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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모음 제11부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섣달그믐 밤〔除夜〕
어리석음 남김없이 팔아치우고 / 賣他癡騃盡
도소주(屠蘇酒) 따른 술잔 손에 잡으니 / 仍把屠蘇杯
묵은해는 밤중에 모두 지나고 / 舊歲宵中去
새봄이 자정 지나 도래하누나 / 新春子後來
일천 집이 떠들썩 노름 불 밝히더니 / 千門呼博燭
오경(五更) 되자 잿더미 두드려 불씨 끄네 / 五漏打堆灰
감라(甘羅)가 나를 보고 비웃으리니 / 將使甘羅笑
나이를 헤아리면 부끄럽네 못난 이 몸 / 算年愧不才
또〔又〕
수세(守歲)하며 집집마다 뜬눈으로 지새지만 / 守歲家家人不眠
어찌 정말 삼시신(三尸神)이 하느님께 고하리오 / 三彭上訴豈其然
아이들 맘은 본디 설맞이를 기뻐하니 / 童心自有迎新喜
내일 아침 먹을 한 살 웃으며 축하하네 / 笑賀明朝得一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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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모기에 시달리며〔苦蚊〕
찌는 듯 무더운 날 습지에서 생겨나 / 炎欝氣蒸草洳成
어둠 틈타 의기양양 멋대로 나는구나 / 乘昏得意任橫行
멀리서 다가올 땐 곡(哭)하는 듯 시끄럽고 / 遠來聒耳如遭哭
가까이선 군대처럼 한꺼번에 달려드네 / 近至叢身疑遇兵
작은 몸 긴 부리로 날기 물기 능란하고 / 長喙微形飛嚙善
고기 찾고 연기 피해 날쌔게도 오가누나 / 惡煙嗜肉往還輕
허나 네게 뜯긴 정녀(貞女) 애처로이 호소할 터 / 露筋貞婦應哀訴
하느님이 어찌 차마 너를 살려두겠느냐 / 天帝胡寧忍汝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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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봄 경치를 찾아갑술년(1754, 영조30) 2수 〔尋春 甲戌〕
봄풀 돋은 강가의 성 사방이 푸르고 / 春草江城綠四邊
엷은 구름 다순 햇살 안개도 옅게 꼈네 / 淡雲和日帀輕煙
이와 같은 산천 풍경 그려내기 쉽지 않고 / 山川物色難圖畫
꽃나무의 꾀꼴 소리 풍악보다 어여쁠사 / 花樹鸎蟬勝管絃
못물에 뛰노는 고기 구경 빠져들어 / 耽看池塘魚出沒
발〔簾〕 앞에 제비가 춤추는 줄 모르누나 / 却忘簾幕燕蹁躚
한가로움 찾는 건 본디 나의 즐거움 / 尋閑自是吾心樂
사람들이 나더러 철부지라 하건 말건 / 何妨人稱學少年
둘째 수〔其二〕
단비 막 지나가고 저녁 바람 살랑이니 / 初過甘雨晩風微
삼라만상 저절로 광채를 발하누나 / 萬象森羅自動輝
나풀대는 나비 한 쌍 깊은 숲에 드는데 / 欵欵雙蝴深藪入
높이 나는 한 마리 새 어느 산에 돌아가나 / 浮浮獨鳥何山歸
안개 속 낚시 파할 제 버들에 물 흔들리고 / 煙磯釣罷柳搖水
달밤에 돌아올 제 꽃잎이 옷에 점점(點點) / 月夜人回花點衣
기쁘구나 항아리에 새 술이 익어가고 / 堪喜甕間新酒熟
강 물고기 봄을 맞아 뽀얗게 살 오르니 / 江魚白白正春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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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금체시(禁體詩)
구양(歐陽) 문충공(文忠公)이 영주(潁州)의 태수(太守)로 있을 적에 눈 속에서 객(客)과 시 짓기를 약속하면서 사물을 형용하는 말을 금하여 옥(玉)ㆍ달〔月〕ㆍ배꽃〔梨〕ㆍ매화〔梅〕ㆍ명주〔練〕ㆍ솜〔絮〕ㆍ흼〔白〕ㆍ춤〔舞〕ㆍ거위〔鵞〕ㆍ학(鶴)ㆍ은(銀)ㆍ낢〔飛〕ㆍ소금〔鹽〕ㆍ해오라기〔鷺〕ㆍ나비〔蝶〕 등의 말을 모두 쓰지 말고 또 희다〔皓〕ㆍ희다〔皚〕ㆍ깨끗하다〔潔〕ㆍ희다〔素〕 등의 글자를 사용하지 말자고 청하였으니, 시 짓기를 어렵게 하여 기발한 작품이 나오게 한 것이다.
그 뒤에 소자첨(蘇子瞻 소식(蘇軾))이 장룡공(張龍公)에게 기우제를 지내어 눈이 조금 내리자 객과 함께 취성당(聚星堂)에서 술을 마셨다. 이때 마침 구양공의 두 아들이 영주에 있었는데 소자첨이 구양공이 전에 정한 규칙을 들어 함께 시를 지었으니, 천고의 성대한 일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소자첨의 시는 ‘白’ 자를 피하지 못하였고, 또 구양수의 두 아들도 모두 ‘雪’ 자를 사용했으니, 수백 년 뒤에 태어난 내가 매양 읽을 적마다 유감이 없지 못하였다. 이제 마침 세모인 데다 집은 춥고 밤에 눈까지 오니, 홀연 두 공의 일이 생각나 흠모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에 졸렬함을 잊고 구양공이 전에 정한 규칙을 떠올려 두 공의 시에 각기 차운하여 시 두 수를 짓되, 이번에는 ‘雪’ㆍ‘白’ 두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소자첨의 시가 ‘雪’을 운자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비록 ‘雪’ 자의 사용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감히 본의(本意)로는 사용하지 않았으니, 두 공이 다시 살아난다면 틀림없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야말로 참으로 자그마한 무기 하나 지니지 않았도다.”
구 문충공(歐文忠公)의 시에 차운하여
우수수 초목들이 모두 잎을 거둔 뒤에 / 蕭蕭草木皆斂萼
바람과 눈 뒤엉키며 세차게 몰아치네 / 巽二滕六相回薄
눈구름 뒤덮이며 추위가 매섭더니 / 陰氣初從同雲緊
싸락눈 오는 소리 가늘게 들리누나 / 暗響已隨密霰作
황혼 무렵 산과 바다 캄캄하여 놀랍더니 / 黃昏海山驚黯慘
한밤중에 천지가 홀연히 환해지네 / 半夜乾坤忽昭廓
하루 만에 온 세상을 바꾸어 놓았으니 / 一日能令世界變
만물이 추위에 자취를 감추었네 / 萬物都逐寒威爍
언 몸으로 시 읊는 서생은 붓대가 얼어 꺾이려 하고 / 書生凍吟筆欲折
밤에 베 짜는 가난한 여인은 콧물이 얼어 떨어지는데 / 貧女夜織淚應落
부자들은 너른 산야에 말 달리며 사슴 토끼 사냥하고 / 茫茫獵騎搜鹿兔
으리으리 붉은 대문 안에서 여우 담비 갖옷 입네 / 欝欝朱門擁狐貉
눈 위에 열린 길은 포효하는 한 쌍의 범 / 開徑勢聳成雙呀
높이 쌓여 무너진 덴 맹수가 할퀸 모습 / 乘危力弱忽半攫
안쓰럽네 구유 앞에 웅크린 마소들 / 空念櫪上縮寒蝟
가여울사 처마 아래 굶주린 참새 울음 / 可憐簷底噪飢雀
가만히 앉았을 땐 눈부셔도 괜찮지만 / 靜坐未嫌陽生纈
문 나서면 깊은 눈에 발 빠질까 걱정일레 / 出門却愁深沒屩
금년에는 보리밥 배불리 먹겠다고 / 共賀今年飽麥飯
모두 함께 축하하며 농부들 껄껄 웃네 / 田公嚇嚇相爲樂
조화옹은 장난기가 많다 하지 않을쏘냐 / 莫是化翁多戲劇
온갖 모습 뒤덮어 깨끗하게 만들었네 / 牢籠百態皆濯瀹
내 가슴에 티끌 한 점 남겨두지 않았으니 / 使我胸中無一塵
홀로 선 이내 천지 그 얼마나 광막한가 / 獨立天地何廣漠
취옹(醉翁)이 지난날 금체(禁體) 규칙 남겼는데 / 醉翁昔能遺前言
뉘라서 규칙 따라 붓대를 잡았던가 / 詩令誰繼把筆槊
내 지금 천 년 뒤에 공(公)의 시에 화답하여 / 我今千載追餘韻
새 시 한 편 지어놓고 크게 웃어보노라 / 爲題新篇發大噱
소 문충공(蘇文忠公)의 시에 차운하여
찬 바람 휘잉휘잉 온갖 낙엽 쓸어가고 / 寒風獵獵走萬葉
천지간의 잡된 기운 깨끗이 씻기었네 / 天地氛埃一漱雪
한밤중에 고요한 집 갑자기 환해지자 / 忽驚虛堂夜半明
날샌 줄 아는 닭이 자꾸만 울어대네 / 誤鷄呃喔聲未絶
빈 강과 너른 들에 끝없이 눈 내릴 제 / 江空野闊落無際
처마 밑 대〔竹〕 부러지는 소리만이 들리누나 / 但聞蔌蔌簷竹折
어지러운 눈발에 원근 분간할 수 없고 / 攪空絲絲遠近失
땅 위에 수북 쌓여 구덩이가 사라지네 / 鋪地緌緌坑谷滅
온 누리가 별안간 무량세계 되었으니 / 霍然一變無量界
아, 이런 조화옹을 뉘라서 말릴쏜가 / 吁此造化誰持掣
오두막 문을 닫고 오도카니 누웠자니 / 兀兀蓬戶閉僵卧
훈훈한 장막에 아롱무늬 비치누나 / 醺醺暖帳生綺纈
저 옛날 구양자(歐陽子)의 생각 문득 떠오르니 / 令人却憶歐陽子
옛 말씀 저버리기 평소 내 뜻 아니네 / 脫略前言曾不屑
세상 사람 굽어보며 비루하다 웃었으니 / 俯視俗人笑塵陋
고상하고 위대한 시 언뜻 봐도 놀랍도다 / 高揮巨筆驚暫瞥
후대의 소자첨(蘇子瞻)도 제법 훌륭했으니 / 後來子瞻差可意
지난날 정한 약속 따르라고 호령했네 / 號令聽取前約說
부끄럽게 나는 아직 두 분 경지 못 따르니 / 愧我未足追餘賞
썰렁한 집 홀로 앉아 무안하기 그지없네 / 獨坐寒齋冷似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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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국가행(鞠歌行)22운 〔鞠歌〕
좌중은 술 마시기 잠시 멈추고 / 四坐且停酒
귀 기울여 내 노래를 들어보시게 / 側耳聽我歌
내 노래는 무엇을 노래함인가 / 我歌何所歌
들어보소 내 한번 읊어볼 테니 / 君聽我須哦
내 마음엔 천지가 좁기만 하고 / 我心狹天地
내 기상은 강하(江河)를 압도한다오 / 我氣壓江河
나는야 세찬 바람 타고 올라가 / 我欲凌長風
이 세상 끝까지 유람하고파 / 遠遊窮八垓
부상(扶桑)도 지척처럼 가까웁기만 / 扶桑視尺咫
큰 도성도 술잔처럼 좁디좁기만 / 廣都看杯罍
옹생원과 함께하기 수치스러워 / 恥同齪齪者
진세(塵世)의 밖으로 넘나든다오 / 出沒於塵埃
아득하고 아득한 구주(九州) 밖에는 / 茫茫九州外
바다만 있고 천지 없으니 / 有海無乾坤
만 리의 물결을 헤치고 나가 / 欲破萬里浪
근원을 끝까지 찾고 싶다오 / 遂以窮其源
누구인가 나를 따라 유람을 떠나 / 孰能從我行
나와 함께 세상 밖 날아오를 자 / 與我同飛騫
술잔에 그득하게 술을 채우고 / 盈盈酒滿尊
그대 위해 장한 기상 노래하노니 / 爲子擊玉壺
나 이제 떠난다고 슬퍼만 말고 / 子無惜我去
우리 벗들 분발하라 격려해주소 / 且以勉吾徒
묻노니 누구를 따르려는가 / 借問焉所從
왕자교(王子喬) 적송자(赤松子)와 어울리려네 / 喬松與翺翔
손 맞잡고 급히 서로 헤어지려니 / 摻手薄臨岐
세상살이 너무도 서글프구나 / 世路劇悲傷
찬 바람이 일만 골짝 휘몰아치고 / 寒風振萬壑
하늘의 밝은 해도 빛을 잃었네 / 白日爲無光
가고 가는 여행길 어려우리니 / 行行行路難
산천은 험하고 멀기만 하네 / 險隔山川長
동쪽으론 깊은 양곡(暘谷) 걱정스럽고 / 東憂暘谷深
서쪽으론 험한 양장(羊腸) 근심스럽고 / 西愁羊腸苦
남방에는 독기 서린 안개가 짙고 / 瘴霧南天凝
북방에는 얼음과 눈 잔뜩 쌓였네 / 氷雪朔方聚
나는 이미 유람길 출발했으니 / 而我已發軔
줏대 없이 뜻 바꾸진 않으려 하네 / 且欲勿骫骳
튼튼한 수레로 산을 오르고 / 堅車可躐山
빠른 배로 강물을 건너가리니 / 利楫可涉水
반보(半步)씩만이라도 쉬지만 말자 / 跬步且莫休
절름대도 천 리 길 갈 수 있으니 / 跛鼈卽千里
그대여 누더기 옷 비웃지 마소 / 君莫笑鶉衣
나는야 담비 갖옷 부럽지 않소 / 我不恥狐貉
그대여 거친 밥 비웃지 마소 / 君莫笑蔬食
나는야 이 속에 즐거움 있네 / 我有其中樂
하루하루 가는 날짜 정녕 아깝고 / 此日足可惜
바라는 건 공자님 배우기이니 / 所願學孔子
이 몸이 늙는 줄도 모를 정도로 / 不知老之至
부지런히 노력하리 살아 있는 한 / 斃而後乃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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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벗에게〔寄故人〕
나의 벗은 호방하고 소탈한 선비 / 故人倜儻士
이별 뒤에 그리움 더욱 더하네 / 相別更長思
천지간에 외로운 마음 있건만 / 宇宙孤心在
세상에서 만날 기약 더디기만 해 / 風塵一會遅
부평초 같은 신세 피차 가여워 / 共憐萍迹似
언제나 갈림길이 한탄스럽네 / 常歎世途岐
언제면 도성 서쪽 집에서 만나 / 何日城西宅
거나하게 술 마시고 시를 읊을꼬 / 重吟醉後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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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登摩尼山塹城壇〕
단군께서 몸소 쌓아 만들었다 전해지는 / 檀君手築昔聞名
천 년 된 높은 제단 참성단(塹城壇)에 올라왔네 / 千載高壇上塹城
발아래 피어나는 구름과 놀〔霞〕 보려고 / 須看足踏雲霞出
머리 위엔 해와 달만 걸려 있게 하였구나 / 只許頭擡日月明
일천 점(點)의 섬들을 어룡이 몰아가고 / 魚龍驅去島千點
한 잔의 깊은 물에 천지가 떠오누나 / 天地浮來杯一泓
눈앞의 짙은 안개 한스럽기 짝 없으니 / 剛恨眼前多宿霧
비 갠 청명한 날 다시 오자 기약하네 / 後期留待雨新晴
제천단〔祭天壇〕
단군왕검 오신 것 그 어느 해였을까 / 王儉何年至
오래된 참성단(塹城壇) 더욱 기이하도다 / 塹壇古更奇
덩그러니 유적만 남아 있어도 / 空留遺迹在
하늘에 제사하던 그때 같구나 / 猶似祭天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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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병든 눈〔病眼〕
눈병이 몇 십 일을 낫지 않던 중이지만 / 病眼連旬苦未蘇
비 갰다는 소리에 지팡이를 짚고 섰네 / 聞晴強被短筇扶
대낮인데 거뭇거뭇 눈앞이 어른대어 / 玄花白日空迷亂
먼 들 숲과 산골 마을 보일락 말락하네 / 野樹山村遠有無
부질없이 쇠 빗 잡고 긁어낼 생각 하다 / 謾把金篦思刮膜
속물들이 나를 다시 잡아끌까 걱정일레 / 却嫌俗物復撩吾
세상의 백 년 일을 따질 것 무에 있나 / 百年世事何須問
풍진세상 일일랑은 도모하지 않는 걸 / 已向風塵不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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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아버님의 회갑날에
〔壬午十一月初吉 卽家君周甲日也 敬伏藁 以效忭祝之誠〕
임오년(1762) 11월 1일은 아버님의 회갑날이다. 이에 삼가 짚자리에 엎드려 진심으로 축하를 올렸다.
