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문화칼럼] 폐교의 부활, 객주문학관에서의 문학과 미술의 만남
초등학교 6년 동안 교과서를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소년이 있었다. 급우의 흰색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하늘과 산과 숲을 그려 선생님께 매를 맞은 이야기에선 한 여성 작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기획전 준비로 경북 청송에서의 며칠은 가난과 질곡의 시대를 살았던 고희를 넘긴 원로 소설가의 이야기와 술이 있어 행복했다. 문학관 전시실에선 거구의 소설가가 노트 한 줄에 두 줄로 깨알같이 글을 적은 것을 돋보기로 보며, 성급하게 노(老) 소설가를 읽는 키워드 3개를 '결핍, 호기심, 상상력'이라고 정의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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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뱅이 이야기를 연재 하기 위하여 스스로 장돌뱅이가 되어 5년 동안 200여 시골 장터를 돌아다녔고, 부초처럼 사는 서민들의 삶은 작가의 길 위에서 완성되었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자연의 글쓰기 진경을 펼쳐 보인다."라는 '객주'는 왕후장상, 영웅호걸이 아니라 이 땅의 민초를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대하역사소설이다. 우리나라 현대문학계 거목인 '길 위의 작가' 김주영 소설가의 고향인 청송군 진보면에 조성된 '객주문학관' 개관 기념 초대전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이재효 조각가의 '상상력의 귀향(歸鄕)' 전시회를 기획했다.
자연과 상상력의 공존과 조화로 자연미를 탐험하는 조각가 이재효의 매력에 빠진 건 10여 년 전, 유럽 아일랜드 조각공원 야외의 원형 나무작품을 인터넷에서 보고부터였다. 미술관을 최후의 안식처로 받아들이는 물신숭배 현상이 팽배해지는 예술계의 상업화에 지쳐 있을 때 자연을 상상력의 은신처로, 자연에서 채집한 재료로 작업하고 시간에 의해 자신의 사랑이 자연 속으로 되돌아가도록 내버려두는 대지예술의 문제적 작가의식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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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문학관 개관 기념으로 나무, 낙엽, 돌멩이, 못 등 자연의 재료로 독창적인 작업을 하는 이재효 조각가 초대전 '상상력의 귀향(歸鄕)' 포스터
모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영원하기를 추구할 때, 불멸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반전의 미학! 지금도 관측, 실험, 몰입, 역발상으로 생태환경에 동화, 순응한 기하학적 입방체의 구성으로 배워야 할 작업의 원천이자 이유인 자연에 바치는 경의를 동양적 미학으로 시각화한다. 특히 불(火)을 통한 탄화목 작업은 버림으로써 얻는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탄생으로의 새로운 조형 이미지를 창출하여 우아함과 간결함으로 인간과 물질과 형태의 화해를 시도했다.
배움의 정원으로 재탄생하는 폐교의 부활, 객주문학관의 '스페이스 객주'에서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는 조각가의 호시우행으로 걸어온 길을 디스플레이 했다. 순수한 열정과 실험적인 예술혼이 숨 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의 초기 작품부터 목금화석(木金火石)의 독창성으로 유희적 기교와 사유의 힘이 표출되어 국제 미술계에서 한류를 주도하는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최근 작품까지의 진화 과정을 감상하는 전시회이다. 특히 진경산수의 보고로서 관광지로 유명하며 선경이 즐비한 청송이기에 문학과 미술의 통섭으로 아이들 창의력과 감성 개발을 위한 여행에 좋은 '교육적 전시'를 지향했다.
경북 청송은 이웃 안동의 이육사, 영양의 조지훈, 이문열 등 한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들의 생가와 문학관을 함께 아트투어에 좋은 곳이다. 문학적 가치와 미술적 가치가 자연과의 다양한 교감과 얽힘으로 치열하고 건강한 작가정신, 유쾌하게 전복된 상상력의 확장을 시도한 기획전이다. 회색도시에서 이향민처럼 부유하며 영감이 고갈된 당신, '빛을 찾는다'라는 관광(觀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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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문학관 개관식에는 김주영 소설가, 시인 도종환 국회의원, 한동수 청송군수, 한중작가회의 소속 한국과 중국의 문학인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하였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 등 인류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일 중의 하나인 사과는 창조의 나무에서 열린다.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에는 복숭아꽃이 피지만 청송에는 사과꽃이 핀다. 푸른 솔의 고장, 청송(靑松)에서의 문학과 미술의 만남! 보부상들이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걷던 문향(文鄕)의 강건한 황톳빛 토양 위에서 부조리하다는 존재의 공감과 치유를 위한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한국문학 거장의 귀향지인 객주문학관에서 주객(主客)이 전도된 학습된 상상력을 버리고 심미안의 귀소본능, 무위자연의 말을 듣자.
김형석/컬처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 前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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