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youtu.be/knWc75eLQhg?list=PL4P6SBDceLgEmB9HYmdwkPL5koSLUzw1t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_요한복음 강해 2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2020. 7.26)
↑ 클릭하셔서 자료 참고하세요(파일받기 - 파일열기)
21 요한복음: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성경말씀: 요6:15-29
지난 주, 예수님의 기적 중 가장 위대한 기적, 오병이어 기적, 2만 여명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함
창조 과학회 회장 김영길 박사님, 믿기 전에 오병이어 기적 때문에 믿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물질 보존의 법칙, 어떻게 빵과 물고기가 계속 늘어나는가? 대단히 합리적인 인간의 생각
이분이 박사 졸업 후 미국 나사에 취직함, 1000며 명의 직원, 200여 명이 신우회
다 박사들, 과학자들, 아니 이 사람들 정말 이것을 믿나? 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런데 머리를 들고 이 땅과 우주 위에 계신 분을 보아야 한다.
불신자들: 빅뱅에 의해 생겨났다. 콩알 안에 우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묻는다: 그 콩알은 어디서 왔는가? 물질 보존의 법칙이 안 맞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우주 밖에 게신 분을 믿는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무한한 분,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이렇게 물질이 생성되면 그 이후에는 물질과 에너지가
보존된다. 오병이어 역시 창조의 하나님의 기적, 예수님의 손에서 게속해서 불어나 2만 명이 먹고
12바구니를 모았다.
오병이어로 충분히 먹고 조각들을 12바구니에 모으자 사람들의 반응(14)
세상에 오실 그 대언자(신18:15), 메시아 표적, 우리는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분의 파워를
그대로 믿어야 한다(요5:24-24).
인본주의자들의 반응: 그럴 리가 없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배가 불렀다. 혹은 사람들이 집에서 가져온 숨겨놓은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의 불신 반응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15절을 보라, 억지로 그분을 데려다가 왕을 삼으려 함
주님의 손에서 빵과 물고기가 불어나는 것을 그들은 눈으로 목격함
일을 하지 않아도 자기들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 왕으로 삼자.
불신의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 있다. 무한대로 크신 분
오늘은 15-29절 말씀, 15-21절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행함, 22-29, 무리들이
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배를 배우려고 주님께 옴,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심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그 일의 특성, 혹시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이 부분을 잘 살펴보려 한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심(15-21)
예수님은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가심(15).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왕이 되는 것은 재림 시에 이루어진다.
마귀는 주님의 공생애 시작부터 사람들을 동원하여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한다.
인생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시험한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시며 자기를 숨기신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 우리의 때인가 아닌가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일이 잘될 때 때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가(16절) 벳새다를 떠나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감.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않음(17). 큰 바람으로 바다가 출렁임(18).
그들이 25-30 스타디온을 노저어감. 1스타디온은 200미터, 5-6킬로미터를 감.
그런데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나타나심(19)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은 마14, 막6장에도 기록된 중요한 일, 왜?
제자들은 요 며칠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왕국의 신비들 설명을 들음, 오병이어 기적,
무리들이 그분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봄, 마음이 들떴다. - 57 -
가룟 유다 같은 제자는 더욱 더 마음이 들떴을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도 어쩌면?
야고보와 요한은? 더욱이 어머니까지 나서서 주님께 간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들 앞에 폭풍우가 닥치는가?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서
주님의 목적이 있다. 마14:22, 주님께서는 강권해서 그들을 먼저 보냈다.
그대로 두면 기쁨에 빠져 길을 잃을까 봐, 어쩌면 그것이 폭풍우보다 더 큰 위험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폭풍우를 만남. 목적: 주님을 더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오병이어 기적은 큰 교훈, 그러나 그 기적 이후 그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폭풍우가 닥침
인생의 폭풍우: 많은 경우 주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닥친다. 요나의 경우처럼
그런데 어떤 때는 순종하며 큰 성공을 이룬 뒤에도 폭풍우가 온다. 지금처럼
여기의 이 사건 요지:
1. 자만하지 말라. 2. 여전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도우시며 구출하심을 보여 준다.
이 사건에는 몇 가지 기적들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으셨다. 중력의 법칙 위배, 잠시이기는 해도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다(마
14:28-32). 예수님은 말씀으로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바다 건너 가버나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막6:51, 바람이 그치고 뭍에 도달하니 제자들도 놀람, 이유: 빵의 기적들을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물질 보존의 법칙, 바다 위를 걸음, 중력의 법칙 위해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가?
바로 이런 분이시기에 믿는다. 우리는 바로 이런 구원자를 믿는다.
이런 분이라야 우리의 죽은 몸을 무덤에서 일으킬 수 있다. 휴거도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게 이 땅과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는 존재를 구원자로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바다 건너 가버나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 결과 제자들의 반응: 마13:33,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왜 이런 기적을 두 번이나 기록하셨을까? 우리는 이런 분을 믿는다. 확신하는가?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22-29)
사복음서를 읽으며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깊은 마음속도 아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연거푸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다음 날: 벳새다에 있던 무리들이 이상한 것을 발견함(22)
거기에는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갈 때 타고 갔던 배 외에 다른 배는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배에 타지 않았다. 제자들만 탔다(22).
그런데 가버나움 밑에 있는 디베랴에서 다른 배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옴(23)
아마도 이 배들에는 어제 오병이어 기적을 본 사람들이 타고 있었음
집에 갔다가 궁금해서 다시 그 기적의 장소로 옴.
그들이 와서 보니 예수님도 없고 제자들도 없으므로 물어서 그분을 찾으러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감(24)
그들은 그분을 만나서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25)
예수님의 말씀(26-27)
그들의 질문(28)
주님의 말씀(29)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살피려 한다. 혹시 내 일을 하면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도.