좋은 날 동짓달 초하루 되어 / 佳節黃鍾朔
임오년 생신이 돌아왔네요 / 生辰壬午回
세상에 큰 덕을 쌓으셨기에 / 人間大德得
하늘이 장수를 내리셨네요 / 天上壽春栽
회갑일에 남극성(南極星)을 우러러보며 / 花甲瞻南極
효도를 못한 제가 부끄럽지만 / 斑衣愧老萊
오늘 아침 소자가 축원하오니 / 今朝小子祝
임오년이 만 년토록 돌아오기를 / 玄黓萬年來
아버님의 회갑날에
삼가 아버님의 시에 차운하여 아버님께〔又敬次家君韻 拜獻〕
무정세월 어느덧 육십 년 흘러 / 無情羲馭六旬催
아버님 화갑(花甲) 오늘 돌아왔으니 / 花甲高堂此日回
무성한 송백(松柏)처럼 자손 번창 기원하며 / 善禱方騰松柏茂
애달픈 〈육아(蓼莪)〉처럼 효성이 간절하네 / 孝思還切蓼莪哀
하늘에서 남극성이 상서로운 빛을 내니 / 祥開碧落南星曜
황종율관(黃鍾律管) 갈대 재가 움직이는 때로세 / 律動黃鍾朔氣灰
만년토록 오래오래 장수를 누리시어 / 海屋添籌期萬萬
먼 후손들 효도까지 모두 다 받으시길 / 斑衣庭舞共雲來
아버님의 회갑날에
삼가 형님이 올린 시에 차운하여 아버님께〔又敬次伯氏獻詩韻 拜獻〕
아버님 생신날에 남극성이 밝게 빛나 / 天垂極曜膺生辰
춘추를 헤어보니 육순이 되셨어라 / 遐算方看軔六旬
신령스런 명협(蓂莢)엔 하루 삼만 잎이 돋고 / 靈葉日生三萬莢
무성한 춘수(椿樹)엔 팔천 년의 봄꽃 가득 / 茂枝花滿八千春
시를 지어 부질없이 오복(五福)을 축원할 뿐 / 有詩徒祝箕疇福
봉양조차 못하는 가난이 슬프지만 / 無養偏傷子路貧
순정(純正)하고 깊으신 가르침 함께 받은 / 共聽純深庭下訓
우리 두 형제가 무탈함이 즐겁네 / 樂吾無故兩人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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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탁영정 20경〔濯纓亭二十景〕
관악산의 청람〔冠嶽晴嵐〕
깎아지른 높은 산이 강 남쪽에 서 있으니 / 戍削峯巒卽水南
비 갠 아침 마주하네 진초록을 머금은 빛 / 晴朝相對綠濃含
좋구나 저 산의 뛰어난 풍광이여 / 堪喜箇中光景絶
푸르스름 서린 것은 연무 아닌 엷은 청람 / 非煙非霧是輕嵐
농바위의 저녁 물결〔籠巖晩潮〕
기이한 바위 우뚝 벼랑 문이 되어서 / 奇巖陡作斷崖門
긴 강물 만고토록 토하거니 삼키거니 / 萬古長江任吐呑
저녁 되자 물결 소리 갑절이나 웅장하니 / 潮水晩來聲倍壯
간밤의 밀물 자국 모두 지워냈으리라 / 也應全沒昨宵痕
모래사장을 비추는 밝은 달〔平沙皓月〕
잔잔한 푸른 물을 둘러싼 흰 모래밭 / 明沙環繞綠波漪
눈부신 광채에 옥가룬가 의심했네 / 奪目光晶玉屑疑
저곳의 빼어난 풍광을 알려거든 / 欲識就中奇絶處
개인 하늘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보라 / 一天霽月皎然時
먼 물가의 한 줄기 밥 짓는 연기〔極浦孤煙〕
아스라이 먼 물가 구불구불 감돈 곳에 / 茫茫極浦勢縈紆
고목들과 외딴 마을 보일락 말락 하네 / 老樹幽村遠有無
영롱한 물빛이 산빛 속에 서렸는데 / 玲瓏水色山光裏
밥 짓는 연기 몇 점 그림보다 아름답네 / 數點孤煙勝畫圖
밤섬에서 활 쏘는 모습〔栗島射侯〕
맑은 섬의 먼 모래밭 버들잎 살랑이고 / 島晴沙遠柳陰輕
높이 매단 흰 과녁 강물 너머 또렷하네 / 粉鵠高懸隔水明
난간 기대 즐거이 활쏘기 구경할 제 / 凭欄坐愛穿楊技
빠른 화살 날자마자 북소리 울리누나 / 纔看星流已鼓聲
하얀 바위에서 비단 빨래하는 모습〔白石浣紗〕
모래는 흰 눈 같고 여인네는 꽃 같은데 / 沙如白雪女如花
하얀 바위 맑은 물에 흰 비단 빨래하네 / 白石灘淸浣白紗
가벼운 팔놀림에 물결이 일렁이고 / 玉腕輕嬌波蕩影
물속에 비친 여인 모두가 미녀로세 / 水中箇箇是西家
석양 속의 누대들〔夕陽樓臺〕
강 동쪽 저 끝까지 연이은 누대들 / 樓臺羅絡亘湖東
강 언덕에 기대선 높낮이가 제각각 / 依岸高低自不同
무엇보다 비 갠 뒤 석양 풍경 제일이니 / 最是新晴銜暮景
층층의 단청들 흡사 그림 속이로세 / 層層粉碧畫圖中
저녁 비 속의 돛대〔暮雨帆檣〕
바람 속에 돛단배들 멀리 이어지더니 / 風吹帆影遠相連
저물녘 들어올 제 폭우가 쏟아지네 / 暮入寒江白雨天
안개 속에 희미하게 여기저기 서 있는데 / 依微立立雲煙裏
돛대 끝만 보이고 배는 아니 보이누나 / 只見檣頭不見船
노주의 먼 마을〔鷺洲遠村〕
한강물 둘로 가른 비스듬한 노주(鷺洲)에서 / 中分二水鷺洲斜
밥 짓는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나네 / 裊裊炊煙望裏賒
강가의 마을 집 몇 채인지 모르겠네 / 村家列岸知無數
버드나무 녹음에 절반이 가리워져 / 爲有柳陰半被遮
누에나루의 수양버들〔蠶渡垂柳〕
누에나루〔蠶渡〕 수양버들 초록으로 줄을 지어 / 蠶渡垂楊綠作行
하늘하늘 얽힌 연기 푸른 물결 일으키네 / 縈煙褭娜拂滄浪
천 가닥 실로 꽁꽁 가는 배들 묶건마는 / 千絲剩繫行舟着
오고감이 어이하여 날마다 분주한지 / 來去緣何日日忙
밤에 창문에 비치는 고깃배의 불빛〔夜窓漁火〕
삼라만상 고요하고 강 소리만 들리는데 / 萬籟寥寥但聽江
밤 깊자 고깃불이 홀연 쌍쌍 켜지누나 / 夜深漁火忽雙雙
오고가는 불빛에 희미한 꿈 깨어보니 / 映來映去驚幽夢
맑은 난간 비추고 창 안까지 비쳐드네 / 直射淸欄透入窓
봄 물가에 놀러 나온 귀인들〔春渚貴遊〕
봄 강에 날마다 귀인(貴人)들이 놀러 오니 / 春波日日貴遊多
난간 너머 언제나 화려한 배 지나가네 / 檻外尋常錦纜過
거울 같은 강물에 그림 같은 사람들 / 湖如鏡面人如畫
가무(歌舞)하는 기녀들은 또 무엇에 비길까 / 歌扇舞裳又似何
남한산의 눈 덮인 성가퀴〔南漢雪堞〕
눈이 개자 먼 곳의 풍광이 떠오르니 / 六花初霽遠光浮
드높은 남한산에 흰 성가퀴 둘렀어라 / 南漢嵳峨白堞周
병자(丙子) 정묘(丁卯) 호란 이후 산성이 남아있어 / 丙丁以後城猶在
해마다 눈〔雪〕 덮이나 여태 설욕(雪辱) 못하였네 / 雪色年年未雪羞
서교의 단풍 숲〔西郊霜林〕
서교(西郊)에 서리 내려 온갖 초목 단풍들 제 / 霜落西郊萬葉知
바람 불고 석양 비쳐 참으로 아름답네 / 風飜夕照十分宜
진노랑 사이사이 심홍색 점 박혔으니 / 深紅間點深黃色
숲은 본디 무심한데 내 눈엔 기이하네 / 渠自無心我見奇
물결 너머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랫소리〔隔水樵歌〕
마을마다 연기 피고 석양이 비낄 때면 / 村村煙起又斜暉
모래밭에 줄줄이 나무꾼들 돌아가네 / 沙上樵群歷歷歸
천연스런 이 풍경 그려낼 만하지만 / 天然物色眞堪畫
물결 너머 들려오는 노랫소릴 어이하랴 / 爭那歌聲隔水飛
강물에 떠 있는 낚싯대〔乘流釣竿〕
종일토록 물결 위에 떠 있는 조각배 / 小艇乘流竟日於
어디 한 번 물어봄세 낚싯대 드리운 뜻 / 垂竿借問意何如
“임자는 나 아니니 어찌 내 맘 아시겠소 / 主人非我安知我
나는 본디 고기 아닌 한적함이 목적인걸” / 我自爲閑不爲魚
목멱산의 푸르름〔木覓蒼翠〕
안개 걷힌 목멱산(木覓山) 아름다운 풍광이여 / 終南罷霧氣佳哉
울울창창 솔숲이 푸른 언덕 이루었네 / 欝欝松林翠作堆
동쪽으로 아침저녁 그윽이 바라보면 / 東籬日夕悠然見
한 줄기 또렷한 흰 성가퀴 둘렀어라 / 一路分明粉堞回
청계산의 운무〔靑溪雲霧〕
비스듬히 마주한 청계산(靑溪山)의 푸른 얼굴 / 靑溪斜對立蒼顔
신기(新奇)한 모습으로 아스라이 서 있네 / 一種新奇杳邈間
깊은 산에 잔뜩 낀 구름과 안개로 / 深峯故是饒雲霧
산의 절반 때때로 하늘 저편 사라지네 / 天外時時失半山
여름 장마 때 불어난 물 구경〔夏霖觀漲〕
뭇 신들이 강과 바다 뒤집고 터 놓은 듯 / 飜河决海百神勞
천 리를 내달리는 기세가 힘차도다 / 千里驅來氣勢豪
큰 섬과 높은 바위 모두 물에 잠겼으니 / 崇巖巨島皆淪沒
관악산은 물 위로 몇 척이나 남았을지 / 冠嶽山餘幾尺高
겨울날의 얼음 구경〔冬天賞氷〕
하룻밤 찬바람에 물빛이 새로우니 / 一夜寒風水色新
적막할사 헤엄치는 물고기들 볼 수 없네 / 魚龍寂寞失經綸
행객(行客)들은 물 위 걷는 신선과도 같은데 / 行客恰如羅襪子
한 걸음 한 걸음 물거품도 일지 않네 / 瑤池步步不生塵
탁영정에서 보이는 한강 8경〔濯纓亭江中八景〕
해〔日〕
바람 잔 맑은 강에 물결이 잔잔하니 / 江澄風靜細紋生
반짝반짝 햇빛을 경쾌하게 반사하네 / 閃閃日光映射輕
그 누가 금덩이를 천 조각 부수어서 / 阿誰碎却金千片
물결 사이 흩뿌려 반짝이게 하였는가 / 撒在波間巧滅明
달〔月〕
달빛과 물빛이 어울리는 맑은 밤 / 月色波光淸夜宜
한 줄기 달그림자 물 위에 일렁이네 / 一條飛動影娥池
나공원(羅公遠)이 마법으로 은빛 다리 내었으니 / 羅公新幻銀橋出
누가 또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몰래 훔쳐 내올까 / 偸得霓裳也有誰
별〔星〕
드문드문 찬별들 밤 강을 비추니 / 歷落寒星映夜湖
언듯 보면 고깃불 언듯 보면 구슬 같네 / 忽如漁火忽如珠
분명히 바둑 한 판 이제 막 끝났건만 / 分明一局棋初罷
흑백 중 어느 쪽이 졌는지 알 수 없네 / 黑白不知孰是輸
바람〔風〕
늘상 보면 평화롭고 예사롭던 강물이 / 長看平淡亦尋常
바람 불면 파도 일어 모습이 표변하네 / 風動波瀾幻景光
높은 곳은 은집〔銀屋〕 되고 낮은 곳은 눈〔雪〕이 되니 / 高成銀屋低成雪
기이한 변화를 그 누가 주재하나 / 箇裏奇權孰主張
비〔雨〕
바람 불고 비 퍼부어 먼 하늘 희뿌옇고 / 風吹白雨遠迷天
수면 위에 가로 날려 안개가 낀 듯하네 / 水面斜橫色似煙
떨어지는 모양 보면 낱낱이 둥글더니 / 初見落來圓箇箇
