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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날 부산의 한 장학연구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부산에서 토론교육지원단을 만드는데 토론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시간만 난다면야 불원천리 어느 곳도 마다 않는 게 나의 법이다. 문제는 거기 모이는 분들이 90명 정도인데 토론교육지원단 구성원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토론의 수준이 사람마다 다르며, 그 가운데는 지난 봄에 강의를 들은 사람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강의를 하되, 누구에게나 새로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약간 난감했다. 토론 강의를 기획하면 대체로는 초심자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스타일이지만 중급 이상 선생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참가하실 분들에게 뜻을 물어볼까 하여 메일 연락처를 다 받아두기까지 했는데 끝내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못했다. 던질 질문이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 토론의 고수들이 드러나는 시대인데, 부산에는 김수란이라는 토론의 강자가 있다. 서른 한 살의 꽃다운 젊은 선생님인데 이미 박사과정을 거의 마치고 논문 쓰기 단계에 접어든 막강한 토론 교육 실력자다. ‘교사가 지치지 않는 지속적인 독서교육’을 지향하는 ‘물꼬방’이라는 독서토론 공부모임에서 만난, 독서토론 교육계의 차세대 에이스라고나 할까. 전화를 해서 지원단 참가 여부를 물었더니 당연히(!) 참가한다고 했다. 도움을 받을까 하여 김수란 선생님이 원하는 강의 내용을 물었다. 이미 토론 교육의 용어 문제로 석사 논문을 쓴 터이고, 부산 민주공원의 토론 대회에 학생들과 여러 차례 참가했으며, 한때 교실 수업에서도 다양한 토론 방식을 적용하여 교실 토론 대회를 교대 토론 대회 수준으로 이끌어낸 바 있는 전문가라서 이번에 오시는 분들의 수준과 목적을 듣고 방향과 내용 설정을 하고자 함이었다. 게다가 지난 연수에서 나의 도우미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하신 선생님이라 더더욱 믿음을 갖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김수란 선생님이 내게 던진 화두는 새로운 폭탄이었다. 그 동안 본인은 토론 공부를 오래 해 왔으니 그 동안 자기가 공부하지 않은 새로운 토론 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략난감이던 심정이 진짜 난감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득아득, 하늘이 노랗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려고 찾아갔는데 아름다운 해골물이 빙그레 웃는 상황이랄까. 그 다음부터는 고민과 생각을 접었다. 혹 하나를 떼려 할 때마다 하나씩 더 달라붙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메일을 보냈으면 그 동안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요구들이 거센 불길처럼 밀어닥쳤을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길이 없을까? 토론에 관한 한 나는 낙천주의자다. 어디서 누굴 만나도 토론으로 서너 시간을 풀어갈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풀어갈지 구체적인 지도와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뿐. 이제 확실한 도전과 문제제기를 받았으니 내가 응답할 차례였다. 천천히 예열을 하고 마지막 폭발을 위한 토론의 무기를 찾아야하는 과제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천천히 매우 빠르게 하루하루.
토론 강의날은 2월 하순경. 학교마다 바쁘기 그지 없는 시기다. 그 앞날에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하루 종일 토론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한 주는 울산과 부산 그리고 다음날의 경기도 동탄국제고까지 역시 순탄치 않은 일정 속에 놓여 있었다. 부산 강의 준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무렵 보던 드라마 미생과 인터스텔라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자세히 보면서 숙고하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부산으로 가기 전날 울산행 새벽 5시 반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케이티엑스 안에서도 인터스텔라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부산 강의에서 무엇을 할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문현답. 최근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 아니라, 우문현답(愚問現答) 어리석은 질문의 답은 현재에, 현장에 있다거나 혹은 우문현답(優問賢答) 우수한 질문은 현장에 답이 있다 혹은 우수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 물론 현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나의 과거 토론 경험과 의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되살리는 일이자 지금 내가 몰입하고 집중하는 공부에서 답을 찾으려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우문현답이다. 그리고 술술 부산에서 말한 토론 강의의 내용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울산에서 강의를 하고 밤 늦게 부산 해운대의 한 모텔에 짐을 풀었다. 그 모텔의 이름도 무였다. 영어로 ‘mu’였는데 당연히 내게는 비움을 뜻하는 무(無)로 읽혔다. 아무런 집착과 의식을 갖지 말고 현장에서 찾으라는 계시였다.
나는 간단히 피피티를 만들고 도입부의 강의 내용을 구상했다. 이내 잠이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미흡하나마 피피티를 보충하고 돼지국밥을 맛나게 먹은 뒤 강의 장소인 해운대한화리조트로 향했다. 강의장 제일 뒤에 앉아 앞 강의를 맡은 선생님의 디베이트 토론 교육 경험담을 경청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내 옆 빈자리로 김수란 선생님이 다가와 이런저런 인사와 수다를 조심스럽게 나누면서 강의에 몰입은커녕 강의 품평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극 정성으로 토론 수업을 하기 위해 150시간 연수와 논술 학원까지 다니신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본인은 누구나 나처럼 토론 수업을 하실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나오셨다고 했지만 세상에 그런 수업은 없다.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이 다 다른데 어찌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수업이 있겠는가, 있다면 그야말로 무(無)다! 다만 그 선생님의 고민과 열정, 대학원에서의 학구적인 노력과 실천은 그 자체로 나와 다른 분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나는 내 방식의 열정과 길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물처럼 스스르 흘러갔다. 앞 강의를 마치고 드디어 내 강의 시간. 주어진 시간은 고작(^^) 140분. 게다가 중간에 교육청 과장님 인사 말씀을 위해 한 번은 쉬어야 한다는 연구사님 전언이 있었다. 나는 벼락이 치면 벼락을 맞고 물을 뿌리면 물도 다 받는 사람이다. 그러시라고 했다. 그리고 선 무대. 어찌 떨리지 않으랴, 하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이다. 연수에 참여하신 선생님들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그 주인공들이 나와 더불어 다 같이 주인공임을 깨닫게 해야 하는 책임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기도 했다.