제자들은 주님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오는 것을 보고 놀랐음. 그런데 주님은 그렇지 않았다.
주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신다(요2:25).
원래 그 무리들이 그분을 따른 이유: 기적 때문임(6:2)
지금 또 몰려온 이유: 빵을 먹고 배부르려고(26).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인간의 마음- 58 -
기적들을 보고 끌려서 주님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 니고데모 같은 사람
그러나 이 무리들의 관심은 이제 빵을 배불리 먹는 것으로 전락하였다.
기적들은 보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기적, 번영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주님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요6장의 오병이어 기적, 만나와 하늘의 양식 이야기의 핵심(27)
27: 양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몸의 양식), 영존하는 양식(영의 양식)
몸의 양식: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위한 양식: 그것은 다시 태어난 영이다. 이것은 영원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먹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다. 그 생명은 선물이다.
빵은 생명을 유지하지만 이 육신의 생명은 끝이 난다. 그런데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이것을 얻어야 한다. 사55:12
내 말을 믿어라,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하신 자다(27).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확인 도장을 찍은 자다.
28: 무리들은 27절의 수고하라는 말을 듣고 잘못 해석하여 그 양식을 받아 구원받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줄로 생각함, 그들은 예수님이 그 양식을 주신다. give라는 말을 놓쳤다. give는 gift 즉
선물이다.
유대인들의 왜곡된 교리: 율법주의, 전통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지키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함
그래서 묻는다(28).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겠느냐? 복수, 그들의 전통들 600개
그러자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일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단 하나이다.
그것은 나를 인정하고 나를 믿는 것이다(29).
요즘 코로나 19 사태, 교회가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있다. 필수적인 모임만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다수의 성도들이 거의 매일 교회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 때문에 필수적인 모임에만 갈 수 밖에 없는 실정
그러다 보니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하 오던 일이 정말로 하나님의 일인가? 내 일인가? 교회나
목사의 일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된다.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맞는다. 그러면 교회도 예배도 불필요하지 않은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한 가지가 필요하다(눅10:41-42).
이 말의 의미: 모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주님을 믿는 것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엡2:8-10
선한 행위로 입증되는 믿음: 성경 읽기, 기도, 전도, 헌금, 교제, 애국
그런데 이것들을 과도하게 하다 보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내 일 혹은 목사의 일이 된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결론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물질과 물리적 법칙에 한정된 신을 믿는가?
이런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이다.
장치 우리의 모습: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
이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탐구해야 한다.
그러게 탐구해서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https://youtu.be/myKEeMQN_tA?list=PL4P6SBDceLgEmB9HYmdwkPL5koSLUzw1t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_요한복음 강해 설교 2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2020. 8. 2)
22 요한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경말씀: 요6:30-51
요한복음의 핵심: 1.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지난 두 주, 예수님의 기적 중 가장 위대한 오병이어 기적, 물질 보존의 법칙 위배, 바다 위를 걷는
기적, 중력의 법치 위배, 우리는 이런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믿는다.
2.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처음에 사람들은 기적들을 따라서 그분께 왔다. 배불리 먹은 뒤에는 빵을
따라서 그분께 왔다.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오늘도 관심이 또 바뀐다. 특히 하나님을 마주 대하는
자리에서는 대면하는 것을 피하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댄다.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
빵을 먹으러 왔다가 예수님이 27절 말씀을 하시자 “하나님의 일들은 무엇이냐?”고 물음. 우리가 알면
그것들을 하리라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29):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의 생명이 들어가서 그분의 일을 하게 된다. 일을 통해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 그것은 곧 나를 믿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
오늘은 < >를 통해 그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먹여 주신 참된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가?
대중의 방향 전환
29절, 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자 무리들은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돌린다.
선생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무슨 표적을 보이려 하십니까?(30)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적어도 모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모세는 하늘에서 빵을 주어 군중을 먹였습니다(31).
당시 랍비들의 가르침: 메시아가 오면 만나의 기적(출16)을 다시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면(29)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해야 한다.
유대인들의 고질병: 표적 구하기(고전1:22), 마12:38-39
또 다시 ‘보면 믿겠다’는 주장, 그러나 보는 것들에 기초한 믿음은 반드시 패망으로 이끈다.
심지어 마귀와 그의 천사들, 그의 종들도 엄청난 기적들을 행한다(특별히 재림 때 살후2, 계13).
그러나 우리는 보지 않고 성경 말씀을 통해 믿어야 한다.
요6:31은 시78:24,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 기록(31절), 아무데서나 인용함
주님의 말씀: 바르게 알아야 한다.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빵을 주셨다(32, 시78:24).
그러므로 모세가 아니라 그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셨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빵을 주신다(32).
과거의 만나는 육적 생명을 위한 물리적 기적, 그러나 그것은 끝났다.
지금 나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영적인 빵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빵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33).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니라. 사람이다. 다른 역본들, 주는 것이니라.
시대가 바뀌었다. 과거의 것은 예표이고 지금 실체가 왔다.
백성의 반응: 그 빵을 주소서(34).
요4장의 수가성 여인, 영원히 솟아나는 물을 부소서, 그러면 내가 수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군중도 아직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빵을 얻어서 고생하지 않고 사는 것만 추구
주님의 말씀(35), 내가 바로 그 빵이다. 내게 오는 자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것들(빵, 물질 명예 등)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다.
나는 지금 이 땅에서의 생명이 아니라 영존하는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일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와야 한다(35), 2. 믿어야 한다(35).
그분을 알고 그분께 오는 것이 곧 믿는 것이요, 믿는 것은 곧 그분께 오는 것이다.
나에게 오면 주리지 않고 믿으면 목마르지 않는다(35).
그러므로 와서 믿는 것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60 -
육신의 생명도 빵과 물을 몸속으로 받아들여야 유지된다.
