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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진근남에게 바쳐진 사십이장경 천지회의 형제들이 정극상을 배로 밀어 보내자 위소보는 욕을 했다. [제기랄 놈아! 너는 천지회의 형제들을 죽이고 천지회의 총타주를 해치 려고 했으니 배를 갈라 오장을 꺼내 살펴보아야 되겠다. 빌어먹을, 너 는 분명히 아가가 내 마누라인 것을 알면서 그녀를 농락했겠다? 이 우 라질 놈의 새끼!] 그는 재빨리 다가가 두 손으로 철썩철썩 정극상에게 네 대의 따귀를 갈 겼다. 정극상은 강물을 잔뜩 마셔 맥이 쭉 빠져 있다가 위소보가 흉악 하게 나오자 정신이 퍼뜩 들어 애걸했다. [위 대인, 제발 우리 아버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시 오. 이후부터 나는....다시는 아가 소저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겠 소.]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에 그녀가 민저 그대에게 말을 건다면?] [그래도 나는 대답하지 않겠소. 그렇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을 잇지 못하자 위소보가 말했다. [이 새끼, 개방귀 뀌는 소리 작작해라. 먼저 너의 혓바닥을 잘라아가에 게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그는 비수를 뽑아들고 호통을 내질렀다. [혀를 썩 내밀지 못할까?] 정극상은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나는 결코 그녀와 말하지 않겠소. 만약 한 마디라도 한다면 나는 후레 자식이 될 것이오.] 위소보는 진근남에게 벌을 받을까봐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엄포를 놓았 다. [네가 또다시 감히 천지회의 총타주와 형제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고 또 나의 마누라와 놀아난다면 나는 일검으로 네 놈의 머리통을 푹 찌르 고 말겠다.] 그는 비수를 들어 가볍게 던졌다. 그 비수는 뱃머리로 날아가서 푹 꽂 히는 것이 아닌가? 정극상은 재빨리 말했다. [하지 않겠소. 하지 않겠소. 다시는 하지 않겠소.]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마초흥에게 말했다. [마형, 이 사람은 가후당에서 잡은 것이니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십시 오.] [국성야께서는 정말 영웅이시오. 그런데 손자가 이토록 못났으니 큰일 이오.] 오륙기는 말했다. [이 사람이 대만으로 돌아 가면 반드시 총타주를 괴롭힐 것이오. 차라 리 한칼에 두 토막을 내어 영원히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겠소.] 정극상은 깜짝 놀라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대만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 진영화, 진 선생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겠소. 커다란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소.] 마초흥은 말했다. [흥, 총타주께서 언제 큰 벼슬을 바라셨던가?] 그는 작은 소리로 오륙기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정 왕야의 공자이니 만약 우리가 그를 죽인다면 총타주께서 주인을 시해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게 될까봐 두렵군요.] 천지회는 진영화가 정성공의 명을 받들어 창립한 것으로 진영화가 천지 회의 수렁이지만 대만 연평군왕부의 휘하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천지 회의 형제가 연평왕의 아들을 죽인다면 진영화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륙기는 할 수 없이 정극상을 묶은 밧줄을 잘라내고 그를 번쩍 들어 내던지며 호통을 질렀다. [꺼져라!] 정극상은 허공으로 훌쩍 날면서 버럭버럭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 나가 떨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뒈띠가 부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기 짝이 먼저 땅바닥에 닿으며 풀밭 위에 떨어져 주르르 미끄러졌다. 전신 이 아파 오기는 했으나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황 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오륙기와 위소보는 껄껄 웃었다. 마초흥은 말했 다. [저 녀석이 조상의 체면을 깎는군.] 오륙기는 물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본 회의 형제를 살상했으며 진 총타주를 함정에 빠 뜨려 해치려고 했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요. 우리 언덕으로 올라갑시다.] 