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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조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기념비
[믿음의 선조(先祖:믿음의 조상)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기념비를 기억하자!]
성경에는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는 귀한 약속들이 있다.
우리 모두 우리의 기도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갈망하며,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으면 시험을 받아 낙담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것이 큰 잘못임을 알게 되었다. 기도가 지체되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것이 참되고 신실한지, 아니면 바다의 물결처럼 변하기 쉬운지 시험받을 기회를 갖는다.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강한 줄로 자신을 제단에 붙들어 매어야 하며, 인내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믿음은 계속해서 사용해야 강해진다. 이 기다림은 우리가 주님께 우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좋은 것 안에서 우리의 필요를 제공해 주시는 수단으로서 최고로 잘 사용하려고 한다.(Pr 110.5)
끝이 가까이 이르러 올 때에 하나님의 종들의 증언들은, 보다 결정적이고 능력이 있어서 매우 오랫동안 최상권을 누려온 오류와 압박의 조직체들 위에 빛을 비추일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 시대를 위한 기별을 보내셔서, 기독교를 영원한 기초 위에 세우려 하신다. 현대진리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 자기 지혜 위에 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 서서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책들 속에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들이라,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고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가장 혹심한 반대에 부딪쳤을 때에도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 사람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빛을 비추는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본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되 분명한 빛 가운데서 밝히 드러내게 해야 한다.(4BC 1152.7) 진정한 교육은 전인적(全人的)이다. 그것은 자아를 바르게 활용하도록 가르쳐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뇌와 뼈와 근육과 육체와 정신과 마음을 최선껏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정신적 능력이 보다 높은 능력으로서 육체의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선천적 식욕과 정욕은 양심과 영적 애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선두에 서 계신다.
그리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우리를 높고 거룩한 순결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다.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통하여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YHH 70.4)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할 때에 하나의 큰 공과를 배우게 된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19,20)라는 말씀을 기억의 전당에 걸어두어, 우리가 항상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감화와 우리 각자가 자신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몸에 있는 이 하나님의 선물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신 소유로서 우리가 그분에게 건전하고 향기로운 봉사를 바칠 수 있어야 한다.(CD 56.3) 우리는 자신이 받은 축복의 조목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의 믿음과 경험에 관한 기록들을 읽음으로써 보다 더 큰 용기를 갖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배로우신 약속들로 말미암아 받은 축복의 경험들을 기념비에 매어달 수 있다.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학식이 있거나 무식하거나 간에 우리들은 이것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관한 모든 것들은 다 기념비에 불멸의 기념물로써 매어 달려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들을 마음의 돌비 가운데 새기기를 원하신다. 한글자라도 지워지거나 흐려지지 않아야 할 하나님의 보배로운 계시들을 지켜라.(OHC 135.2)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후 특별한 승리를 얻을 때마다, 승리에 대한 기념품들을 보존하였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와 같은 기념비를 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쳐서 특별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사무엘은 한 기념이 되는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고 말하였다.(OHC 135.3)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상관해 오신 이야기는 자주 반복되어야만 한다. 고대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에, 그가 얼마나 자주 길의 표지들을 세우셨는가! 그들이 지난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세’를 명하사, 그 사건들을 노래의 가사로 만들게 하시고,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게 하셨다. 기념물들을 모아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벌여 두셨다. 어린이들이 이것들에 대해서 물을 때에는 그 이야기 전부를 들려줄 수 있도록 그 내용들의 보존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같이 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놀라운 선하심, 그리고 그 백성을 돌보시고 구원하신 자비는 계속 기억되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히10:32)고 우리를 권고하셨다. 이 세대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큰일을 행하시는 분으로 일해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업의 지나간 역사는 젊은이와 늙은이를 막론하고 백성들 앞에 자주 전할 필요가 있다.(3TT 30.4)
그 언약에 대한 서약(사56:5)—이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서약이다. 하나님의 가납하심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들을 신실히 성취하는 데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는 그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이 다 포함된다.