같은 원리이다. 나를 너희 안에 받아들여야 연존하는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의 특징: 일곱 번의 I am. 1. 나는 생명의 빵이다(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3. 나는 양들의 문이다(10:7-9). 4.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26);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15:1,5)
I am. 모세가 하나님이 누구시냐고 물을 때 하나님의 대답,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출3:13-14).
I AM THAT I AM.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I AM 즉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 요한복음 기록의 목적(요1:1; 20:28의 도마의 대답)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37-40)
37절: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그분께 주신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분께 간다. 그러면 그분은 그를 내쫓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미리 아심), 사람의 책임(그분께 가야 한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 영원한
안전 보장,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들을 그분께 주는가(44-45)? 무조건적 예정 아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 자기 안에 있는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39), 부활
아버지의 뜻(40), 이보다 명백할 수는 없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 그것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구원을 잃을 수 없다(39).
군중의 수군거림(41-42)
예수님의 말씀(41), 군중의 수군거림(41), 육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
41절: 나는 하늘로부터 온 빵: 이것은 그분의 신성을 말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아들, 그분의 형제들, 자매들,
그들이 알지 못한 것: 요셉은 양아버지,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처녀 탄생을 통해 이 땅에 나신
분, 예수, 죄들에서 구원하는 분(마1:21), 임마누엘 하나님(마1:23)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다시 설명하심(43-45)
43: 수군거리지 말라. 다시 설명하겠다.
44절: 아버지께서 이끌어야 올 수 있다. 이것은 무조전적인 예정, 선택 아니다.
45절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방법 기술, 이것은 사54:13 (혹은 렘31:33-34) 인용
즉 말씀을 들어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을 통해 그분께로 이끄신다.
그러면 죄인은 듣고 배우고 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딤후3;16-17).
사람이 할 일: 말씀을 듣고 배우고 믿고 와야 한다.
요5장,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38년 동안 아픈 병자 고치는 일
구원의 방법: 예수님을 아는 것, 어떻게 5:38-40
군중은 보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듣고 배우고 믿고 오려 하지는 않았다(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46). 본다는 의미 역시 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 몇 사람만 이끄시냐? 무조건적으로 예정된 사람만 이끄시지 않느냐? 아니다.
요12:32,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모두가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신다. 차별이 없다. 요3:16
만나와 예수님 비교(47-50)
예수님은 실제 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 빵이 하는 일보다 더 큰 것을 보여 주신다.
47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다.
과거의 만나는 유대인들에게만 육신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그것을 먹은 자들 결국은 다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온 빵이신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빵이다(51).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주셨다.- 61 -
만나를 매일 보내는 데는 하나님의 희생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아들을 보내는 데는 하나님 편에서 가장 하기 힘든 희생이 있었다.
만나는 매일 먹어야 한다. 그래야 육신 생명 유지, 그러고도 죽는다(49).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한 번 받아들이면 영원한 삶을 산다(50). 영원한 안전 보장
만나는 무엇인가? 유대인들에게 신비한 빵, 이름: 이것은 무엇이냐?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만나는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반역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예수님도 마차가지이다. 죄인들에게, 전적인 은혜
유대인들: 가서 그것을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밟힘
예수님도 마찬가지, 가서 믿음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밟힘
결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마16:13-17,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영원이 여기에 달려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영존하는 생명
말씀을 듣고 배우고 믿고 와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분이 하신다. 부활, 그분은 결코 하나도 잃지 않는다. 영원한 안전 보장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https://youtu.be/g--flpHpV7I?list=PL4P6SBDceLgEmB9HYmdwkPL5koSLUzw1t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은 둘로 갈라진다_요한복음 강해 23_주일 오전 실시간 예배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2020. 8. 9)
23 요한복음: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은 둘로 갈라진다
성경말씀: 요6:52-71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발견하는 것: 사람들의 영적인 무지, 보이는 것, 빵에만 관심이 있다(기복, 번영
복음 추구).
하나님 그분 자신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깨닫지 못한다. 세상의 경험, 학식, 전통이 소용없다.
심지어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동일하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누구나 영적 무지와 어둠 속에 있다.
지난 주, 군중들이 몰려와 빵을 달라고 한다.
예수님: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것에 이르는 양식(27)
내가 그것을 준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29)
군중들: 당신이 참 대언자라면 하늘에서 왔음을 보여 주는 표적을 보여 주소서(30).
1500년 전에 모세는 광야에서 백성에게 만나를 주었습니다(31).
예수님의 대답: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32).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빵을 주는
자이다(33).
과거에 모세가 준 것은 썩어 없어지는 양식이다. 그것은 메시아가 행할 위대한 일의 예표로 주어졌다.
그것을 먹어도 다 죽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은혜를 대체하는 은혜가 왔다(요1:16).
나는 하늘에서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나를 믿고 나를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35). 믿는 자를
일으킨다(39)
군중들의 반응: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어떻게 하늘에서 왔다고 하느냐?(42)
영적으로 눈이 뜨이지 않은 자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은 그들의 다수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분을 버리고 떠난다. 오늘 < >, 예수님 편에 있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
예수님의 폭탄선언: 그 빵은 곧 내 살이다(51).
내가 주려는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가 주려고 하는 내 살이다(51).
6장에는 살이라는 말이 총 7번 더 나온다(51-56까지).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물로 주실 것을 뜻함
요한복음의 주제 중 하나: 대신 속죄, 기독교의 핵심 교리, 엡2:1, 모두가 죽어 있다. 사람의 힘으로
구원 불가능, 누군가가 대신 해 주어야 한다. 죄 값을 치르고 형벌을 받고 특히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 구약 시대 수많은 짐승들의 죽음, 그러나 염소와 황소의 피가 죄들 제거 불가능(히10:4)
완전한 희생 예물 필요: 죄가 없는 완전한 분의 죽음 필요(고후5:17)
그분이 바로 예수님, 대신 속죄, 단 한 번에 영원한 속죄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3:16; 6:51), 자신의 양들을 위해(10:11, 15), 자신의 민족을 위해
(11:50-52), 자기 친구들을 위해(15;12) 대신 죽으신다.
