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의 두 기둥
2023년 12월 17일 / 대하 3:15-17
대하 3:15-17 / 성전의 현관 앞에 놋기둥들을 만들어 세웠는데 그 높이가 16미터요, 기둥머리의 높이도 2.3미터나 되었다. 16) 이 기둥머리에도 꽃사슬을 만들어 붙이고, 그 꽃사슬에는 놋으로 석류 100개를 만들어 달았다. 17) 성전 입구에 좌우로 세워 놓은 두 기둥 가운데 오른쪽 기둥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에서 야긴이라고 부르고, 왼쪽 기둥의 이름은 `권능은 여호와께 있다'는 뜻에서 보아스라고 불렀다.
모든 공동체나 모든 집단은 그 모임을 모임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 요소를 잃어버릴 때 그 모임의 본래의 생명도 잃게 되는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모든 공동체에는 반드시 있다. 정치를 하는 정당은 정권의 창출이 그 공동체의 중요한 목표인 동시에 요소이고,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가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교회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선교와 봉사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힘써야 하는 일들이지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는 지난 12월 12일 오이코스 설교에서 ‘교회의 사역보다 개인의 경건 신앙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하였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지성소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지성소였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동물의 희생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으며, 죽음과 희생이 있는 장소였다. 동물의 희생은 우리의 죽음과 희생을 대신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우리의 죽음과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지성소는 없다. 그러나 그 지성소의 정신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된다. 교회는 지금도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을 때 우리와 우리의 교회는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죽음과 희생이 없을 때 교회와 우리는 참 생명을 잃어갈 것이다.
우리가 늘 인용하는 요한계시록 2-3장에 걸친 7교회에 내용 중에서도 에베소교회에 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늘 경고의 말씀으로 들려온다.
계 2:1-7 /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보내라. '이는 교회를 순회하며 오른손으로 그 교회의 지도자들을 붙들어 주시는 분의 말씀이다. 2) 나는 네가 선한 일을 많이 한 것을 알고 있다.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인내해 온 것도 보았다. 또 네가 믿음의 형제인 척하며 죄짓는 자들을 눈감아 주지 않고, 사도라고 스스로 떠들어대는 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 그들이 가짜인 것을 가려낸 사실도 알고 있다. 3) 너는 나를 위해 고난을 견디었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4) 그러나 너를 나무랄 일이 하나 있다. 네가 나를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 네가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라. 그래서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찾아 깊이 뉘우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힘써 노력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릴 것이다. 6) 그러나 네가 나처럼 니골라파 사람들의 방종한 행위를 미워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7)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일러주시는 말씀을 잘 들으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그 풍성한 생명은 지성소에서부터 나타났다. 수도 없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의 성전 지성소에서 자신의 몸과 삶과 피를 흘려 제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지성소의 제물이 많았던 교회였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는 산다는 그 하나의 신념을 마음에 새기며 그렇게 교회를 섬겨 왔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듯 부흥하고 발전하여 세계의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약시대 예루살렘성전이 지어지게 된 배경과 그 성전 건축의 정신을 한 번 살펴보자.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전쟁을 많이 한 장군으로, 그 손으로 피를 많이 흘렸기에 성전을 짓는 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여 허락지 않으셨다.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고 훌륭한 다윗이었다고는 하나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인정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그와 같은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함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순종하였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하였다.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그 대부분의 물자들은 다윗이 준비하여 놓았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진 희생의 참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희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훌륭하고 아름답게 건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과 희생은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다. 솔로몬도 성전을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진심으로 훌륭한 성전을 지으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궁전을 짓기 이전에 최선을 다하여 성전을 7년간 건축하였다.
