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耽羅), 여송(呂宋)과 일본(日本)사이의 요충지에 있었다.
2020년 04월 18일
○ 탐라(耽羅)는, 곧 반도(半島) 땅, 우리나라 남해(南海)바다가운데에 있는 ‘제주도(濟州島)=제주도(濟州道)’라고 한다. 이걸 갖고〈맞다, 틀리다〉라고 말하면, 정신 나간 치매환자(癡呆患者)나 또는 노망(老妄)난 자(者) 쯤으로 여기고도 남을 것 같다.
필자(筆者)는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甘受)할 수 있다. 진실(眞實)을 찾기 위해서다. 탐라(耽羅)에 대한 많은 글을 우리 카페(Cafe)에 게재(揭載)해 왔다. 오늘의 주제(主題)도 “탐라(耽羅)”와 직접적(直接的) 관계(關係)가 있는 그 위치(位置)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卽) “역사서(歷史書)에 기록(記錄)된 옛 백제(百濟)와 신라(新羅), 고려(高麗), 조선(朝鮮)의 탐라(耽羅)는, 오늘날의 남중국해(南中國海)에 있었다.”는 것을 고증(考證)하고, 증거(證據)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을 고증(考證)하면,
➊ 탐라(耽羅)의 위치(位置)
➋ 당시(當時) 일본(日本)의 위치(位置)
➌ 조선왕조(朝鮮王朝)【총칭(總稱)】의 대륙(大陸) 땅 기원(起源)등을 알 수 있다.
➨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서 시원(始原)한 일이 없다.”는 것은, 곧 “오늘날의 대륙(大陸)의 땅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래의 지도(地圖)를 보면서, 탐라(耽羅)가 정확하게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자. 즉(卽) 탐라(耽羅)의 크기,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位置), 자연환경(自然環境)과 기후(氣候) 및 토산물(土産物)등을 종합적(綜合的)으로 판단(判斷)해 보아야 한다.
● 남중국해(南中國海) [지도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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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동역사(海東繹史) 16 세기(世紀) 16 / 제소국(諸小國) 탐라(耽羅)
(1) 《冊府元龜 : 耽羅,林邑之南邊海小國也. : 책부원귀(冊府元龜) : 탐라(耽羅)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2) 진서(鎭書)가 삼가 살펴보건대, 탐라는 바다 섬나라이다. 후위서(後魏書)에서는 섭라(涉羅)라고 칭하였고, 수서(隋書)에서는 담모라(𨈭牟羅)라 칭하였고, 당서(唐書)에서는 담라(儋羅)라 칭하고 또 탐부라(耽浮羅)ㆍ탁라(乇羅)라 칭하였는데, 이는 모두 한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 하는데, 탐(耽)ㆍ섭(涉)ㆍ담(儋) 세음은 모두 섬(剡)과 음이 비슷하니, 대개 섬나라를 이른 것이다. 백제 문주왕(文周王) 때부터 백제를 섬겼고, 백제가 망하자 다시 신라를 섬겼으며, 고려 숙종(肅宗) 10년에 이르러 강등시켜 군(郡)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제주(濟州)이다.
(3) 수서(隋書) / 백제에서 남쪽 바다로 3개월을 가면 탐모라(耽牟羅)라는 나라가 있는데, 남쪽에서 북쪽까지의 거리가 1천여 리이고,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수 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있다. 백제의 부용국(附庸國)이다. 또, “양제(煬帝) 대업(大業) 4년(608)에 문림랑(文林郞) 배세청(裴世淸)을 파견하여 왜국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는데, 백제국을 건너 죽도(竹島)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탐라국이 큰 바다 가운데 있었다.” 하였다.
(4) 신당서(新唐書) / 당(唐) 고종(高宗) 용삭(龍朔) 초에 담라(儋羅)란 나라가 있어 국왕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조회하였다. 그 나라는 신라 무주(武州)의 남쪽 섬에 있는데, 풍속이 소박하고 누추하며, 개 가죽과 돼지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여름에는 초실(草室)에 살고 겨울에는 굴실(窟室)에 산다. 땅에서는 오곡이 나는데, 소를 써서 경작할 줄 모르며, 철치(鐵齒)로 땅을 판다. 처음에는 백제에 부용하였다. 인덕(麟德) 연간에 추장(酋長)이 와서 조회하면서 황제를 따라서 태산(太山)에 갔다. 뒤에 신라의 부용국이 되었다.
(5) 원사(元史) / 탐라(耽羅)는 고려의 여국(與國)이다. 세조(世祖)가 이미 고려를 신하로 복속시키고는 탐라(耽羅)가 ‘남송(南宋)ㆍ일본(日本)’과 통하는 요충지라고 여겨 주의를 기울였다.
●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기록(記錄)된 “탐라(耽羅)”의 이야기다. 아래의 이미지는 “고전번역원Db”에서 원문(原文) 이미지를 복사(複寫)한 것이다.