강을 메운 짙푸른 물 둥근 모양 더는 없네 / 滿江瑟瑟更無圓
눈〔雪〕
꽃처럼 눈 날리고 물빛이 차가우니 / 滕六花飛水色寒
유리 같은 언 강의 광경 참 기이할사 / 琉璃界上有奇觀
낚시하는 늙은이 고개 떨궈 조는데 / 釣叟把竿垂首睡
도롱이가 절반씩 눈 덮이고 말라 있네 / 半蓑雪滿半蓑乾
밥 짓는 연기〔烟〕
맑은 강 비 갠 뒤에 연기가 둘렀는데 / 澄江更有霽煙環
하늘대며 엷게 서린 자태 참 한적하네 / 細裊輕籠態絶閑
모래밭에 졸던 흰 새 놀라서 날아갈 제 / 驚得睡沙白鳥起
한 줄기 연기 끌고 앞산을 지나가네 / 拖分一抹過前山
안개〔霧〕
새벽안개 강에 끼어 황혼 무렵 같으니 / 曉霧迷江色若曛
연기도 비도 아닌 안개로 자욱하네 / 非煙非雨弄紛紛
아기 용이 구름 부르는 술법을 배우겠지만 / 兒龍應學呼雲術
남산(南山)의 스라소니 무늬만 하겠는가 / 何似南山豹變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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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입춘임인년(1782, 정조6) 〔立春 壬寅〕
오신반(五辛盤)을 내오고 처마에 제비 드니 / 盤登細菜燕依人
지금은 봄 신이 행차하는 때로세 / 此是東皇按節辰
그 누가 말했던가 꽉 막히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 誰言極否難回泰
어느덧 심한 추위 다 지나고 봄이 돌아왔는 걸 / 忽破窮陰復睹春
해가 더디 운행하여 초가집이 따스하고 / 遲遲日轉茅簷暖
바람이 훈훈하여 초목에 생기 도네 / 藹藹風來草木新
우리 임금 너그러운 교서(敎書)를 들을 제 / 往聽吾王寬大詔
인자하신 성은을 나만 받는 듯하였네 / 自疑偏荷上天仁
입춘계묘년(1783, 정조7) 〔立春 癸卯〕
원자(元子)의 탄생으로 온 나라가 기뻐하니 / 元子東方喜可知
비운(否運) 가고 태운(泰運)이 회복되는 때로세 / 否傾泰復正斯時
나 또한 조화(造化)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니 / 我亦陶甄中一物
길운(吉運) 타고 세상에 진출할 수 있을는지 / 儻乘休運占風期
입춘〔立春〕
묵은해에 남은 날이 더 이상 없는 / 舊歲無餘日
오늘 이 아침이 입춘이라네 / 今朝是立春
청실〔靑絲〕 같은 가는〔細〕 싹을 누가 보내나 / 靑絲誰送細
늘어나는 흰머리를 금할 수 없네 / 白髮不禁新
좋은 술 삼해주(三亥酒)를 빚어두고서 / 妙釀謀三亥
향그러운 오신채(五辛菜) 맛을 보누나 / 香芽試五辛
다순 해가 초가집을 다시 비추니 / 暖陽回蔀屋
인자한 하늘이 위에 계시네 / 惟有上天仁
입춘〔又作春帖〕 앞 시에 이어 입춘첩을 지었다.
집집마다 춘첩 붙여 새해 복을 비는데 / 家家帖子迓新休
나도 따라 하려다가 스스로 부끄럽네 / 我欲效顰却自羞
하늘에 달린 급제(及第) 기도하여 무엇하랴 / 科宦在天安用禱
내게 다린 학덕(學德)은 기원할 것 본디 없네 / 謹修由己本無求
긴 낮에 아이가 착실히 책을 읽고 / 床書永日兒能課
봄바람에 아내가 말술〔斗酒〕이나 장만하길 / 斗酒春風婦可謀
아무튼 기쁘게도 태평 시대 만났으니 / 且喜吾生逢聖代
좋은 유람 나온 듯이 숲 속 누각 꽃구경 / 看花林閣擬淸遊
입춘〔又作一絶〕 앞 시에 이어 절구 1수를 지었다.
모든 일이 하늘에 달렸음을 잘 아노니 / 分知萬事彼蒼由
뜬구름 같은 부귀 구한다고 얻을 수 없네 / 富貴浮雲不可求
건강하고 안녕하며 덕을 좋아하는 것이 / 最是康寧攸好德
가장 좋은 복임을 홍범구주(洪範九疇) 말해주네 / 人間美福驗箕疇
입춘〔立春〕 이해의 입춘은 정월 5일 해시(亥時) 말각(末刻)에 들었다.
해시(亥時) 자시(子時) 바뀔 제 날씨도 좋아 / 亥子之交天氣良
새로 시(詩)를 지어서 봄 신을 맞네 / 試將新什迓東皇
추위 아직 심하지만 어찌 오래 가리오 / 寒威尙酷何能久
다순 기운 미약하나 점차 자라나는 걸 / 和煦雖微却漸長
대문가의 버들은 파릇파릇 물오르고 / 門柳依依如動色
뜨락의 고운 매화 물씬 향기 풍기네 / 閤梅的的正馳香
조정의 너그러운 교서(敎書)를 가서 듣고는 / 往聽漢吏敷寬詔
보잘것없는 정성 다해 나라 융성 기원하네 / 只有癡誠祝阜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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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 윤기(尹愭)
목가산 노래32운 〔木假山歌〕
그대는 못 보았나 / 君不見
두자미(杜子美)가 남조(南曹)의 가산(假山)을 두고 읊은 시를 / 南曹假山子美賦
당(堂) 아래에 한 삼태기 흙을 쌓아 흙산을 만들었네 / 堂下築成一簣土
그대는 또 못 보았나 / 又不見
한퇴지(韓退之)가 진국공(晉國公)의 가산(假山)을 아껴 지은 시를 / 晉公假山退之惜
냇가에서 바위 몇 덩이를 옮겨와 바위산을 만들었네 / 澗側匃來數拳石
뉘 집에서 섣달그믐 밤 모닥불을 피우는가 / 誰家除夕火峯熾
어디에서 동짓날에 비단 산을 쌓는가 / 何處至日綵岫峙
소꿉질 같은 행사가 천고에 끝없지만 / 無限千古小兒戲
각기 한때 벌여놓는 부질없는 물건일 뿐 / 各自一時閑排置
후대의 소순(蘇洵)은 그런대로 괜찮아 / 後來蘇老差可意
목가산을 집에 두고 기문(記文)을 지었으되 / 以木爲山文爲記
우뚝한 세 봉우리로 높은 인품 빗댔으니 / 岌然三峯能近譬
속인(俗人)들과 격이 다른 고상한 정취였네 / 高致殊與俗人異
허나 그도 내 집의 목가산만은 못하니 / 未若吾家木假山
구불구불 서려 있는 진짜 산 같은 모습 / 虬枝宛似眞螺鬟
천연의 모습 절로 우뚝이 드러나니 / 嶙峋自露天然顔
깎고 자른 사람 손길 어찌 용납했으랴 / 剜劃肎容人力艱
생각하면 이곳에 집터 잡던 그때부터 / 憶昔誅茅卜此地
동네가 외지고 호젓함이 좋았으니 / 已喜洞天幽且邃
뒷산 가른 냇물이 세차게 흘러오고 / 後麓擘開奔巨靈
좌우로 푸른 벼랑 병풍처럼 둘러섰네 / 左右環抱圍蒼屛
밤에 앉아 있다가 홀연 놀라 탁자 치니 / 夜坐忽然驚拍案
기이할사 산이 우뚝 남쪽 물가 솟았어라 / 奇哉有山聳南岸
가운데 봉우리는 중후한 인자(仁者) 모습 / 中峯厚重仁者象
양옆의 봉우리는 고상한 선비 모습 / 傍岫縹緲奇士樣
희미한 달빛 받아 맑은 물에 비치고 / 蒼茫帶月映淸潭
공중에 우뚝 솟아 푸른 이내 엉기누나 / 突兀凌空凝碧嵐
어떨 때는 붕새가 부리 높이 쳐든 듯 / 時看巉絶搴鵬噣
다시 보면 사람이 공읍(拱揖)하며 고개 든 듯 / 更疑拱揖矯人首
깊고 얕은 경치가 층층이 이어지고 / 淺深氣色層層連
호젓한 바위 골짝 형세가 침중(沈重)하네 / 窈窕巖洞勢隱然
이웃집 노인에게 산 이름을 물었더니 / 試問隣翁山名何
착각이라 하면서 크게 웃고 하는 말이 / 隣翁大笑謂我訛
“저건 늙은 잣나무의 가지와 잎 뒤엉킨 것 / 此是老柏枝葉互
그 모습이 험준하여 딴 나무와 다른데 / 其形崷崒異他樹
게다가 언덕 위에 꼿꼿이 빼어나고 / 況且亭亭秀高阜
아래에선 나무숲이 좌우를 옹위했소 / 下有林木擁左右
빈틈 없이 하늘 가린 기괴한 온갖 형상 / 蔽空補缺備奇怪
밑은 넓게 서리고 위로 점차 좁아지며 / 盤據磅礴上漸殺
사시사철 변치 않는 푸르른 저 모습 / 四時不改蒼翠容
바라보면 높은 산을 마주한 듯하다오” / 望之如對崔嵬峯
이 말 듣고 나는 매우 기이하게 여겼으니 / 我聞此語大異之
진짜 산 그보다 가산(假山)이 더 기이하네 / 假山勝似眞山奇
날 밝기를 기다려 다시 살펴보았지만 / 坐待天明更熟視
황홀하여 진위(眞僞) 분간 여전히 어렵구나 / 怳惚猶難分眞僞
날이 개면 우뚝함이 유난히 돋보이고 / 晴時戍削偏出群
그윽한 곳 은은하여 구름이 필 듯하니 / 幽處依微欲生雲
지척의 도성 먼지 모두 잊어버리고 / 城塵咫尺渾已忘
산야의 정취에 절로 늘 끌리누나 / 野趣尋常自相向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백 보 거리에서 / 不遠不近百步間
높이높이 우러를 뿐 오를 수는 없으니 / 高高仰止難可攀
알괘라 하늘이 교묘히 둔갑시켜 / 故知天意巧幻成
나에게 조석으로 깊은 정을 두게 했네 / 供我朝莫寄幽情
우습구나 세인(世人)들 번거로이 깎고 새겨 / 哂他世人刻斲繁
대청마루 섬돌 앞에 산 모형을 만듦이여 / 强學山勢對階軒
바위에다 부질없이 기교 부린 가산(假山)을 / 巖岫謾勞機巧加
뜨락에 벌여놓고 경치 좋다 자랑하네 / 騈羅爭詑佳致多
내 집엔 깎고 새긴 노고 한 번 없었건만 / 幸我不假彫琢苦
푸른 산이 우뚝이 방문 앞에 늘 서 있네 / 靑山偃蹇長當戶
사시사철 푸르른 자태를 옮겨 오니 / 移來歲寒後凋姿
천 길 높은 벼랑을 보는 것만 같아라 / 宛見千仞壁立儀
소나기 퍼부을 땐 폭포 속에 앉은 듯 / 雨驟疑坐懸瀑聲
새들이 지저귈 땐 깊은 산골 새소린 듯 / 鳥亂如聽深峽鳴
신선 세계 같은 경지 은자에게 흡족한데 / 眞境實愜幽人操
이러한 뜻 속인에겐 전달하기 어렵구나 / 此意難向俗子道
반 폭의 비단에다 그려내고 싶지만 / 更欲描出半幅裏
지금 누가 용면(龍眠) 같은 그림 솜씨 지녔을까 / 今世誰是龍眠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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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영파정 10경〔映波亭十景〕
영파정은 석양루(夕陽樓)의 정원에 있다. 무신년(1788)에 중수하고 나에게 10경을 읊어달라고 청하였다.
