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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代)를 이으려면 …
2013년 7월 7일 / 맥추감사절 / 히브리서 12:1-10
1. 나 같은 사람도 대(代)를 이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미국 하버드 대학에 지도자 연구센터가 있습니다. 그 지도자 연구센터에서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과 성공한 사람들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연구결과 세 가지 공통점이 나왔습니다. ① 그들에게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냥 먹고 마시며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큰일을 하겠다는 큰 비전이 있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② 끈기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독실한 기독교 신자,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끝까지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 미국의 한 철도회사에서 두 사람이 도랑 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 사람은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도랑만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전날 밤에 수십 년 동안 도랑 파는 일만 하던 선배가 리무진을 타고 온 회장과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회장님 리무진에서 내린 사람이 선배 맞습니까?” “맞네, 내가 어제 회장님과 저녁을 먹었다네.” 이 말에 젊은 사람은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회장님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으셨어요?” 나이 든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과 나는 오랜 친구일세. 우리는 똑같이 오래 전에 도랑 파는 일을 같이 시작했다네. 회장은 도랑을 파면서도 꿈이 분명해서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애를 썼으나 나는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도랑 파는데 열심을 했지. 세월이 지나가자 기회가 오는데 회장은 시험을 쳐서 승진하고 또 승진하고 승진해서 회장이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도랑 파는 팔자가 되고 말았네.”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 발전하지 삶의 희망도 목표도 없이 그냥 떠돌이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인생에 분명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와 꿈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늘 불평, 원망만 하는 떠돌이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 워치만 니(Watchman Nee)의 책이 20권이 넘게 한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영적인 대가입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쇠를 고물상에 팔려고 값을 물어봤더니 5달러를 준다고 하더랍니다. 그것을 다시 말굽을 제조하는 가게로 가져가 사라고 하면서 말굽으로 만들어 팔면 얼마냐고 했더니 10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제조업체에 갔습니다. 거기는 바늘을 만드는 곳인데 이 쇠 덩어리를 연단해서 바늘을 만들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300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쇠를 면도날을 만드는 곳으로 가져가서 면도날을 만들어 팔면 얼마가 나오냐고 했더니 3,000달러를 벌수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쇠인데 이것을 어떻게 연단을 하냐에 따라,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돈의 가치가 높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쇠의 가치가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난이고 오고 시련과 징계가 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거룩해지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줄로 믿습니다.
▶ 오늘 우리도 신령한 비전이 갖고, 인내가 동반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면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소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데도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겸손이 아닌 교만에 속한 자기 비하를 앞세워 ‘나 같은 것’이 감히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며 핑계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은 위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 / 어느 날 예수께서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을(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사실 현재 수억의 가톨릭 신자의 수장이라고 하는 교황 중에 초대 교황인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세상에서 귀한 사람들이 아닌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행 4:13 / 공회의원들(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은 본래 교육도 받지 못해 일자무식인줄 알았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와 같이 자신 있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킨 것)은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하나님의 일은 세상적으로 귀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있습니다.
고전 1:26-29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여러분 가운데 과연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있습니까? 부자가 있습니까? 27)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고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여러분을 일부러 선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 쓸모 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만드셨습니다. 29)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바울도 육체적으로 연약했습니다. 2세기 전통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외모는 보잘 것 없었다고 합니다. 키는 작았고 얼굴도 못생겼습니다. 머리는 대머리였고, 눈은 근시였고, 다리는 구부러졌고, 코는 매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연약성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의 연약한 사역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강한 자들이 구원 얻기를 원하면 그들이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고 그들 자신이 구원 얻기 위해서 인간인 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 세계적인 명 설교가인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말더듬이, 통풍(痛風)으로 고통을 받았고, 수많은 증상(열등한 이, 어리석은 자, 불합리한 고집쟁이, 무식자, 광신주의자, 속이는 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 어느 날 성 프란시스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시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만날 때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받고 생활에 변화를 경험하는데, 그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선생님을 그렇게 훌륭하고 위대하게 사용하십니까?” 그러자 성 프란시스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미련한 사람을 찾았다가 성 프란시스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내게 머물고,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내게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통해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큰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존재(베드로와 같은 어부), 악한 일을 했던 사람들(세리 마태), 여인들(눅 8:3), 심지어는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막 16:9)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 겨자씨와 누룩과 같은 것을 예로 들어 천국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13:31-32 /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32)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마 13:33 / 어떤 여자가 밀가루 반죽 속에 누룩을 넣었더니 그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하늘나라는 이 누룩과 같다.