그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저쪽에 검은 구름이 잔뚝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가 내리겠 습니다. 우리는 빨리 언덕으로 올라갑시다.] 이때 한바탕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으로 각자의 옷자락이 펄럭펄럭 나부꼈다. 오륙기는 말했다. [이번 풍우는 아무래도 대단할 것 같군. 우리가 배를 강 한복판으로 몰 고 가 커다란 바람과 커다란 빗속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다면 꽤 재 미있을 것 같구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 조그만 배는 바람을 이기지 못할 텐데 만약 뒤집힌다면 큰일이 아 닙니까?] 마초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걱정하실 것 없소.] 그는 사공에게 몇 마디 분부했다. 사공은 뱃머리를 돌려 돛을 달았다. 이때 바람의 기세는 퍽이나 대단했다. 돛배는 바람을 안고 화살처럼 강 한복판으로 미끄러졌다. 강물은 어느덧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고 조그만 배는 둥실 떠올랐다가 아래로 내려가곤 했으며 강물이 곧장 선실 안으 로 뿌려지곤 했다. 위소보는 소백룡이라는 벌호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맥질도 할 줄 몰랐 다. 그는 나중에는 안색마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사실 그는 용 (龍)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오륙기는 웃었다. [위 형제, 나 역시 자맥질을 할 줄 모른다오.]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여 말했다. [헤엄칠 줄 모르신다구요?] [한 번도 익힌 적이 없소. 나는 물만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띵해집니 다.] [그럼....그럼 그대는 어째서 배를 강 한복판으로 나아가도록 했습니 까?] [무서운 일일수록 나는 더욱 더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기껏 해야 커다란 파도에 배가 뒤집혀서 모두들 물귀신이 되기 밖에 더하겠 소? 더군다나 마형의 별호가 서강신교(西江神蛟)이니 자맥질에 얼마나 뛰어나겠소? 마형, 미리 말해 두는데 나중에 배가 뒤집히면 그대는 먼 저 위 형제를 구하고 두 번쩨로 나를 구하도록 하시오.] 마초흥은 웃었다. [좋지요. 약속하겠습니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마음이 약간 놓였다. 풍랑은 점점 거세졌다. 조그만 배는 파도를 따라 별안간 일 장이나 쑥 솟아올랐다가는 별안간 허공에 서 강물 속으로 처박힐 것처럼 떨어지곤 했다. 위소보는 그 바람에 훌 쩍 떠올랐다가 쿵, 하니 세차게 선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그 는 다급하게 외쳤다. [앗! 야단났구나!] 돛대 위에서 후두둑, 하는 소리가 나면서 큰 비가 쏟아졌다. 곧이어 일 진의 광풍이 불어닥쳐 뱃머리와 배 뒤쪽의 등불을 모조리 꺼버리고 말 았다. 선실 안의 등불도 꺼졌다. 위소보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앗, 야단났다!] 선실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강변에는 허연 거품을 내뿜는 물결이 거세게 넘실거리고 바람소리와 폭우가 엄청나게 휘몰아쳤다. 마초흥은 말했다. [형제, 두려워 마시오. 이 풍우는 정말 대단하군. 내가 가서 키를 잡도 록 하겠소.] 그는 배 뒤쪽으로 가서 호통을 질러 사공들을 독려했다. 바람의 기세가 엄청나게 커지자 두 명의 사공이 막 돛대에 이르렀을 때 그만 바람에 날려 강물 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커다란 풍랑에 그 조그만 배는 갑자 기 옆으로 기울어졌다. 위소보는 왼쪽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날카롭게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늙은 거지가 이상한 생각을 해서 이 모양이많아? 그대 자신도 헤엄칠 줄 모른다면서 하필이면 커다란 풍우가 몰아치는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난을 치다니!) 광풍은 폭우를 대동하고 몰아치는데 한 차례씩 선실 안으로 억수 같은 빗줄기를 퍼부었다. 그 바람에 위소보는 온몸이 흠삑 젖었다. 그때 별 안간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돛이 아래로 떨어지고 배가 한쪽으로 기울 었다. 위소보는 몸이 다시 오른쪽으로 쏠리며 쿵, 하니 조그만 탁자에 머리를 부딪히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호 형님과의 맹세를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유강 속 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이쿠, 그렇구나. 