남산의 저녁 봉화〔南嶽夕烽〕
붉은 누각 푸른 숲이 어두워진 뒤 / 紫閣蒼林昏後
구름 가에 작은 불빛 점점이 켜지네 / 小光殘點雲端
하나 둘 셋 넷 또렷한 불빛 / 分明一二三四
나라의 평안을 알리는구나 / 解報國家平安
동대문의 저녁 나팔 소리〔東門暮角〕
가을 저녁 일백 척 동대문에서 / 百尺靑門日暮
몇 번의 나팔 소리 울려퍼지네 / 數聲畫角秋生
조각달 뜰 때면 학 울음처럼 맑고 / 片月淸同鶴唳
미풍이 불 때면 용 울음처럼 힘차네 / 微風雄象龍鳴
남쪽 다리의 버드나무〔午橋細柳〕
푸른 들판 한 줄기 시내 가로지른 다리에 / 橋橫綠野一水
황금 실 일만 가닥 버들가지 흔들리네 / 柳拂黃金萬絲
장서(張緖)의 풍류는 버들처럼 사랑스러웠고 / 張緖風流可愛
도잠(陶潛)의 집골목은 버들 있어 알기 쉬웠네 / 陶潛門巷易知
북동쪽 봉우리의 큰 소나무〔艮岑長松〕
고운 일산처럼 푸른 잎 넓게 펼치고 / 靑輝髣髴華蓋
수염 푸른 좋은 벗들 초대하였네 / 勝友招邀蒼髯
높이 솟은 굳센 절개는 눈〔雪〕도 아랑곳 않고 / 昂霄勁節傲雪
골짝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은 더위를 물리치네 / 出壑淸風排炎
앞 시내에서 빨래하는 풍경〔前溪浣紗〕
맑은 물이 굽이져 흐르는 시내에서 / 淸泠溪水屈曲
떠들썩하게 아낙들이 빨래를 하네 / 撩亂女娘擊漂
향기로운 바람에 이따금 말소리와 웃음소리 실려오고 / 香風時送笑語
옥 같은 팔은 더없이 경쾌하고 아리땁네 / 玉腕不勝輕嬌
뒷동산에서 밤 따는 모습〔後園摘栗〕
송강(松江)에 배 띄울 것 없으니 / 松江不待舟泛
금리(錦里)의 동산에서 거둘 것 넉넉하네 / 錦里剩能園收
지름이 한 치 되는 좋은 밤이 많은데 / 自多徑寸佳實
천 그루의 귤나무 심을 것 있나 / 何須千樹等侯
네모난 연못의 연꽃 향기〔方塘荷香〕
푸른 일산 빽빽한 데 곱게 단장한 여인 / 紅粧翠蓋稠疊
투명한 이슬들 구슬처럼 송송송 / 白露明珠碎圓
한 줄기 미풍이 불어오는 곳 / 輕風一陣來處
천연의 맑은 향기 풍겨오누나 / 浮動淸香自然
나지막한 둑의 대숲〔短塢竹陰〕
푸른 대숲 흔들리는 시원한 저녁 / 綠猗色動晩涼
솔솔 부는 바람에 옅은 향기 실려오네 / 蕭瑟風吹細香
호젓한 창가에 그늘 덮여 좋더니 / 可愛幽窓陰密
다시 보니 지는 달에 그림자가 길구나 / 更看落月影長
개인 날 먼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遠村晴煙〕
먼 숲의 아스라한 마을에서 / 遠樹依依村落
한 줄기 연기 하늘하늘 맑은 하늘에 피어오르네 / 孤煙裊裊晴暉
한 가닥 연기 끌고 청산 위로 날아가는 / 拖去靑山一抹
한 쌍의 흰 새는 어디서 왔을까 / 何來白鳥雙飛
저녁 성곽의 희미한 노을〔晩郭殘霞〕
직녀(織女)가 노을로 비단을 짜서 / 天孫織霞成綺
아침 햇볕 쪼이려고 온폭 걸었다 / 全匹掛曝朝暾
저물녘에 탁자 위로 거둬갔는데 / 向晩收歸香案
성곽에 붉은 흔적 아직 남았네 / 赤城猶見餘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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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이놈 까치야〔嗔鵲〕
까치의 날개 매우 반짝이고 / 鵲羽甚鮮耀
날쌔게 날며 까악까악 우네 / 飛𦑁聲喳喳
하늘에서 울면 돌아오는 소식 있고 / 噪乾歸期占
나무에서 울면 기쁜 소식 있으니 / 鳴樹喜報誇
미운 부엉이에 대랴 / 寧似惡鴟鴞
더러운 까마귀와도 다르지 / 殊異唾烏鵶
하지만 사람에게 해로우니 / 然有害於人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 則我不汝嘉
행동은 한가로우니 못된 짓 잘 숨기고 / 行閑跡易潛
모습은 깨끗하나 욕심 외려 지나치네 / 貌㓗欲反奢
마당에서는 병아리를 해치고 / 庭磔養雞雛
밭에서는 호박을 쪼아먹으며 / 田啄種匏瓜
고기 훔치고 된장 채어 가 / 竊肉與攫豉
갖은 폐해 적지 않지만 / 種種弊弗些
약은데다 의심 많아 / 惟其莫猜疑
막을 길이 없어라 / 所以難禦遮
그중 가장 큰 골칫거리는 / 最是大患在
딱한 이 초가집이라네 / 哀此草爲家
가난한 사람은 만사가 어려워 / 貧人百事艱
해가 넘도록 새 지붕 이지 못하니 / 經年茅未加
물이 새고 흙이 떨어져 나가 / 滲漏土木溼
썩은 지붕에 굼벵이 생기지 / 腐爛生螬蛙
네놈이 먹을 것 찾느라 / 爾來求之食
쪼아대고 헤쳐대지 / 觜啄兼爪爬
배불리 먹으려 이리저리 다니고 / 貪得足頻移
쫓길까 두려워 울지도 않으며 / 畏逐口無譁
온 지붕 파헤쳐대니 / 撥掘遍屋上
곳곳마다 구멍이 뻥뻥 / 處處成凹窪
이음새마다 높낮이가 달라 / 畦畛劇高低
골짜기처럼 울퉁불퉁하여라 / 巖谷互谽谺
하늘에 큰 비바람이 일면 / 天乃大風雨
삼대처럼 줄줄 비가 새어 / 漏下勢如麻
방 안에는 풀과 버섯 자라고 / 房奧茁草菌
부엌엔 두꺼비가 새끼 치네 / 厨竈産蝦蟆
너 때문에 기울어져 / 因而至傾頹
들보와 기둥 속절없이 뒤틀렸다 / 棟柱空杈枒
하루아침에 집 잃고서 / 一朝忽失所
저 달팽이가 부럽구나 / 咄咄羡彼蝸
밤이 캄캄할 젠 도둑 들까 겁나고 / 夜黑戒偸盜
몸 노출되니 뱀에 물릴까 무서워라 / 身露㥘蟲蛇
원인을 따져보면 / 苟求所以然
네놈 탓 아니더냐 / 致此非若耶
천지가 만물을 생육할 때 / 天地育萬物
참으로 악독한 화의 싹이니 / 戾氣眞孽牙
해독은 물여우와 같고 / 毒害似蜮弩
흉포함은 귀차보다 심해라 / 凶鷙甚鬼車
내 네게 무슨 잘못 했길래 / 吾何負於汝
나의 삶을 망쳐놓느냐 / 而使壞生涯
무너뜨리는 게 어찌 이치리오 / 傾覆豈其理
묵묵히 생각하다 다시 장탄식하네 / 默念還長嗟
미운 건 이런 것만이 아니니 / 所惡非似是
모습과 행실 아주 달라 / 貌行有殊差
영조요 길조라는 이름 차지하고 / 占取靈吉名
겨울 나무에 앉아 정답게 우네 / 軟語坐寒楂
사람으로 말하자면 겉은 훤칠한데 / 譬如人脩㓗
속마음은 실제로 음흉하여 / 其中實憸邪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니 / 流害及無辜
헛된 명예요 참 아름다움 아니다 / 虛譽非眞姱
아이들아 잘 대해주지 말고 / 兒曹莫相饒
활로 쏘고 막대로 때리거라 / 弓彈更杖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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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계축년 설날2수 〔癸丑元曉 偶成鳳臺律○二首〕
우연히 봉대율(鳳臺律)로 짓다.
소양 적분약이여 이름이 찬란하니 / 昭陽赤奮著名稱
예로부터 영웅 고사 이 해에 있었지 / 自古賢豪是歲曾
왕우군 붓을 휘둘러 난정첩을 썼고 / 右軍揮灑高蘭稧
천하문장 두보가 두릉에서 태어났지 / 工部文章降杜陵
세월 흘러 계축년 몇 번이나 돌아왔나 / 周天回甲知今幾
천년 뒤의 오늘에도 징험할 수 있으리 / 異代千秋尙可徵
한스러워라 이 늙은이 늦게 태어나 / 只恨老夫生苦晩
새 월력 어루만지며 흐린 등불 대하네 / 手摩新曆對殘燈
이 내 나이 쉰에 또 세 해 / 行年半百又加三
설날 아침 앉았노라니 문득 부끄러워라 / 默坐元朝却自慚
향산은 고운 시로 물러남 생각했고 / 香山麗什思先退
동파는 봄 적삼을 강권으로 입었었지 / 坡老春衫強大談
성미 강직하고 재주 졸렬한 희황인이요 / 性剛才拙羲皇卧
머리 쇠고 얼굴 늙어 목석을 좋아했지 / 髮白顔蒼木石甘
늙고 병든 생애에 오직 흠뻑 취하니 / 衰病生涯惟爛醉
권문세가에만 유독 성은이 미칠쏘냐 / 朱門豈獨聖恩覃
왕희지(王羲之)가 〈난정서(蘭亭序)〉를 쓴 해와 두보(杜甫)가 태어난 해가 모두 계축년이다.백낙천(白樂天)의 시에 “쉰셋은 벼슬에서 물러나기에 좋은 나이”라는 구절이 있다.소식(蘇軾)의 시에 “흰 머리 늙은 얼굴의 쉰셋, 가족들이 억지로 보내는 바람에 봄 적삼을 입어보네.”라는 구절이 있다. 도연명의 글에 “인생 오십여 세에 성미는 강직하고 재주는 졸렬하여 세상과 어긋남이 많았다. 일찍이 북창 아래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복희 시대의 사람이라 생각했다.〔行年五十餘 性剛才拙 與物多忤 甞北窓下卧遇凉風 自謂羲皇上人〕”라는 말이 있다.
계축년 설날〔又記故事〕
삼원의 명절이라 이름 가장 걸맞으니 / 三元令節最宜名
옛 풍속 전해오며 태평시대 즐겼지 / 舊俗相傳樂太平
잣나무잎 산초꽃 넣은 남미주와 / 栢葉椒花藍尾酒
감황색에 푸른 빛 도는 가락엿 / 柑黃韭綠膠牙餳
도부는 은번의 아름다움과 기교 다투며 / 桃符巧闘銀幡艶
매예는 채승의 투명함을 유난히 질투하네 / 梅蘂偏猜彩勝明
대궐 안 경연에 놓인 수준의 술을 / 經席獸尊丹鳳闕
몇 사람이나 거머쥐었고 몇 사람이나 마셨나 / 幾人能奪幾人傾
계축년 설날〔又成一絶〕
거울 속에 비친 서리는 봄바람도 소용없으니 / 春風無那鏡中霜
마지막 남은 도소주 잔을 억지로 들어보네 / 強引廜㢝最後觴
마흔 해 전의 일이 어제 같으니 / 四十年前如昨日
설날이면 이 술을 늘 먼저 마셨지 / 此時此酒每先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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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단오 고사〔五月五日記故事〕
단오 또는 천중절이라 이름 내세웠지만 / 標名端午節天中
예로부터 이어온 풍속 우리와 다르다네 / 古昔相循俗異同
장명루로 비단 수놓아 금 고치 만들고 / 長命縷成金繭繒
병난 피하려 붉은 주머니 수놓아 찬다 / 辟兵繒繞綉囊紅
옷 하사 거울 진상은 당나라 유풍이고 / 賜衣進鏡傳唐制
떡 던지기 배 타기는 초나라 풍속이지 / 投粽競舟想楚風
구관조 혀를 잘라 말 잘하게 하고 / 剪鵒養他能語性
올빼미 국 끓여 흉한 징조 없애지 / 羹梟期以去凶功
온갖 실로 애호 만들어 은고 단장하며 / 艾花百索粧銀鼓
후방의 옥절구에서는 수궁을 찧네 / 玉臼後房搗守宮
효성은 조아에게 감동하여 묘비가 절묘하고 / 孝感曹娥黃絹妙
조짐은 송나라 승리 이루어 술동이 높아라 / 兆成宋捷綠樽崇
호공의 호로는 전문의 문호에 부끄럽고 / 胡公葫愧田文戶
왕봉의 아비는 진오의 조부에게 부끄러워라 / 王鳳父慚鎭惡翁
시로 고금 풍간한 데서 백낙천의 곧음 알겠고 / 詩諷古今知白直
글로 규계 아뢴 데서 구양수의 충정 보았네 / 帖伸規諫見歐忠
《상서》엔 소위의 마음 깊이 부쳤고 / 尙書深寓蘇威意
기이할사 이필은 홀로 몸을 바쳤다네 / 獨獻堪奇李泌躬
가절 하례 시를 올린 이는 부지런한 두보이고 / 賀節題封勤杜老
수작할 때 흠뻑 취한 이는 진공이니 가능하지 / 酬時酩酊可陳公
육일에 잡은 두꺼비를 어디다 쓸까 / 蟾蜍六日芝何用
승호의 남은 기세 콩마저 씩씩하네 / 蠅乕餘風豆亦雄
붉은 영기 복숭아 도장, 전서 부적 기궤하고 / 桃印赤靈符篆詭
오색의 안개 서린 천사여, 그림이 공교해라 / 天師瑞霧畫圖工
오색실 치렁치렁 양 팔에 두르고 / 雜絲條達縈雙臂
오색의 떡을 작은 활로 쏘네 / 五色粉團射小弓
벽옥 욕조에 난탕으로 새벽녘 목욕하고 / 翠釜蘭湯溫曉浴
옷소매에 풀을 담아 아침나절 겨루네 / 香襜草色闘朝叢
애인과 애호를 대문에 교차해 걸고 / 艾人艾乕門釵遍
창포호로 창포술을 허리띠에 차고 마시네 / 菖酒菖葫飮帶通
집집마다 각서는 고엽으로 떡을 싸고 / 角黍千家菰裹米
추교며 구자가 옥같이 통에 찰지네 / 錐茭九子玉黏筒
옻칠하여 화려하게 치장한 오리배가 빠르고 / 髹舷油綵鳧車疾
붉게 비단 무늬 수놓은 봉황부채 풍성하네 / 紅繡文綃鳳扇豐
모두가 귀신 쫓느라 생긴 풍습이니 / 摠爲辟邪成俗習
법령 세워 태평성세 이루려 함이 아니라네 / 非關懸灋致煕隆
오병은 덕으로 없앤단 말 누가 강구할까 / 五兵消德誰能講
천고에 끝없이 잘못 전하네 / 千古承訛竟莫窮
고사가 단지 고증을 도울 뿐이겠지만 / 故事只堪資檢攷
시 한 편으로 우선 아이들을 가르치네 / 一詩聊且詔兒童
단오 고사〔又記東俗〕 또 우리 풍속을 적었다.