2.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 주어야 합니다.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하여 –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우리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찾아오신 예수님께 우리가 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 4:20 / 그러나 좋은 땅에 씨가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사람, 즉 그 마음속에 심어진 씨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눅 8:15 /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 인내로 지켜 나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하여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애쓰십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강조하셨듯이 예수님이 들려주셨던 말씀, 성령의 인도하심을 귀 담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인생의 경험과 고집을 버리지 않고 속에 담아둔 상태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 이렇게 하셨습니다.
눅 5:2-4 / 그때 호숫가에서 작은 배 두 척을 대어 놓고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을 보신 3) 예수께서 그 배들 중 시몬의 배에 오르셨다. 그리고 배를 호숫가에서 약간 떼어놓게 하신 후에 앉으셔서 군중들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 말씀을 다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제 깊은 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러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에게 가셔서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맏형 격인 베드로가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하며 자기들의 상식을 저버리고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립니다. 베드로가 그대로 하였더니 그물이 가득차서 찢어질 지경이 되었고,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곧 두 배에 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이에 놀란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게 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곧 배를 호숫가에 댄 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애 쓰신 모습을 봅니다.
마 8:5-13 /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였다. 한 백부장이 와서 자기 하인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으니 낫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래, 내가 가서 고쳐 주마.”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러자 백부장이 말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만 이 자리에서 ‘나으라’ 하고 말씀만 해도 제 하인은 나을 것입니다. 9) 저도 지휘관 밑에 있고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하인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저는 주님이 ‘병이 나으라’ 하고 말씀만 하시면 그 병이 나을 줄 압니다.” 10) 그 백부장의 말에 감탄하신 예수께서는 군중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온 땅에서 나는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고 하시며 13) 백부장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무조건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라 줄 것을 요청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 8:23-27 / 예수께서 바다를 건너가려고 배를 타시자 제자들도 따라 탔다. 24) 그런데 갑자기 폭풍이 일더니 물결이 배보다 높이 치솟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소리쳤다. “주님,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 것 같습니다.” 26) 그제야 예수께서 일어나시며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그렇게도 겁을 내느냐?” 하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폭풍이 그치고 사방이 잔잔해졌다. 27) 제자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순종하는가?’ 하고 모두들 놀라워하였다.
여기에서도 제자들의 믿음이 없다시피 한 것을 책망하시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후에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도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데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 중국의 내지(內地) 선교에 성공한 허드슨 테일러라는 유명한 선교사가 있는데, 그가 크게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복음을 열심히 증거해도 한 사람도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자기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을 떠나지 못하고, 개인의 성결함도 이루지 못하고, 믿음도 자라지 않아 낙심좌절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할 때 친구에게서 편지 한통이 왔습니다. 그 편지에 보니까 친구가 “이 사람아! 기도하려고 애쓰지 말고, 전도하려고 애쓰지 말고,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지 말라. 네가 애쓴다는 것 자체만을 가졌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애써서 그것을 이루려고 하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냥 믿고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께 붙어 있으라. 그러면 예수님이 일을 다 해주신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이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하셨으니 너는 기도하고 그냥 맡겨 버려라. 그리고 난 다음에 요한복음 15장을 적어 주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는 애쓰는 것을 그치고 그저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매일매일 사니까 주의 능력이 임하여서 성경을 사랑하게 되고, 주의 능력이 거룩한 능력을 주시고, 주의 능력이 임하여서 복음 전도로 영혼을 구원하게 하시고, 크게 선교사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 큰 믿음이란 홍해 앞에 선 모세가 가진 믿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나 홍해에 이르렀을 때, 뒤에는 바로가 애굽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홍해가 펼쳐져 있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뒤로도 물러갈 수 없고,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출 14:8-9 /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만드셨으므로 바로는 거침없이 당당하게 나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9)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인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에 있는 바닷가를 향해 바로의 병거 부대와 기마 부대와 보병 등 모든 애굽 군대가 추격을 시작하여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바로에게 두 손 들고 항복할 태세였습니다. 벼랑 끝에 선 저들은 택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 물에 빠져 죽을 것인가? 아니면 원망과 탄식으로 인생을 포기하고 바로에게 항복할 것인가? 입니다.
출 14:10-12 /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보니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을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겁에 질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11) 그들은 모세에게 아우성을 쳤다. “애굽에는 우리가 묻힐 곳이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나와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만들 작정이었소?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소?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시오. 12) 우리가 애당초 애굽에 있을 때 우리를 부추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말하지 않았소? 우리가 애굽 사람들의 종노릇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것 보시오.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곳 광야에서 죽느니보다 애굽 사람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게 더 낫겠소.”