가볍게, 나는 비로소 떨리기 시작했다. 부산에서의 두 번째 강의. 지난 해 연수에 참가하신 분들은 확인 결과 십여 분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이번 연수 준비로 약간 동안인 내 얼굴에 흰 머리가 늘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오늘 강의에 대한 나의 부담과 소감을 피력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지난 겨울 방학을 어찌 보내셨는지 물었다. 아마도 다들 가족과 즐겁게 여행을 다니셨거나 학교에서 학생들과 방과 후 수업을 하셨든지 혹은 본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공부와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내내 강의를 다니고 영화 인터스텔라를 세 번 보고 미생 드라마 역시 세 번 정도 보았노라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미생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미생의 여러 빛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인 임원 앞 피피티 장면이다. 회사 창립 이래 최대의 비리 사건. 요르단 중고차 사업 비리 사건으로 팀 분위기 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분위기가 암울한 가운데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허덕이던 영업 3팀은 장그래가 제시한 요르단 중고차 사업에서 비리를 걷어내고 수익을 얻자는 역발상에 경악했다. 하지만 대안 없는 상황에서 그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비리 적발 공로로 오과장에서 차장 2년차로 승진한 오상식은 이름 그대로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그 제안을 거부할 이유와 명분이 없었다. 회사 내의 시선이 따가운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정치적인 분위기다. 본인은 상사맨으로서 한 평생 살아왔고 회사원으로서 일하는 사람이지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야 하는 사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고!를 외치며 사업에 매진해 왔는데 뜻밖에 전무실에서 전임원 피피티를 요구해온 것이다. 정치적일지 사업적일지 모르는 요구 앞에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명. 영업 3팀은 사업 준비에도 바빴지만 피피티 준비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사업은 진짜 좋은데 전무를 비롯한 임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동안의 노력이 말 그대로 全無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긴장감이 돌지 않을 리 없다. 오과장 아니 오차장이 내용을 총괄하고 기대리가 피피티를 만들었다. 피티의 정석이라 할만큼 내용과 형식이 조화롭게 며칠을 걸려 만들었고, 입말 훈련을 위해 수 차례 리허설을 했다. 아마 부산 강의를 준비한 내 심정이 조금은 오차장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기분 나도 거의 며칠 간 느껴보았으니까.
몇 차례 리허설을 해 보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중심이 비어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피피티도 보고도 잘못된 내용이나 형식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리 허전한가! 보이지 않는 2%, 뭔지 모를 공허함이 영업 3팀 분위기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장그래의 폭탄 2탄이 터졌다. 보고 하루를 앞두고 ‘판을 흔들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보고는 너무 무난하다. 무난하다는 것이 평소에는 흠 없이 완결되어 장점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민감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임원들 마음 속에 ‘이 사업을 치사하고 구차하게 왜 하려는 거야’ 하는 불만이 팽배한데 무난하게 보고를 했다가는 평균점 이상의 충격을 주기 힘들다는 감이었다. 바둑인으로 승부사 기질을 키워온 장그래 특유의 감각일 터이다. 벌거 벗은 임금님 기분이었던 오차장과 영업 3팀. 오차장은 장그래의 적확한 질문을 거부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본인이 이번 보고의 특징과 한계를 온몸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혁신! 천과장과 김대리는 반대했지만 오차장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장그래가 피피티를 밤새 만들고 아침 일찍부터 오차장이 손질 작업을 했다. 그리고 엄수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오차장의 피티 보고. 작두를 탄 심정으로 진행한 피티의 결과에 대해서는 미생의 독자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다. 나도
판을 흔들어보기로 했다. 작두를 탈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강의의 틀을 깨보자. 무언가 내 입에서 토론에 대한 금과옥조 같은 토론 경전의 말씀이 쏟아져나오기를 바라는 저 많은 눈동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뒤집어보자는 약간은 광기같은 도전심이 솟아 올랐다. 그래서 이날 강의의 첫 화두는 판 흔들기가 되었다. 앞선 미생의 예화를 간단히 들면서 저도 오늘 강의에서는 판을 흔들어보겠노라고 말씀을 드리고 본 강의를 시작했다. 당연히
목이 탔다. 오차장의 결심이 굳어지고 난 뒤 장그래는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빛난 성과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고요히 나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우주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기 때문에 판을 흔들면 상대방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판 위에 올라탄 나도 흔들린다. 당연히 나도 흔들리는 내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땀이 조금 났지만 나는
내가 준비한 피피티를 보여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첫 장면은 2007년 논술 이야기였다. 그리고 괴물이야기를 같이 해나갔다. 그 서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글쓰기 아니 논술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논술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논술이 토론의 숙주(영어로 host 바로 봉준호 영화 괴물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이긴 하지만 그건 잘못된 모태를 지닌 괴물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처럼 진정한 의미의 인문사회철학을 공부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명문대 입학시험의 한 아류로 사교육 시장에 종속된 암기지식형 논술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논술 초기에 가졌던 기대를 일찍이 접었고, 논술은 괴물이라고 나 나름대로의 딱지를 붙인 뒤로 한 번도 논술 교육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불쑥,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보다 사람들은, 특히 전국의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은 논술의 등장을 더 무서워했다.)