▶ 그런데 본문에 보니 성전을 다 짓고 난 후에 성전의 앞에 기둥 둘을 세웠는데, 남쪽에 세운 그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고 또 북쪽에 세운 다른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라 하였다. 구약시대 당시의 중요한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기념하는 기둥들을 세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오늘날 기념비의 개념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 두 기둥의 이름은 깊은 의미가 있는데, ‘야긴’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라는 말은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라는 말이다. 즉 이 두 기둥의 뜻을 합해 보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이 성전을 세우셨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과 솔로몬의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이라 하였을 것이고 또 다른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성전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의 앞에 세웠던 것이다.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솔로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진 고귀한 지성소의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피를 흘려 죽여야 했던 희생 제물의 정신은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자기를 죽이는 일로 이어졌던 것이다.
자신을 죽이고 이렇게 멋진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 예루살렘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성전이 세워진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어디인가? 느헤미야서에 보면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의 중심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변두리 땅이었다. 적의 도사림이 항상 있어왔고 전쟁이 난무하던, 인간적인 매력은 거의 없는 곳으로 당연히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경우 그 성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느헤미야를 보면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이주시켰을 정도로 예루살렘은 매력 있는 땅이 결코 못되었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쓸모없는 땅, 버려진 땅이었다.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은 그렇지 않다. 모든 히브리사람들의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시온이요, 전 세계 모든 신앙인에 있어서 이름만 들어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해 주는 상징적인 성읍이 되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운 뒤부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다고 해서 모든 성읍이 유명해지거나 커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은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교회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또 세계에서 제일 큰 개신교 성전 1, 2, 3위가 한국에 있다. 그러나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예배당을 세웠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유는 바로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운 것 때문이다. 즉 능력의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그 정신 하나가 변두리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다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는 그 신앙이 예루살렘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교회에 대해 한 가지 꿈이 있다. 그것은 우리교회가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커지거나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영성을 이끌어 나가는 교회가 있게 마련인데, 나는 우리교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 방법은 의외로 쉽다.
▶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지목하여 공생애 초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2:13-22 / [성전 청결; 마 21:12-13, 막 11:11-18, 눅 19:45-46] 유대인들이 해마다 지키는 유월절 축제가 되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14) 예수께서는 성전뜰에 이르러 희생제물에 쓸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 또 그 뒤에 환전상들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15) 그래서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몰아내고 환전상들의 돈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며 그들의 탁자들을 둘러엎으셨다. 16) 그러고나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 1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성전을 다시 이곳에 세우겠다!' 20) `뭐라구요?' 그들이 소리쳤다. `이 성전을 짓는 데 46년이나 걸렸는데 당신이 이것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겁니까?' 21)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께서 자신이 대해서 인용하신 성경 구절들을 깨달았으며 또 그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마 16:16-18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참으로 복되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18) '내가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 어떤 죽음의 세력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성전, 이 교회의 지성소에서 모두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아낌없이 드릴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성전의 제물이 되어 나의 나됨을 죽이고 피 흘리기를 힘쓸 때, 하나님의 성전은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 주실 것이고, 우리 교회를 시대를 이끄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간에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우리 자신의 삶의 문제를 바로 보고 싶은 것이다.
▶ 구약시대의 성전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의미했다면 신약시대의 성전은 바로 우리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는 너희의 몸이 성전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한다.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의 길은 하나의 성전을 짓는 행위이다. 우리의 삶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 세웠던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우리의 신앙 삶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는 그 성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주류, 그 중심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를 교육시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그 중심에 들어가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든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킨다. 좋은 학교를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바램도 또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주류로 이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하고픈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중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중심이 되게 해 주셨다.
자신의 인생의 성전을 지어갈 때 야긴과 보이스 즉 능력의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끄는 주류가 되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 127: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 말씀에 대한 가장 멋지고 정확한 대답은 여호수아 24:14-15 에서 나타난 여호수아의 대답이다.
