼을 덮는 것을 느끼고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 이 소망과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우리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찾아 나서며, / 그 순간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 시는 급속도로 유포되어 이리나는 소련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8세 때에, 그녀는 14년형을 선고받고 당시 가장 악명 높은 ‘바라세보 노동수용소’로 보내어졌습니다. 수용소에서도 그녀는 천사처럼 살며 시를 썼습니다. 수용소에서 아름다운 시를 빚어내는 그녀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마침내 서방 인권단체들이 ‘이리나 사건’을 문제 삼았고, 결국 그녀는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수용소 생활을 묘사하며 여러 번 하나님의 기운을 체험했는데, 그 하나님의 기운은 좁고 차가운 수용소 독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위로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잘 몰랐고, 성경도 없었고, 대화상대도 없었던 고독한 이리나를 따뜻하게 품었던 하나님의 신비한 기운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고 만나주시는 방법에는 뚜렷한 정형(定型)이 없음을 느낍니다.
이 세상의 어느 한 영혼도 ‘신앙의 가능성’이 없는 분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맡겨진 영혼을 하나님의 신비한 기운이 품어 주기를 기도하며 묵묵히 그를 섬기는 태도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기준’과 ‘나의 체험’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조금 더 참아 주고, 조금 더 용납해 주고, 조금 더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의 기운이 그의 영혼을 감싸 안아 주기를 기도하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이따금 서럽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인간관계에서 ‘회색의 빛’을 ‘희망의 빛’으로 만들어가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백골이 살아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희망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백골이 가득한 죽음의 골짜기에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희망이 있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망해버린 나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희망이 있다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절망스러운 인생도 하나님의 품 안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삶 속에도, 막막한 앞길에도, 실패한 사업에도, 병든 육신에도, 서러운 가난 속에도, 억울한 신세에도, 더러운 마음에도, 파탄난 인격에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희망이 있다고 가슴 펴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 절망의 감옥에도 희망의 창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아브라함 링컨은 실패의 연속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1809년 2월 12일 켄터키 주의 외딴 오두막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가난한 농부였고, 어머니 낸시 행크스 링컨은 미혼모의 딸이었습니다. 부모는 둘 다 문맹이었습니다. 링컨이 9세 되던 해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2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던 링컨은 한때 그가 점원으로 있던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했지만 곧 1100달러의 빚만 지고 파산해버렸습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24세에 주 의회 낙선, 24세에 다시 사업 실패, 26세에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27세에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 29세에 의회 의장직 낙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 낙선, 34세에 국회의원 낙선, 39세, 46세에 또 국회의원 낙선, 47세에 부통령 낙선, 49세에 상원의원 낙선” 한 때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모든 칼과 면도날을 그의 주변에서 다 치워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때 그는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인지도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무서운 예측을 한다.” 그러나 링컨은 그 절망의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희망이 스며드는 창문에 눈을 돌렸습니다. 눈을 빛이 들어오는 창문에 돌릴 때는 창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가 낙선했을 때 그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난 낙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곧바로 또 시작을 했으니까 말이다. 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단정하니 내 걸음걸이가 곧을 것이고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찰 것이다. 이제 나는 또 시작한다. 내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아브라함 링컨!” 그는 절망으로 쓰러질 수 없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59세에 드디어 미국 대통령 당선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놀라운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링컨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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