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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위기 해소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 간에 대통령의 화상및 전화 접촉→실무급 안보협상→외무장관 회담이 진행됐지만,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협상 중간중간에 서로 치고받은 발언은 겉으로 보기에 더욱 위협적이고 구체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제로, 미국 등 서방진영이 만지고 있는 경제적 보복조치는 '러시아를 국제적인 달러 교환 체제에서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자신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기술·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했다.
다소 두루뭉실하고 추상적인 이 협박성 발언 뒤에 숨어 있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추적하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인지, 미리 분석해보자.(편집자 주)
미국 등 서방측이 러시아를 향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카드로는 'SWIFT 제재'가 가장 먼저 꼽힌다. 새로 대러 경제제재를 가할 때마다 여러 차례 검토하다가 포기할 만큼,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큰 조치다. 동시에 국제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피해도 만만찮다. 국제 금융권이 한번도 겪지 못한 대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대놓고 SWIFT 제재안을 꺼내드는 모양새다.
미국과 러시아의 실무급 안보협상에 앞서 셔먼 부장관(왼쪽)과 랴브코프 차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러시아 TV NTV 캡처
SWIFT(society of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는 전세계 은행 간 (달러화) 결제를 위한 통신시스템 (민간) 조직이다. 회원국 은행들끼리 가장 안전하고 신속하게 상호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결제는 무역 자금거래나 투자, 기업및 개인간 거래 등 모든 분야에서가능하다. 은행에 가서 외국에 있는 가족 혹은 지인에게 돈을 보냈다면, 그 은행은 SWIFT를 통해 외국에 있는 은행에게 그 돈을 전달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200개국의 1만1,000개 금융기관이 SWIFT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연 100억 건의 국제 결제가 이뤄지는데, 금액은 1조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SWIFT 조직을 운용하는 이사회의 멤버는 러시아 등 25개국(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중앙은행이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 다음으로 SWIFT 결제 건수가 많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SWIFT 체제에서 축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러시아는 어떤 대비책을 세워놓고 있을까? 코트라(KOTRA) 모스크바 무역관이 지난 21일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뤘다.
코트라가 '미국의 SWIFT 금융제재에 대비하는 러시아 행보'란 제목으로 올린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 웹페이지 캡처
우선 미국이 진짜 러시아를 SWIFT 체제에서 추방할까?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에 따르면 SWIFT 제재가 즉각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취리히대학교 동부유럽연구센터는 러시아의 SWIFT 분리(추방, 제재) 조치로 큰 손실을 보는 국가는 정작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과 독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와 국제 송금(금융) 거래가 가장 많은 '빅-2' 국가이기 때문이다.
Otkitiye Broker(러시아 투자회사 Открытие Брокер를 뜻하는 듯)의 경제분석가는, 러시아를 SWIFT 망에서 분리시키면 러시아의 외국 채무 개인(및 기업)들이나 정부에게는 ‘불가항력 조항(Force majeure)’이 적용되어 채무변제 기한이 무한히 연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에 채권을 가진 국제 채권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게 된다는 것. 2021년 10월 1일 기준으로 러시아 외채 규모는 4,906억 달러에 이른다.
러시아의 주요 교역국은 독일 등 유럽연합(EU)으로, 수출입 자금 결제에 큰 문제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1월~10월 러시아 수출입의 EU 의존도는 35.8%에 이르며, 수입 의존도는 32.4%, 수출 의존도는 37.9%다.
우크라이나의 저명 경제학자 흐멜렙스키(러시아식 표기로는 알렉산드르 호멜레프스키 Александр Хмелевский) 박사는, SWIFT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뱅킹 등 국제 금융거래를 위한 정보 전달 시스템은 언제든지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금융 분석가들도 SWIFT외에 국제 금융거래가 가능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러시아가 SWIFT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 국제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러시아) 이용자들의 불편이 초래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단기적으로 불편하고 대체 시스템의 구축에 비용이 들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행)과정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보그다노프 QBF(투자기업) 연구원은 전망했다.