괴물에 온몸이 조이도록 사로잡힌 학생들은 살려달라고 외쳐댄다. (괴물의 꼬리에 잡혀 허공에 매달린 현서의 외침은 논술 수능 학생부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시달리는 우리 나라 학생들의 처연한 몸부림을 환기시킨다.)
3.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집마다 논술을 통과하기 위한 괴물과의 사투가 벌어졌다. (온 가족이 나서서 논술 과외 교사를 찾아 헤매면서 벌어진 사건과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러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논술은 두 말 할 것 없는 괴물의 변신이었다. 그 괴물은 왜 나타났는가? 그건 만인의 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세상에 쓸모 없는 풀이 없듯이, 세상의 모든 풀들이 약초 아닌 것이 없듯이 괴물 또한 그 존재 가치와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우리나라 최대의 괴물 이명박을 보라!
그가 없었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동시적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는 우리 사회에 소통의 담론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고 그 자체로 유체이탈화법의 선구자이자 불통의 대가로 우뚝 선 괴물이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 집회 이후 들불처럼 번진 변혁의 요구를 그는 명박산성 하나로 간단히 무시했다. (그 뒤로 이어진 용산참사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서 최근에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이상한 집착으로 쓴 회고록 비슷한 거짓말 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래도 보통 괴물은 아닌 것이다.
철학자 김영민에 따르면 ‘괴물이란 낯설게 다가오는 진리’다. 우리는 쾌락을 주는 연인과 사랑이 때로 독이라는 걸 대체로 잊고 산다. 역으로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직장 상사나 동료, 자식들이 나를 각성케하고 고민하게 만들며 나를 성장하게 하는 낯선 타자이며 진리라는 사실 또한 쉽게 잊고 산다. 가물치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미꾸라지는 쉽게 타락하는 법이다. 그 유연성과 탄력을 유지할 동기부여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괴물은 우리를 긴장하고 고민하고 성숙하게 하는 괴기한 진리다. 그 진리에 어떻게 응대하는가에 따라(그를 대통령으로 찍었다면) 괴물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저항한다면) 괴물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선지자가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괴물인 논술은 토론 공부의 주인이고 숙주였다. 그럼 이 시대에 토론은 무엇으로 나타났을까? 역시 괴물이었을까? 아니다. 토론은 논술과 다르다. 아직 정부나 대학에서 토론을 간판으로 내걸만큼 우리 교육계에 충격을 주지 않았다. 분명히 괴물처럼 소리없이 다가오는 그 무엇이긴 한데 뚜렷이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안개 속의 무엇. 그래서 내가 돌이켜 생각한 토론의 정체는 괴물이 아닌 바로 유령이었다. 유령이라고?
논술이 괴물이 아닐까 생각한 것은 영화 <괴물> 덕분이었다. 그럼 토론이 유령이라고 생각한 계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로 영화 <인터스텔라>였다. 이제부터 며칠 동안 보고 또 본 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토론과 유령의 관계와 토론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인공 쿠퍼는 비행 실패의 악몽에 시달린다. 딸 머피는 밤마다 책장이 있는 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걸 느낀다. 그 이상한 느낌에 대한 대화로 영화는 시작한다.
(모형 비행기가 책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현상을 두고)
쿠퍼 : 내 착륙선 가지고 뭘 한 거야?
머피 : 전 아니에요
오빠 : 그럼 유령이 그랬어?
머피 : 내 책장에서 가져온 거야 책이 그럴 리 없어.
오빠 : 유령은 없다니까.
머피 : 난 봤어 심령현상이었어.
오빠 : (이죽거리면서) 그렇겠지.
쿠퍼 : 그건 결코 과학적이지 않은 거란다 머피.
머피 : 과학은 우리가 모르는 걸 인정하는 거라면서요.
쿠퍼 : 그래 머피야,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면 유령이 무섭다 말하지 말거라. 넌 더 발전해야 한다. 넌 사실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그런 다음에 원인과 이유를 찾아 결론을 도출해야 한단다. 알았지?
머피 : 좋아요
쿠퍼 : 잘 했어
과학을 중시하는 쿠퍼는 알 수 없는 낯선 현상에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주문한다. 물론 둘 다 이상한 현상의 원인과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한다. 그러니 유령이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마치 사방에서 토론, 토론 하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감도 잘 안잡히는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집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집 주변의 콤바인들이 작동을 그치면서 무슨 자기장이 작동하고 있나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세상에 진짜 유령이 있을까? 급기야 야구 구경을 하다가 무섭게 밀려오는 황사를 피해 집으로 돌아오는 날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모래가 들이닥치고 유령의 실체가 드러난다. 유령은 유령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처음에는 모스 부호인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니다. 보다 단순한 이진법 신호였다. 그리고 그것은 좌표를 나타내고 중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유령같지만 그 안에 뭔가 과학과 이성의 비밀이 담겨있는 현상. 그게 쿠퍼와 머피가 발견한 진실이었고, 토론이 지금 그런 느낌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아직 잘 모르지만 그 원리와 비밀을 알게 된다면 토론이 앞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의 좌표이고 무언가 기존 교육의 패러다임을 흔들어 새롭게 빨아들일 블랙홀, 중력임을 느끼게 한다.