이스라엘 백성이 다 낙심하고 뒤로 물러설 때 유일하게 이 난간에서 믿음으로 한발자국 내딛는 사람은 모세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과거 같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아니 그네들보다 더 펄쩍 뛸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모세라고 염려가 없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하여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말이 이를 대변합니다.
출 14:13-14 / 그러자 모세가 대답하였다. “겁먹지 말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여라.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애굽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몸소 싸우실 것이다.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여라.”
사실 애굽을 떠난 모세로서는 처음 겪는 엄청난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을 믿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주(主)가 되시는 하나님 명령만 따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것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출 14:1-4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가던 길을 돌이켜 믹돌과 바다사이에 있는 비하히롯 앞으로 가게 하여라.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로 가서 그곳에 진을 치게 하여라. 3) 그러면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길이 막혀 그 땅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굳게 만들면 바로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바로와 바로가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단숨에 쓰러뜨려 나의 힘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면 애굽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깨닫게 되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가던 방향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기가 쉬운 것 같으나 모세처럼 큰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자들처럼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히 5:12-14 / 여러분은 벌써 오래 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가르칠 만도 한데 아직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크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젖만 먹는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젖만 먹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4) 여러분이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올바른 일을 실천함으로써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단단한 음식을 먹고 하나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3. 낙심치 말고 주님만 바로보고 따라야 합니다.
▶ 토마스 아 켐피스는 중세의 고전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나의 아들이여 나는 나의 주로서 고난 중에 힘을 주는 자이니 고민이 있을 때에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힘을 어디서 얻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들어납니다. 가령 세상에 속한 것으로 새 힘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는 육(肉)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불안과 좌절, 염려와 걱정, 환란과 핍박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사 40:28-31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멀리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통해서 미리 주신 말씀입니다. 후일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50년, 60년, 7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될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낙심하는 사람도 생기고, 실망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대비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미리 권고하셨던 말씀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망하고, 포기하며, 좌절하기 쉽습니다. 지치고 피곤이 밀려옵니다. 그런 우리의 상태를 아시고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독수리가 높고 푸르른 창공을 향하여 날갯짓을 하며 높이 올라가는 것 같이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세상 지혜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내 힘을 하려는 것, 재물이나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독수리와 같이 참새 둥지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와 같이 높이 올라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높이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참새 둥지에 안주해 버리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여기서 멈추라. 정착하라. 그리고 만족하라.’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곳곳에 쉬는 장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등산을 하는 중에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새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는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다가 그만 더 이상 오르기를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올라가는 동안 자신은 편안하게 주저앉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올라온 만큼에 만족하고 참새둥지에 정착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정상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에 반해 얻는 대가는 너무 작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도 앉아서 다른 사람이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 있습니다.
등산을 직접 하는 것보다 등산에 관해 말하는 것이 쉽습니다. 실제 우리 인생에서도 정상에 올라간 사람보다 산 아래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면 무엇이 좋습니까? 시야가 넓게 열립니다. 아래에 머물러 있을 때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활짝 열립니다. 아주 멀리까지 잘 보입니다. 아래에서는 그렇게 크게 보였던 것들이 그렇게 작을 수가 없습니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래에 있을 때에는 가까운 곳 밖에 볼 수 없지만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멀리까지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신앙은 당장의 현실만 바라보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만 높은 신앙을 가진 먼 곳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 미국의 저명한 문학가 윌리엄 피터가 한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내용은 이랬습니다. “길을 가던 한 청년이 길에서 일백 달러의 지폐를 주웠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그는 자신에게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길을 갈 때마다 길바닥만 보며 걷는 습관이 생겨났다. 10년 후 그 청년이 얻은 것은 2만 9천 개의 핀과 12달러의 돈과 구부러진 자신의 등이었다. 그러나 그 청년이 잃은 것은 더 많았다. 바로 찬란하게 눈부신 햇빛, 보석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 가로수의 싱싱함, 푸른 하늘과 사는 맛이었다.”
