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한글 성경 1882년에 햇빛
로스·매킨타이어 두 선교사 번역 합작
의주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로스와 매킨타이어의 더 큰 기여는 한글 성경 번역이었다. 일반적으로 선교가 금지된 지역에서는 성경이나 기독교 문서의 역간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간접적인 선교를 시도하는데, 한국어 성경 번역은 바로 이런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로스는 비록 만주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한국인을 만난 이후부터 그의 눈은 조선으로 향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하는 과제는 한국어 공부였다.
이응찬에게서 한글을 배웠던 로스는 1877년 한국어 문법 및 회화 교재인 ‘한국어 첫걸음(A Corean Primer)’을 출판했다. 비록 89면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 책은 영어로 된 최초의 한국어 회화 교재였다. 이 책에 이북 사투리가 많이 포함된 것을 보면 이응찬의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1882년에는 이 책이 101면으로 증보되어 ‘한국어 회화(Corean Speech with Grammar and Vocabulary)’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1879년에는 서양 언어로 기록된 한국의 역사와 풍속에 관한 최초의 책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그 역사와 관습과 풍습(Corea, Its History, Manners and Customs)’이라는 404면에 달하는 책을 런던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매킨타이어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1879년 ‘한국언어론(Notes on the Corean Language)’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최초의 한글 성경
이와 같이 한국어 및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로스는 1877년부터 이응찬에게 도움을 받으며 한글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다. 1879년 로스의 안식년 기간 중에는 매킨타이어가 이 일을 계속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882년 최초로 한국어 성경이 출판되었는데, 그것이 1882년 3월 24일 나온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5월 12일 출판된 ‘예수셩교 요안걑ㅣ복음젼셔’였다. 두 복음서는 3000권씩 인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서 장은 구별되었으나 절(節) 표시나 구분이 없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느님, 쥬(主), 예수, 키리스토 등 하나님 칭호 전이나 후에는 반드시 여백을 두고 있다. 이 번역본에서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요한을 ‘요안’로, 세례를 ‘밥팀네’로 표기한 점도 흥미롭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이어 1883년에는 마태·마가복음이, 1884년에는 사도행전이 출판되었는데 이때는 5000권씩 인쇄되었다. 1885년에는 로마인서와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이 역간되었고, 1887년에는 신약성경이 완역되었다. 이 성경이 순한글로 번역된 ‘예수셩교젼셔’인데, 보통 ‘로스역 성경(Ross Version)’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이 한글로 된 최초의 신약전서였다. 성경 번역 작업은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고, 봉천의 문광셔원에서 출판되었다.
이때의 한글 성경 번역 방법에는 다소 불완전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응찬 등 한국인 조력자들이 중국에서 1864년 간행된 한문 신약성경 ‘신약전서 문리(新約全書 文理)’를 읽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헬라어 성경과 흠정역(KJV), 그리고 흠정역을 개역한 영어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등을 참고로 검토한 후 역문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말하자면 한문 신약성경이 대본으로,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은 준대본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번역본은 축자적 번역이라기보다는 의미의 동등성을 중시했다. 또 이 번역본에서는 한문 투의 어휘가 적고 구어체가 많이 사용되었으나, 서북 방언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신약성경이 국내에서 1900년 ‘신약젼셔’가 출판되기까지 유일한 한국어 신약성경 번역본이었고, 그 이후 한글 성경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선교사이자 유능한 학자였던 로스
1882년 번역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로스와 그 동료 한국인들에 의해 한만(韓滿) 국경지대인 서간도에 배포되어 개종자가 생겨나 100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또 번역과 출판에 협력했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에 의해 의주를 거쳐 이북지방에 비밀히 보급되었다. 한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각 1000권은 일본 요코하마 주재 스코틀랜드성서공회 톰슨(J A Thomson)에게 보내졌고, 톰슨은 일본인 매서인을 통해 이 책을 부산과 대구 등 경상도 일원에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로스나 매킨타이어를 단순히 한국어 성경 번역의 선구자로 생각하지만 이들은 선교사로는 보기 드문 유능한 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로스가 그러했다. 로스의 모국어는 갈릭어(Gaelic)였으므로 영어도 학습을 통해 익힌 언어였다. 그는 중국어와 만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한국어 문법책을 출판하기 2년 전인 1876년 ‘북경어 첫걸음(Mandarin Primer)’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그의 첫 저술이었다.
그 외에도 로스는 7개국의 언어, 곧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와 독일어, 불어, 한국어 등을 읽을 수 있었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선교대회가 열렸을 당시 그는 선교사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어떻든 한글 성경 번역에 기여한 로스와 매킨타이어의 공헌을 고려하여 마삼락(Samuel H Moffett)은 이들을 ‘한국의 위클리프(Wycliffes of Korea)’라고 불렀다.
로스 선교사(1841∼1915)
만주 파송 후에 조선선교 관심. 이응찬에게 한글을 배우고 영어로 된 최초의 한국어 교재 ‘한국어 첫걸음’ 1877년에 출간
중국어·만주어 등 7개국어 능통, 뛰어난 학자적 자질 갖춰.
1910년 에든버러 선교대회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