실체는 보이지 않으면서 끝없이 우리 안을 떠돌아다닌다. 그러니 그게 유령 아니면 무엇인가?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을 좀 빌리자면 ‘지금 우리나라 교육계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토론이라는 유령이!’
토론은 진정 유령인가? 유령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유령은 언제 나타나는가? 그것은 현실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난다. 논술이 우리나라 교육의 암기식, 객관식 교육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괴물의 외피를 입고 나타났듯이 유령 또한 더욱 가혹해지는 입시교육과 비이성적 사고가 횡행하는 현실에 하나의 철학적 망치가 되기 위해 나타났다. 물론 자본은 그 마저도 다시 재구조화해서 재영토화해서 자본의 시장 속에 말아먹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지만.
앞서 말한 유령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괴물의 의미는 낯설게 다가오는 진리라고 했다. 유령 역시 마찬가지다. 세익스피어 비극 <햄릿>을 예로 들어보자.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 소설들이 많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령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햄릿에 등장하는 유령의 대사처럼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촉발한다는 점입니다.
유령은 독자들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줌과 동시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복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고조 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지요.
죽은 자들의 환영과 죽은 자들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 산 자의 현재를 옥죄고 있는 것,
유령은 도대체 그러한 존재들은 왜 현재에 출몰하는 것이고 현재로 소환되는 것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인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철학적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가 "교황과 짜르, 메테르티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들"이 혈안이 되어 사냥에 나선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언급하면서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햄릿의 삼촌을 응징하기 위해 햄릿 앞에 나타난 그의 아버지 유령과 비교합니다.
다시 말해 햄릿에서 유령이 나타나는 장면의 공통점은 현실의 문제를 비판할 때 나타난다는 점이다. 궤도를 벗어나 제 멋대로 가고 있는 시대를 바로 잡는 역할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첫번째 장면은, 엘시노어 성벽에서.. 마셀러스/ 바나도/ 호레이쇼에게 나타나는데 햄릿에게는, 그가 클라우디우스의 주연을 비판하는 도중 나타난다.
두번째 장면은, 햄릿이 왕비의 방에서, 왕비의 잘못을 말하며 몰아세울 때 나타난다.
("햄릿 : 넝마를 두른 거지 왕초 같은 유령이 나타난다")
마르크스와 유령을 연관 검색어로 찾아본 글 중에서 옮겼다.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과 더불어 데리다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햄릿의 유령 이야기가 같이 나와 소개한 것이다. 어쨌든,
이처럼 유령 또한 괴물과 마찬가지로 안이한 기존의 상황에 문제를 던지러 나타난다. 그는 우리 삶의 질문자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관습과 사고에 충격을 주기 위해,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령 역시 괴물과 마찬가지로 낯설게 다가오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우리 자신의 현주소와 정체성을 묻는 질문. 알려진 바대로 햄릿의 첫 대사는 이것이다.
“거기 누구요?”
바로 거기 있는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화두 바로 그것이다.
토론의 가치도 그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의미, 주체의 정체성, 관계의 소중함을 환기하고 자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 토론이 아니던가. 토론의 역할은 고전 속에서 유령이 행한 역할과 다르지 않다. 다만 아직도 그 실체와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토론과 유령의 관계로 시작된 강의는 유령의 본질을 찾아서 진행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판을 흔들기로 한 나의 원칙에 따라 더 이상의 강의를 접고 곧바로 핵심을 찔러갔다. 바로 질문의 중요성이다. 지난 해 부산토론 연수의 마지막을 장식해간 질문. 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을 통해서 질문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겼다. 결국 이날 강의의 핵심 문장은 ‘진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 여기 오신 모든 분들 가운데 누구라도 자유롭게 아무 질문이라도 해보시라 주문를 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흉내내어 토론의 즉문즉설을 제안한 것이다.
질문이라니 갑자기 장내가 숙연해진다. 막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대략 짐작은 하고 있지만 어떤 질문이 쏟아져나올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입을 좀 풀라는 의미로, 이제 널리 알려진 오바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G20 폐막회의에서 한국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을 때,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못해 중국기자 루이청강이 질문을 한 유명한 사례. 그래도 명색이 토론 공부하는 교사인데 질문이 없을 리 없다. 이때 용감하게 제일 먼저 손을 든 사람이 있으니 역시 김수란 선생님이다. 지원단교사들 중에 매우 어린 축에 속하는데 용감하게 첫 출발을 끊어주어 강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공문을 주시면서 전교사들에게 1교사 1회 토론 공개 수업을 지시하셨어요. 국영수사과는 물론 음미체까지. 국어 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다 토론 수업을 하려면 어떤 다양한 방법들을 배워야하는지 알려주세요.”
