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살리라"…쳇바퀴 도시생활 버리고 제2의 삶[S 스토리] 귀농·귀촌 택하는 사람들
대도시를 떠나 지방 소도시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2001년 880가구에 불과했던 귀농·귀촌가구는 2007년 2000가구를 넘어서더니 2012년엔 2만7000가구를 돌파했다. 지난해엔 3만2424가구가 시골살이를 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시골을 삶을 터전으로 삼는 것일까. 퇴직 후 제2의 삶을 찾는 베이비붐(1955∼63년 출생자) 세대부터 팍팍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 층까지 연령대, 이유도 다양하다. 귀농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탈(脫)도시, 취업난, 자립적인 삶… 30대들의 귀농
◆전원 속 ‘제2의 삶’… 40·50대의 귀농
KBS 강연 100도씨 <107회> 최재원/ 김도이/ 이창희 2014/09/07 최재원 (46세, 男, 가족을 위해 성공한 미국 생활 접고 귀농한 가장)
“나중은 없다”
전주의 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최재원 씨는 같은 학교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 후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넉넉했던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 서너 개를 하며 공부해야 했지만 그는 성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한 마케팅 회사에 취업을 한 후 점차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경력을 쌓았고, 높은 직급까지 올라 많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린 막내딸이 희귀 질환에 걸리고,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 유방암 치료를 위해 아내는 2년여간 한국에 들어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들을 돌볼 틈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가족과의 시간이 최우선’이라는 마음으로 그는 성공했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항암치료 중인 아내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친정어머니가 끓여주는 된장국만큼은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현재는 구수한 된장을 만들고 있는데... 이전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있기에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는 최재원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도이 (30세, 女, 90kg 빅사이즈 여자 모델)
“사이즈 너머”
키 170cm에 몸무게 90kg인 8년차 빅사이즈 모델 김도이씨. 어릴 때부터 뚱뚱했던 그녀는 겉으론 활발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날씬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본모습보다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두려워 취업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녀. 평소 옷에 관심이 많았지만 옷가게에 가면 원하는 옷을 살 수 없었던 그녀는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빅사이즈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접 코디를 하고 자신 있게 옷을 입은 모습을 올리려 했지만 어느새 사진을 수정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올리려 했지만 한편으로는 날씬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그러다 날씬한 몸이 되어 예쁜 옷을 입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주사와 약에 의지하며 다이어트 한 결과 3개월간 40kg을 감량했다. 그러나 ‘다이어트 약을 끊으면 다시 살이 찌지 않을까?’를 늘 걱정해야 했고, 우울증이 찾아와 삶의 의욕도 잃었다. 날씬해졌지만 그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때부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시작한 그녀는 현재 당당한 빅사이즈 모델로서 활동하고 있다. ‘뚱뚱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에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도이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창희 (81세, 男, 아내 위해 80세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한 남편)
“더도 말고 지금처럼”
80세에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한 이창희 할아버지. 그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 한 동네 살면서도 말 한 번 못 나눠본 18살 동갑내기 처녀와 결혼한 그. 결혼 후 부부는 어려웠던 시절 함께 농사를 지으며 3남 1녀를 키웠다. 주변에서 ‘잉꼬부부’ 소리를 들으며 함께 세월을 보내온 부부... 그런데 갑작스런 불행이 찾아왔다. 68세에 아내가 위암 판정을 받은 것. 설상가상으로 몇 년 후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파킨슨병이 있다는 진단까지 받게 됐다. 그는 아내의 용변을 받는 등 병간호를 하며 긴 시간 병원에 입원한 아내의 곁을 지켰다. 퇴원 후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방문 요양보호사에게 맡겼던 그. 그러던 중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제 식구도 돌볼 수 있다’는 말에 아내를 직접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결심했다. 늦깎이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 끝에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로 내 몸같이 생각하는 것’이 부부라고 말하는 그. 지금처럼 아내와 함께 건강하게, 한평생 사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말하는 이창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연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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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