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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남대문로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009년 5월 29일 엄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30일 오전1시20분
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정토원에 도착, 반혼제에 이어 정토원 수광전에 안치됐다.
수많은 주민과 추모객이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귀향(歸鄕)’을 지켜보며 애도했다.
이에 앞서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이 엄수
됐으며, 이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노제(路祭)가 열렸다. 시민 수십만명이 노제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명복을 빌었다.
이날 오전 11시2분 시작된 영결식에는 이
명박 대통령 부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
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등 2500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권양숙 여사와 건호(36)씨·정연(34)씨 등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한승수 국무
총리국민장과 한명숙 전 총리가 국민장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았다.
앞서 이날 오전 5시쯤 경남 김해 봉하마
을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발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빈소 밖으로 운구된 뒤 상주인 아들 건호씨가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 10분간 진행됐다.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오후 1시20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울광장에 모여
들기 시작한 추모 인파가 이 시간에는 수십
만명으로 늘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와 풍선이 서울광장 일대에 물결을 이뤘다.
노제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고
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招魂) 의식으
로 시작됐다.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弔詩)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弔唱),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진행자 선창에 맞춰 “노무현 대통령 사랑합니다”하고 함께 외쳤다. 노제는 오후 2시쯤 노 전 대통령 육성으로 녹음된 그룹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를 추모객들이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운구 행렬은 이어 서울역을 거쳐 화장장
인 경기도 수원 연화장으로 이동했다.운구 행렬은 당초 노제를 마친 후 서울역까지 약 30분간 걸어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추모 인파가 몰려 서울광장에서 서울역까지 가
는 데 약 1시간20분이 걸렸다.
이후 서울광장을 메웠던 수십만명의 인파 대부분은 귀가했지만, 일부 추모객(경찰 추산 3만5000여명)은 “노 대통령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운구차량 행렬을 따라 걸
었다.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3시간 늦은 오후 6시5분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화장
을 마친 노 전 대통령 유골은 유족들이 마
련한 향나무 유골함에 담겨 오후 8시55분
쯤 봉하마을을 향해 떠났다.
➡️2012년'컨트리 음악의 전설' 덕 왓슨 별세
➡️2010년영원한 자유 찾아간 '이지 라이더', 데니스 호퍼 별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국민장(國民葬)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ㆍ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천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궁에서 거행되었다.
➡️2009년 살인 혐의의 누명을 쓰고 20
년 형을 선고 받은 후 9년 째 복역하던 Gospel For Asia(GFA) 소속 선교사 네팔인 만자 타망 특사로 석방.
➡️2009년 독일 여성혁명가 로자 룩셈
부르크 시신 90년 만에 병원에서 발견
👉🏿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는 20세기 초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폴란드 출신의 여성 사회사상가였다. 룩셈부르크는 1919년 독일 우파 민병대에 의해 살해됐고, 그의 시신은 베를린 운하 아래로 내던져졌다. 피살 5개월 뒤에 발견된 시신이 독일 프리드리히스펠데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진짜 시신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그런 그녀의 시신이 90년 만에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발견됐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2009년 5월 29일 보도했다. 이번에 그녀의 ‘진짜’ 시신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병원 법의학과장인 미하엘 초코스(Tsokos)가 제기했다. 초코스는 최근 병원 부속 의학사박물관 지하에서 머리와 손발 없이 몸뚱이만 남은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그는 1919년부터 이 병원에 보관돼 온 이 시신의 육안적인 특징과 시신에 대한 부검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심을 품었다.
이후 엑스선 단층촬영을 실시한 결과, 이 시신이 소문으로만 떠돌던 룩셈부르크의 시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생전의 룩셈부르크는 뚜렷한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50cm 단신이었고, 엉덩이뼈 이상으로 인해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평생 절뚝거렸다. 초코스가 발견한 시신은 룩셈부르크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데다, 물에 잠겼던 흔적이 있었다. 또 키엘의 한 연구소가 시신에 대해 실시한 탄소연대측정도 룩셈부르크의 사망 시기와 일치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역사상 지적 능력이 제일 우수한 여성. 이론적 업적이 마르크스의 전성기와 비견된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여성. 독일공산당을 창당한 뒤 독일 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일으키려고 봉기했다가 피살된 여성 등등.