군중들의 논쟁(52-59)
군중들의 반응(52), 어떻게 자기 살을 주느냐? 율법에 따라 불가능함, 피도 먹으면 안 됨
군중들의 실수: 영적인 말씀을 물리적인 것으로 오해함
53절 예수님의 설명: 너희가 빵과 물을 마시면 그것이 몸속에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고 생명을 유지하듯
이 너희가 너희 속으로 나를 받아들이면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준다.
53절은 주의 만찬 이야기가 아니다. 주의 만찬은 십자가 처형 전에 있던 일, 이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63절에서 명확하게 하심, 지금 나는 진짜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진짜 문 아니다. 나는 빛이다. 진짜 빛 아니다. 나는 포도나무다. 진짜 나무 아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런 상징들이 들어 있고 또 주님은 필요한 경우 스스로 해석해 주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54), 그분의 살과 그분의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이것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 부활된다,.
그 효과(55-56),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일한다(엡2:8-10).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위가 - 63 -
나온다. 선한 생명이 들어가서 선한 일을 한다.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가버나움 회당에서(59)
군중들의 반응(60)
백성의 반응(60): 어렵다. 들을 수가 없다 깨닫지 못하겠다. 고전2:14
주님의 말씀의 특징: 사실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해한 뒤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분의 가르침은 두 측면에서 그들에게 장애물이 되었다.
1.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나는 신성의 존재이다(요셉의 아들...).
2. 너희가 구원받으려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그분을 받아들어야 한다).
그들은 이 두 가지에 결려 넘어졌다. 이유: 전통, 영적 무지, 자기 의(롬10:2-3).
이에 대한 주님의 말씀: 너희가 이 두 가지로 인해 걸려 넘어졌다면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려느냐?(62), 실제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40일이 지나자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심
주님의 설명(63): 너희더러 진짜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말씀이 영이다. 말씀이 살린다. 내 말이 살린다.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 과거의 만나가 그런 것이다, 다 먹고 죽었다.
그것은 예표에 불과하다. 예표를 따르지 말라. 실체인 내가 왔다.
과거의 모세, 엘리야 다 훌륭하다. 그러나 그들은 육에 속한 자들, 나에 대해 증언하였을 뿐이다.
그들 자신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실체인 내가 왔다.
아무리 진짜 살을 먹고 피를 마셔도 구원받지 못한다. 천주교는 여기서 화체설을 차용한다.
천주교의 미사: 사제의 기도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실제 살과 피로 바뀐다. 불가능, 이런 빵
마우리 먹어도 구원과 무관함
그래서 그것들을 먹음으로써 다시 희생 제사를 드린다. 예수님의 단번 속죄 무시
성경의 판단: 살 즉 육신 안에는 선한 것, 좋은 것이 전혀 없다(롬7:18).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빌3:3).
그러면 어떻게 살과 피를 먹을 수 있을까?(63)
말씀을 통해서 가능하다(63).
어떻게: 말씀이신 분이 말씀들을 하시니까. 요1:1, 1:14,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그래서 내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갖는다(요5:24).
이것은 이미 렘31:31-34에 예언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 안에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의 선포 이후 군중들이 떠난다(64)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64). 너희는 누구인가? 그분의 제자들(66)
제자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며 몸으로 체득하는 사람
12제자 외에 이미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표면적으로).
그중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는 함께 다니지 않음(66).
다시 옛 생활로, 육신의 길로, 옛 종교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65절),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신 자들, 예정이 아니다.
45절 , 말씀이 주어지고 강해될 때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성경 말씀에 달려 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만 일하신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신다. 2. 아버지가 말씀을 보내신다.
3. 성령님이 그 말씀을 이해하게 하신다(요14:26).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어야 한다(마4:4).
반드시 말씀들이 보존되어야 한다(시12:6, 마24:35).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 성경이 있다.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 64 -
모든 말씀들을 세계 공통어인 영어로 보존해 주신 성경이라고 믿는다. 믿는다 주관적이다.
동시에 개관적인 데이터가 차고 넘친다.
이 안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들어 있다.
진리의 배타성
예수님만 길이시다(요14:6). 그 길로 다녀야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진리가 선포되자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그 길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의 배타성: 예수님만이 진리, 진리는 배타적이다. 그분만이 진리면 다른 것은 비진리다. 이것이
진리의 특성: 이것저것 다 진리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가능, 왜, 그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 완전한 희생 예물
이들이 이렇게 떠나도 주님은 전혀 놀라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아시기 때문에.
진리에 서는 사람들,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질문(67)
12제자들의 반응(68-69)
베드로와 11제자들: 예수님의 신성, 예수님이 말씀, 그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
결론: 그분의 말씀들이 있는데 어디를 가느냐?(68)
참된 성도들의 고백(69), 마16:16 등 요10:36, 19:7, 20:31 등)
이런 고백자들 가운데는 심지어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고백이 참되지 않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70-71).
사람의 속 중심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분: 하나님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다시 보게 된다.