그네는 예로부터 한식에 탔는데 / 鞦韆自古在寒食
우리 풍속엔 단오에 그네 타지 / 東俗天中乃設之
괴이하다 나라 다르면 풍속도 달라 / 怪底殊方風習別
관등도 대보름과 초파일이 다르지 / 張燈亦異上元時
단오 고사〔又記卽事〕 또 보는 대로 적었다.
오월 오일 좋은 명절 / 良節五月五
아이들은 창포 뜯어 / 兒童採菖蒲
잎을 달여 머리 감고 / 煮葉沐其髮
뿌리 잘라 머리에 꽂네 / 裁根揷其顱
촘촘한 마디에 가지 많으며 / 數節又多歧
복실복실 구슬이 매달렸네 / 端端塗以朱
문미에 무엇이 있는가 / 楣上何所有
붉은 글씨 부적이라네 / 神印赤字符
재앙 물리치고 오병 없애려 / 辟邪消五兵
굳이 줄풀로 떡을 쌀 것 있나 / 何必粽縈菰
시원한 버드나무 동산에서 / 陰陰槐柳園
그네는 사라졌다 나타났다가 / 鞦韆忽有無
남녀가 각각 짝을 지어 / 男女各相伴
내기를 하면서 한바탕 즐기네 / 去賭一塲娛
촉(數)의 음은 촉(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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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동지 고사〔冬至記故事〕
중동에 동지 있는 이치 알아야 하니 / 仲冬冬至理宜諳
지(至) 자의 유래에는 셋이 있다네 / 至義由來盖有三
양기 처음 생기고 음기가 북쪽에 지극하며 / 陽氣始生陰極北
봄기운 처음 움트고 해는 남지(南至)로 운행하네 / 春心初動日行南
황종의 율관이 맞아 뭇 율관이 기준 삼고 / 黃鍾律中羣源是
휘장 안에 재 날려 은밀히 절후가 이르렀네 / 緹幔灰飛密候堪
박이 다하고 복이 옴은 천도의 운행이요 / 剝盡復來常道届
태가 돌아오고 비가 감은 오묘한 섭리일세 / 泰回否往妙機函
아름다운 향초와 부드러운 여지가 제철을 만났고 / 芳芸柔荔時爭應
섣달 버들과 겨울 매화는 봄기운 한껏 부풀었네 / 臘柳寒梅意摠含
원구단에 음악 울려 북과 춤이 어울리고 / 樂奏圜丘諧鼓舞
보정 얻고 산가지 뽑아 앞날 헤아렸네 / 筴迎寶鼎費推探
청대에서 자세하게 운물을 기록하고 / 靑臺細細書雲物
황도는 점점 늘어 해 길이 헤아리네 / 黃道駸駸量日驂
신발 버선 올리는 집집마다 송축 소리 울리고 / 履襪千家騰頌禱
하례하는 만국의 백관, 설날 세배 반열 본받네 / 衣冠萬國效朝參
관문 닫고 나그네 막은 건 선왕의 제도이고 / 閉關息旅先王制
조상께 제사 올린다는 건 옛 현철 말씀이네 / 報本推源昔哲談
궁녀는 해 길이 헤아려 붉은 실을 더하고 / 紅線揆添宮掖女
공공의 아들을 팥죽 끓여 물리친다네 / 赤糜厭勝共工男
대궐에 횃불 밝히니 위의가 화려하고 / 火城鳳闕威儀飾
용등에 신선 그림 정신없이 구경했네 / 仙畫龍燈翫賞耽
온 도성 집집마다 한밤중 우레 울리고 / 萬戶千門雷半夜
대음 고요하고 현주 맑아 연못에 달빛 밝네 / 大音玄酒月澄潭
지렁이 구부리고 녹각 떨어져 잠긴 기운 따르고 / 結蚯解鹿隨潛氣
서리 맞은 학과 구름 속 기러기 먼 남기 띠었네 / 霜鶴雲鴻帶遠嵐
이치 밝혀 시를 짓는 것엔 주소가 뛰어나고 / 燭理發詩朱邵挺
술잔 들어 자식 칭찬함은 의숭에 부끄럽네 / 擧觴嘉子顗嵩慙
만물이 소생하여 고르게 발흥하고 / 昭蘇萬彙均興奮
팔방이 태평하여 모두 다 즐거워라 / 煕皥八方共樂湛
정위는 눈물 흘리며 붉은 붓 대하였고 / 廷尉淚垂丹筆對
동양은 은혜 많아 죄수들 풀어주었네 / 東陽仁洽黑縲覃
해 길어진다고 경사를 바침은 주한에서 유래했고 / 履長納慶由周漢
작은설이라 복을 맞이하여 조담께 축원하네 / 亞歲迎祥祝祖聃
유려한 문장으로 풍속 서술한 조식은 기뻐했고 / 儀述藻華曹子抃
술잔은 고향과 다르지만 두보는 취했어라 / 杯殊鄕國杜陵酣
끝났다가 다시 시작함은 하늘이 운행함이요 / 終而復始天惟斡
짧아졌다 길어짐은 이치가 본디 내재한 것이지 / 短乃爲長理自涵
바람 차서 바야흐로 얼어붙었다 말을 마오 / 觱發莫言方凍蟄
봄날 되면 농사 시작하는 것을 장차 보리라 / 陽春行看始耕蠶
조정에선 새해 달력 반사하고 / 堯階新化頒蓂莢
제주에선 감귤 공물 바쳐오네 / 夏篚遺儀貢橘柑
현달한 귀인과는 고락이 다르니 / 玉岸綉紋分苦樂
슬픔에 겨워 초당에 누워있노라 / 不勝惆悵卧茅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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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제석 고사〔除夕記故事〕
해는 자리 다하고 별자리 하늘 도니 / 日窮于次星回天
이제 새해를 맞고 묵은해 보내겠지 / 將迓新年餞舊年
구멍에 들어가는 뱀처럼 막을 수 없으니 / 無那壑蛇難繫尾
희화가 태양을 빨리 몰아가는 게 얄미워라 / 生憎羲馭太揚鞭
종소리 울리기 전에 금계 울까 두렵고 / 先鐘響畏金鷄唱
자정 되어 술잔에 분세주 따르니 서운하네 / 分歲杯愁綠蟻傳
소고 두드리면서 초라니 뽑아 구나하고 / 選侲驅儺鼗鼓際
부엌문에 술찌끼 바르고 조마를 붙였네 / 抹糟帖馬竈門邊
예의 갖춰 송년하되 형편대로 하고 / 禮遵餽別收隨勢
가는 세월 붙잡고자 잠 안 자고 지키네 / 愛欲縶維守不眠
다과와 강정 접시에 아이들 달려들고 / 餳果飣盤兒輩競
도소주는 새벽 되자 소년이 먼저 마셨네 / 屠蘇待曉少年先
진중에선 쌍륙 던지며 오백을 환호하고 / 秦遊賭博歡呼白
한나라에선 제비 감춘 손 맞추며 놀았네 / 漢戱藏彄鬪弄拳
폭죽 소리 벽력같아 악귀들 놀라게 하고 / 爆竹雷霆驚惡鬼
화로에 불 지펴 상서로운 연기 피어올랐네 / 燒盆暖熱靄祥煙
부엌에 등잔 밝혀 허모를 내쫓고 / 點燈厨戶消虛耗
겨릅대를 태워 들녘을 밝혔네 / 然炬麻䕸照野田
맘껏 재를 두드리며 재물 복을 빌고 / 如願打灰潛祝貨
돈 받지 않고 골목 누비며 바보 팔았네 / 賣癡繞巷不須錢
당나라 궁궐의 화촉은 선약을 굳힌 것이고 / 唐宮畫燭凝仙樂
수나라 전궁의 침향은 갑전을 태운 것일세 / 隋殿沈香熾甲煎
금박 입힌 그림에 신연이 오묘하고 / 金薄圖來神燕妙
붉은 인장 찍은 곳에 귀환이 선명하네 / 朱泥印處鬼丸鮮
매화꽃 새로 피니 풍광이 산뜻하고 / 梅迎新蘂風光稍
도부 새로 바꾸니 절물이 바뀌었네 / 桃換舊符節物遷
하룻밤에 나이 먹는 아이들은 기뻐하고 / 添齒一宵童喜甚
천리 먼 고향 생각하는 나그네는 처연하네 / 思鄕千里客悽然
양 잡고 장고 친 일은 정말로 즐겁겠지만 / 羊羔拊缶眞堪樂
술과 포로 시를 제사 지낸 일은 가련하구나 / 酒脯祭詩却可憐
외양간 말과 숲 까마귀는 저물녁에 날뛰고 / 櫪馬林鵶騰暮景
산초꽃과 잣잎 술이 잔치 자리에 난만하였네 / 椒花栢葉爛華筵
임금 송축한 조송은 술 올리길 먼저했고 / 祝君曹子先擎酒
벗 이별한 소식은 흐르는 냇물 슬퍼했네 / 別友蘇翁悵逝川
절기 바뀌어 얼굴 늙는 것 암암리에 재촉하고 / 氣改顔衰催暗裏
별 기울고 촛불 지는 것 술통 앞에서 보았네 / 斗斜燼落覘樽前
같고 다른 풍속 모두 기록하기 어려우나 / 異同風俗難幷記
슬프고 기쁜 마음은 각각 절로 끌린다네 / 憂樂人情各自牽
옛날부터 그믐밤을 이렇게 보내왔으니 / 終古光陰如許度
장난삼아 언 붓으로 시를 지어 보누나 / 戱拈凍筆遂成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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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입춘 고사〔立春記故事〕
한 해 끝나 공이 섣달에 완성되니 / 歲弊功成臘
하늘 맑고 북두성은 인방 가리키도다 / 天晴斗建寅
옥관의 갈대재가 절후에 가장 민감하니 / 琯葭候最密
옥촉의 절기가 다시 새롭구나 / 玉燭節還新
성대한 덕이 나무에 막 돌아와 / 盛德方回木
아름다운 절기는 입춘이로구나 / 佳辰是立春
동교에 나가 맞으라고 미리 태사가 아뢰면 / 東郊先太史
천자가 백관 거느리고 동교에 나가네 / 天子帥羣臣
어가에 푸른 깃발 꽂고서 봄을 맞고 / 鑾輅靑旂迓
선농단에 벽옥 모시고 제사 지내네 / 農壇翠璧禋
운교무 추느라 그림자 너울거리고 / 雲翹飄舞影
양곡가 부르느라 입술이 움직이네 / 陽曲弄歌唇
대본을 부지런히 몸소 권하니 / 大本勤躬勸
태화의 봄기운이 옴을 알겠어라 / 太和驗氣臻
채찍 휘둘러 흙소를 때리고 / 土牛環仗擊
비녀엔 비단 제비 나란히 얹었네 / 綵燕上釵均
항아리엔 삼해주 담고 / 甕裏謀三亥
소반엔 오신채 담겼네 / 盤中對五辛
어여뻐라 푸른 실은 묘한 솜씨이고 / 靑絲憐妙手
회상컨대 백옥쟁반 진귀한 것이었지 / 白玉想奇珍
흰 강정은 꽃보다 향기롭고 / 餠繭紅香割
푸른 생채는 맵고 가늘다 / 菜茸紫辣繽
잘 익은 술은 감귤주색으로 찬란하고 / 醱醅柑色燦
선물로 받은 어린 부추가 차려졌네 / 饋貺韭芽陳
한나라에선 관대서 내렸고 / 寬大漢書下
송나라에선 잠규첩 펼쳤네 / 箴規宋帖申
실로 경축과 은혜 행하던 덕정 따랐으니 / 實遵行慶惠
공경히 인정 베풂을 어이 소홀히 했으랴 / 寧忽布恭仁
제도 운용은 삼성에서 왔고 / 體運來三省
마음 깨끗이 씻어 팔방에 미쳤네 / 洗心曁八垠
어진 이 표창은 경술과 의리로 결정했고 / 彰賢經義斷
옥사를 행함엔 여러 억울함 풀어주었네 / 行獄衆寃伸
쌀쌀하게 꽃샘바람 불고 / 料峭東風起
따스하게 덕의가 순수해라 / 氤氳德意純
세워 꽂은 번승에는 오색비단 날리고 / 竪幡飄錦綵
하사한 노리개엔 금과 은이 찬란해라 / 賜勝耀金銀
귀한 춘첩자는 궐문에 늠름하고 / 寶字騰瓊殿
꽃가지는 구중궁궐에서 나왔도다 / 花枝出紫宸
궁중에선 시 짓기 재촉하고 / 賦詩催禁院
귀가해선 잠신을 자랑했네 / 歸第詑簪紳
하창은 유리를 파견했고 / 何敞伻儒吏
조송은 월나라 사람 노래했네 / 曹松詠越人
망아를 동헌 마루에 놓은 건 참언이 되었고 / 芒兒廳作讖
허합의 시구는 귀신 같았지 / 虛閤句如神
거울 보며 양정수는 취하기를 꾀했고 / 看鏡楊謀醉
매화 그리며 두보는 가절을 느꼈었지 / 憶梅杜感辰
오늘에 와서 속절없이 상상해보노니 / 卽今徒想像
지난날 고사는 옛 자취 되었구나 / 往昔已前塵
당 황제의 법도는 역사에 빛나고 / 唐帝儀光史
동파의 시구는 빼어나기 짝이 없네 / 坡翁句絶倫
은혜의 물결 속 성세를 노래하노니 / 恩波歌聖世
다행히 태평시대의 백성 되었구나 / 幸作太平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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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설날〔元日〕
앞에 단율로 고사를 적었으나, 다시 장률로 부연한다.