워싱턴 소재 국제금융연구소의 리바코바 연구원은, 미국의 SWIFT 제재는 러시아와 유럽 모두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유럽이 공조한 신규 금융 결제 플랫폼을 구축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플레이션 유발 등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다. 러시아 경제는 석유및 가스 수출 의존도가 40% 이상으로 높은데, 수출 대금을 받는 SWIFT가 막히면 경제적 손실이 클 것이라는 것이다.
빈 안보협상 러시아 대표단 단장 카브릴로프:SWIFT 체제에서 러시아를 축출하려는 위협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측이 언젠가 대러 SWIFT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보고 대책을 다각도로 마련해왔다. 제재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러시아 대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보복 조치로 서방측이 대러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는 SWIFT 제재 가능성을 예상했다. SPFS(금융결제 정보전달 시스템)과 미르(Mir) 국가결제카드 시스템(Mir National Payment Card System)을 구축하기 시작한 이유다.
현재까지 두 시스템은 SWIFT 제재에 따른 금융 시장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EAEU(유라시아경제연합) 회원국들은 신규 고객사들의 거래 계약 체결 시, SWIFT와 SPFS를 동시에 사용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은 러시아가 SWIFT에서 축출될 경우, 이에 대처할 가장 유력한 플랫폼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브뤼셀에 구축된 국제금융거래 시스템을 모방해 지난 2014년 개발했다고 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신규 금융거래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이용 수수료를 SWIFT의 절반으로 낮췄다.
러시아의 스베르방크 은행 창구/바이러 자료사진
2019년에는 러시아 금융감독청이 러시아 전 금융기관들(외국계 포함)의 결제 시스템에 SPFS를 의무적으로 연결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400개 가량의 금융기관이 SPFS 시스템을 연결했다. 물론, 대부분이 러시아 금융기관이지만, 21개 외국계(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독일, 스위스 등) 금융기관들도 SPFS 이용 계약을 체결했다. 21개 외국계 기관 중 12개는 이미 SPFS에 연결된 상태다.
2022년 초 기준으로 SPFS를 통한 거래 건수는 월 200만 건으로, 러시아 국내 결제 건수의 약 20%에 해당된다. 1만1,000개 회원 기관을 보유한 SWIFT에는 비교할 만한 수치는 아니나, 러시아 중앙은행은 SPFS 활성화 전략(2021년~2023년 국영 결제시스템 발전 전략)을 세워, 적극 시행중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해 4월 SPFS 활성화를 위한 주요 과제를 발표했다. ▽SPFS 결제 건수를 오는 2023년까지 러시아 국내 전체 금융결제의 30%까지 올리고, ▽SPFS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보다 간소화하며 ▽타 결제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개선하고 ▽해외 홍보 활동을 강화한다는 것 등이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조치는 SWIFT 시스템과의 기술적인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SWIFT의 건당 정보 처리 능력은 10Mb인데, SPFS는 20Kb에 불과하고, ▽SWIFT는 1년 365일 24시간 가동되는데 반해 SPFS는 주 5일 근무시간에만 처리가 가능하다. 또 국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중국 금융기관 정도만 인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Mir 국가결제카드 시스템(Mir National Payment Card System)은 지난 2014년 미국의 대러 금융기관 제재 발표후 VISA와 MasterCard가 즉각 제재 금융기관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러시아 정부는 그해 5월 ‘국영 결제카드(Mir) 시스템 구축’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중앙은행은 러시아어로 '세계'라는 뜻을 지닌 Mir 카드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 BC카드 가맹점에서 통용되는 러시아 미르 카드/사진출처:인스타그램, OK.ru
현재 이 카드는 러시아 국내 카드결제 거래 건 중 25%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2021년 9월 기준, 약 1억개 Mir 카드가 발행됐다. 주요 고객은 공무직 종사자, 금융권 직원, 연금수혜자, 공공기금 수혜 기관들이다.