결론
요한복음 6장: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오병이어 기적, 물 위를 걷는 기적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그분을 받아들여야 구원 가능
많은 경우 대중의 동기는 순수하지 않다. 대개 주님의 병 고침,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로마 제국, 바빌론 제국 등 고대 제국들의 특징: 빵과 서커스를 국민에게 제공함
그러면 백성은 기뻐하고 순응함, 현 시대도 이와 비슷하다. 특별히 사회주의 전체주의 국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라다녔다.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분을 구원자요,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많이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 이름을 걸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살펴보라. 혹시 그들은 병 고침,
번영, 인생의 자랑 등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특징: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고 그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사는 것
지금 이 시대: 적그리스도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국민들의 무지로 국가의 대혼란
국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한 분에게 문자, 국가가 부여한 책무가 아무리 커도 낙심하지 말고 영육이 강건한
가운데 잘 이끌고 나가시라.
그분의 문자: 감사합니다. 제가 옳은 길,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말씀대로 옳은 길, 좁은 길을 가기 위해 기도하고 애를 써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
https://youtu.be/p4CMpS46DnA?list=PL4P6SBDceLgEmB9HYmdwkPL5koSLUzw1t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_요한복음 강해 24 _주일 오전 실시간 예배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2020. 8.23)
24 요한복음: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성경말씀: 요7:37-39
지난 4주에 걸쳐서 요6장 강해, 오병이어 기적,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산다.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대중은 육신의 빵만 원하지 영존하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제자들의 대다수가 그분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6:66).
소수의 남은 자들과 그들의 믿음의 고백(68-69)
오늘 7장은 6장의 연속이다. 6장은 빵 이야기, 7장은 물 이야기,
핵심: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려 하신다.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신다.
오늘 < > 왜 생수 이야기,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는 것의 의미
먼저 문맥을 설명하려 한다.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공적인 테러가 시작됨
유대인들이 그분을 죽이려고 함(1). 그래서 유대,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갈릴리로 오심
오늘 이야기의 시작: 유대인들의 장막절이 다가오고 있다(2). 여기서 힌트가 주어진다.
장막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1년에 세 차례 큰 명절을 지키고 남자들은 다 거기 참석해야만 했는데 장막절은
그중 하나였다(신16:16). 장막절은 티쉬리 월 15일(대략적으로 10월 15일)부터 8일간 지켰으며
특히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거룩히 구분해서 지켰다(레23:34-43; 느8:14-18). 이 명절은 이스라
엘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레23:42-43).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
의 집의 지붕이나 뜰이나 거리에 나뭇가지 등으로 초막을 만든 데서 유래된 명절. 느헤미야는 그들이
장막절을 지키기 위해 올리브 산에서 올리브, 종려나무 등의 가지를 모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는
사실 수확물을 거두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때였다. 한편 천년 왕국에서는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던
모든 민족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장막절을 지킬 것이며 그리하지 않는 민족들은 다 재앙을
받을 것이다(슥14:16-19).
장막절은 작물 수확 후 맞는 즐거움의 절기, 많은 사람이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온다.
그래서 스가랴서를 보면 천년왕국에서도 이방인들도 이 명절을 지킨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려면 장막절의 핵심 행사를 알아야 한다.
랍비들의 증언: 매일 아침 군중들은 헤롯의 성전에 온다.
(*) 두 가지 물품이 필요하다. 하나는 감귤, 하나는 나뭇가지
(*) 왼손에 감귤 같은 것을 가지고(ethlog). 이 과일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상징함
오른손에는 종려나무, 버드나무, 머틀나무 가지들 장식(lulab): 조상들이 광야 생활 할 때의 세 단계
매일 백성이 성전으로 오는데 거기에는 제사장이 금으로 된 물통을 들고 있다. 그리고 제사장은 예루살렘
남동쪽의 실로암 연못으로 간다. 백성은 뒤따르면 시편을 낭송하면서. (*) 제사장은 실로암 연못에서
물통에 물을 담는다. 백성은 사12:2-3를 암송한다. 그 뒤 제사장과 백성은 예루살렘 동쪽의 물
문을 통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온다. 이때 제사장들의 나팔소리, (*) 제사장은 동행하는 제사장들과
함께 제단을 한 바퀴 돈 뒤 연단으로 올라가서 물을 붓는다. 매일 이 일을 한다.
(*)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
장막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과 동생들의 이야기(3-5), 그들의 불평하는 톤의 이유(5)
유대인들이 그분을 죽이려고 함, 그의 동생들도 그분을 믿지 않음, 예루살렘에 가서 죽으라고 함
우리 주님의 말씀(6). 아직 좋은 때가 아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형제들을 속인 것이 아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십자가 사건을 제외하고는 공적으로 그분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
기다리다가 드디어 때가 되자 올라가셨다(10).
예루살렘의 상황: 수많은 사람들
유대인들은 그분을 찾고 있다(11).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죽이려고- 66 -
사람들 사이의 여론(12-13), 좋은 사람, 속이는 자 등
다만 두려워서 공적으로 아무 말도 못하였다(13).
14-36절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
드디어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고 말씀하실 때가 되었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드디어 명절의 마지막 날(37). 이 날도 제사장과 백성은 아침에 동일한 일을 하였다. 실로암 연못, 시편
낭송, 물 문 통과, 나팔 소리가 요란함, 이사야서 암송, 드디어 제사장이 연단에 올라가 사람들이
보는 데서 물 통을 높이 들고 물을 부음, 제사장이 물을 붓는 것을 보는 것은 장막절에 온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
바로 그때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바로 이때를 우리 주님은 기다리셨다. 바로 이때 주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셨다. 모든 것이 완벽히 구비된 시청각 설교였다.
이런 것을 이해해야 요7:37을 바르게 알 수 잇다.
이러한 배경을 안 뒤에도 요7:37을 감동 없이 읽는다면 큰 비극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위대한 말씀들로 충만히 채워지기를 원한다.
목마른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37) 여러분은 어떤가? 목마른가? 목마른 적이 있는가?