▶ 세상만 바라보는 롯에게 보인 것은 소알까지 펼쳐져 있는 요단 들녘에는 물이 매우 넉넉한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었기 때문에 요단 들녘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매우 기름져 보였고 또 애굽 땅과 같이 비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이러한 요단 들녘에 마음이 끌려 요단 들녘을 차지하기로 하고 당당하게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롯은 요단 들녘에 있는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다가 소돔 가까이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알 정도로 못된 짓만을 일삼았습니다. 결국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때, 자기의 재물과 집이 다 불 타 버리고 빈손으로 목숨만 유지한 채 그것도 아내를 소금 기둥으로 잃게 되고 겨우 두 딸만 데리고 그곳을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가나안의 쓰라린 흉년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요단 들녘을 택한 롯이 좀 얄밉기는 하였으나 약속의 땅인 산지(山地)인 가나안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왜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요?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세상적인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결정권을 롯에게 넘긴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염려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애굽 땅을 나오면서 이런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애굽 땅을 내려간 것도 잘못이지만, 아내를 누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힘으로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셔서 아브라함을 다시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과 금도 빼앗기지 않고 더 풍성하게 얻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물질이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죽고 사는 문제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경험을 통해 얻은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롯과의 분쟁 앞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꺾을 수 있었고 세상 염려까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아브라함이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13:14-17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히 10:35-39 / 여러분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장차 여러분이 받을 보상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36)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그다지 많이 지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38)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께 대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뒷걸음질 쳐 물러서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39) 우리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거나 비참한 운명에 처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갈 6:9 /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실망도 포기도 하지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면 복을 거두어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
4. 대(代)를 이을 자에게 경건의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
신 8:2, 3, 16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에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16)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조상들도 모르던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의 고집을 꺾고 여러분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시려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생길로 인도하셨으나 이것은 나중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신 32:9-12 / 여호와께서 특별히 야곱의 자손을 선택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자신의 유산으로 삼으셨다. 10) 야곱의 자손들이 광야에서 맹수들에게 포위되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시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며 마치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셨다. 11) 독수리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려 스스로 나는 것을 가르칠 때에 항상 새끼들 위에서 감시하고 지쳐서 떨어지는 새끼가 있으면 그 밑으로 날갯죽지를 펴 받아서 안전하게 다시 둥지에 내려놓는다. 12) 이와 똑같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가르치고 보호해 주셨다. 주께서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기적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저들을 벼랑 끝에 세우십니다. 사람이 아닌 독수리도 대를 잇기 위하여 다 성장한 새끼들에게 냉혹한 비행훈련을 시킴으로 날개가 있다는 것과 그 사용방법을 가르칩니다. 어미는 먼저 둥지에만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시간 굶주린 새끼들은 둥지를 나와 어미의 날개 위에 올라탑니다. 어미는 날개 위에 올라탄 새끼들을 높은 창공 위에서 떨어뜨림으로 새끼들이 스스로 날개의 사용방법을 터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벼랑에서 밀쳐 버리시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믿음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 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제자들로 하여금 천지만물을 주관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번에는 저들끼리 갈릴리 바다를 행선하도록 하십니다.
마 14:22-32 /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하고 그동안 군중을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23) 그런 뒤에 기도를 드리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밤이 되자 24) 바람이 일고 물결이 사납게 밀어닥쳐 제자들은 바다 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5) 새벽 네 시쯤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26)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소리쳤다. 유령이 걸어오는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실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 27) 예수께서는 즉시 그들에게 말을 건네 안심을 시키셨다. “나다. 무서워하지 말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정말 주님이시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29) “걸어오너라.” 주님이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예수를 향해 물위를 걸어갔다. 30) 그러나 물결이 높이 이는 것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는 순간 물에 빠지고 말았다. 놀란 베드로는 “살려 주십시오, 주님!” 하고 소리쳤다. 31) 예수께서는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나를 의심하느냐?” 하시고 32)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사도가 되려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제자들은 특히 수제자도 손꼽는 베드로는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위를 걷다가 세상 염려와 근심에 빠져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빠지지 않고 가기를 바라겠지만 한 번쯤은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물속에 빠짐으로 배 위에 바라보고 있던 다른 제자들을 업신여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막 11:22-24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만일 너희가 이 산더러 ‘저 바다로 빠져라’고 하더라도 너희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그대로 되리라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으라. 너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우리가 잘못하여 당하는 시련)일지라도 우리를 새롭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를 잇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히 12:1-10 / 이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둘러앉아 우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속도를 늦추거나 뒤로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다리에 달라붙어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죄를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정해 놓으신 이 특별한 경주에 인내를 가지고 달려갑시다. 2)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 4) 여러분이 죄나 유혹과 맞서서 싸우고는 있지만 아직 피 흘릴 정도로 심한 싸움을 치른 경험은 없지 않습니까? 5) 하나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을 여러분은 벌써 다 잊어버렸습니까? … “내 아들아, 주께서 네게 징계를 내리실 때 너는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주께서 네 잘못을 책망하실 때 너는 좌절해서는 안 된다. 6) 주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것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너를 채찍으로 때리시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참 자녀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내리는 시련을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자녀에게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도 가족도 될 수 없습니다. 9) 비록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가 우리를 꾸짖고 야단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참되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시련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10)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는 우리의 앞날을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우리를 훈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나누어 주려고 언제나 바르게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브라함만 시험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27세쯤 되는 청년 이삭이 대를 이을 수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야곱도 대를 잇는 축복의 기도를 받기는 하였지만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사랑하는 부모의 곁을 떠나 자기 유익만 차리는 외삼촌 집에서 갖은 수모를 겪으며 20년 동안 머슴노릇을 하였습니다. 요셉도 대를 잇기 위하여 약관의 나이에 애굽에 팔려가 13여 년 동안 종노릇을 합니다. 다윗도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차기 이스라엘 왕이 되었지만 13여 년 동안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피란 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들 모두 자기의 혈기대로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낙심될 때에도 기도하기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자기네들이 해야 할 선한 봉사와 충성도 잊지 않았습니다.