새해가 훌쩍 오고 묵은 해 바뀌어 / 新歲倐來舊歲飜
삼조 삼삭이라 또한 삼원이라네 / 三朝三朔亦三元
뜨는 해에 예를 행한 순 임금 의례 성대하고 / 禮行上日虞儀盛
좋은 날에 마음 씻은 한나라 조서 따뜻해라 / 心洗嘉辰漢詔溫
때 맞춰 백성 기르느라 선왕들이 힘썼고 / 育物對時先后務
재앙 쫓고 복 맞이하는 민간 풍속 많아라 / 禳凶迎吉俗方繁
도삭산에서 호랑이를 기르는 신도와 울루를 만들어 세우고 / 度山飼虎羅荼壘
집집마다 복숭아 부적 만들어 꽂고 닭을 그려 대문에 붙였네 / 桃梗畫雞遍戶門
산조는 폭죽 소리에 놀라 자취 감추고 / 迹遁山臊驚爆竹
등잔은 밤새 꺼지지 않아 허모를 비추네 / 火燃虛耗繼燒盆
꿈에 나타난 종규는 은혜에 감사해서이고 / 鍾馗夢寐應啣感
화장실엔 여원이란 귀신 정말 있을까 / 如願糞堆倘有魂
산초화는 노래 따라 맑은 기운 맞이하고 / 逐頌椒花延淑氣
측백잎은 명을 따라 처음 뜨는 해 비추네 / 隨銘栢葉照初暾
도소주 나중에 마시니 노년이 한탄스럽고 / 屠蘇後飮衰年歎
갈대 노끈 먼저 거느라 아이들 시끄럽네 / 葦索先懸少輩喧
민가에선 공손히 받쳐온 채승이 이쁘고 / 村禮擎來看綵勝
궁궐에선 오려 만든 은번이 아름다워라 / 宮花剪出笑銀幡
한 접시 가락엿 자못 오묘하고 / 膠牙一楪餳頗妙
세 잔의 남미주 탁하지 않네 / 藍尾三杯酒不渾
장락궁에선 첫 의식으로 신년하례 올리고 / 長樂初儀肇慶賀
개봉부에선 새로 제작한 궁건을 시험했네 / 開封新制試弓鞬
줄타기 하고 안개 뿜으며 어룡놀이 펼쳤고 / 舞繩漱霧魚龍戱
패옥 울리며 관모 높이 쓴 진신들 달려왔네 / 鳴佩峩冠鵷鷺奔
의문 나는 건 실로 깊은 의리 찾게 하고 / 疑難實令探奧義
연회에서도 반드시 충언으로 이끌었으니 / 宴歡猶必導忠言
박통한 사람이야 단리석을 독차지했거니와 / 博通獨奪丹螭席
강직한 직신 그 누구라 백수준을 열 것인가 / 鯁直誰開白獸樽
양운은 하늘 우러러 질장구 두드렸고 / 楊惲仰天缶自拊
난파는 불을 끄려 술을 멀리 뿜었다네 / 欒巴救火酒遙噴
반악의 〈적전부〉는 가사가 얼마나 화려했던가 / 籍田奏頌詞何贍
톱밥을 관청에 뿌리니 일이 불편하지 않았네 / 木屑布廳事不煩
원후와 진함은 그 마음 알 수 있고 / 元后陳咸心可質
유가와 조세는 죄를 논해 마땅하였네 / 劉嘉趙世罪宜論
임치현에 감옥 열자 조터를 성인이라 칭송하고 / 犴開淄縣曹稱聖
한단에서 비둘기 바치자 조간자가 은혜 보였네 / 鳩獻邯鄲簡示恩
웅원은 능히 대교를 더럽힐까 걱정했고 / 熊遠能憂塵大敎
진규는 다만 진원을 바로잡고자 하였네 / 陳逵殊欲正眞源
누린내에 잔치 파하여 중국을 부끄럽게 했고 / 腥羶罷燕羞中國
금매가 조정에 연주되어 지존을 즐겁게 했네 / 僸佅趍庭樂至尊
세 번 올린 축수주 만세는 하정례에 드높고 / 壽酒三聲騰盛禮
십 리에 걸친 불야성은 높은 누각을 감쌌네 / 火城十里擁高軒
감옥 함께한 이두는 어린 사람부터 마셨고 / 獄同李杜盃從小
시를 사양한 백류는 우의가 돈독했네 / 詩讓白劉誼有敦
안정의 오신반은 절물을 차린 것이고 / 安定五辛酬節物
맹견의 〈동도부〉는 천지에 뛰어났네 / 孟堅一賦揭乾坤
따스한 새해의 햇빛 아래 새 부적을 꽂고 / 新符摠映曈曈日
적적한 마을에서 시름겨운 시 많이 읊었네 / 愁詠偏生寂寂村
두보는 떠돌며 세색을 슬퍼하였고 / 杜老飄零悲歲色
매성유의 수창은 예단에 울려퍼졌네 / 梅翁酬唱響詞垣
밝게 퍼지는 봄볕이 처음 떠오르는 게 어여쁘고 / 靑陽輝散憐初建
몹시 추운 초가집에 따스한 봄볕이 반갑구나 / 白屋寒多喜稍暄
말을 보내어 복을 맞는 이웃 풍속 아름답고 / 語送延祥鄰俗好
술을 마시며 재액 막는 옛 풍속 남았구나 / 醪斟辟惡古風存
늙은 나는 신수점 치는 법 배우지 못했나니 / 老夫未學前知術
물어보자 올해에는 풍파가 또 몇 번일는지 / 今歲風波問幾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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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인일 고사〔人日記故事〕
정월 초이레가 인일이니 / 月正七日是人日
새해 들어 이 날이 가장 좋은 날 / 歲後玆辰最令辰
비 긏고 구름 걷혀 바람 솔솔 불며 / 收雨綻雲風習習
양기 넘쳐 얼음 녹아 물결 찰랑이네 / 浮陽披凍水粼粼
버들가지 물 오르고 꾀꼬린 눈을 꺼리며 / 柳條弄色鸎嫌雪
매화꽃은 향기 날리고 새는 봄을 알리네 / 梅蘂飄香鳥報春
금박에 새겨 채승을 만드는 형초 지방의 풍습 아직 전해지고 / 荊俗尙傳金鏤勝
비단 오려 인형 만드는 진나라 풍속은 누가 기억할까 / 晉風誰記綵爲人
정초에 닭을 그려 문에 붙이는 일은 옛날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겠거니와 / 畫門朔日知先始
인일 아침 휘장에 인형 만들어 붙이는 건 정히 유래가 있어라 / 貼帳今朝定有因
백엽주가 술동이 따라 계절 바뀜에 놀라고 / 栢葉隨樽驚節物
은번 꽂고 집으로 돌아감은 대신들 총애해서지 / 銀幡歸第寵簪紳
고귀한 가문에선 면견 만들어 먹으며 천백의 관직을 점치고 / 高門造繭千官卜
섬섬옥수로 만들어 보내온 나물국에는 일곱 가지 봄나물 새롭네 / 纖手傳羹七種新
백수(白水)와 자암산(紫巖山)에서 인일 만나 노쇠함을 슬퍼했고 / 白水紫山悲濩落
궤갑 속의 거문고 연주하고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불울함을 토설했네 / 匣琴佩劒洩輪囷
위징은 뜻이 맞아 두터운 은혜 입었고 / 魏徵託契恩褒重
고적이 시를 짓자 시구가 신묘하였네 / 高適題詩句語神
한 무제 딸 수양 공주는 아리땁게 매화 화장을 하였고 / 姸取梅粧帝女壽
유진(劉臻)의 처 진씨는 솜씨 좋게 인형 만들어 올렸지 / 巧餘椒頌臻妻陳
높은 곳에 올라 술 마시며 한가한 정취를 읊조렸고 / 登高斟蟻吟閑趣
나물을 삶아 소를 몰고 가는 늙은이 몸이 취했어라 / 煑菜鞭牛醉老身
두보의 시에 《춘추》 필법 있다는 것을 유극(劉克)이 잘 알았고 / 筆繼春秋劉會意
꽃과 기러기에 그리움 깊어져 설도형(薛道衡)이 눈물을 적셨네 / 思深花鴈薛沾巾
동훈은 예속을 물으며 담소하였거니와 / 董勛禮俗相談笑
동방삭의 점서는 누가 직접 보았나 / 方朔占書孰見親
강호에서 봉두난발로 흥을 일으키지 말지니 / 蓬鬢江湖休引興
포부 지닌 채 속세에서 늙는 것을 상심하네 / 自傷書劒老風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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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일식시〔日食詩〕
성상께서 즉위하신 지 스무 해 / 今上卽阼二十年
세차 을묘년 / 旃蒙其干單閼支
정월 초하루 갑신일 / 月正元日維甲申
아! 이날에 일식이 일어났네 / 噫吁嗟日有食之
묘방(卯方)에서 시작하여 사방(巳方)에서 마쳤으니 / 食之自卯至巳旣
이날 이 변고는 무슨 연유인가 / 此日此變繄奚爲
하늘은 일대의 존귀함이요 / 天乃一大尊
해는 태양의 정화로다 / 日是太陽精
밝고 혁혁하여 비추지 않는 곳 없이 / 煥煥赫赫無不照
만고에 영원히 황도를 운행하네 / 萬古長御黃道行
이 때문에 임금의 상에 비유되니 / 所以喩之於君象
차고 기욺이 있는 밤의 달과 다르네 / 不似夜月有虧盈
그 밝음 사람들 모두 우러르니 / 其明人皆仰
그 존귀함 누가 감히 대적할까 / 其尊孰敢抗
서산으로 지는 것만도 외려 슬픈데 / 落于西山猶惆悵
구름에 가려지는 것은 더욱 분개스러워라 / 蔽以浮雲尙憤怏
더구나 침범하여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 何况凌剋而薄蝕
지극히 둥근 것을 이지러뜨리고 / 使夫至圓者殘缺
지극히 밝은 것을 검게 만드니 / 至明者晦墨
도끼로 통렬히 깎아내지 않으면 / 得非斧斤怒斫劈
벌레가 모조리 갉아먹지나 않을까 / 無乃蟲獸饞呑食
뜻밖에 태청에 괴이한 일 발생하였거늘 / 不意太淸怪事發
상제께선 어이하여 침묵하고 계시는가 / 上帝胡爲仍寂默
해는 하늘의 눈동자이니 / 日爲天眼睛
흐려지면 소경이 되네 / 昏瞖成瞽盲
해는 하늘의 정신이니 / 日爲天精神
어두워지면 청신함을 잃는다네 / 晦昧失淸新
옛날 옥천자는 월식시를 지어 / 昔玉川子作月蝕詩
단검으로 요사한 두꺼비의 어리석음을 도려내려 하였지만 / 寸鐵欲刳妖蟇癡
이 일식의 죄는 원흉을 핵실하지 않았으니 / 此日而微覈罪魁
일식 원흉 단죄할 이 누구일지 알 수 없네 / 不知還是誰
풍륭 병예 열결 비렴이 / 豐隆屛翳列缺飛廉
모두 귀를 막고 마치 생각이 없는 듯 / 都帖耳若無思
창룡 화조 확호 한귀가 / 蒼龍火鳥攫乕寒龜
저마다 눈 감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체 했네 / 各閉目如不知
오성과 이십팔수가 빙 둘러 있으면서도 / 五星二十八宿森環羅
하늘을 위해 하나의 힘을 쓴 적도 하나의 계책을 낸 적도 없네 / 曾不爲天出一力發一奇
저들이야 제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다한들 / 縱彼輩不事事
어찌하여 조서를 내려 달려가게 하지 않고 / 胡不下詔令奔馳
아! 하늘의 위엄으로 / 嗟乎以天威
공연히 앉아서 기만을 당하는가 / 公然坐受欺
더구나 이 삼시의 아침은 / 矧玆三始朝
일 년 열두 달 삼백예순 날의 맨 처음을 차지하고 있어 / 最居一年十二朔三百六旬之首
나라에서 경하 행하고 백성들 새해 즐김이 / 國行慶賀民樂新
어제도 내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이거늘 / 于斯時不自先不自後
태양에 이러한 큰 낭패가 생겼으니 / 至神有此大狼狽
몹시 애달프고도 크게 불길하도다 / 亦孔之哀亦孔醜
이 때문에 옛 사람이 조와 측닉 논하여 / 肆昔人因論脁側匿
이로써 죄를 삼아 허물을 징계하였지 / 以此爲尤徵厥咎
공광은 육려의 변고 대답하면서 / 孔光對言六沴變
“응험이 지극히 중하여 삼조에 일식이 나타났습니다.” 하였고 / 其應至重三朝見
부필은 부끄러워 왕정의 수치로 여겨 / 富弼恥爲王廷羞
정월 초하루 조회에서 홀을 들고 연회 파할 것을 청하였네 / 正會抗笏請罷燕
나는 듣건대 해와 달이 바른 궤도 가지 않으면 / 我聞日月不用行
정상 궤도 운행해도 정상이 아니라 하였네 / 雖有常度亦非常
음이 성하고 양이 쇠미해 달이 해를 덮은 것이니 / 陰盛陽微月揜日
상세히 말하고자 하면 말이 길어지네 / 所可詳也言之長
일식이 될 때를 당해 일식이 되지 않는 것도 아득하여 추측하기 어렵거니와 / 當食不食邈難追
일식이 될 때를 당해 어김없이 일식이 되는 것도 도리어 가슴 아프네 / 當食必食還可傷
춘추 시대 이백사십 년 동안 / 春秋二百四十二年
일식 겨우 서른여섯 번 일어났는데 / 纔食三十六
당나라 이백구십 년 동안 / 唐二百九十年
백여 회나 이르도록 일식 일어났네 / 乃至百餘食
시대가 내려올수록 일식이 잦으니 / 世代愈降食愈數
고금의 궤도를 헤아려보건대 / 度道古今
어찌 남북이 다르랴 / 何曾異南北
남자의 가르침 닦여지지 않아 양의 일이 어그러진 것이니 / 男敎不脩陽事虧
영향이 밝디 밝게 모훈에 남아 있네 / 影響昭昭謨訓垂
시월 신묘일에 황보는 성스럽다 여겼으나 / 十月辛卯皇父聖
별이 방수(房宿)에 조화롭지 않았으니 희화가 하는 일 없이 관직만 차지하고 있은 것이네 / 辰弗集房羲和尸
선왕이 부득이 구제하고 / 先王不得已而救之
또 상위에 게시하여 뒷날을 경계하였네 / 又懸象魏誅後時
정씨는 활과 화살 맡고 고인은 북을 치며 / 庭氏弓矢鼓人鼓
악사는 북 치고 서인은 분주하며 색부는 달렸네 / 瞽奏庶走嗇夫馳
음악을 걷고 성찬을 먹지 않으며 소복 입고 정전을 피하며 / 去樂不擧素服避
축관은 폐백을 올리고 사관은 말을 올렸네 / 祝則用幣史用辭
육관의 직책을 닦아 천하의 양(陽)의 일을 깨끗이 소탕하고 / 職修六官蕩天下
오병과 오휘를 진열해 놓는다 / 陳置五兵與五麾
위나라의 재앙이 크니 노나라의 재앙이 작으니 라고 한 말 어찌 논할 것 있으랴 / 衛大魯小何足論
재신은 “홍수가 들 것이다” 하고 소자는 “가뭄이 들 것이다” 한 말 모두 의심스러워라 / 梓水昭旱摠可疑