김수란 선생님의 질문의 핵심은 후반부인데 나는 전반부부터 풀기로 했다. 어차피 토론 방식에 대한 안내는 남은 시간 내에서 최대한 내가 들려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침 강의장 제일 앞에는 교육청 관계자들이 앉아 계셔 답변을 그리로 돌렸다. 그런 미친 공문을 보낸 주체가 누구신지? 내가 답변을 요청 드린 연구사님도 본인이 답할 분야가 아니라면서 이 연수를 기획한 연구사님을 지명하는데 마침 그날 행사를 총괄 기획 지시한 교육청 과장님이 인사말씀 차 강의를 들으러 오셔서 제일 앞에 앉아 계시지 않는가. 지난 연수에서 감명깊게 들었다고 굳이 시간을 내셔서 늦게라도 오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상명하달식 획일적인 공문을 보낸 바 없으며 그런 일은 없이 하겠단다. 아울러 토론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지도록 관리자 연수도 하고 다양한 지원을 할테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덧붙였다. 토론 교육에 대한 기획, 운영 계획 자체가 교육 공동체 구성원 안에서 서로 합의를 이루어나가야 하고,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전남 교육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남은 독서토론을 ‘독서·토론’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특화해서 이미 5년 전에 토론교육지원단을 선도교사라는 이름으로 연수를 시키고 전남 토론 교육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바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토론 교육 사례를 찾다가 발견한 체육교사들의 카페가 있었는데 바로 전남 교사들의 카페였다. 체육 선생들까지 이렇게 다양한 토론 공부를 하고 수업에 적용하는데 놀랐고 그 모임의 모태가 전남토론선도교사라는 점에 두 번 놀랐다. 대체로 교육청의 사업은 보여주기나 점수따기를 위한 행정적인 요식 행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실제 연수를 받고 지원단을 조직한 성과가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와서이다. 좀 자화자찬을 하자면 <나무를 심는 사람>의 에이자 부퓌에라는 노인처럼 꾸준히 나무를 심은 성과가 이제 조금은 결실을 맺어, 토론 수업의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나 할까!
한 번 질문이 열리니 새로운 질문들이 솟기 시작했다. 두 번째 던져진 질문은 ‘토론에 지더라도 친구를, 사람을 얻으면 된다고 하는데, 토론에도 이기고 친구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속으로 참 욕심도 많으시네 하고 생각했지만,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바라고,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어하는, 그러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토론에도 이기고 친구도 얻는 방법? 왜 없겠는가,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없다!’고 했다. 무(無)! 이른 바 이런 저런 질문의 대답을 ‘뜰 앞의 잣나무’로 했던 유명한 선승, 조주 스님의 흉내를 내서 그랬다. 개에게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무(無)! 개한테는 불성이 있지만 스님은 절대적인 없음의 깨달음을 위해 없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주제넘게 조주 스님 흉내를 내면서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즉문즉설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답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을 되돌린다는 말은 질문의 뿌리를 되돌아봐 성찰하게 한다는 뜻이다. 질문자가 스스로 질문의 의미를 돌아보면 그때 같이 더 나은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걸 법륜 스님 즉문즉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되물었다.
“친구를 얻으면 되었지 토론에서 왜 이기려 합니까?”
“이기면 좋으니까…….”
“무엇이 좋습니까?”
“…………”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평화롭고 좋아지는 거요.”
“나는 이기고 상대방은 졌는데요?”
“………”
어떤 대답을 해도 나는 이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나는 이기고 상대방은 졌는데요?”
실은 나 자신도 이 질문 앞에서는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이기고 상대방이 졌는데 어찌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말인가. 친구는 내가 질 때 얻는다. 이길 수 있는데도, 이기지 않고, 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언어진다. 진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친구이고 얻음이기 때문이다. 굳이 노자의 도덕경을 풀자면 친구에게 지는 것 자체가 도(道), 길이고 그 결과로 친구를 얻음 그것이 득(得), 곧 덕(德)이다. 김용옥이 도덕경의 도덕을 길과 얻음으로 번역하면서 강조한 그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유약승강(柔弱勝强). 내가 부드럽고 나약하게 지겠다고 하면 기필코 이기겠다는 강한 마음을 넘어 설 수 있다. 그게 토론의 승패에 대한 내 방식의 토론도덕경이다.
드라마 <상도>로도 널리 알려진 최인호 소설 상도의 진리도 그것이다. 진정한 상도의, 장사의 목적은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 사람을 얻겠다는 마음 자체도 욕심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최소한으로 생각한다면 토론의 도든 장사의 도든 바로 하나, 사람을 얻어 같이 공동(共同)의 공통(共通)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쿵푸, 곧 공부의 대가였던 이소룡. 철학도였던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무술 절권도를 통해 도를 깨쳤다. 그가 던진 철학절 질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승리에 열광하는가? 승리의 끝에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토론의 승리에 대한 질문을 마무리했다.
대답은 역시 무(無), 없다이기 때문이다. <쿵푸 팬더>의 용의 문서가 보여주는 진실, <꽃들에게 희망을>이 애벌레가 보여주는 성찰. 결국 욕망과 집착을 향한 승리가 보여주는 결실은 허무 그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인류의 성인들의 경지를 보라. 그들은 승리자가 아니라 다들 멋있게 패한 자들이다. 그럼으로써 당대 뿐만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인류의 벗들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친구를 얻고자 한다면, 친구를 이미 얻었다면 굳이 토론에 이길 필요가 없다.
