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좀 살아줄래요" 성남 4억원 대에도 세입자 못구해
2022. 08. 25. 08:38 수정
확산하는 전세가격 하락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와 매매 동반 하락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본격 조정으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전세 시장을 점검했다.
◇계속 쌓이는 전세 매물
/더비비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마지막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94.4를 기록해 일주일 전(95.1)보다 0.7포인트 내렸다. 이 지수가 100보다 작을수록 전세를 내놓은 공급자가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세수급지수는 작년 12월 20일(99.4) 기준선인 100 이하로 떨어진 후, 6개월 넘게 내림세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8월 넷째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3331건으로 1년 전(2만762건)보다 60% 늘었다. 2020년 8월(3만3456건)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이다. 경기 지역 전세 매물도 1년 사이 1만9669건에서 4만5702건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매물이 쌓이면서 가격도 약세다.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는 13주 연속 내림세다. 8월 셋째주의 경우 0.1% 내리며, 2019년 4월(-0.13%)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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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별로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신규 전세 실거래가가 10억5000만~12억5000만원 수준으로 작년 12월 최고가(15억5000만원)에 비해 3억~5억원 정도 내렸다. 동작구 신대방동 ‘한성아파트’ 전용 84㎡도 작년 9월 기록한 전세 최고가 8억2000만원보다 1억4000만원 떨어진 가격에 거래됐다.
최근 전셋값이 내려가는 가장 큰 원인은 대출금리다. 금융계에 따르면 전세 대출 금리는 연 6%를 넘어섰다. 12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의 전세 대출 금리가 연 4.01~6.21%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 금리로 대출을 얻어 전세를 사느니, 월세를 찾는 사람이 늘면서 전세 수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전세의 월세화’다.
◇심각해지는 역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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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수요가 늘면서 곳곳에서 전세금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고 있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를 보면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의 세입자 A씨는 전세 만기가 지나도록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 만기 6개월 전부터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했지만,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례 뿐 아니다. 전세 시장이 위축되면서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7월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은 1059건으로 1년 전(811건)보다 30% 증가했다. 임차권 등기명령은 계약 만료 시점에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의 권리를 법원이 보장하는 것이다. 임차권 등기명령 가운데 수도권 신청 건수(804건)가 전체의 7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전세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가 성행했던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전세금 반환을 놓고 분쟁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했다. 앞으로 비싼 전셋값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가 계속 줄어들 전망이라 보증금 분쟁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 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 구하기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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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도의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리는 지역에선 세입자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8월31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는 전체 가구(1048가구)의 절반이 넘는 556가구가 전·월세 매물로 시장에 나와 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전세 호가는 두 달 전 9억원을 넘었는데, 지금은 7억원 초반에도 세입자 구하기가 어렵다.
9월 입주하는 관악구 신림동 ‘힐스테이트뉴포레’(1143가구) 전용 84㎡도 당초 10억원 넘게 호가가 나오다가 요즘은 8억원 대로 내려섰다.
경기도도 비슷하다. 9월 입주하는 성남 중원구 ‘신흥역하늘채랜더스원’(2411가구)은 전용 84㎡ 전세 호가가 7억원에서 4억8000만원까지 내렸다. 이 지역은 11월 5320가구 규모의 ‘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 입주도 예정돼 있어 전세 시세는 더 내릴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전반적으로 입주 물량이 많아서 내년 봄 이사철까지 전세 약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외곽 지역에선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깡통 전세’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