뒷날 진나라 사관(史官)이 한나라 의례 서술하면서 / 後來晉史述漢儀
일식 들면 양 잡아 사직에 제사하고 붉은 실로 끈을 꼬아 사직에 매어단다 하였지 / 割羊祠社繩赤絲
기린이 싸워 일식이 일어났다는 제해의 이야기 누가 증명할 수 있을까 / 麟闘誰徵齊諧說
까마귀가 게으름 피워 일식이 일어났다고 한 시인의 노래 부질없네 / 鴉慵浪費詩翁詞
매성유가 세 배 상심했다는 것은 한갓 말만 그렇게 한 것일 뿐이요 / 梅傷三倍徒爲爾
노식이 여덟 가지 일 진달한 것도 끝내 무슨 도움 되었나 / 盧陳八事竟何裨
총명한 손자를 둔 황경이 부럽고 / 有兒慧悟羡黃瓊
아첨하여 기도를 청한 허지가 우습구나 / 請禱諛佞笑許芝
정흥과 정홍이 크게 나무랐고 / 鄭興丁鴻多譏切
양해와 지우가 각각 규계하였네 / 襄楷摯虞各箴規
일식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지만 / 此事來由雖未詳
대체로 예로부터 불길하다 하였네 / 大抵自古云不臧
하늘이 총명하고 인자하시니 / 上天聦明而仁慈
현상 드리워 인간에 보여줌이 어찌 그리 밝은지 / 垂象示人何章章
만약 두려워하여 재앙을 미연에 막고 없애는 데에 힘을 먼저 쏟지 않는다면 / 苟不畏懼急塞除
조서 내리듯 경고한 꾸지람을 어디다 쓰리오 / 安用譴告若詔語
그러나 혹 응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 然或有應有不應
이 이치 아득하여 증거할 수 없어라 / 此理茫昧不可據
아! 융성했던 송나라 인종의 치세에도 / 粤宋盛時有若仁宗世
정초 아침에 일식이 거듭 발생하였으니 / 元朝日食荐在
모두 강정 황우 가우의 성세이고 / 康定皇祐嘉祐際
또한 유도를 숭상하던 저 이종의 / 亦粤理宗崇儒道
순우 연간의 정조에도 해가 가려졌었네 / 淳祐正朝亦蒙翳
오늘 나는 다행히 천제일우의 회합을 만났는데 / 今我幸値千一會
어이하여 다시 음려를 만난 것을 보는가? / 胡爲復見遭陰沴
기억건대 병오년에도 이와 같은 일 있었으니 / 憶在丙午亦如此
어찌 성세에 도리어 이런 일 일어난단 말인가 / 豈以聖世乃反爾
하늘 보며 분개하고 땅을 굽어 탄식하노니 / 仰頭憤憤俯歎息
어이하면 구만리 신선 사다리 얻을 수 있을까 / 安得丹梯九萬里
내 옥황상제에게 물어 / 我欲問天公
가슴 속 의심을 시원히 씻고 싶네 / 一洗胷中疑
또 몽롱한 저 괴물을 찢어 죽여 / 朦朧又欲磔怪物
금륜을 영원히 하늘 중앙에 있게 하고 싶지만 / 長使金輪當天中
아, 나는 인간의 육신이라 날개가 없어 / 唶我血肉身無羽翼
한갓 충정을 바치고픈 한 점 어리석은 정성만 있을 뿐 / 徒有一點癡誠所欲忠
이 일을 어이 할 수 없으며 / 是事無奈何
이 마음을 다 할 수 없으니 / 是心不可窮
붓을 잡고 일식시 지어 / 援觚作此詩
임금 걱정하는 내 진심을 펴노라 / 聊抒憂思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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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월식시〔月食詩〕
초하루에 일식 들더니 / 正朝日有食
대보름에 또 월식 들었네 / 上元月又食
정월 초하루 / 正朝新年第一日
상원 대보름 / 上元新年初滿月
이 중요한 때에 / 于斯之時
어이하여 번갈아 어두워졌나 / 胡迭而微
육려가 조와 측닉뿐 아니니 / 六沴不特脁側匿
바퀴 부러뜨리고 벽옥 부수어 밝음을 해치네 / 摧輪破璧夷明暉
푸른 유리 위에 흑수정이 / 靑玻瓈上黑水精
괴이하게도 공연히 나를 놀라게 하네 / 怪事公然使我驚
해와 달은 사람에게 두 눈과 같으니 / 兩曜在人如兩眼
밝은 눈동자가 갑자기 장님 되는 것과 무어 다르랴 / 何異明瞳忽成盲
노동이 옛날 〈월식시〉 지었는데 / 盧仝昔作月蝕詩
뒷날 한퇴지가 본받아 지었지 / 後來效之有退之
당시 분개하여 눈물 흘리면서 / 當時憤憤涕泗下
마음 속 한 치의 칼로 지체 없이 두꺼비 창자 갈라야 했거늘 / 心鐵刳蟇曾不遲
“다시는 천만년토록 어두워지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노래만 하고 말았으니 / 謂言更不瞽萬萬古
이 뜻이 진실로 어리석도다 / 此意誠亦癡
노동이 죽은 지 지금 천년 세월에 / 仝死今千載
몇 번이나 하릴없이 속임 당했는지 알 수 없어라 / 不知幾番坐受欺
매성유는 보필하고 구제하려는 그 마음 귀하게 여겨 / 聖兪頗重補救情
전병 부치는 아내와 거울 두드리는 아이를 시에서 노래했지 / 煎餠之婦敲鏡兒
일찍이 듣건대 옛 역법에 / 甞聞古曆式
달이 해를 덮으면 일식이 든다하였지 / 月亢日則蝕
암허가 언제나 서로 딱 비추니 / 闇虛正相射
이는 일정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 斯盖有恒則
그러므로 《춘추》에서 일식은 기록했지만 / 故日食書魯史
월식은 기록하지 않았고 / 在月則無紀
〈소아〉에선 일식의 불길함 경계했으나 / 雅詩戒不臧
저 월식은 오직 평상적인 것이라 하였지 / 彼月維其常
그렇지만 밝아야 할 물건이 밝음을 잃었으니 / 雖然當明失其明
궤도를 벗어난 것이기는 마찬가지라네 / 均爲不用行
다만 월식은 양이 음을 침범한 것이니 / 但此陽侵陰
음이 양을 이긴 일식보다 그나마 나을 뿐 / 猶勝陰勝陽
기억건대 지난해 대보름 밤 / 却憶去年上元宵
월식이 시작되어 아침까지 이르렀지 / 食之旣至于朝
당시 나는 종정시에 근무하며 / 是時我在宗正寺
조복 입고 밖에 앉아 동료들 불렀지 / 朝服露坐招同僚
두 고수가 마주 서서 번갈아 징을 치고 / 兩瞽相對迭擊鉦
놋쇠 동이에 물 담고 다투어 깃발 휘둘렀지 / 鍮盆盛水戟飄㫌
고사를 어찌 한갓 관례로만 따를까 / 故事豈敢徒循例
충정은 미천한 정성 간절했네 / 赤心耿耿蟣蝨誠
올해 병석에서 이 변고 듣고서 / 今年病卧聞此變
나도 몰래 서너 번 장탄식 쏟았네 / 不覺長歎數三聲
어이하면 영원히 달이 해를 피해 / 安得長使月避日
더 이상 재앙이 오지 않게 할까나 / 更無災眚敢來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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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4책 / 시(詩) / 윤기(尹愭)
만경재 십경〔萬景齋十景〕
일대의 철옹성이 도성에 웅건하니 / 金城一帶壯長安
흰 성가퀴 화려한 망루가 널따랗게 자리했네 / 粉堞麗譙占地寬
누가 천만 길의 화려한 병풍 가져다 / 誰把畫屛千萬丈
집 앞에 펼쳐놓아 감상하게 하였나 / 擺開當戶使人看
위는 일대의 흰 성가퀴이다.〔右一帶粉堞〕
즐비한 기와집 사이로 간간이 초가집 / 碧瓦參差間白茅
온 성에 그득하고 들녘까지 이어졌네 / 環城撲地亘平郊
아지랑이와 봄볕에 아름다운 기운 많아 / 遊絲白日多佳氣
눈길 가득 문장 이룬 것이 수많은 효상과 같아라 / 滿眼成文似衆爻
위는 끝없이 이어진 인가이다.〔右極目人家〕
삼산이 우뚝 섰으니 뜻이 어떠한가 / 三山特立意如何
아름다운 기운에 수려한 색까지 겸했네 / 佳氣兼將秀色多
그중 최고는 비 개고 구름 걷힌 곳에 / 最是雨收雲捲處
파란 하늘 씻겨 나오고 푸른 산 우뚝한 것 / 靑天洗出碧嵯峩
위는 하늘 밖 삼산이다.〔右天外三山〕
성 머리에 잡목들이 뿌리내리지 못해 / 雜樹城頭摠不根
형형색색이 아침저녁으로 모습 다르네 / 形形色色異朝昏
가련하다 사물 이치 참으로 이러하니 / 可憐物理眞如許
높은 곳은 듬성하고 낮은 곳은 번잡하네 / 高處偏疏下處繁
위는 성곽 가의 여러 나무이다.〔右城上衆樹〕
층층의 성곽이 천만 소나무의 우듬지 사이로 가려졌다 보였다가 하니 / 層城隱見萬松巓
대궐 마주한 남산은 수성의 자리에 대응하네 / 對闕南山應壽躔
매일 저녁 밝은 봉홧불 서너 점 피어오르니 / 每夕明烽三四點
낭연 끊겨 변경 안녕한 줄을 앉아서 아노라 / 坐占邊警絶狼煙
위는 종남산의 저녁 봉화이다.〔右終南夕烽〕
비 지나고 하늘 개어 산빛이 짙은데 / 雨過天晴山色森
아침의 이내가 마음을 상쾌하게 하네 / 朝來嵐氣爽人心
빼어난 봉우리 본디 지극히 맑고 높아 / 秀峯自是淸高極
도성의 속된 먼지 감히 침범 못하네 / 紫陌紅塵不敢侵
위는 인왕산의 아침 이내이다.〔右仁王朝嵐〕
뾰족한 화악 봉우리 그림 같으니 / 華嶽峯尖似畫圖
솔숲 울창하고 바위는 울퉁불퉁하네 / 松林蒼鬱石容癯
돌올한 정신에 정중한 기상 / 突兀精神端重象
만년토록 왕성의 진산이 되기에 마땅하네 / 萬年宜爾鎭王都
위는 우뚝 솟은 백악이다.〔右白嶽特立〕
낙산 동쪽 푸른 하늘로 눈길 보내니 / 靑天送目駱岑東
아득한 안개 속에 빼어난 다섯 봉우리 / 秀出五峯杳靄中
아마 조화옹이 장난을 좋아하여 / 料得化兒多戱劇
먼 허공에 신선 손바닥 벌여놓은 것이리 / 杈開仙掌倚遙空
위는 도봉의 빼어난 다섯 봉우리이다.〔右道峯五秀〕
넓은 하늘 먼 새가 한가롭기 그지없이 / 天長鳥遠不勝閑
석양을 가로질러 푸른 산으로 향하네 / 橫帶斜陽向碧山
어떡하면 고상한 팽택 영처럼 / 焉得高如彭澤令
봉우리의 구름과 날아가는 새 함께 볼까 / 共觀雲峀倦飛還
위는 낙산의 돌아가는 새이다.〔右駱山歸鳥〕
둥그재에 오르면 사방이 다 보이니 / 圓嶠登臨四望通
온 도성 행락객들 약속하지 않고도 다 모였네 / 傾城遊客不謀同
삼삼오오 짝지어 모인 사람들 / 三三五五相携處
시인도 있고 취옹도 있네 / 也有詩人有醉翁
위는 원교의 행락객이다.〔右圓嶠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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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4책 / 시(詩) / 윤기(尹愭)
꺼림〔物忌〕
사물은 지극히 빼어난 걸 꺼리고 / 物忌極秀異
말은 지나치게 고상한 걸 꺼린다 / 言諱太高爽
고고한 건 반드시 꺾이고 / 嶢嶢必缺折
새하얀 건 때 묻기 쉽다 / 皦皦易塵坱
단샘이 먼저 마르고 / 甘井應先竭
쓴 오얏이 오래 남는다 / 苦李誰爭往
이런 까닭에 군자의 도는 / 所以君子道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네 / 不欲以身上
문을 닫고 있어도 좋다는 맹자의 가르침이 적실하고 / 閉戶鄒訓的
격의 없이 어울리라는 노자의 말이 시원하네 / 爭席周言盪
변방에선 부러진 다리를 노래했고 / 北塞歌折髀
마구에선 병든 말을 뽑아 탔네 / 中廐騰病顙
달리는 사향노루가 배꼽을 물어뜯을 수 있으랴 / 走麝能噬臍
고고한 학은 스스로 깃을 뽑아버리는 법 / 高鶴自拔氅
우스워라 물고기와 새들이여 / 下笑衆魚鳥
분분히 낚시와 그물에 걸려드네 / 紛紛投釣網
지인은 이름을 쓰지 않고 / 至人不用名
어리석음 지키며 스스로 수양하네 / 守黑以自養
은총과 치욕은 단서가 없고 / 寵辱無端倪
길함과 흉함은 참으로 그림자와 메아리 같네 / 吉凶眞影響
명철보신은 내 스스로 지키는 것이거니와 / 明哲我自蹈
돌고 도는 운명은 하늘이 실로 주관하지 / 轇轕天實掌
속된 객에겐 말해주기 어려우니 / 難與俗客道
바보 같은 생각 따윈 하지 말지니라 / 休作癡人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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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 윤기(尹愭)
타파가〔打破歌〕
어느 때나 이 돈이란 글자를 깨뜨릴까 / 何時打破這錢字
어느 때나 이 청탁이란 글자를 깨뜨릴까 / 何時打破這請字
다만 오늘날 돈과 청탁으로 말미암아 / 只緣今日錢與請
나라 법도가 거꾸러져 무너지게 하였네 / 致令國法倒而墜
까마귀를 희다하고 백로를 검다하고 / 謂鴉爲白鷺爲黑
백이를 더럽다하고 도척을 의롭다 하며 / 謂夷爲溷跖爲義
법조문을 농간하여 사리가 어긋나도 돌아보지 않고 / 舞文不顧舛事理
총애를 가려 사기를 자행함을 몰래 기뻐하네 / 蔽聦暗喜恣詐僞
윤리가 멸절되니 무엇을 더 논하랴 / 彝倫斁絶更何論