일단 그 주제와 관련해서는 나의 토론 목표 지론을 설명해야겠다. 나는 토론의 제1 정의는 몸으로 하는 공부라고 주장한다. 사실 공부는 몸으로, 온몸으로 하는 것이니 동어반복이다. 줄이자. 다시 말하면 토론은 공부라고 말한다. 그럼 공부라 무엇인가? 공부는 쿵푸다. 고미숙을 빌리면 인간은 호모 쿵푸스다. 토론과 연결해서 공부의 정의를 내리면 공부는 온몸으로 하는 싸움이다. 공부는 학습과 달리 머리로만 하지 않고 온몸으로 하며, 토론의 어원인 디베이트가 서로 갈라져서(de-devide) 다투고 싸운다(bate-battle)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다. 그러므로 토론도 논리를 무기로 다투는 싸움의 일종이지만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토론 그 자체이며 그 과정 속에서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수행 바로 그 자체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이길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건 자료집의 00쪽에 나와 있지요 같이 보실까요? 하면서 위의 이야기들을 하고 나는 두 번째 질문의 고비를 넘겼다. 이어지는 질문들은 토론 교육의 사회적 가치나 현주소에 대한 것들이었다.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논술이 괴물이 된 것처럼 토론 또한 입시와 결합하면서 사교육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할 우려는 없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거꾸로 ‘왜 우리는 이런 토론 교육을 이제야 하게 되었는가, 나는 그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토론을 공부해왔는데 왜 우리 나라에 토론 교육은 이제야 왔는가?’하는 안타까움 섞인 질문이었다.
“진리는 늦게 오는 법이지요. 일찍 서둘러 온다면 그것은 진짜 진리인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을 들으면서 먼저 떠오르는 나의 대답이었다. 왜? ‘진리란 시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숙성 없이 진리는 탄생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정치 참여 열기에 힘을 받아 ‘참여정부-토론공화국’의 의제를 내걸고 토론을 현실화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왜, 국민적 합의와 고민 숙성의 과정 없이 문화와 역사는 바람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 돌풍을 일으킨 노무현 대통령은 훌륭하신 분이다. 대한민국 정치 무대에 바람처럼 나타났지만 긴 생명을 다하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훌륭하지만 그래서 안타깝기도 한 것이다. 오랜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버티는 노회한 정략가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통령조차도 토론 문화를 쉽게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한두 마디 명령해서 만들어지는 토론 문화, 토론 교육이라면 분명히 뿌리부터 썩어 있거나 기둥이 허약해서 조변석개 하듯이 바뀌지 않겠는가. 한글의 주인공 세종을 생각해보라. 왜 그분이 용비어천가에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강조하셨겠는가.
역사와 전통과 문화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숙성과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논술과 토론의 차이다. 암기식 글쓰기로 전락한 논술은 말 그대로 열풍이고 광풍이었다. 바람은 기압이 바뀌면 금방 눈녹듯이 사라진다. 토론은 속성상 바람이 되기 어렵다. 첫 번째 질문의 답이 거기에 있다.
우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실제적인 답을 좀 더 숙고해보자.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 사회에는 오래 전부터 토론 문화가 없지 않았다. 신라의 화백제도가 지금의 원탁 토론에 가까운 모형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경연과 토론을 사랑했던 왕 세종이나 정조 시대에 토론 문화가 약간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과 대중 전반의 토론 문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화와 토론이 없을 리 없지만 신분의 차이, 언어 수행 능력의 부족 등으로 체계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요컨대 성과 나이, 신분의 불평등이 토론 문화를 막아온 제일 원인이 아닐까? 그것은 오늘날 갑을 관계나 직업적 고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장이 직원과, 교장이 교사나 학생과 대통령이 장관들과, 구청장이 말단 공무원과 열린 토론으로 조직을 운영해가면 신문에 나오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토론의 제1 원리는 자유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등에서 나온다. 평등하게 존중하는 세계가 아니면 자유로운 토론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역사는 아직 모든 이가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오지 못했다. 권력자와 갑들은 말할 수 있으나 피지배자와 을들은 감히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왔다. 어찌 온전한 토론이 되겠는가!
이런 불행한 역사는 20세기 아니 21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톰슨의 지적처럼 ‘극단’과 ‘전쟁’의 시대였던 20세기 한반도는 식민지를 통한 극한의 억압을 경험했다. 윤동주가 참회록에서 서글피 고백했듯이 자기 민족의 정체성과 자아 신념을 배반하는 아픔을 겪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다. 또, 한국 전쟁은 어땠는가!
우리는 최악의 이분법을 만들어낸 내전,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이념을 무기 삼아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내부 식민지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불행한 역사가 계속 되었다. ‘빨갱이’에서 ‘종북’까지 주홍글씨로 상대를 언어와 이념과 법의 감옥에 가두려는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온전한 발언권이 주어지지 못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국사의 이면과 아픔을 드러낸 다큐의 제목이 오죽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였겠는가! 그만큼 숨죽여 흐느끼며 자기 신세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대, 그런 시대에 토론이 설 자리는 없었다.
국민들의 자유로운 발언에 대한 억압은 피로 정권을 잡은 독재 정권 시절에 극에 달했다. 이승만 시절 언론 자유가 없음을 한탄한 시인 김수영. 박정희 장기 유신 독재의 상징인 긴급조치에 온몸으로 저항한 김지하와 전두환의 군화발 아래 신음하는 민중의 한을 서슬퍼런 열기로 대변한 김남주와 박노해. 이런 시인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중들의 자기 소리를 찾기 위해 피흘리고 싸워온 역사가 지금의 토론 문화에 대한 아주 작은 씨앗이 되었다.