사회주의 운동의 첫 여성 순교자가 된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의 유대인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정치탄압과 인종차별을 겪으며 자란 그는 유대인 학살을 두 번 목격한 뒤로 초국가적 형제애를 부르짖는 국제사회주의운동에 빠져들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폴란드의 사회주의혁명프롤레타리아당에 들어가 지하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는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상당한 조직적,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로자는 독일 사민당 및 ‘제2 인터내셔널(1889~1916)’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론가로서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 레닌주의 조직론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의 축적 및 재생산 이론에 대한 비판적 보완 작업, 독자적인 제국주의론의 제출 등과 같은 지적 작업을 해간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정치투쟁을 외면하는 조합주의적 우파가 장악하고 있었고, 이런 흐름에서 사민당 거의 대다수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부르주아들에게 협력하면서 끌려 다니게 된다. 이에 반해, 로자가 속해 있던 사민당 내 소수 좌파 세력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레닌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함으로써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하게 되는데 반해서, 독일의 로자는 부르주아와 협력하던 사민당 우파 정권의 묵인과 비호 아래 퇴역 군인들로 이뤄진 용병대에 의해 살해되는 것이다. 로자는 1919년 1월 중순에 체포되어 온갖 모욕과 폭행을 당한 뒤 수송 도중에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운하에 버려진다. 동시에 체포되고 살해된 칼 리프크네히트 등과 함께 장례가 치러진 게 1월 하순이었고, 떠내려 온 시신이 발견된 것은 5월 말이었다. 로자는 그녀보다 50년쯤 뒤에 살해된 체 게바라와 더불어 20세기 혁명의 순교자적 아이콘이 되었다.
로자가 죽고 나서 로자의 정치사상적 라이벌이었던 레닌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 로자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수리는 때때로 닭보다 낮게 날 수는 있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2007년러시아, 미국 MD(미사일방어
시스템)뚫는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성공
➡️2007년‘에버랜드 CB(전환사채)’ 항소심도 유죄
➡️2007년소설가 김국태씨 별세
➡️2006년 구본무 LG회장 장녀 연경 결혼
➡️2006년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 장남 정도 결혼
➡️2005년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故) 고상돈씨 동상 제막
➡️2005년산악인 엄홍길씨가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고(故) 박무택씨 시신 수습 후 안치
➡️2005년중견 사진작가 김영갑씨 루게릭병 악화로 별세
➡️ 2004년‘워터게이트 특별검사’ 콕스
➡️사망2004년재미동포 2세 강진씨 미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2004년울진 앞바다서 리히터 규모 5.2 지진 발생
➡️2003년힐러리 경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 기념, 네팔서 축제
➡️2003년줄기세포로 심장·간·피부 만드는 ‘마스터 유전자’ 발견
➡️2003년 `보브 호프의 날` 선포
➡️2002년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선임
➡️2002년제프 블라터, FIFA 회장에 재선
➡️2001년‘보브 호프의 날’ 선포
➡️2000년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국 방문(~31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29일)
➡️2000년이승만 전대통령의 정치고문 로버트 올리버 박사 타계
➡️2000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의 통치권이 복원되었다.
➡️2000년 평양교예단 방한
➡️1998년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사임
➡️1994년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 사망
➡️1990년옐친, 소련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1989년나이지리아에 첫 `원화 차관` 제공
➡️1988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결성
➡️1986년유엔(UN) 아프리카 전체에서 1790만인이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발표
➡️1984년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1982년산악인 허영호 마카루봉 정상 정복
➡️1982년서독의 축구영웅 베켄바우어 은퇴
➡️1979년산악인 고상돈, 알래스카 매킨리봉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사망
👉🏿 고상돈은 누구인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상돈은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청주에 있는 전매청 연초제조창에서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2년을 수료하였다.
1970년 3월 대한산악연맹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으로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제주 대표로 참가, 1977년 9월 15일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는 2년 후인 1979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1m) 원정대 대장으로 참가하여,
5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정상을 등정했으나 하산하다 빙벽에서 자일 사고로 후락, 이일교와 함께 현장에서 산화했다.