내가 맹세를 할 때 좋지 못한 마음을 품고 어느 날엔가는 그를 속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옥황상제시여, 십전염왕(十殿閻王)이시여, 그리고 관세음보살 이시여! 위소보가 성심성의로 말씀드리는데 호 형님과 복이 있으면 함 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맞도록 하겠나이다. 그런데 복을 함께 누리겠다고 했는데 그가 만약 진원원을 맞아들이게 된다면.... 나 역 시....) 풍우소리 가운데 갑자기 오륙기가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 다. 강변을 걸으며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을 누구에게 말할까? 오랜 눈물은 바람에 날려 날아가고 의로운 성 홀로 남아 구원을 눈 빠 지게 기다리며 남은 병사들 마지막 힘을 다해 싸우는구나. 겹겹이 에워 싸인 포위망에서 벗어나 고국에 돌아가기를 바라건만! 노래가 끝나고 연회석이 끝나자 텅 빈 자리만 남을 줄 그 누가 알았으 리? 장강 줄기는 오나라 머리에서부터 초나라 끝까지 삼천 리나 되나니! 모조리 남의 나라 땅이 되는 변을 당했구나! 싸늘한 파도 동쪽에서 휘몰아치니 만사가 연기되어 흩어지노라. 노랫소리는 강 위에서 멀리까지 퍼져나가 풍우소리가 대단했지만 그 소 리를 억누르지 못했다. [정말 멋지구려.] 위소보는 그의 노랫소리가 격앙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장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그토록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쩨서 연극무대에 올라 가 노래를 하지 않았지? 늙은 거지는 목청을 뽑아 다음과 같이 크게 부 르짖어야 제격이지. '나으리, 마나님, 찬밥이나 찌꺼기라도 보태 주십 시오.') 갑자기 멀리 강 위에서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천년이 된 남쪽 나라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서글퍼 산천에 피눈물을 뿌리노라!] 그 소리는 매우 멀리서 들려왔으나 커다란 풍우가 휘몰아치는데도 똑똑 히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의 내공이 매우 심후한 것을 알 수 있 었다. 위소보가 어리둥절해 할 때 마초흥이 외쳤다. [총타주이십니까? 형제 마초흥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소. 소보도 그곳에 있소?] 과연 진근남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크게 소리쳤다. [사부님,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광풍이 휘몰아치는 속에서 그의 음성이 어찌 울려퍼질 수 있겠 는가? [위 향주는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홍순당의 오 향주도 계십니다.] [매우 잘되었소. 강 위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구름처럼 높이 솟아올라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지.] 그 소리에는 매우 기뻐하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속하 오륙기, 총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다 한집안 형제들인데 겸손할 것 없소이다.] 풍우는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위소보가 선실에서 바깥쪽을 내다보 니 강물 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데 한 점의 붉은 빛이 천천 히 강물 위에서 이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진근남의 배에 등불이 켜져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불빛이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고 뱃머리가 살 짝 아래로 가라앉는다고 느끼는 순간 진근남은 이미 배 위로 올라왔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이 오셨으니 죽지 않게 되었구나.) 그는 재빨리 선실 입구 쪽으로 마중을 나갔으나 어둠 속에서 진근남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어 큰소리로 사부님, 하고 부르짖고 다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진근남이 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선실 안으로 들어 가며 웃었다. [비바람이 정말 대단하구나. 너는 놀라지 않았느냐?] [괜찮습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대들이 강물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나섰소. 그런데 뜻밖에도 이 커다란 비바람을 만나게 되었구려. 만약 오 형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정말 찾기 힘들 뻔했소이다.] [속하가 일시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습니다. 