요즘 얼마나 더운가? 목이 마르다. 손자가 와서 저녁에 앞에 있는 공원에 데리고 나간다. 거기에 수도가
몇 개 있다. 가서 물을 틀어 줬더니 떠나려 하지를 않는다. 물이 튀니 조금만 틀어 주면 아니라고
한다. 완전히 다 틀라고 한다. 왜 더워서 목이 마르기에, 시원해지려고, 참 물은 좋은 것이다.
지금 주님은 중동 지방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신다. 이른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다.
너무 덥다. 시원한 물이 생각난다. 이들은 지금 더운 상태에서 목마른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있다.
바로 이때 주님의 말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물론 우리 주님은 여기서도 육신의 갈증을 말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물을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요6장 말씀 그대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의 영적인 물을 말한다. 요4:14 영원히 솟아나는 우물을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갈망이 있으면 누구나 와서 무료로 마시라고
주님은 초청하신다. 사55:1-3, 계22:17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갈증, 갈망을 느낀 적이 있는가?
예수님의 초청에 응한 적이 있는가? 그 초청에 응해야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기독교의 핵심: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 이곳이 끝이 아니다. 천국이 있다.
이 갈증이 없이 그냥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타는 불로 인해 영원한 갈증을 느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말한다. 그런데 와서 마시라고 하니 돈, 명예, 권세 주세요.
갈증을 채우라고 하니 록 음악 등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예레미야 대언자의 부르짖음(렘2:13)
인간의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자기 것을 추구하는 것. 어느 정도 맞는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수의 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37-38)
누구나 와서 마실 수 있다. 영적인 건강을 누릴 수 있다.
6장에서 오병이어, 하늘에서 내려온 빵, 지금은 물
나를 먹고 나를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
내게 와서 마시라
주님의 초청: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영원히 솟구치는 물을 주리라.
그 물은 공짜이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물을 주시는 분이 세운 조건: 믿음으로 와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께 가야 한다.- 67 -
히11:6, 내 업적이나 행위가 아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넘치리라
7:38, 단순히 생수가 아니라 생수의 강들이 흘러넘친다.
우리 안에 있던 영적 갈증, 영적인 배고픔이 완전히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다.
우리를 채울 뿐만 아니라 넘쳐흘러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된다.
이 생수의 강은 성령님(30)
즉 성령님의 파워가 넘쳐흐를 것이다: 이것이 목마름을 해결한 성도들의 특징이다.
정부 차관, 너무 감사합니다. 정교분리가 아니라 국교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천주교 다니고 있는데
진리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과 함께 목사님 말씀 듣고 있습니다. 목사님처럼 살면
너무 좋겠습니다.
나도 육신을 입은 사람, 육신적으로 고통이 많다. 특히 요즘 국가, 교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교회로 모이지 못하는 것 생각하면 애가 타고 화가 난다.
성경 최종 교정하면서 너무 힘이 들다. 중병으로 고생하는 지체들 생각하며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결국 끝날 것이다. 내 배에서 영원한 생수의 강들이 솟아오를 것이다. 나와 함께 수고하는 우리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을 통해 말씀 사역의 생수가 강들처럼 솟아올를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기쁨은 생수가 넘쳐흘러 다른 이들에게 전달될 대야 비로소 충만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서 만족을 찾거나 우리만 만족하기를 원하면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다.
흘러넘쳐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결론
우리 주님을 보라. 장막절의 마지막 날,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분의 입에서는 정확하게 그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을 뜻하는가? 모든 것이 그분의 손안에 있다.
지금 국가 위해 염려하고 기도한다. 대한민국은 주님의 손안에 들어 있다. 가장 정확한 때에 주님께서
악한 자들을 물리쳐 주실 것이다.
각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 원하는 소원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제때에 해결해 주시리라 믿는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장막절은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유랑하는 것을 보여 주는 절기
광야 40년 동안 뙤약볕에서 나뭇가지 몇 개로 초막을 만들고 쉬고 있다.
물이 마시고 싶다. 너무 힘듭니다.
그때에 모세가 반석을 치니 반석에서 물어 솟구쳐 나왔다(출17:3-7). 강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마시게 되었다. 이 바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고전10:4).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성령님이다(39).
아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39). 그 반석을 쳐야 물이 나오는데 아직 반석을 치지 않았다.
아직 십자가 사건 이전이다. 그러나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반석을 치면 드디어 거기에서 물이 솟아오를
것이다.
그 생수의 강물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십자가 사건, 부활, 50일 오순절에 성령님이 이 땅에 부어졌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성령 침례를 받는다. 푹 잠긴다.
그 이후에도 순종하며 살아가면 성령님의 충만을 받는다.
결론
영혼의 갈증을 느낀 적이 있는가? 주님께 나와 성령 침례를 받고 다시 태어났는가? 성령 충만을 받고
살고 있는가? 없으면 37을 기억하기 바란다. 질병, 고통, 주님께 나오라.- 68 -
모세의 경험, 바위를 두 번 치는 일이 생겼다.
첫 번째 사건, 바위를 치라고 해서 쳤더니 물이 나옴
두 번째 사건, 바위를 치라고 하지 않음, 바위에게 말하라고 함. 그러나 그는 화가 나서 바위를 침.
물은 나왔지만 그는 불순종의 대가를 치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
그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한 번 쳐야 한다, 두 번이 아니라 한 번.