그 손을 금하여 악을 행치 아니하고 의와 공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은 다음과 같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이지 않게 할 것이며”(사56:5) 오, 한 백성으로서 우리의 기념석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경험 가운데서 우리에게 행하신 귀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문자들로 새겨진 우리의 기념비적 기둥들은 어디에 세워져 있는가?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새로운 시련과 증가되는 당혹-고통, 궁핍, 사별까지라도-을 내다볼 수 있지만, 실망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나는 내 영혼을 지키는 것을 성실한 창조주이신 그분께 맡길 것이다. 그분께서 내가 그분께 맡긴 것을 그날까지 지키실 것이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3SM 320.2) 갈바리는 거룩한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한 속제 물로써 요구된, 놀라운 희생제물의 기념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죄를 사소한 일로 여기지 말자.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손과 발과 옆구리는 우주의 말할 수 없는 죄악과 저주에 대하여 온 우주 앞에 영원히 증거 해야 하지 않겠는가?(TMK 255.3) 목이 말랐을 때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로 인도하셨다면 왜 그분은 우리에게 떡과 같이 물도 주지 않으시는가”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이처럼 불신을 나타내는 일은 죄가 되었으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형벌이 그들에게 임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는 그들의 범죄의 기념물로서 그 장소의 이름을 맛사(시험)와 므리바(다툼)라고 불렀다.(PP 298.3)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과일을 먹는 것과 같은 그러한 적은 일로 인하여는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결과들이 일어날 수 없다고 스스로 자신을 무마시켰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사건은 하나님의 변할 수 없으며, 거룩한 율법을 범한 죄로서 이 세상에 사망과 말할 수 없는 비애의 수문(水門)을 열어 놓고야 말았다. 모든 세대를 통하여 이 세상에는 애통하는 울부짖음이 끊이지를 않게 되었고, 온 피조물들은 사람의 불순종의 결과로써, 모두 고통가운데 신음하며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하늘 자체도 하나님을 거스린 사람의 반역의 결과를 느끼었다.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사업의 기념물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표징이다.(FLB 32.3)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일할 수 있는 6일을 주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분께서 안식하신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세속적인 일로부터 벗어나 준수해야 할 날로 인간에게 주셨다. 이렇게 안식일을 구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하나의 기념물을 주셨다.
그분은 일곱 날 중 아무 하루를 구별하신 것이 아니고 특정한 한 날, 곧 제 칠일을 구별하셨다. 따라서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FLB 32.5) 천연계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다.“들의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8,29). 우리 자녀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 칠일을 주시고, 그 날을 그분의 창조사업의 기념물로 남기신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이다.(CG 55.1)
남아 있는 기념물은 단 하나, 바로 우리 구주께서 영원히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 상하신 머리 위에, 옆구리와 손과 발에는 죄가 빚어낸 잔혹한 일의 자취가 남을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합3:4)라고 했습니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붉은 피를 흘리신 그분의 옆구리, 거기에 구주의 영광이 있습니다.“그의 권능이 그 속에”(히3:4) 감추어져 있습니다...비천함의 표시야말로 그분에게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갈보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고, 주님의 권능을 드러냅니다.(Mar 362.3)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사업의 기념물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표징이다.(DA 281.3)
사단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의해 정복됨(막15:37; 눅23:46; 요19:30; 히2:14) 그리스도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운명하셨을 때, 그는 사단의 왕국의 기둥들을 땅에다 옮겨다 놓은 것이다. 그는 에덴에서 사단이 정복한 그 본성으로 사단을 정복하셨다.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 그 원수를 이기신 것이다. 하나님으로서의 구주의 능력은 숨겨져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는 인성으로 승리자가 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특권이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믿음에 비례할 것이다. (5BC 1108.6)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영원한 기념물입니다. 창조사업은 결코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유물론자들이 하나님은 존재할 곳이 없다고 한 말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넷째 계명은 온 우주 곧 타락하지 않은 세계와 타락한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육 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분명한 증거는 의문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습니다.(UL 39.2)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사56:5) (UL 166.1)
