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3조 예제(禮際예의있게 교제하는 것)의 세 번째 꼭지 ‘연명(延命)의 예를 감영(監營)에 나아가서 행하는 것은 옛 예가 아니다.’를 읽어봅니다.
목민심서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3. 연명(延命)(주1)의 예를 감영(監營)에 나아가서 행하는 것은 옛 예가 아니다.
연명이란 지방을 맡은 신하가 자기 임지에 있을 때, 선화(宣化)의 임무를 띤 신하(주2)가 순행하여 본읍에 도착하면, 지방을 맡은 신하는 패전(牌殿)의 뜰에서 교서(敎書)를 공손히 받들고 첨하(瞻賀)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대개 조정의 조유(詔諭)는 수령〔土臣〕이 공손히 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행(巡行)이 본읍에 도착하지 않으면 수령은 끝내 연명하지 않는 것이 옛날의 도(道)이다.
영종(英宗) 초년에는 오히려 옛 도를 썼는데, 세상이 후대로 내려 오면서 사대부(士大夫)의 기풍과 절개가 더욱 쇠퇴해져서, 상관을 아첨으로 섬기며 오직 미움이나 사지 않을까 걱정하여, 감사가 도임하면 열흘 안에 수령은 급히 감영으로 달려가서 연명의 예를 행하니, 이는 연명이 아니라 참알(參謁)인 것이며, 조정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다 폐속(弊俗)인 것이다. 감사로서 예법을 모르는 자는 수령이 즉시 연명의 예를 행하지 않는 것을 보면 허물을 책하려 드니, 이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습속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옛 습속에 사로잡힐 수 없으나, 급급히 감영으로 달려가서 식자들의 웃음거리를 살 것까지는 없고, 수십 일을 기다렸다가 애써 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연명(延命)의 예는 사신이 친히 조유(詔諭)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니, 수령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명을 존경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신들은 망녕되이 높은 체하여 반드시 비장(裨將)을 시켜 대신 선포하게 하고, 대신 선포하는 것을 대수(代受)라 하니 예가 아니다. 대체로 사신이 임금의 명을 선포하는 까닭에 수령이 왕의 명을 맞이하는 것이니, 본래의 뜻은 이러한데, 요즈음은 연명을 참알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를 대수(代受)라 하는 것이다. 곧 받을 수(受) 한 자에서 본래의 뜻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병마사(兵馬使)ㆍ수군사(水軍使)는 똑같은 사신인데도 비장을 시켜 대수(代受)하게 하니 크게 예가 아니다.
옛날 당나라 이소(李愬)(주3)가 회서(淮西)에 출정하자, 상신(相臣) 배도(裵度)(주4)가 현지에 가서 선무(宣撫)하게 되었다. 이에 이소가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길가에서 배도를 맞이하여, 채(蔡) 땅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의 존엄을 알게 하였다. 이는 장수된 신하가 연명(延命)한 옛 일인 것이다. 요즈음 절도사(節度使)는 곧 옛날의 이소요, 요즈음 순찰사(巡察使)는 곧 옛날의 배도이니, 만일 배도로 하여금 비장을 시켜 대수(代受)하게 하였더라면, 이소가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연명하려 하였겠는가?
전에 내가 서도(西道)에 있을 때 순찰사와 병마사가 이 연명(延命) 문제로 서로 고집하기에 내가 배도와 이소 두 사람의 일을 들어 깨우쳐 주었더니 친히 받았다.
요즈음은 습속이 이미 이루어졌고, 수령은 또한 마땅히 습속을 따라야 하니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데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만일 수신(帥臣)이면 비록 파출(罷黜)을 당하더라도 굽힐 수 없다.
[역주]
[주-D001] 연명(延命) : 왕명(王命)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주-D002] 선화(宣化)의 …… 신하 : 덕화(德化)를 펴는 임무를 맡은 감사를 가리킨다.
[주-D003] 이소(李愬) : 당나라 성기(成紀) 사람으로 자는 원직(元直), 시호는 무(武)이다. 지략(智略)이 있고 말을 잘 타며 활을 잘 쏘았다.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킬 때 이소는 절도사(節度使)로서 그를 토벌하여 회서(淮西)를 평정하고 그 공으로 양국공(凉國公)에 봉해졌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서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이르렀다. 《唐書 卷154》
[주-D004] 배도(裵度) : 당나라 문희(聞喜) 사람으로 자는 중립(中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인품이 위대하고 지조가 굳었으며, 진사 출신으로 벼슬이 중서시랑(中書侍郞)ㆍ동평장사(同平章事)에 이르고 회채(淮蔡)를 토평(討平)하여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은 공으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唐書 卷170》
延命之赴營行禮。非古也。
延命者。守土之臣。坐於本邑。而宣化之臣。巡到本邑。則守土之臣。於牌殿之庭。祗承敎書。遂行瞻賀之禮。蓋云。朝廷詔諭。土臣欽承也。故巡行不到本邑。則土臣有終不延命者。古之道也。英宗初年。猶用古道。世道彌降。士大夫風節彌衰。謟事上官。唯恐見忤。監司到界。旬日之內。土臣亟赴營下。亟行延命之禮。此非延命。乃是參謁。此非尊朝廷。乃是謟上官。皆俗弊也。監司不知禮者。見土臣不卽延命。乃欲督過。不亦謬乎。
〇今習俗已成。不可泥古。然不宜汲汲赴營。以取識者之笑。稍俟數旬。黽勉行之可也。
又凡延命之禮。使臣宜親宣詔諭。非敬守令。敬君命也。今之使臣。妄自尊大。必令裨將代宣。乃以代宣。名曰代受。非禮也。夫使臣宣命。故土臣延命。本意如此。而今以延命。認爲參謁。故名之曰代受。卽受一字。本領之訛舛。可知也。甚之兵馬使,水軍使。同是使臣。而亦令裨將代受。大非禮也。昔唐李愬出征淮西。相臣裵度往而宣撫。於是李愬具櫜鞬。迎於路左。使蔡人知朝廷之尊。此帥臣延命之故事也。今之節度使。卽昔之李愬。今之巡察使。卽昔之裵度。若使裵度。令稗將代受。則李愬其肯具櫜鞬延命乎。昔余在西邑。巡察使,兵馬使。以此相持。余以裵李事譬曉。乃親受焉。
〇今習俗已成。守令且當從俗。曲在於彼。我何與焉。若帥臣則雖遭罷黜。不何屈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