▶ 명검(名劍)일수록 많이 두들겨 맞는다고 했습니다. 명검이 무엇입니까? 단단하기로 유명한 칼을 말하는 것입니다. 칼을 만들 때 그냥 용광로에 한두 번 들어갔다 나온 철로 바로 만들면 값도 저럼할 뿐더러 단단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용광로에 넣었다가 뺀 후 두들기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철로 만드는 검은 값도 비싸고 아주 단단합니다. 많이 맞을수록 더 값이 나가고 단단한 강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많이 받는 것도 축복입니다.
■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의 여우들은 새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데, 한 마리씩 굴 밖으로 쫓아낸 후에 엉덩이로 굴 입구를 막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굴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칩니다. 나중에는 아빠의 엉덩이를 할퀴고 물어뜯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싸우는 것도 가르치고 세상에 적응 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합니다.
▶ 짐승들도 자기 새끼들을 훈련을 시키고, 부모들도 자녀들을 훈련시키는데,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더 큰 훈련과 연단을 시키겠습니까? 요즘 부모들을 보면 자녀훈련을 잘못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그저 학원 잘 다니고 시험 잘 봐서 성적만 오르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적위주의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왔어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고, 감옥에 가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참고 견딜 줄 아는 것 또 자신의 주어진 분수에 따라서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러한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성적위주의 교육만 시키니까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견디지 못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이혼하고, 사표내고 그러는 것입니다.
성적교육만 시키지 마시고 인격교육도 시키시기 바랍니다. 성격이 중요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 겸손하게 낮아지는 것,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교육인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떡 보다 매가 더 좋다는 말입니다. 떡 많이 먹은 자녀는 미련하게 되지만, 매를 맞고 자란 자녀는 지혜와 명철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고운 자식에게 매를 줄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화가 난 채로, 즉 감정적으로 매를 들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손으로 직접 때려서도 안 되고, 얼굴을 때려서도 안 됩니다. 또 매를 들 때에는 매를 드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매를 맞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복수심만 키우게 됩니다. 매를 들 때에 진실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를 든다면 그 매는 장차 자녀들의 앞날에 큰 교육이 될 것입니다.
▶ 왜 이스라엘 민족은 그토록 강인합니까?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면서 어느 민족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성을 마련한 백성이기 때문에 강합니다. 유월절 행사를 영원히 실행합니다. 옛 조상이 광야에서 40년 피난살이 할 때, 애굽에서 430년 노예생활 할 때, 바벨론에서 70년 종살이 할 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유월절 행사는 우리처럼 만세 삼창 부르고 그저 높은 사람이 와서 연설하는 정도로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동안 합니다. 그래서 그때 경험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대대로 역사의 교육을 삼습니다. 주후 70년 로마가 유대나라를 완전정복 했을 때 그 기념으로 로마시에 개선문을 세웠고, 기념주화 발행을 했습니다. 이 주화의 그림에는 로마병정이 승리의 술잔을 높이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병정의 발아래는 유태인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고 시중을 들고 있는 그런 주화를 발행했고, 그 이름을 ‘유데아 데비크라’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데 ‘우리는 유태인을 부수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로마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입니다. 그 굴욕의 동전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도록 “당신은 그 동전을 소유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 동전을 보았는가?” 이 말이 인사말이 되었어요. “당신은 로마의 주화를 가지고 있는가?” “안 가지고 있다.” “왜 안 가지고 있느냐? 그것 하나만 가슴에 간직하라!” 그래서 역사의 고난을 담고 있는 기념주화를 집집마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대통령 카터(Jimmy Carter ; 1924~ )는 ‘헤비타트’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전 세계를 다니며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그는 다섯 살 쯤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아주 호되게 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교회에 가서 헌금하는 척 하면서 헌금 주머니에서 돈을 훔쳤는데, 그 일을 아버지에게 들킨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때 아버지가 혼을 내며 교훈한 것을 평생 동안 잊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살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맞은 매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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