총타주께서는 웃으셨겠군 요.] [모두들 형제로 칭하도록 합시다. 오 형이 노래를 부른 것은 도화선(桃 花扇) 가운데의 침강(沈江)이라는 한 귀절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이 한 수의 노래는 사각부(史閣部)가 적에게 항거하다가 강물에 떨어져 순사하게 된 것을 노래하고 있죠.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랍니다. 강 위의 풍우가 크게 몰아치니 그만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말 노래를 잘 불렀소. 정말 멋있었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것은 연극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로 침강이라고 하는 것이었군. 그런데 하필이면 좋은 노래를 다 놔두고 왜 재수없는 노래를 불렀다지? 그대가 강물 속으로 빠지려고 한다면 나는 미안하지만 함께 빠져 죽을 수 없소이다.) 진근남은 말했다. [언젠가 절강성 가흥의 배 안에서 황종의 선생과 여유량 선생, 그리고 사윤황 선생 등 세 분의 강남 명사가 오 형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 고 형제는 무척 탄복했소이다. 그대와 나는 비록 같은 회의 형제이지만 저의 일이 너무나 바빠 줄곧 광동으로 가 뵙지를 못했소이다. 오 형의 신분이 남과 다르니 북으로 올라올 수 없었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곳에 서 모이게 되었으니 진정 반가운 일입니다.] 오륙기는 말했다. [형제는 천지회에 가담하게 된 이후 총타주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지 않 는 날이 없었습니다. 강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지요. '진근남을 만 나지 못하면 영웅이라 일컬어질 수 없다.' 오늘부터 나도 영웅이라 일 컬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 모두 강호의 친구들이 높이 사주신 덕택인데 정말 부끄럽기만 하오 이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아꼈고 의기투합해서 마음놓고 한평생의 포부 를 주고받았으며 밖에서 몰아치고 있는 풍우를 잊어버렸다. 진근남은 오삼계의 일을 물었다. 위소보는 일일이 이야기했고 아슬아슬한 곳에 이르러서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태게 되었다. 여러 가지 경과는 마초 흥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근남은 몽고의 사자 한첩마라는 증인을 사로잡았다는 말을 듣고 오삼 계가 이제 크게 불리하게 되었다며 매우 좋아했다. 나찰국이 북쪽에서 오삼계와 호응하여 관외의 커다란 땅 덩어리를 탈취하려고 한다는 대목 에 이르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위소보 는 말했다. [사부님, 나찰국 사람들은 붉은 털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으나 별로 두 렵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면 될 것이 아 닙니까? 그러나 그들의 화기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총으로 한번 탕, 쏘 기만 하면 어떤 영웅호걸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그 일 때문에 걱정이다. 오삼계와 오랑캐가 서로 싸워 쌍방에 서 상처를 입는다면 우리 한나라 산천을 되찾을 좋은 기회를 하늘이 내 려주신 거라고 할 수 있지만 앞문으로 호랑이를 쫓아냈는데 뒷문으로 이리를 끌어들인다는 격으로, 오랑캐를 내쫓자마자 오랑캐보다 더 흉악 하다는 나찰국 사람들이 다시 달려들어 우리 금수강산을 차지하면 어떻 게 하지?] 오륙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찰국의 화기를 당해 낼 방법이 없습니까?] [두 분은 이 사람을 만나 보도록 하시구려.] 진근남은 선실 입구 쪽으로 가서 불렀다. [흥주(與珠), 이리 오시오!] 조그만 배 안에서 누군가가 대답을 했다. [예.] 그 사람은 이쪽 배로 건너뛰어 선실로 들어서서 진근남에게 살짝 허리 를 굽혀 보였다. 나이는 사십 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체구는 왜소한 편 이었지만 얼굴은 다부져보였다. 진근남은 말했다. [오 형과 마 형에게 인사를 드리시오. 그리고 이쪽은 나의 제자 위소보 라 하오.] 그 사람은 포권의 예를 갖뒀다. 오륙기 등은 몸을 일으켜 답례했다. 진 근남이 말했다. [이 임흥주(林與珠) 임 형제는 줄곧 대만에서 나를 따라 일을 처리했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과거 국성야께서 홍모귀(紅毛鬼)들을 쫓 아내고 대만을 공략하여 차지하는 데 임 형제가 큰공을 세웠소.] 위소보는 웃었다. [임 형이 홍모귀와 싸운 적이 있다니 정말 잘되었습니다. 나찰귀(羅刹 鬼)들에게는 창포라는 화기가 있고 홍모귀에게도 창포라는 화기가 있으 니 임 형에게도 방법이 있었겠군요?] 