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맛-낙엽위에서 펼치는 봉황의 춤사위
나누어 가지는 삶을 실행하는 인생,이영열이사
내가먼저 인사, 내가먼저 사과,내가먼저 궂은일을
공직생활 35년, 석면해체제거관리인으로 13년
대다수의 퇴직 공무원들의 노년은 그다지 생기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경제적 동력을 유지하면서 취미와 사회공헌활동을 펼쳐가며 시대와 동참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다.
보사부시절을 지나 환경부(환경청)창설의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퇴임한 이후에도 벌써 15년의 세월을 까먹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를 두고 가까운 지인들은 ‘떨어진 낙엽에서도 봉황은 날개를 펼 수 있다’라고 약간은 부러운 시선으로 평가한다.
그는 나누어 가지는 삶을 살고 자기 중심의 아집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해방시킨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그를 멀리서 가까이서 지켜본지도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슷한 흔적과 행동거지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인사도 내가 먼저, 사과도 내가 먼저, 궂은 일도 내가 먼저 합니다. 바보스럽게 사는 것이 오랜 인연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굴러가는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연의 연속이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허울과 격식도 훌훌 털어버리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참 용기있고 풍요롭게 가치있는 삶을 지속적으로 그려가는 이영열이사(50년생)가 뱉어낸 삶의 소신이다.
한상준 사무총장과 함께 석면제거작업현장이 있는 신림동 원조 나주곰탕집에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이영열이사가 새우젓 장이 펼쳐지던 서울 마포나루 토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용강초,숭문 중,고)
사실 서울 토박이로 기억에 남는 인물은 심영섭 전 차관(국립환경과학원장,작고),김원민 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상하수도협회 부회장)등 몇몇 되지 않는다. 서울산들은 모두가 제각각이라 고향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이영열 이사는 1971년6월 보사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국립보건원 보건고시과,보사부 총무과(용도),기획관리실(행정)을 거쳐 80년 1월 환경청 발족과 함께 전입되어 환경평가과,측정관리과,대기제도과,서울,부산,원주 지방청,유독물질과,분쟁위등을 거쳐 2005년 국립환경과학원 근무로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유독물질과(황다익,한풍우,주대영,이영열,장근섭,최병락,정상순,김정호,정옥선,이상목,김필제)에 근무시 골치 아픈 업무를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에서 당시 고용노동부가 주관부처인 석면업무를 맡게 된 것이 사회에 나와 다시금 원동력이 된 실마리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1995년 10월 캐나다 정부의 초청으로 고유진(노동부작업환경과장),권택수(토양보전과),KCC부장,벽산개발부장,구준모 석면협회장등과 함께 퀘벡주에 다녀왔다.
공직생활을 끝내고 7개월간의 실업급여수당도 바닥이 난 상황에서 2010년 1월 환경부는 석면안전관리법과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했다.
캐나다 석면광산 현지 출장에 동행했던 구준모 협회장의 추천으로 석면관련법과 피해구제를 위한 업계들의 의견과 정부와의 간극을 좁혀주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인연의 고리가 이어져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법안에는 석면함유 건축자제를 해체작업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석면해체제거감리인이 입회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 2013년에는 일반감리원자격도 취득했다. 캐나다 퀘벡의 석면광산을 둘러보던 당시에는 꿈조차 꾸지 않았던 석면이다.
공부는 죽는날까지 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 자격증 덕택으로 서울시 생활환경과에서 소음진동,악취,비산먼지등에 대한 민원 해결사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이같은 경험과 감리실적이 인정되어 2018년에는 고급감리원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는 신림 2지역 재정비촉진지역에서 비산먼지저감 및 석면해체제거감리활동을 하고 있다.
이영열이사는 자신만의 얼굴을 가지고 당당하고도 유연하게 인생 2막을 그려가고 있다.
그날 그날 고마워하고 욕심을 털어가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여유로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고료는 없지만 글로서 그려가고 싶은 인물이다.(환경동우회 2022년 2호)
(환경경영신문 www.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환경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