그 뒤에는 그분에게 말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 우리는 예수님의 단 번 속죄, 성령 침례 구원
그 뒤에는 그분과 말하며 교제해야 한다. 성령 충만,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을 아는 데서 온다.
https://youtu.be/TTG1kcAeWac?list=PL4P6SBDceLgEmB9HYmdwkPL5koSLUzw1t
예수님과 진리의 성경 말씀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쓰고 아프다_요한복음 강해 25 _주일 오전 실시간 예배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2020. 8.30)
25 요한복음: 예수님과 진리의 성경 말씀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쓰고 아프다
성경말씀: 요7:40-53
어제 토요일 아침 출근, 의정부의 한정재 어르신 전화, “목사님, 지난 주 설교 너무 감사했습니다. 교회로
못 모여도 제 배에서는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옵니다. 우리 교회 미디어 사역 덕분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교회에 오지 못해도 교회 설교 듣고 찬송 듣고 교회에서 보낸 주는 성경 읽기 과제 하고
성경 퀴즈 풀고 답 맞추고 합니다. 매우 기쁩니다. 제 나이가 89세인데 지난 5년 동안 저는 우리
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더욱이 세대주의가 무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dispensation
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실하게 말씀 전해 주세요. 우리 교회 미디어
선교가 저를 살리고 많은 사람을 살립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요. 감사합니다!”
요즘 저의 상황: 지난 5년 동안 매일 전 시간을 성경 교정하는 데 쓰고 있다.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니
더욱 더 그렇다. 인간적으로는 하나도 재미없는 무미건조한 삶, 스트레스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매주 3편의 설교, 강해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준비하고 설교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즐거움
특별히 요한복음, 에스라 맥잡기, 공산주의 바이러스 공부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피상적으로 읽던
성경을 배경을 알고 문맥 안에서 읽고 강해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더욱이 위어스비 목사님을
비롯해서 믿음의 선배들이 남기고 간 영적 유산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
부족한 사람이 공부해서 선포하는 말씀에 감화를 받고 기뻐하는 성도들이 있고 불신자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더욱 기쁘다.
지난주에는 암으로 고생하는 세 분께 전화해서 위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니 더욱 기뻤다.
성경 출간이 이루어진 뒤에는 더욱 더 성도들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려고 생각한다. 아마 내 아내와
가족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과...너무 쓰고 아프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 인해 사람들이 확연히 분리되는 것을
살펴보려 한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전조를 보며 기뻐하기도 하고 지혜롭게 대비하기도 해야 한다.
지난주 설교 요약
7장부터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공적인 시도가 이루어짐, 그래서 갈릴리에 머무심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장막절, 가장 정확힌 시점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명절의 맨 마지막, 가장 큰
날 제사장과 백성은 가장 큰 행사 진행, 제사장이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금 물통에 물을 담아다가
제단 위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물을 부음. 사람들의 갈증, 바로 그때 예수님의 음성(37-38).
우리 주님의 3년 반 공생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37-38을 말씀하시는 순간은
정말로 중요하고도 중요한 순간, 수많은 유대인들, 제사장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로 구약 시대는 가고 이제 신약 시대가 왔다는 선언
제사장들이 짐승을 잡아 바치고 정결례 의식을 행하고 물을 뿌리고 하는 모든 것들은 예표
그러나 이제 참 제사장, 참 희생예물이신 주님이 실체로 오셨음을 선포함
히9:9-10
히10:1-4
이런 의식으로는 너희의 영적인 갈증을 채울 수 없다. 이제 예표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배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생수의 강들을 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다. 구약과 신약의 분리를 말한다.
그분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님(39)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는 받아들이기에 너무 쓰고 아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시고 흘러넘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을 적시게 하신다.
이럼 엄청난 진리를 들은 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이 미쳤을까?- 70 -
예수님의 선포 이후 사람들 가운데 분열이 생겼다(40-44).
1. 그분은 그 대언자다(40), 2. 그분은 그리스도이다(41), 3.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나오시겠느냐
(41), 베들레헴에서 나오신다(42). 분열이 생김(43).
1. 그분은 그 대언자(신18:15-18), 가나안 입성 직전, 모압 평야, 자기와 같은 대언자를 주신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베드로의 설교(행3:20-22)가 말하듯이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은 멸망당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분을 그 대언자로 여기지 않았다. 요1:11-12
2. 그분은 그리스도이다. 정확한 판단
3. 다른 사람, 그분은 좋은 사람인데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그러나 그는 갈릴리
그들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출생, 다만 그 이후 갈릴리 거주
예수님과 그분의 선포를 두고 심각한 분열이 생김(43)
이미 예수님은 예고하셨다(마10:34-35). 눅12:51-52
예수님은 분열을 원하지 않는다. 평화의 통치자
그런데 우리의 죄악, 이기심, 편견, 무지로 인해 그분이 들어가면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 분열이 생긴다.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
어둠 가운데 빛이 비치면 자연히 그런 일이 생긴다.
미국 캐나다에는 록키산맥이 있다. 이 산맥 위에 비나 눈이 내리면 반드시 서쪽으로 가든지 동쪽으로
간다. 중간에 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결코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가 이와
같다. 반드시 분리가 생긴다. 우리는 빛나는 새벽별 예수님 편에 서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루시퍼 편에 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분리는 매일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난다.
정치, 경제, 도덕과 윤리, 교육, 교회 선택, 심지어 음식 섭취, 집 직장 선택의 문제
옳은 것을 택해야 한다.
“요즘 예수님 때문에 제 삶에 변화가 생겼어요.” “기침하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병원 약속, 개밥 주어야
한다 등등), 경멸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 믿고 변화된 삶을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OK
그러나 열정적으로 확실하게 말하면 분열이 생긴다.
분열이 생기는 이유: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수용하면 삶의 방향이 바뀐다.
인생관, 가치관, 역사관, 세상관의 변화
현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믿고 가르친다.
6000년 전 창조, 6일 창조, 죄, 하나님의 심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하나님의 말씀 보존, 부활,
영원한 생명, 이 땅에서 교회의 영원성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그분을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44). 그분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감히 손을 대지는 못한다. 왜 아직 때가 오지 않아서
대한민국의 교회가 처한 현실이 이렇다.