오륙기와 마초흥은 동시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위 형제의 머리는 잘도 돌아가는군.] 오륙기는 본래 위소보에 대해서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그저 총타주의 제자이니 청목당의 향주라는 높은 직책을 맡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청목당이 근년에 이르러 많은 공을 세우긴 했지만 이 꼬마 덕택이 라고는 보지 않았으며 또 그가 아가에게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멸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약간 탄복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꼬마는 매사를 꿰뚫어보는 지혜가 있구나. 어느 정도의 재간은 있 는 것 같군.) 진근남은 미소지었다. [과거 국성야께서 대만을 공격하실 때 홍모귀의 포화는 정말 당해 내기 어려웠네. 우리들은 그 당시 흙으로 제방을 쌓아 몇 천 명이나 되는 홍 모귀들을 성 안에 가두고 성 안으로 공급되는 물줄기를 차단하여 그들 로 하여금 마실 물이 없게 했지. 홍모귀 군사들은 참고 견뎌 낼 수가 없자 달려나와 공격했는데 우리들은 대낮에는 싸우지 않고 밤이 되면 그들과 근접전을 벌였지. 홍주, 당시 어떻게 싸웠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시오.] [그것은 군사(軍師)의 신기묘산이었지요....] 진근남이 정성공을 위해 계책을 헌납하여 공격케함으로써 큰 공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군중에서는 그를 군사(軍師)라고 불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군사라구요?] 그는 임흥주가 진근남을 쳐다보고 있고 사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고 즉시 알아차리고 말했다. [아, 원래 사부님께서는 제갈양이셨군요. 제갈 군사는 등갑병을 크게 무찔렀는데 진 군사께서는 홍모귀의 군사들을 크게 무찌르셨군요.] 임흥주는 말했다. [국성야께서는 영력 십오 년 이월 초하룻날 강가에서 절을 올리고 문무 백관과 군사들을 이끌고 전함(戰瑥)을 타고 과라만(科羅灣)에서 배를 띄우게 되었는데 스무나흗 날에 팽호(澎湖)에 이르게 되었지요. 사월 초하룻날에 대만 녹이문(鹿耳門)에 도달하였습니다. 녹이문 밖에는 낮 은 언덕이 수십 리나 뻗어 있었고 흥모병들이 배를 격침시켜 항구를 막 아 놓고 있었습니다. 우리 전함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어 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조수가 크게 밀어닥쳤죠. 군사 들과 장수들은 천지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고 전함들은 용감하게 안 으로 밀고 들어갔죠. 홍모병들은 총을 가지고 공격을 해왔지요. 국성야 꼐서는 모두에게 '만약 우리가 한 걸음이라도 물러선다면 바다로 밀려 나가 뼈를 묻힐 곳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셨죠. 홍모귀들의 창포가 무섭 긴 했지만 모두들 용감하게 앞으로 진군했지요. 군사와 장수들은 일제 히 명을 받들었고 군사는 친히 우리들을 이끌고 돌진해 갔습니다. 별안 간 저의 귓가에 수천 수만 번의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눈앞은 안개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앞의 형제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모두들 당황하고 어지러워 도망쳐 물러나고 말았죠.]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처음으로 홍모귀의 총소리를 들었을 때도 깜짝 놀라 귀가 멍멍해 지고 말았습니다.] 임홍주는 말했다. [나는 마치 머리 없는 파리처럼 손발이 어지러웠는데 이때 군사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지요. '홍모귀들은 총을 쏘았다. 화약을 재고 총알을 다시 장탄해야 하니 모두들 돌진하라!' 저는 재빨리 형제들을 이끌고 돌진해 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흥모귀들은 일시에 총을 쏘지 못했습 니다. 그러나 막 그들 앞으로 돌진해 갔을 때 홍모귀들은 다시 총을 쏘 았으며 나는 즉시 땅바닥에 몸을 굴려 피했는데 적지 않은 형제들이 죽 음을 당하게 되어 달리 방법이 없길래 부득이 물러나고 말았지요. 홍모 귀들은 감히 뒤쫓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싸움에서 전사한 형제들은 수 백이나 되었고, 모두들 맥이 빠져 어쩔 줄 몰라했으며 홍모귀들의 총과 포를 생각만 하면 그만 간이 떨어질 정도가 되었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 후 군사께서 묘책을 생각해 내셨군요.] 임흥주는 외쳤다. [그렇소. 그날 밤 군사께서는 나를 불러서 물었소. '임 형제, 그대는 무이산(武夷山) 지당문(地堂門)의 제자가 아니오?' 저는 그렇다고 말했 지요. 군사께서 말했습니다.'낮에 홍모귀들이 총을 쏘았을 때 그대는 즉시 땅바닥에 굴러 쓰러지던데 그대의 신법이 매우 민첩하더군.' 