언론자유를 이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소시민성에 괴로워하던 김수영이나 사형을 불사하고 발언의 자유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시인들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언론의 자유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 토론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평등세상을 위해 싸워왔다. 이런 과정 없이 그냥 토론이 주어지거나 위로부터 토론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명령이고 망령이다. 토론의 탈을 쓴 또 다른 억압이다. 그래서 토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인의 진리는 그냥 어느 날 갑작스런 천재의 발명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이런 긴 이야기를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토론이 늦게 오기는 했지만 오기 위한 기나긴 숙성의 과정이 있었다는 건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와 토론이 현실적으로 위협받는 지금, 진보교육감을 중심으로 지역마다, 학교마다 토론 교육에 대한 강조와 질문 수업에 대한 고민이 싹트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재의 화신들이 자유를 위한 투쟁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괴물 이명박이 소통의 소중함을 깨우쳤듯이 다시 새로운 통치자는 토론을 위한 직접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 동안 유령같던 그 무엇이 이제 천천히 자신의 몸을 실체로 드러내는 시간이다. 이제 다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감히 햄릿의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그렇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은
“토론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자 그럼 이 즈음에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럼 토론의 미래는 안전한가? 다시 논술같은 괴물로 타락할 우려는 없는가?
답은 모른다. 제자가 공자에게 귀신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나는 귀신은 모른다, 다만 사람의 일만 말할 수 있을 뿐이라 했듯이 나 역시 내일의 일은 모른다. 오늘의 일만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을 묻자(季路問事鬼神),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子曰);
"내가 아직 사람을 섬기는 것도 능하지 못한데 (未能事人),
어찌 귀신을 섬기는 일을 알겠느냐?(焉能事鬼)"
또 죽음에 대해서 묻자(敢問死),
하시는 말씀이(曰);
"사는 것조차 버거운 판에(未知生)
뭐 죽을 것까지 신경쓸 거 있냐?(焉知死)
우리가 자로처럼 미리 내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교육, 수능과 논술에 대비한 새로운 수업 혁신도 어려운데 감도 까마득한 토론의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니 입시 자체를 깨나가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기나긴 싸움을 위한 노력의 첫 삽도 뜨지 못했는데 벌써 사교육 시장의 블랙홀을 걱정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토론의 숙성에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농담으로 인터스텔라에서도 53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했다. 아니 차라리 그럴 만큼 토론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기꺼이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혼자서 답을 외워 쓰는 논술과 달리 토론은 관계이고 소통이기 때문이다. 함께 숨쉬고 상대를 바라보면서 말을 하는 공동의 마당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답을 따로 외워 상품화하는 논술에 비해서 사교육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적다. 왜? 바로 토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고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기를 혁신할 에너지를 토론 자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전에 쓴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박근혜의 토론에 대한 경험을 소개한 적이 있다. 박근혜는 유럽 유학 시절 자기가 생활한 나라들의 토론 문화에 대해서 상당히 인상적인 체험을 하고 토론 문화의 소중함에 대해서 강조했다. 아마도 그동안 골방에 갇혀 살아 외로웠기 때문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청와대라는 답답한 곳에 오래 동안 갇혀 살아, 상호 소통의 토론 문화와 교육이 더욱 더 뜻 깊게 와 닿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토론은 약자, 외로운 사람들이 추구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좌,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그이는 이제 더 이상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하지도 못한다. 수첩공주라는 별명과 이명박을 능가하는 한국 현대사 최고의 유체이탈 화법이 그를 증명한다. 언론에 나와서 토론과 인문학을 강조하는 말은 그저 허깨비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장 토론 교육이 활성화되어 토론 열풍이 광풍이 되고 사교육 시장이 들썩거리는 풍경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앞으로 3, 4년 토론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디베이트 학습 시장을 비롯한 토론 교육의 분위기가 높아는 가겠지만 토론이 무엇인가. 토론은 괴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토론을 억압하고 상품화해온 자본과 권력을 해체하고 공격하는 숙주(host)가 될 것이다.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주신 선생님의 고민에 애정을 표하면서도 아직, 내가 별로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함께 준비하고 지켜보며 싸워야한다.
토론 교육이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 교육이 되지 않도록. 머리 좋고 성적 우수한 헛똑똑이들의 말잔치로 타락하지 않도록 토론의 바탕과 마당을 잘 쓸고 다듬어야 한다. 토론의 상품화가 기우는 아니다. 분명 그럴 가능성은 있기에 차가운 이성과 따스한 마음으로 토론의 미래를 준비하는 토론의 전사들을 키워야 한다. 그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나아가야 할 일차적인 좌표이고 중력이다.
즉문즉설에서 나온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앞의 질문자들도 그러셨지만, 토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토론 교육을 해오신 선생님의 질문이었다.
토론을 준비하다 보면 주제 정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주제를 정해주다 보면 아이들이 토론 주제에 대해서 한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고, 또 토론을 하다보면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토론이 엉뚱하게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마디로 토론의 주제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어렵네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내가 말 할 수 있는 것만 말씀을 드렸다. 실은 토론에서도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게 주제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토론의 전사에 이어 6월에 새로 출간할 새 책의 한 장을 소개했다. 주제를 찾고 다루는 내용에 대한 대목이다.