1880년 조선은 개화기를 맞는다. 그때부터 일제 36년, 대한민국 건국, 6.25 승리, 대한민국 발전
이 모든 것은 교회와 함께 이루어졌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과 교계 지도자들의 대화, 대통령도 인정하였
다. 교회 혹은 기독교가 이룬 가장 중요한 것: 대한민국 헌법,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 헌법, 국민의
7-80퍼센트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러나 하나님은 기독교 성도인 이승만을 사용해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 확립, 이것으로 인해 지금의 모든 것을 누리게 되었다.
헌법, 교육, 의료, 국방, 안보, 경제 등 모든 것이 기독교의 가치와 문화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땅의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 완전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몇 몇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 71 -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에 6만 개 교회.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 교회의 문제를 모든 교회의
문제로 확대해석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전체주의 발상이
다. 여러 사람들이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진짜 과학은 무엇인가?
1. 바이러스의 근원지인 중국 사람들 제때 차단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 이것이 과학이다.
2. 버스, 지하철, 노래방, 목욕탕, 해수욕장, 비행기, 에버랜드, 오페라 공연 등, 집단 휴가, 공짜
영화 관람권 등 정부 배포, 이런 것들이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 이것이 과학이다.
3. 팩트: (*) 8월 28일 동아일보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다”> 기사,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
부 부본부장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코로나19 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깜깜이 감염, 8월초 휴가, 집단 이동, 말 그대로 방역 실패로 이제는 누구든지 어디서나 언제라도
코로나 19에 감염될 수 있다.
한 사람의 하루 동선, 집, 엘리베이터, 버스, 지하철, 영화관, 직장, 커피숍, 교회, 어디서 감염되는지
어떻게 아는가? 심지어 아파트에 있는데도 공공 환기구 때문에 코로나 확진자 발생함
그러므로 교회를 희생양으로 삼아 교회를 핍박하면 안 된다. 비과학적이다.
엄청난 핍박, OO제일교회 심OO 목사님, 8월 26일 금요일,
저희 교회 주변과 마을에 드디어 물리적 공격이 시작 되었습니다. 휴~~~
(*) 그런데 전 근심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가 흥미롭네요.
승리 했습니다. 저희 교회 훼방 현수막 20개 모두 구청에서 철거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민, 여야, 좌우, 기독교, 비기독교
남 탓하는 것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교회들은 더욱더 방역에 신경 쓰고 거리 두기 등을 유지할 것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므로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828/102684358/1
예수님의 말씀,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어떤 핍박도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역사의 증언, 하나님의 기관이므로. 유한한 창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과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속히
다음 주부터는 철저한 방역과 함께 정상적인 예배가 이루어지기를 주님께 간구한다.
예수님을 배척함(45-53)
예수님은 장막절에 행사가 열리는 뜰에 나타남, 그러자 아마도 제사장들은 그분을 붙잡으라고 성전 경비
부대원들을 보냄.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서 위대한 말씀을 하심. 그들은 그분을 붙잡지 못함
이들이 돌아가니 바리새인들/수제사장들이 물음(45)
그들의 대답(46), 말 그대로 정직한 대답
“군중들이 돌을 던질까 봐 무서웠습니다.” 등의 변명 가능
그러나 그들 역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압도되었다.
그분을 붙잡으러 갔다가 그분께 붙잡히고 말았다.
종교 지도자들과 경비 군사들의 차이: 전자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듣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는 편견이 없이 명령을 수행하러 갔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 그분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바리새인들의 응답(47). 그가 너희도 속였느냐? 예수님과 교회는 속이는 단체가 아니다.
종교인들 가운데 그를 믿는 자가 어디 있느냐?(48) 자기들이 판단의 기준
우리는 이런 것 믿지 않는다. 유명한 목사의 말이라 해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그리고는 저주를 퍼붓는다(49).- 72 -
그들의 주장: 영적으로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결코 그를 믿지 않는다. 무식한 자들만 그를 믿는다.
지금도 세상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이때에 니고데모가 나선다(50-51). 가장 뛰어난 학자, 정치 지도자, 얼마나 좋은 질문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고 그분의 행적을 본 뒤에 판단해야 하지 않느냐? 24절.
종교 지도자들 흥분함. 그리고 반박함(52)
너무 화가 나서 역사를 잊어버림. 갈릴리에서 나온 대언자가 있다. 요나
군중을 무식한 자들이라고 하다가 자기들의 무식이 드러나고 맒
해리 아이언사이드라는 유명한 목사, 나는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읽은 뒤 예수님과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기독교를 알지도 못하면서 거부한다.
경비 부대원들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46).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니고데모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었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대답을 기독교에서 들을 수 없어 기독교를 거부합니다.”
우리의 대답: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았는가? 아무 것도 모르는 군사들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는 46절처럼 말하지 않는가?
교회를 핍박하지 말라. 교회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얼마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만 말한다.
결론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세상 대비, 예수님과 성경 그리고 교회에 혹독한 비판,
핍박이 가해지고 있다.
쓰나미 같은 핍박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동조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은 교회 때문이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앞으로 예수님과 기독교와 교회로 인해 더 큰 분열이 이 땅에 생길 것이다.
가장 큰 이유: 들어보지 않아서, 그분을 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모든 것,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둘로 확연히 구분된다. 왜? 진리는 수용하기에 쓰다(요3:18-20).
자기들의 무지와 죄악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37-38절 말씀
어떤 핍박이 와도 생수의 강들이 배에서 솟아오른다.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이런 생명의 강물, 진리의 강물이 영원토록 우리 성도들과 과학과 진리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자유 대한민국을 허락하고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예배의
지유, 집회 결사의 자유, 소유권의 자유 지켜 주실 줄로 믿는다.
코로나 19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다.
질병 퇴치 위해 수고하는 모든 공무원들, 하나님의 은혜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