나는 매우 부끄러워서 말했지요. '군사, 삶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내일 싸움터에 나가면 결코 땅에 굴러 피하여 우리 대명나라 관병의 위풍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군사께서 는 저의 머리를 자르도록 하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임 형, 나의 짐작이지만 군사께서는 그대가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 워했다고 탓하셨던 게 아니고 그대의 땅에 굴러 피하는 방법이 무척 좋 다고 칭찬을 하고 그대로 하여금 형제들에게 전수하도록 하려고 하셨던 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진근남은 그를 바라보고 얼굴에 미소를 띄웠는데 가상하다는 표정이 서 려 있었다. 임흥주는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지요. 그대는 군사의 제자답군요. 과연 명사에 고제자가 난다고 하더니....] 위소보는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대는 우리 사부님의 부하이니 과연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가 없 다는 말이 맞구려.]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임흥주는 말했다. [그날 밤 군사는 정말 그와 같이 분부했지요. '그대는 오해하지 마시 오. 내가 보기에 그대의 연청십팔번(燕靑十八飜)과 송서초상비(松鼠草 上飛)의 신법이 매우 합당하다고 느껴졌소. 그야말로 적의 앞으로 굴러 가서 칼로 그들의 발을 자르면 되겠더구먼. 그런데 그 지당도법(地堂刀 法)을 어느 정도로 연마했소?' 나는 군사께서 내가 담이 크지 못해 죽 음을 두려워한다고 꾸짖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말 씀을 드렸죠. '군사, 지당도법은 소장이 연마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사부님께서는 싸움터에 나갔을 때 몸을 굴려 적의 팔다리를 자뤽 수 있 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홍모귀는 말을 타지 않으니 아마 쓸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군사는 말씀했죠. '홍모귀는 말을 타지 않았으니까 우리 들은 그들의 발을 자르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 말을 듣자 확연히 깨닫고는 잇따라 말씀을 드렸죠. '예, 예. 소장의 머리가 잘 돌 아가지 않아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사부는 그대에게 그 도법으로 말의 다리를 자를 수 있다고 했 는데도 그대는 사람의 다리를 자를 수 없다고 여겼으니 노형의 머리는 정말 제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군.) 임흥주는 말했다. [당시 군사께서는 저에게 그 도법을 한 번 펼쳐 보라고 했지요. 저의 도법을 보시더니 군사께서는 저에게 제대로 연마했다고 하시더니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죠. '그대의 지당문의 도법과 신법은 십여 년간 연마 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까지 연성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내 일 바로 싸움을 해야 하며 모두들 연마해야 하니 때늦은 감이 있군.' 그래서 저는 말했죠. '예, 이 지당문의 도법을 소장은 제대로 연성하지 못했습니다만 확실히 십여 년간 연마했습니다.' 군사께서는 말씀하셨 죠. '우리가 흙 제방을 재빨리 쌓고 궁전(弓箭)으로 지킬 테니까 그대 는 재빨리 가서 병사들과 장수들에게 데굴데굴 굴러 앞으로 나아가 칼 로 발을 자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시오. 그저 몇가지 초식만 가 르쳐서 모두들 익숙해지면 된다오. 지당문의 심오한 무공을 모조리 가 르칠 필요는 없소.' 저는 군사의 명령을 받고 그날 밤 본대의 사병들을 먼저 가르쳤죠. 이튿날 이른 아침 흥모귀들이 돌격해 왔을 때 우리들이 한 차례 화살을 쏘아 격퇴시켰지요. 본대의 사병들은 지당도법의 기본 다섯 초를 연마해서 다시 다른 관병들에게 전수했지요. 군사께서는 모 두에게 나뭇가지를 잘라서 방패로 만들어 홍모병의 납으로 만든 탄환을 막도록 분부했습니다. 나흘쩨 되는 날 아침, 흥모명은 다시 대거 공격 을 해왔는데 우리들은 마중 나가 싸우게 되었고, 땅을 데굴데굴 굴러 앞으로 나아가 공격을 하는 바람에 홍모귀들은 낙화유수처럼 무너져 전 장에 수백 개나 되는 털이 숭숭한 다리를 남겨 놓게 되었지요. 그 바람 에 적감성(赤嵌城)을 지키던 홍모귀 우두머리의 왼쪽 다리도 잘라지게 되었죠. 이 홍모귀의 우두머리는 투항해 왔습니다. 그 후 재차 위성(衛 城)을 공격할 때도 역시 이 방법을 사용했지요.] 마초흥은 말했다. [이후 나찰귀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지당도법으로 상대하면 되겠 군요?] 진근남은 말했다. [그러나 사정이 좀 다르오. 