진정한 성화란 어떤 것을 두고 말합니까? 출애굽기 31장을 읽으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그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 말에 대한 정의를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성전건축 방법에 대해 특별한 지시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안식일에도 할 수 없이 일을 하게 되자, 그 날이 가지고 있던 신성은 더 이상 보존될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는 동안 안식일을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시내 산에서 장엄하게 주어진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안식일을 특별히 보호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또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잊게 될 것과 일꾼들이 열띤 목소리로“이 일은 주님의 사업이며, 그분의 감독 하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기 않고도 그분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제 칠일은 백성들이 주님을 저희의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출 31:13)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념물로 구별되어 성스럽게 지켜졌습니다. 이것이 참다운 성화입니다.(UL 124.2) 계명이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 섬기라”(눅4:8)고 말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대신에 모든 인간들이 우상을 섬기라고 풀어 주시기 위해 돌아가셨는가?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창2:4) 그리고 무엇을 하셨는가? “제 칠일에 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2:3).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기념물—그분이 위에 하늘과, 우리가 서 있는 땅을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기념물로 준수하도록 그대들에게 주셨다.(출20장 참조). 그분은 키 큰 나무를 만드셨으며, 그 위를 온갖 꽃으로 덮으셨다. 그분은 모든 것들에게 그의 색깔을 주셨으며, 하늘의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누구를 위해 주셨는가? 모든 아담의 후손을 위해 주셨다. 그것은 그의 모든 후손에게 하나의 선물이었다.(1SAT 233.1)
하나의 증거로써, 만국에 진리가 전파된 후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의세력들이 다 활동할 것이며,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이것이 진리이다. 내가 하늘에서 보내신 기별을 갖고 있다. 그분이 나에게 큰 빛을 주어 보내셨다”라고 외치는 음성들이 매우 많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지계표를 옮기고, 우리 신앙의 기둥들을 헐어 버리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거짓 안식일을 높이고, 그분이 성별하시고 축복하신 날을 대체시킴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하고, 거짓 안식일을 높이려는 더욱 결정적인 노력이 있을 것이다. 강압적인 법률로, 이 거짓 안식일 준수를 강요할 것이다.(7BC 985.1)
환난의 때는 우리 앞에 있다. 그러므로 그 때에 가차 없는 곤궁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제어하고 단순히 생명만을 유지하기에 족할 만큼만 먹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때를 위하여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 것이다. 그 두려운 시기에 우리의 궁핍은 그분의 강화시키는 힘을 주시는 기회와 그분의 백성을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의 기회가 될 것이다...(CD 202.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같이 자신의 생애를 볼 수 있음—예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그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늘 생각하면 우리의 정신적, 도덕적 능력은 늘 강화된다.(3BC 1150.1)
예수님처럼-그것은 하나님께 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그분의 직무에 동역하는 모든 이에게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정신과 몸이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시고, 하나님의 통제 아래 모든 능력과 재능이 유지되고, 아울러 엄격하게 절제된 습관이 그들을 건강에 투철하게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자신을 그분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몸과 영혼이 부여받은 재능대로 모든 능력을 다해 그분의 직무에 전념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 은혜의 기간에 우리의 모든 활력과 역량이 끊임없이 강화되고 증진되어야 한다.(BLJ 315.5)
기념이 되는 기둥들, 곧 주께서 우리를 위로하고 멸망시키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을 상기시켜 주는 기념물을 바라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모든 부드러운 자비, 곧 그분께서 닦아주신 눈물과, 그분께서 어루만져 주신 상처와, 제거해 주신 걱정과, 쫓아버리신 두려움과, 채워주신 궁핍과, [죄악의 시험과 죽음의 질병에서 새 생명을 주셔서, 구속의 경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여해주신 축복들을 생생이 기억함으로, 우리의 남은 순례 길에서,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것에 대비하여 우리 자신을 강화 시키자.
우리는 장차 오는 투쟁에 있어서 새로운 난국(難局)을 내다보지 않을 수는 없으나 장차 있을 일도 이미 지난 일과 같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33:25). 시험은,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도록 부여된 힘의 한도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그 시험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을 믿고, 우리에게 당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착수하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유업을 생각할 때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비록 그는 가난할지라도 그 자신에게 세상이 도무지 줄 수 없는 부요와 위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아 정결케 되고, 자기의 온갖 고상한 능력을 하나님께로 바친 그 사람은 지극히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회개할 때에,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나니, 이 기쁨은 거룩한 승리의 노래로 표시되는 기쁨이다.(SC 126.2)—정로의 계단, 125. 126 (CC 364.4)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