우선 치우침에 대하여. 토론의 논제 성격 중에 중립성이 있다.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쪽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치우치지 않게 주제를 정하라는 뜻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건 관념적 이론이다. 삶은 중립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공식처럼 투명하지 않고 온갖 이물질과 다양성과 혼돈이 함께 한다. 기계적인 중립은 불가능하고 수적 판단조차도 양측이 동일하게 존재하는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유불리라는 것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최대한 공정함에 가깝도록 주제를 고민하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게 교사의 몫이고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몫인데 사실은 그게 어렵다. 아마 질문하신 분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럼 어느 주제를 어떻게 다듬을까? 나도 모른다.
전날 울산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하루 종일 토론 공부를 하고 왔다고 했다. 실습 주제를 같이 찾다가 ‘초등학생들 급식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거창한 말 같은데 달리 말하면 ‘초등학생들이 밥을 먹을 때 담임 선생님이 늘 같이 가서 급식 과정을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학생들이 교사 없이 스스로 가서 밥을 먹도록 하자’는 뜻이다.
만약 토론의 주제를
‘초등학생들이 밥을 먹을 때 담임 선생님이 늘 같이 가서 급식 과정을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학생들이 교사 없이 스스로 가서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고 하자. 대부분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좋은 주제지만, 논제를 이렇게 길게 설명해서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걸 압축, 요약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급식을 선생님과 함께 하지 말자
급식을 혼자서 하자
급식을 자율화하자
급식을 자유롭게 하자
말 한 마디에 따라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달라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취지는 같지만 표현에 따라서 의미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함께, 혼자, 자율, 자유’의 개념 설정을 하면서 토론을 시작하는 순간 용어정의에 따른 논점의 차이, 주장과 근거의 차별화가 천(天)과 양(壤)의 차이, 말 그대로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다. 그래서 토론의 주제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 왔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절대주의를 비판했던 철학자 칼 포퍼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똥을 누려면 자기 똥구멍)보다 더 높이 누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다.
똥(새로운 토론 주제)을 누려면(정하려면) 자기 똥구멍(자기 주제의식의 한계)보다 더 높이 누어야(주제 한계에 대한 파악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제 파악의 중요성을 갈파한 말이다. 내가 생각한 이 말의 의미는 이렇다. 토론 주제는 토론의 주제를 정하는 사람 자신의 주제 파악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즉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 대한 고민과 토론자들의 능력, 방식, 상황에 다른 종합적인 생각들이 좋은 토론 주제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말이다. 실은 현문우답이다. 말 그대로 답을 모르고 결국 각자 알아서 고민하라는 말이니 말이다.
그 대목까지 함께 보지는 못했지만, 앞서 선생님들께 보여드린 성균관 스캔들의 마지막 대목에 그런 말이 나온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정약용의 이 말은 사실 이글을 통해서 선생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나의 마지막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공부 화두가 모든 토론 강의 자료의 앞에서 제시하는 공자 말씀인 ‘박학(博學) 독지(篤志), 절문(切問) 근사(近思)’가 아니던가.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면서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곳, 삶의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생각하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 날의 강연, 지금의 이 글이 그걸 증명한다.
이렇게 첫 한 선생님의 질문으로 시작된 문답은 삼십여 분을 흘러갔고 나머지 시간은 구인광고, 신호등 토론, 두 마음 토론과 모서리 토론 등 다양한 토론 방법에 대한 실습과 설명으로 강의를 마쳤다. 참여형 토론을 공부하다보니 원탁 토론까지는 나가지도 못할 만큼 시간은 빠듯했지만 선생님들은 다들 뿌듯해하시는 느낌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다시 우리들의 우주 여행 <인터스텔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유령의 의미를 다시 묻는 걸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토론은 유령이라고 했는데, 유령은 존재합니까? 네?
그러나 유령은 유령이 아니었지요. 무엇이었나요?
‘좌표’이고 ‘중력’입니다.
네, 우리 교육이 나아가아 할 이정표이자 현 주소를 알려주는 좌표 같은 것이었고,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빨아들일 블랙홀이요, 막강한 중력을 지닌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인공은 그걸 찾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여행, 우주여행을 했지요. 인테스텔라의 주요 카피처럼 ‘우린 언젠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둣이’ 라는 신념을 가지고 말입니다.
우주 여행을 하고 온 다음에 알고 보니 그 유령은 누구였나요? 바로 쿠퍼 자신입니다. 사실은 쿠퍼의 염원과 노력과 방황과 실천이 시공을 초월한 우주여행을 통해서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나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죠 그 영적-물리적인 소통을 시도한 것이 유령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아마 지금 우리가 토론에 대해서 갖는 꿈과 열정과 포부와 노력의 의지가 토론의 유령이 되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 자기 안의 유령을 잘 만나서 새로운 각자의 토론의 길, 토론의 세계를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침묵과 함께 고요한 마무리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강의는 끝났다. 부산 강의에 대한 나의 고민과 질문은 이렇게 두 시간 남짓한 시간 여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 시간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이렇게 다시 글을 쓸 뿐이다. 그게 전사의 운명이고 전사의 길이며 미래의 유령이 나에게 보내는 새로운 메시지에 대한 나의 간절한 응답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