과거 대만의 홍모병들은 삼, 사천 명에 불 과하였는데 나찰국의 군사들이 침범해 온다면 적어도 수만 명이 될 것 이고, 그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면 죽여도 죽여도 다 죽이지 못할 것이 오. 더군다나 지당도법은 근접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소. 나찰국의 군사 들이 만약에 대포를 쏘아댄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오륙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군사의 의견으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는 진근남이 임흥주를 소개할 때에 자기 자신을 향주라고 부르지 않 는 것으로 보아 임흥주가 천지회의 사람이 아니라고 짐작하고 자기 역 시 진근남을 총타주라고 부르지 않은 것이다. 진근남은 말했다. [우리 증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소. 만약 매국노가 내응하지 않으면 외국 사람들은 쳐들어오기가 지극히 어렵소.] 여러 사람이 말했다. [그렇지요. 오랑캐가 우리 강산을 점령한 것도 모두 다 매국노 오삼계 가 안내했기 때문이죠.] [이제 오삼계는 다시 나찰국과 결탁하려 하고 있소. 그가 군사를 일으 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단숨에 그를 쳐부쉬 버린다면 나찰국에 서는 내응이 없어지므로 경솔히 침범해 오지 못할 것이오.] 마초흥은 말했다. [그러나 오삼계가 너무 빨리 무너진다면 그와 오랑캐가 싸워 우리가 어 부지리를 얻는 일이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소. 그러나 이해득실을 따져 볼 때 나찰국 사람들은 오랑캐 보다 더 무섭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지요. 오랑캐 역시 누런 피부에 검은 눈동자, 납작한 코를 가지고 있어 우리들과 다름없으며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도깨 비들은 붉은 털에 파란눈을 지녔고 말하는 것도 자기들끼리 씨부렁거리 니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국가대사를 논하는 동안 날이 점차 밝아왔고 풍우도 이미 그쳐 있었다. 마초흥은 말했다. [모두들 옷이 젖었으니 바로 언덕으로 올라가 한잔하면서 한기를 몰아 내도록 하죠.] 진근남은 말했다. [무척 좋소.] 이번에 몰아친 풍우에 조그만 배는 삼십여 리 밖으로 흘러내려가 있었 다. 유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언덕 에 올랐다. 이때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와 소리쳤다. [상공, 그대....그대가 돌아오셨군요.] 바로 쌍아였다. 그녀는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으나 얼굴 가득 기쁜 빛 이 어려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이곳에 있지?] [어젯밤 크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그대가 배를 타고 나갔기에 마음 이 놓이지 않아 상공께서 무사히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대는 줄곧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오?] [예, 저는....저는 걱정이 되어서....] [내가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을까봐 걱정했소?] [나는 그대가 크게 복을 타고났기 때문에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지 않 으리라 믿었어요. 하지만....하지만....] 부둣가의 한 사공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 도련님께서는 어젯밤 야심한 삼경쯤 풍우가 가장 심하게 몰아칠 때 우리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 사람을 찾겠다며 먼저 오십 냥의 은자를 주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가려는 사람이 없자 그는 다시 일백 냥으로 늘렸습니다. 장노삼이 돈을 탐내어 응낙했지요. 그러나 막 배를 띄우려 고 했을 때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람에 돛대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 누구도 감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그는 초조해져서 큰소리로 울기만 하더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감동하여 쌍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쌍아, 그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군.] 쌍아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일행은 마초흥의 거처로 가서 옷을 바꾸어 입었다. 진근남은 마초흥에 게 명해 정 공자와 풍석범의 행방을 수소문하도록 했다. 