이때 함께 등정했던 대원 박훈규는 증상을 입었다. 이로써 그는 영원한 산 사나이로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 되었다. 체육훈장 맹호장이 추서되었다.
➡️1979년아프간 반군, 정부군과 전투 3개주 점령
➡️1979년카터 미국 대통령 주한미군 철수 동결 결정
➡️1977년카터 미국 대통령 한국피침때 핵무기사용 언명
➡️1974년북한, 만국우편연합(UPU) 가입
➡️1974년남북적십자 7차 실무대표자 회담 판문점서 개최
➡️1972년파리서 고려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 발견
👉🏿 부처님과 여러 조사님들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후 중생제도를 위하여 부처님의 금란가사를 통하여 불법(佛法)의 유통을 당부하셨듯이, 한국의 직지심경 이 책은 佛法의 유통에 있어서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것이 한국불교역사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관계로 문화적인측면으로도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기록 문화를 발전시키다가 획기적인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세계 인류가 문명사적인 면에서 보나, 문화사적인 면에서 보나 금속활자 발명만큼 획기적인전환점은 없었던 것이다.
그 가치의 크기만큼 한국은 세계 인류의 문화 흐름을 일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세계적인 한류열풍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라 1200년대에 이미 구축해 놓은 인류최초로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지구촌 으뜸문화를 주도하고 있었던 금속활자 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흐름의 기류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깨어 있고 문화적인 국민이라는증거가 바로 직지심경이라 불리는 직지인 것이다. 지구촌 한류열풍의 원조가 직지인 셈이다.
직지문화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도 직지심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하드웨어도 엄청난가치를 지니고 있어 지구촌 인류 전체가 받들어 모셔야하는 귀중한 책이 된 것이다.
한국의 불교 인불사상(人佛思想)은 "사람이 부처다"를 바탕으로 하는 108총림에서는 직지를
직지심경이라 부르며 인도의 반야심경과 중국의 육조단경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대대적으로 직지 찾아오기 운동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직지심경은 인류 최초로 금속활자로 발간되었을 때, 한권만을 만들지 않았고 불교의 상징인108번뇌를 대표해서 108권은 발간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대대적이고 범국민적인 직지 찾기 운동을 전개하여 잃어버린 한국의 자존심을 반드시 되찾아 세계적인 한국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만든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책 직지심경 직지가 왜 프랑스에 가 있는지 아이러니하지만
이것은 우리 한민족의 나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직지 책을 되돌려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지만, 나머지 직지는우리나라 어느 사찰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직지심경을 찾아내야만 우리민족의자존심과 위상이 바로 설 것이다.
세계적인 한류문화의 열풍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800년 전에 세계최초 금속활자로 된 책,직지심경에서부터 출발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불교의 인불사상은 세계 으뜸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다.
인도는 불교가 완전히 퇴색되어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중국은 불교가 존재하기는 하지만아직까지는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 하찮게 여기는 민족이중국인들이다. 큰 대륙의 중국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1000년이 넘는 세월을 동서남북여기저기에서 줄기차게 전쟁으로만 살아 온 인간들이 바로 중국인들이다.
➡️1968년김수환 주교,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
➡️1968년향토예비군법 법률 제2017호로 전문개정
➡️1966년KAL기, 서울-오사카간 운항시작
➡️1963년동파키스탄 태풍으로 1만여명 사망
➡️1962년파주에서 미군의 한국인 린치사건
➡️1960년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1957년이효정 여사 한국 최초로 `나이팅게일` 기장 받음
➡️1956년한국전 참전 16개국 휴전감시위 해체 결의
➡️1953년힐러리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1952년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일본의 가입을 승인
➡️1952년김성수 부통령 국회에 사임서 제출
➡️1946년신문, 정기간행물의 허가제 실시
➡️1942년미국 연극배우 존 배리모어 사망
➡️1917년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출생
➡️1914년미국-멕시코 강화조약 체결
➡️1912년손기정 마라톤 선수 출생
➡️1911년포르투칼 헌법제정 국회의원선거서 공화당 승리
➡️1910년시인 피천득 출생
➡️1905년형법대전 공포
https://youtu.be/NO5oVcKZF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