수 24:14-15 / 자, 그러니 이제는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시오. 여호와를 섬기며 살되 온전히 여호와만을, 진실되이 여호와만을 받들고 살아가시오. 그대 선조들이 유브라데강 건너편에서 살 때, 또 애굽에서 살 때 다른 신을 섬기고 살았다고 해서 그들을 본받지 마시오. 그들을 뒤따르지 말고 여호와를 섬기시오. 15) 하지만 여호와를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못마땅해한다면, 그것이 싫다면 지금 그대들이 누구를 섬기며 살아갈 것인지 분명히 선택하시오. 그대들의 선조들이 유브라데강 건너편에서 살 때 섬겼던 그 신들을 모시며 살 생각이 있소? 그도 아니면 지금 그대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고 받드는 신들을 모시며 살 생각이 있소? 그대들 마음대로 선택하시오. 어찌하든 좋소! 그러나 나와 나의 집안만은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겠소.'
신앙이라고 다 똑같은 신앙이 아니다. 진정으로 질이 좋은 신앙은 그 분 앞에서 고개가 뻣뻣했던 나를 죽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이다. 그 분 앞에서 모가지를 드리우고 붉은 피를 주님의 제단에 뿌려 나를 바치는 신앙이 참신앙이다.
▶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이다.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신앙을 갖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높이며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고 우리 인생의 성전을 아주 훌륭하게 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 디도와 함께 복음의 센터 예루살렘 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였을 때 일이다(A.D. 49).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만나 악수를 하였다. 바울은 그때의 감정을 상기하면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 게바, 요한 이렇게 표현하였다.
갈 2:9 /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기둥같이(στυλοι) 여기는. 바울이 야고보, 게바, 요한에게 기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만큼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교회에는 기둥처럼 쓰임 받는 일꾼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 기둥 없으면 건물 당연히 무너진다. 기둥이 약하면 건물이 쉽게 무너진다. 반면 아무리 큰 세파가 밀려와도 기둥만 떡 버티면 무너지지 않는다.
기둥 같은 일꾼으로 쓰임 받으려면 신령한 일에 계속 자라가야 한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교회의 기둥처럼 쓰임을 받는다.
기둥같이 쓰임 받는 일꾼은 특별히 충돌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이 있어야 신령한 공동체 생활이 즐겁다. 가을에는 철새들이 하늘을 많이 지나간다. 하늘을 뒤덮을 만한 새들의 이동은 때로는 장관을 이룬다. 하늘에 나는 수많은 새를 보시라. 한 가족이 아니다. 그런데도 창공을 날면서 다투거나 싸움질로 인해 충돌하지 않는다. 바다의 물고기 떼도 정한 코스를 가고 오고 하지만 한 마리도 충돌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사람만 충돌이 일어난다. 신분이 상승할수록 더욱 일어난다. 교만 때문에 일어난다. 기둥 같은 일꾼은 충돌하지 않는 특징 있다. 일꾼으로 인정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좋아하며 충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주축이 되어야 할 성도들에게 로마서 12장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현대어성경)롬 12:1-2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2)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롬 12:3-21 /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십시오. 4-5) 우리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에도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모두가 한데 모일 때 하나의 완전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 다른 지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각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어떤 일이든 한 가지씩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 예언하는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있거든 믿음의 분량대로 예언을 하십시오. 7) 만일 남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거든 성의를 다해 남을 섬기고, 남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거든 훌륭하게 가르치십시오. 8) 설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설교를 하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거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행정 능력을 주어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감독하게 하셨거든 성실하게 그 책임을 다하십시오. 슬픈 자를 위로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위로하십시오. 9) 여러분은 겉치레로 남을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10) 형제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존경하십시오. 11) 여러분이 맡은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십시오.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항상 기도하십시오. 13) 하나님의 자녀들이 곤궁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고 만일 그들이 잘 곳이 없거든 집안에 재우십시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누가 여러분을 학대하더라도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15) 다른 사람이 행복해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 16) 서로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하십시오. 오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상류 사람들 사이에 끼여 들려 하지 말고 보통 사람들과 즐겁게 사귀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17)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행동하십시오. 18)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스스로 복수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원수 갚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니 내게 맡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0) 오히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생각하고 부끄러워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것입니다. 21)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