그러나 Mir 카드의 해외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해외 사용국가는 현재까지 아르메니아, 조지아(남 오세티아), 압하지아에 불과하고, 터키,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베트남,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사이프러스, UAE(아랍에미리트)에서는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또 Maestro, UnionPay(중국), JCB(일본) 등과는 협력 체계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다.
참고로 국내에서도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BC카드가 지난해 7월 Mir 카드 국내 매입을 시작했다. BC카드가 사용되는 곳(가맹점)에서 'Mir' 신용 혹은 체크카드를 긁으면, 결제가 된다. BC카드의 가맹점은 320만여 곳에 이른다.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국제결제시스템외에 중국의 CIPS(중국 국제 금융거래 결제 시스템: Chinese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SWIFT 체제로부터의 분리 가능성과 탈 달러화를 염두에 두고 미리 CIPS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시스템을 사용될 국가가 러시아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러시아에게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어서, 양국간의 국제 결제 시스템 공유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위안 화를 양국 교역 결제 통화로 통일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만, CIPS의 국제적 사용이 확대되려면 위안화의 국제 결제 건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 국제 금융 결제 중 위안 사용 비중은 현재 2%에 불과하다. 달러가 무려 40%를 차지하고,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CIPS의 국제금융 결제 규모는 SWIFT의 0.3%에 불과하고, CIPS 가입 협정을 체결한 러시아 금융기관은 20~30개로 파악된다.
디지털 루블화 발행도 SWIFT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토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한 러시아 '올리가르히'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러시아 정부를 향해 '디지털 루블'을 국제시장에서도 발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0년 10월 ‘디지털 루블’ 발행을 공식 선언했다. 다만, 다른 가상화폐와는 달리 '디지털 루블'은 러시아 정부기관(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다. 첫 디지털 화폐는 2021년 하반기에 발행되었으나, 크림반도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로 국제 사회로부터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디지털 루블은 처음부터 서방의 대러 금융 제재와 SWIFT 축출에 대비하고, 탈 달러화를 겨냥한 가상화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통제 가상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된 사례는 전무하기 때문에 ‘루블화의 국제화’ 목적은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각을 세우는 이란, 터키 등에서만 디지털 루블이 통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OFAC(외국자산통제국)은 지난 2018년 3월 가상화폐를 포함한 어떤 형태의 통화도 모두 금융결제 제재에 포함된다고 명시한 바 있어 '디지털 루불' 발행으로 ‘SWIFT 금융제재’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도 SWIFT를 대체할 시스템인 INSTEX(국제교역지원수단: Intrument for Supporting Trade Exchanges)가 있다. 미국의 세계 금융시장 지배력을 견제하려는 유럽의 노력은 러시아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대 이란 경제제재를 가한 시점에 유럽은 SWIFT를 대체하기 위해 INSTEX를 구축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제재하에서 인도적 금융지원을 위한 국제 결제가 허용되는 시스템은 INSTEX가 유일하다. 미국의 독주에 반감을 지닌 일부 국가들이 INSTEX를 SWIFT 대체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려는 움직임도 목격되고 있다. 유럽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INSTEX의 개선에 나서고, 러시아와 중국도 이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 판/캡처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는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서방의 대러 제재를 계기로 향후 SWIFT 제재에 대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며 "동시에 러시아 정부는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5,974억4천만 달러의 외환 보유고가 그해 말 6,305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러나 외환보유고의 달러화 비중은 계속 줄어 2021년 6월 16.4%로, 전년 동기 대비 5.8%P 줄었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29.5%에서 32.3%로, 위안화는 12.2%에서 13.1%, 영국 파운드는 5.9%에서 6.5%로 늘어났다.
러시아 국가복지기금 규모는 2021년12월 1,850억 달러이나,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대로, 전년 대비 약 2%P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는 "석유와 가스 등 국제 원부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수익이 늘어난 러시아는 SWIFT를 통한 결제가 불가능해지면, 당분간 경제적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유럽 시장에서 원부자재 거래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결제 통화를 기존의 달러화에서 유로화와 파운드화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SPFS와 같은 대체 결제수단을 본격 도입하고 INSTEX 구축 협업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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