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浪漫)”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혹은 그렇게 하여 파악된 세계를 뜻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낭만(浪漫)’이란 단어는 사실 낭만주의를 가리키는 romance(로망)를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그 발음이 비슷한 '낭만(로망;ろうまん)'이라 음차한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浪漫’이란 표현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한자 뜻 그대로 ‘제멋대로 하다’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한자와 한국 한자음만 보면 뜻을 유추하기 힘들기에 일각에선 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浪漫이라는 번역어가 뜻을 살리는 번역어라기보다는 음차표기에 가깝기 때문이며, 음차표기의 측면이 이 번역어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浪漫이라 표기하고 로망이라고 읽기 때문에, 이 개념이 로맨티시즘, 로맨틱, 로마 등의 여타 개념들과 같은 긴밀한 관계가 음가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浪漫을 한국식 한자음 '낭만'으로 읽기 때문에, 로맨스, 로맨티시즘, 로맨틱, 로마 등의 개념어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은폐되어버린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용례에서 낭만, 낭만적 개념과 로맨스, 로맨틱 개념은 마치 전혀 다른 개념어인 것처럼 사용되고 이것이 이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은 이 '낭만(浪漫)/로맨스(romance)'에 해당하는 개념이 서구 사상사 문화사의 핵심 개념어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어휘 낭만(浪漫)이 널리 사용되는 바를 과격하게 뒤집기는 어려우나, 로맨스, 로맨틱, 로맨티시즘의 음차어를 확장된 의미로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용례를 확보해 서서히 대체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浪(낭)’ : 물결 낭. 물결이 일다, 파도가 일다. 방자하다. 삼가지 아니하다
‘漫(만)’ : 질펀할 만. 질펀하다. 넘쳐나다, 어지럽다.
사전적 용어는 이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낭만((浪漫)’이라는 말은 ‘달콤하고, 개방적이고 기분이 좋은’ 등의 말로 쓰이는 것이 분명할 겁니다.
<지난 19일에도 국회는 평소와 같았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를 향해 거칠게 비난했다. 차이점이라면 그날은 본회의장 방청석에 아이들이 있었다는 거다. 강원 홍천초 학생 42명과 경북 구미 도봉초 학생 76명이 있었다.
다음 날도 의원들은 서로 고성을 냈다. 이날도 국회엔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있었다. 경북 울진 남부초 학생 36명이다. 정치인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50분 정도 지켜봤다.
이 장면을 묘사한 기사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그게 연기일지언정 평소와 달랐어야 했다. 이토록 낭만이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정치의 목적은 결국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데 있다. 지금 이들이 하고 있는 건 정치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국회에 있던 의원들은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알았냐?”
낭만의 상실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요즘 의사들 사이에서 생명과 직결된 필수 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는 찬밥 신세라고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힘들고, 하는 일에 비해 버는 돈이 적어서다.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만 넘쳐난다.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는 의사의 사명감은 드라마 속 얘기다.
교육자의 자부심을 안고 사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1만1377명에게 물었는데 응답자의 87%가 최근 1년 안에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했다.
교권 추락은 교사의 사명감을 빼앗았다. 공무원도 이제 직장인일 뿐이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공직 생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기회가 되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대답이 45.2%에 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박봉(74.1%)이다. 주도적으로 정책을 생산하지 못하고 대통령실이나 정치권이 하달하는 업무만 수행하는 분위기도 사명감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
검·경이라고 다를까. 올 2월 정기인사에서 10년차 이하 평검사 15명이 로펌으로 옮겼다. 지난해 경찰 퇴직자는 3543명으로 2018년보다 46.3% 늘었다.
사명감보다 다른 가치를 좇는 이들을 탓하는 게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상품’이 됐다. 적은 시간을 들여 적당한 기사를 생산하려고 고민한다. 기사의 가치나 의미를 따지는 데 무뎌졌다.
낭만가객 최백호는 이런 가사를 썼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낭만은 다시 못 올 거라는 최백호의 읊조림이 서글프다.
모두가 낭만주의자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낭만이 사라진 시대는 불행하다. 낭만은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낭만주의자들은 결정하고 행동할 때 효율성만을 따지지 않는다. 순수, 열정, 꿈, 이상 같은 걸 동경한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무슨 얼어 죽을 낭만 타령이냐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 낭만이 내동댕이쳐지는 경우는 밥 한 끼 못 먹어서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기 위해서다. 그게 아니더라도 낭만의 가치는 먹고살기 힘들수록 더 커진다.
낭만주의자는 얼핏 현실을 외면한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이 사회를 사랑하는 이들이고, 역설적이지만 이런 태도가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내게도 다시 낭만이 찾아오길.>국민일보. 이용상 산업2부 차장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세상만사] 낭만 타령
‘낭만’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일 겁니다. 무슨 공상이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규정되지 않고 규제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상황, 계산적이지 않고 격식을 뛰어넘고 뻔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소위 ‘낭만적’입니다.
이 낭만이 주로 중세 기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숭고한 희생, 사랑과 죽음 등을 다룬 이야기에서 확장이 된 것이고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루네쌍스가 시작되고 완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과장이 아닐 겁니다.
루네쌍스, 사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 그건 인문주의, 휴머니즘이지만 휴머니즘과 로망스는 아주 밀접한 동전의 양면과 같을 것입니다.
‘낭만 타령’이 아니라 낭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사람다운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