마초흥은 대답 을 하고 나가 사람을 보내 조사한 후 곧 들어와 가후당의 사무에 대해 서 보고했다. 마초흥은 연회석을 차리고 진근남에게 가장 윗자리에 앉 도록 했다. 그 다음에 오륙기가 앉았고 세 번째 자리에 위소보를 앉히 려고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임 형이 대만을 공격하고 깨뜨리는 데 있어서 지당도법으로 홍모귀들 의 다리를 잘라 큰 공을 세웠으니 형제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만 으로도 만족하고 즐겁소이다. 이와 같은 영웅호걸을 두고 이 형제가 어 찌 그의 윗자리에 앉을 수 있겠소?] 그는 임흥주를 잡아당겨 세 번째 자리에 앉혔다. 임흥주는 크게 기뻐했 으며 속으로 군사의 이 제자가 나이는 어리지만 그야말로 의리가 대단 하다고 생각했다. 연회를 파한 후 천지회의 네 사람은 다시 상방에서 일을 의논했다. 진근남은 분부했다. [소보, 너는 큰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몸이니 이번에도 함께 오래 머물 수 없겠다. 내일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거라.] [예, 저는 이번에 오 형의 영웅적인 무용담을 들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오삼계를 물리친 후에 다시 오 형의 이야기를 듣기로 하지요.] 오륙기는 웃으며 말했다. [이 형제에게는 영웅적인 행적이 없소. 평생에 나쁜 일을 많이 지은 셈 이지요. 만약 사윤황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오늘까지도 나는 여 전히 오랑캐의 앞잡이가 되어 개처럼 충성하고 있었을 것이네.] 위소보는 오삼계가 선물한 단총을 한 자루 꺼내며 오륙기에게 말했다. [오 형, 먼 길을 달려 이 몸을 보러 오셔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찰국의 단총인데 저를 만난 기념으로 삼아 주십시오.] 오삼계는 그에게 두 자루의 단총을 선물했는데 그중 한 자루는 위소보 가 목검병을 구해낼 때 하국상에게 건네주었다. 그 후 총총히 운남에서 떠나느라고 미처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륙기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단총을 받아서 화약과 철탄을 장진하고 불을 당겨 정원을 향해 한 번 쏘았다. 불빛이 번쩍하며 탕, 하는 소리 가 크게 울려퍼지면서 정원의 청석판의 돌가루가 마구 날렸다. 사람들 은 깜짝 놀랐다. 진근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찰국의 화기가 이토록 위력적이니 군사를 일으켜 침범해 온다면 정 말 대항하기 어렵겠구나.) 위소보는 오천 냥이 나가는 은표를 넉 장 꺼내 마초흥에게 주고 웃으며 말했다. [마 형, 수고스럽지만 귀당의 형제들에게 술이나 사시지요.] [이만 냥의 은자를 말이오? 너무 많소. 삼 년 동안 술을 마셔도 다 마 시지 못하겠소.] 그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고 거두어들였다.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진 근남에게 인사를 하고 작별을 고했다. 진근남은 손을 뻗쳐 일으키더니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었다. [너는 정말 잘했다. 이 진근남의 제자로 부끄럽지 않다.] 위소보는 그와 가까이 서자 똑똑히 진근남의 얼굴을 살펴볼 수가 있었 다. 그의 귀밑머리는 이미 반백이 다 되었고 안색은 매우 초췌해져 있 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니면서 풍상을 겪었기 때문에 늙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뭔가 사부님께 드릴 물건이 없을까 생각했다. (사부님꼐서는 은자를 마다하실 것이다. 구슬이나 보물 따위도 좋아하 시지 않는다. 사부님은 무공이 뛰어나시니 나의 비수나 보의도 대단하 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별안간 그는 끓어오르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사부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어르신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그들 사도간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밖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손을 뻗쳐 속주머니에서 한 봉지의 물건을 꺼냈다. 그는 그 봉지를 싸매고 있는 줄을 풀고 한 겹의 기름 먹인 베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두 겹의 기름 먹인 종이를 풀고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 겉장 안 에서 꺼내 온 그 조각난 양피지들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에게 효성을 다할 물건이 없습니다. 이 한 무더 기의 조각난 양피지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