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를 업고 신작로에 서 있었다. 커다란 달이 아버지 머리통을 삼키고 있었다. 짚가마니 썩은 냄새가 났다. 미루나무 아래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 검은 뒤통수에 대고 나는 물었다. 저기, 죽은 여자는 언제 부활할까요. 아버지가 고개를 홱 돌리셨다. 아버지는 구멍, 숭숭 뚫린 메주통, 곰팡이 포자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까치집에서 달이 돋았다. 받아라 네 어미다, 아버지는 지푸라기로 여자를 엮어 내 목에 걸어주셨다, 어머니.
2. 첫사랑
나는 팔을 뻗어 달을 집어 삼켰다. 목구멍이 찢어졌고 순식간에 나는 깜깜해졌다. 나는 돌멩이를 움켜쥐고 그녀 뒤로 다가섰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어, 다시는 수음을 하지 않겠어, 나는 떨며 돌멩이를 움켜잡고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달이 내 속에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반짝, 꽃들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 그녀가 웃었다. 내 몸 속의 뼈들이 투명한 생선가시처럼 다 보였다. 나는 들고있던 돌멩이를 들어 내 성기를 마구 찍기 시작했다. 내 몸에선 석유 냄새가 났다. 나는 흐느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검게, 검게, 꽃물 드는 밤이었습니다, 아버지.
노파는 파리약을 타 마시고 죽었다
광목으로 지어 입은 속옷엔 뭉개진 변이 그득했다
입 속에 다 털어 넣고 삼키지 못한 욕설들이
다족류처럼 스멀스멀 벽지 위를 오르내렸다
어디 니들끼리……한번 잘 살아봐라……
스테인리스 밥그릇처럼 엎어진 노파의 손엔
사진 한 장이 구겨져 있었다
손아귀에 모아진 마지막 떨리는 힘으로
노파는 흙벽을 긁어댔으리라, 뒤집혀진 손톱
그 핏물을 닦아내는 여자의 완고한 표정을
노파는 허연 게거품을 물고 맞서고 있었다
호상이구만 호상, 닭 뼈다귀 같은 노파의 몸을
꾹꾹 펼쳐놓으며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코를 막았다
서랍장 곳곳에서 몰래 먹다 남긴
사과며 과자부스러기들이 쏟아져 나온 것 말고도
썩은 장판 밑에선 만 원짜리 몇 장이 더 나왔다
발가벗겨진 노파의 보랏빛 도는 입엔
서둘러 쌀 한 줌이 콱 물려졌다, 복날이었고
뽑힌 닭털처럼 노파의 살비듬이 안 보이게 날아다녔다
솔밭에 납작한 돌멩이 하나씩 깔고 앉아
사타구니 아래로 꼬리처럼 그림자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가며 노래 한 가락씩을 하는 최씨 종친회
머리 위에는 돌아가는 저녁 햇무리
서로의 닮은 입 속에 고기를 쪽쪽 찢어 넣어주며
충직하고도 길쭉한 얼굴 상판들끼리
서로 대견해하고 서로 안쓰러워
자꾸 배부른 음식만 권한다
묘 자리 잘못 옮겨 망한 가족사를 남루하게 걸치고 모여
옛 족보에 나오는 유복한 조상의 함자나
퍼즐처럼 제 돌림자에 애써 끼워 맞춰보다가
솔밭에 빙 둘러앉아 원을 그리고
하릴없이 수건돌리기를 할 때
언제부터 그들이 만든 저 둥글고 쓸쓸한 테두리
유전자 배열처럼 서로서로 꼬인 것들이
저들을 엮어놓고 있었던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건돌리기를 하는 최씨들
그 푸석한 혈통의 새끼줄 따라 돌고 도는 햇무리, 해의 무리들
어디서 살든 서로 잊지 말자고 내년에 또 보자고
낡은 표정 한 장씩 서로의 품에 끼워주며
사진을 찍으면
눈알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와 번지는 붉은 색
과부와 홀아비와 고아와 노인만 모였다가 가는 최씨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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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춘천교육대학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2001년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에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당선. 시집 『새들의 역사』(2007. 10.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