2. 속통전(續通典) : 《耽羅為吕宋日本衝要 : 탐라(耽羅), 여송(呂宋)과 일본(日本)사이의 요충지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원사(元史) 탐라(耽羅)편에 기록(記錄)된 “탐라(耽羅)가 ‘남송(南宋)ㆍ일본(日本)’과 통하는 요충지에 있었다.”는 말 중에서 「남송(南宋)은 본시(本是) 여송(呂宋)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즉(卽) 원사(元史) 탐라(耽羅)편 : 《耽羅,高麗與國也.世祖既臣服高麗,以耽羅為南宋,日本衝要,亦注意焉.》라고 하였는데, 이 중에서 “남송(南宋)이란 글자가 본래(本來) 여송(呂宋)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疑心)이다.
남송(南宋)과 여송(呂宋)이라고 했을 때, 그 위치(位置)가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일본(日本)의 위치(位置)와도 직접적(直接的)으로 관계(關係)되기 때문이다. 아래의 지도를 보면서 생각해 보자.
〈여송(呂宋)【필리핀 루손(Luzon) 섬】과 일본(日本)사이에 탐라(耽羅)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반도(半島) 땅에 있었다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은 불가능(不可能)한 말이고, 이는 조작(造作)된 것이다.」라는 것을 증거(證據)해 준다.
● 남중국해 주변도
欽定四庫全書 / 欽定續通典卷一百四十七 / 邊防 朝鮮
耽羅 :《耽羅髙麗屬國也元世祖既臣服髙麗以耽羅為吕宋日本衝要乃遣將平之即其地立耽羅國招討司後改為軍民安撫司其貢賦嵗進毛施布百匹後髙麗以為言遂復𨽻髙麗. : 탐라(耽羅) : 탐라(耽羅)는 고려(高麗)의 속국(屬國)이다. 고려(高麗)는 원(元)나라 세조(世祖)의 신하(臣下)가 되어 복종하였는데 고려의 탐라(耽羅)는 여송(呂宋)【루손(Luzon)섬. 필리핀(Philippines)군도의 북부(北部)에 있는 가장 큰 섬】과 일본(日本)의 중요한 지점(地點)에 있어, 이에 군사를 보내어 토평하여 곧 그 땅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우고, 초토사를 두었으나 뒤에 군민안무사로 고쳤다. 그곳의 공부(貢賦)는 해마다 모시포(毛施布) 백필(百匹)이다. 뒤에 고려(高麗)가 요구해와 다시 고려(高麗)에 예속되었다.〉라고 하였다.
즉(卽) 〈탐라(耽羅)는, 여송(呂宋) 곧 필리핀(Philippines)의 루손(Luzon)섬과 일본(日本)사이의 중요(重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 네이버중국어사전 / 吕宋 [Lǚsòng] 1. [명사][지명][음역어] 루손(Luzon) 섬. [필리핀 군도의 북부에 있는 가장 큰 섬]
續通典 / 吕宋 : 《吕宋居東南海中在臺灣鳯山沙馬﨑之東南 : 여송(呂宋) : 여송(呂宋)은 동남(東南)해중(海中)에 살고 있는데, 대만(臺灣) 봉산사마(鳳山沙馬) 험한 곳의 동남에 있다.》고 하였다. 또 기록(記錄)하기를 : 《佛郎機强與吕宋互市久之築室其地竟乘其無備襲殺其王而據其國名仍吕宋實佛郎機也 : 불랑기(佛朗機)가 강해져 여송(呂宋)과 호시(互市)를 위해 그 땅에 집을 지었다. 방비가 없어(방비하지 못해) 마침내 그 왕(王)을 습격(襲擊)하여 살해(殺害)하고 의거하였는데, 그 나라 이름이 여송(呂宋)이었으나 실(實)은 불랑기(佛朗機)다.》라고 하였다.
3. 그렇다면,
탐라(耽羅)는 어디며,
일본(日本)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2020년 04월 18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옛 조선왕조의 발자취는 반도(半島) 땅과는 관계없는,
아주 먼 땅에서 발견된다. 또 이를 기록한 역사서나 지리지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반도 땅에 있었다는 조선왕조는 뭐냐? 는 것이다.
19세기 또는 20세기초에 만들어진 신생국가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서구열강과 왜(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신생국가 반도 조선(半島朝鮮)! 이렇다보니 반도 땅에서 친일인사들에 의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해된다. 열도 땅의 언론들이 말하기를, "이제 대한민국은, 예전처럼 고개숙이고 일본에 아첨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반도 땅, 어찌됐든 가장 소중한 땅일 수밖에 없다.
먼 훗날, 우리들의 후손들에 의해 옛 조선왕조의 영광이 재현될 수 있기를.......오늘 우리가 밑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중단없는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수 또는 특정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주인(主人)은, 국민(國民)들이다.
공무원 집단인 '검찰이나 경찰'등의 권력기관 역시 특정세력이나 특정인, 소수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존재해야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