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송찬호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수염으로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시 읽기> 채송화/송찬호
송찬호 시인의 시는 참하고 단단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인의 태도란 과장되기 쉽고, 그 언어도 자칫 장식성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가 ‘참하고 단단하다’는 것은 시인과 시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미덕입니다.
위 시를 계간 문예지 《애지》(2205년 가을호)에서 만났습니다. 위 시는 시골집의 마당을 잘 관찰한 자만이 쓸 수 있는 시입니다. 관찰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공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삶과 체험에 의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타인의 발견을 나의 발견처럼 따옴표 없는 인용문으로 가져다 쓰며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삶과 체험에 의해서 새롭게 발견된 시세계를 만나는 일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농촌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시골집 마당을 다 기억할 것입니다. 서정주 시인이 마당거울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그 마당의 한가운데는 앉아도 흙이 묻지 않을 만큼 윤이 납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삶이 그런 윤기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러나 마다의 둘레를 돌아보면 조금 한적한 곳에 꽃들이 두런두런 피어나고, 작은 풀들도 여기저기서 파란 몸을 드러내고, 조그만 개미나 땅강아지들도 부지런히 길을 오가며 분주합니다.
송찬호는 위 시에서 이런 마당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마당이란 한 권의 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매우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요, 사실 책이란 종이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우주의 기호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책이지요. 송찬호가 말하는 것처럼 마당이라는 책은 물론 나무라는 책, 산이라는 책, 강이라는 책, 바다라는 책, 바위라는 책, 들이라는 책 등 온갖 책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지요.
송찬호는 그가 만나 마당이라는 책에서 특별히 채송화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나라를 “소인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땅에 몸의 대부분을 대고 고요히 앉아 있는 꽃, 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키를 가진 꽃, 고운 꽃을 피우며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더 작은 씨앗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작고 까만 씨앗을 품에 안고 있는 꽃, 그런 꽃이 채송화입니다.
시인은 위 시에서 이런 채송화가 피어 있는 마당이란 책을 읽을 때에,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쪼그려 앉는다’는 말이 우리들이 마음의 현絃을 무척이나 깊게 건드립니다. 쪼그리고 앉는다는 것은 자신의 공격성을 접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낮추면서 무엇인가에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 그것은 또한 안쪽으로 난 영혼의 길을 동그랗게 품어 안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라보는 대상만큼 자신을 작게 만들려는 배려가 깃들여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쪼그려 앉아 마당이라는 책 속의 채송화 나라를 살펴보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그 채송화 나라를 관찰하며 시인은 마당의 이쪽에서 채송화 나라가 있는 저쪽에까지 가는 데엔 “구두 한 짝” 정도 크기의 배만 가면 된다고 동화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채송화 옆에 누군가 오래 전에 버린 신발 한 짝이 놓여 있는가 봅니다. 아무도 괘념치 않아 마치 마당의 식구처럼 자연스러워진 신발 말입니다. 그것을 시인은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채송화 옆에는 끼진 거울 조각도 있는가 봅니다. 인간들이 함부로 버렸으나 그 나름대로 조용히 자리잡은 이 “깨진 조각 거울”을 시인은 채송화 나라의 호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참 탁월한 표현입니다. 이런 거울 호수가 채송화 나라에 있는 한 그 나라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언제나 촉촉하게 시냇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그 채송화 옆에는 고양이도 있는가 봅니다. 그도 마당의 식구입니다. 시인은 고양이의 수염에 집중하면서 감각이 잘 발달된 수염으로 고양이는 채송화 옆에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있다고 말합니다.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고양이가 수염으로 채송화를 간질이는가요? 고양이는 채송화에 대한 느낌을 그 옆에 한 페이지 적어놓는다는 것인가요? 두 가지 다 크게 어긋난 해석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만이 아니라 비둘기도 채송화 나라에 왔다간 흔적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그 옆에 똥을 눔으로써 그것으로 “헌사”를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상상력입니다만, 참 재미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채송화는 물론 생명의 아름다움에 헌사를 바치는 뭇 존재들의 다양한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으니까요.
시인은 채송화 나라에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 고양이의 방문, 비둘기의 헌사 등을 끌어들임으로써 시골집 마당에 피어 있는 채송화의 세계를 여실하게 그려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실하게 그려 보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그것이야말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견은 여태껏 있던 것을, 그러나 그저 스쳐 지났던 것을 포착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앞에 머물러 새로이 그것을 지각하고 “낯설음”의 기쁨, 공감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시의 압권은 다음에 있습니다. 그것은 소인국인 채송화의 나라를 아래의 두 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섰습니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라고 말입니다. 너무 작아 누구도 적의를 보일 수 없는 나라, 아주 적은 것으로 자신의 나라를 흡족하게 사는 세계, 그리하여 보는 사람도 그 자신도 만족하게 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위에서 말한 채송화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 앞에 서면 잔잔한 떨림이 일어납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큰 신체, 거친 욕망, 드높은 빌딩, 센 냉장고와 에어컨, 강력한 탱크와 기관총……. 이런 예를 수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나 크고 거친 것을 지니거나 만들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모습에 비추어본다면 위의 채송화 나라는 얼마나 작고 소박하고 아늑한가요? 위의 인용된 부분 앞에서 오래 머물러 서 있으면 가슴 한켠이 고요히 가라앉고 젖어드는 것 같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채송화 나라의 내면 때문입니다. 그런 채송화 나라는 시인이 말했듯이 쪼그려 앉아야 만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다릴 말하면, 그런 나라는 큰 우리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동그란 달걀처럼 몸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게 만드는 세계입니다.
시골집 마당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채송화의 나라에 얼굴을 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시골집 마당가에 작은 소인국을 예쁘게 차려놓은 채송화의 나라도 또한 눈에 밟힙니다. 우리는 그런 채송화의 나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지요. 크고, 억세고, 강하고, 거친 것들이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우리의 내성도 어지간히 강해졌습니다.
이런 삶 속에, 맨살을 그대로 부드럽게 내놓고 있는 시골집의 흙마당, 그런 곳의 한쪽에 아주 작지만 예쁜 나라를 이룬 채송화들, 그런 나라들을 책처럼 소중히 다루며 그곳에 얼굴을 파묻고 작은 글씨를 읽어 가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고 말하는 송찬호 시인의 책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책을 지니고 사는 것이 부러운 것입니다.
글을 마치려니 채송화 꽃밭을 송찬호 시인만큼이나 아름답게 그려낸 김상미 시인의 시 <질투>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함께 읽어본다면 채송화 혹은 그 꽃밭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몽상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옆집 작은 꽃밭의 채송화를 보세요
저리도 쬐그만 웃음들로 가득 찬
저리도 자유로운 흔들림
맑은 전율들
내 속에 있는 기쁨도
내 속에 있는 슬픔도
태양 아래 그냥 내버려두면
저렇듯 소박한 한 덩어리 작품이 될까요?
저렇듯 싱그러운 생 자체가 될까요?
옆집 작은 꽃밭의 채송화를 보고 느끼는 질투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습니다. 그 질투는 무해하고, 그 질투는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