의리가 어두워져 모두 꺼리는 바 없네 / 義理晦盲渾無忌
공공연히 백주대낮에 뇌물이 돌아다니니 / 公然白日走靑銅
소인들 고무되고 군자는 탄식하네 / 小人鼓舞君子喟
인심과 세도가 날로 쇠퇴하는데 / 人心世道日陵夷
소곤소곤 약삭빠르게 오직 이익만 탐하네 / 呫囁緝翩惟曰利
왕가의 법도는 다시 쓸 데가 없고 / 王家法度更無用
성인의 가르침도 이미 씻은 듯하니 / 聖人名敎已掃地
조정으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 達于庶人自朝廷
한결같이 모두 사욕만 따르네 / 壹是皆以循私意
사람마다 본받다가 또 서로 시기하고 / 人人相效又相猜
일마다 미치광이에 또 주정뱅이 같네 / 事事如狂復如醉
서리배의 농간이야 무에 책망하랴 / 吏胥弄奸何足責
비복들의 거짓말도 이상할 것 없네 / 婢僕行詐亦不異
백성들 하릴없이 원통함만 품으니 / 黎民謾自懷冤枉
성군인들 무슨 수로 지극한 다스림 이루랴 / 聖君何由成至治
순환하고 왕복함은 옛날부터의 도리인데 / 循環往復古有理
어그러지고 뒤집힘은 오늘날 더욱 방자하네 / 繆戾顚錯今益肆
궁극에 이르면 변하고 변하면 통창하니 / 窮則必變變則通
상천께서 인류를 굽어보아 주셨으면 / 倘蒙上天眷人類
아, 상천께서 인류를 굽어보아 주셨으면 / 嗚呼倘蒙上天眷人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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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 윤기(尹愭)
낙빈가〔樂貧歌〕
나는 본래 덕이 없고 재주도 없어서 / 我本無德又無才
칠십 세 되도록 초야에서 지냈네 / 行年七十甘草萊
이 몸은 태평성대의 버려진 물건 되어 / 自分聖世爲棄物
뜻과 기개 날로 쇠하는 것만 한탄했네 / 只恨志氣日衰頹
성격은 몹시 곧아 싫어하는 사람 많고 / 有性頗直人多厭
병이 들어 치료하려해도 집에 재물이 없네 / 有病欲醫家無財
다만 태평 시대에 태어나 늙어 / 但幸生老太平代
일신이 한가로이 보낸 것 다행이었네 / 一身優閒得自在
뱁새가 가지 하나에 만족함을 늘 생각했고 / 常思鷦鷯安一枝
원숭이처럼 자루에 들어가기는 원치 않았네 / 不願胡孫入布袋
명리와 번화를 꿈에선들 바랐으랴 / 名利繁華夢豈到
담박과 고요함을 마음으로 좋아했네 / 淡泊靜寂心所愛
유준은 이미 〈광절교론〉을 지었고 / 劉論已著廣絶交
유종원은 장난삼아 우계로 지명을 삼았네 / 柳文謾戲愚溪對
시래기국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옷은 누더기지만 / 藜藿不充衣懸鶉
담비갖옷과 팔진미를 부러워하랴 / 肯羡狐貉與八珍
몸에 죄가 없음을 영광으로 삼고 / 身無罪過以爲榮
가슴에 태화원기 간직하여 봄으로 삼았네 / 胷貯太和以爲春
성경현전을 스승으로 삼고 / 聖經賢傳以爲師
제월광풍을 빈객으로 삼았네 / 霽月光風以爲賓
형문과 비수에 즐거움 끝이 없어 / 衡門泌水樂無斁
눕고 일어나기를 내 뜻대로 하였네 / 偃仰屈伸惟意適
아침 기상이 이르든 늦든 조금도 상관없고 / 朝起早晩都不關
저물녘 산보가 멀든 가깝든 누가 뭐라 하랴 / 晩步遠近誰相迫
때로 경물에 감동하거나 간혹 책을 보면서 / 有時觸境或觀書
시와 문장 지으며 구상을 마음대로 펼쳤네 / 以詩以文恣闔闢
글을 지음은 그저 소일하기 위함이지만 / 佔畢聊欲資消遣
굉박하고 고상한 문장 어찌 옛 분들을 바라랴 / 博高安敢望古昔
넉넉하고 여유롭게 남은 생애 마치리니 / 優哉游哉以卒歲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책임도 없으리 / 世旣棄我應無責
남들은 모두 몸을 아끼지만 도리어 몸을 잊어서 / 人皆愛身還忘身
마음이 몸에 부림을 당하니 참으로 안타깝네 / 心爲形役良可惜
영화와 이익을 탐하는 모든 비루한 자들은 / 貪榮利祿捴鄙夫
권세가에 빌붙으니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 賣勢招權何太愚
크고 높다란 수레는 근심도 많으니 / 駟馬高車憂甚大
쉬지 않고 도모함은 무엇 때문인가 / 營營汲汲胡爲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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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 윤기(尹愭)
시름을 삭이며 3수 〔遣悶 三首〕
경물은 보는 데 따라 변하니 / 境隨所遇幻
사물도 일정함이 전혀 없네 / 物亦苦無常
비는 사람이 잠든 틈을 타 내리고 / 雨似乘人睡
바람은 바쁜 나그네를 시기하네 / 風如妬客忙
못이 깊어 물고기의 뜻 활발하고 / 池深魚意活
하늘이 머니 새의 마음 아득하네 / 天遠鳥心長
만물이 어지럽게 얽혔으니 / 萬化紛轇轕
누가 하나하나 자세히 알랴 / 誰能一一詳
두 번째〔其二〕
예로부터 천리를 의심하였으니 / 自古疑天理
누가 조화의 기틀을 돌리는가 / 伊誰斡化機
검은 개와 흰옷이 잠깐 사이에 변하고 / 狗衣俄忽變
기러기와 제비는 본래 따로 나네 / 鴻燕故分飛
사물은 언제나 영광과 고난이 치우치고 / 物每偏榮悴
사람은 모두 옳고 그름이 각기 다르네 / 人皆各是非
횡행하는 물결 막기 어려우니 / 橫流難可障
함께 목욕하며 서로 비난하지 말라 / 同浴莫相譏
세 번째〔其三〕
가시나무와 난초는 본래 대우가 다르고 / 棘蘭自異遇
아욱국 먹고 고기 먹는 자는 함께 도모할 수 없네 / 藿肉不同謀
옛 철인들은 일찍이 탄식하였는데 / 昔哲曾嗟惜
지금 사람들은 부질없이 원망하네 / 今人謾怨尤
학과 오리의 다리는 어찌 자르고 이으랴 / 鶴鳧寧斷續
이빨과 혀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있네 / 齒舌有剛柔
칠십이 되도록 명성이 드러나지 않아 / 七十終無聞
고개 떨구고 있노라니 몹시 부끄럽네 / 低垂足可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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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 윤기(尹愭)
탄식할 일〔可歎〕
건강하면서 늘 아프다 말하고 / 康健常言病
부유하면서 늘 가난하다 말하니 / 富厚常言貧
세상에 병 없는 객이 없고 / 世無無病客
가난하지 않은 사람도 없네 / 亦無不貧人
병을 말하면서 아파 죽겠다 하고 / 病言痛欲殊
가난을 말하면서 굶어 죽겠다 하는데 / 貧言飢欲死
아파 죽겠다는 사람이 어떠한지 살펴보면 / 欲殊問何似
날듯이 만리 길을 가고 / 飛騰輕萬里
굶어 죽겠다는 사람이 어떠한지 살펴보면 / 欲死問何似
음식과 의복이 사치스럽기 그지없네 / 衣食恣奢靡
겉과 속이 전혀 다른데도 / 表裏自燕越
옆 사람은 그저 예예할 뿐이니 / 傍人徒唯唯
이 죽겠다는 한 마디 말 / 這箇一死字
입과 귀에서 떠나지 않아 / 不離口與耳
이상하게도 상의하지 않아도 같아 / 異哉不謀同
너나없이 똑같은 말 뿐이네 / 一辭無彼此
이것은 운수가 그런 것이 아니면 / 莫是氣數然
습속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랴 / 無乃習俗使
말하는 자는 다반사로 여기고 / 言者作茶飯
듣는 자도 으레 투식으로 보아 / 聽者視例套
허와 실이 늘 뒤섞이고 / 虛實輒混淆
참과 거짓이 매양 뒤집혀 / 眞僞每顚倒
비록 가련한 자가 있어도 / 縱有可憐者
외면의 투식으로 돌아가니 / 同歸外面飾
질병에 걸려도 누가 가련히 여기고 / 誰愍二竪沈
끼니를 거른들 누가 탄식해 주랴 / 不嗟幷日食
세상이 내려올수록 순박하고 진실함 잃어 / 世降淳眞喪
단지 사기와 거짓만 늘어나니 / 但見詐僞長
병을 말하고 가난을 말하며 / 稱病與稱貧
남들이 탓하는 말 돌아보지 않네 / 不顧人謂妄
나는 병이 들고 가난도 심하여 / 我病且甚貧
참으로 견딜 수가 없는데 / 眞是不可忍
말하려 해도 남들과 똑같을까 두렵고 / 欲語羞雷同
또 누가 믿어 주기나 하랴 / 且孰以爲信
객을 마주하여 그렁저렁 응대해도 / 對客欲漫應
말이 도리어 군색함이 많네 / 語言還多窘
건강하다 말해도 나쁠 것이 없고 / 謂健非不好
부유하다 말해도 해로울 일 무엇이랴만 / 謂富庸何傷
다만 날마다 피로해 쓰러져 / 只恐日憊頓
죽음과 가까운 것이 두렵네 / 不免死道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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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1권 / 시(詩) 191수 / 김수항(金壽恒)
달 밝은 밤〔月夕〕
이 밤은 무슨 밤인가 / 今夕是何夕
빈 당에 한밤중 앉았노라니 / 空堂坐二更
뜬구름 모였다가 흩어지고 / 浮雲聚更散
외로운 달 흐렸다 밝아 오네 / 孤月翳還明
변방에선 부모님 그리던 꿈 / 塞北思親夢
강남에선 벗 그리는 정이니 / 江南憶友情
아침 되면 밝은 거울 속 / 朝來明鏡裏
흰 털 몇 오라기 나리라 / 霜鬢幾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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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1권 / 시(詩) 191수 / 김수항(金壽恒)
늦가을 유감〔秋晩有感〕
서리와 이슬이 풀밭 뒤덮고 / 霜露塗草莽
정자 언덕에 낙엽 지는데 / 亭皐木葉下
기러기 강촌의 추위에 놀라고 / 鴻驚水國寒
벌레들 산창의 밤 달래누나 / 蟲弔山窓夜
은자는 소슬해진 새벽 느껴 / 幽人感蕭晨
홀로 앉아 길게 탄식하나니 / 獨坐長歔欷
젊은 날은 얼마나 되던가 / 少壯能幾何
세월 빨라 믿을 수가 없구나 / 光陰疾難恃
근심은 배움에 진전 없음인데 / 所憂學不進
성쇠는 본래 불변의 이치이니 / 盛衰固恒理
힘쓰고 힘써 촌음도 아끼면서 / 勉勉惜分陰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야지 / 毋爲自暴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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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2권 / 시(詩) 196수 / 김수항(金壽恒)
새벽에 일어나
소회를 읊조리며 다시 앞의 운을 거듭 쓴다〔曉起詠懷 復疊前韻〕
세찬 바람 휘몰아 황량한 성을 치니 / 驚風獵獵打荒城
변새에 흐린 가을 날씨 갤 기미 없구나 / 絶塞秋陰不放晴
주렴 밖 새벽 서리는 꿈속에도 싸늘한데 / 簾外曉霜侵夢冷
베갯머리 가물대는 촛불 정을 다해 밝히네 / 枕邊殘燭盡情明
절기 재촉하는 경물 시름겹게 바라보며 / 愁看物色催佳節
집안사람 먼 길 떠난 내 이야기하겠지 / 坐想家人說遠行
함관령이 하늘 끝이고 창해는 가없는데 / 關嶺極天滄海闊
일엽편주로 누가 다시 고향 땅 가게 할까 / 葉舟誰復幻寰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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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4권 / 시(詩) 146수 / 김수항(金壽恒)
큰형님과 작은형님이 연달아 찾아와
동주의 복사에서 만났으니, 곤궁하고 적막한 가운데에도 마음에 위로가 많았다. 이별에 임해 슬픔을 견디기 어려워 시를 입으로 불렀다가 적어서 바치다〔伯氏仲氏相繼來 會於東州服舍 窮寂之中 慰懷多矣 臨別 不堪悵黯 口占錄呈〕
두 분 부모님 그리워한 뒤로부터 / 自從二人懷
단지 형제 남아 있어 서로 따랐다는 / 但有兄弟隨
이 마음 오늘 / 此懷卽今日
선조의 시 구절에서 느끼고 탄식합니다 / 感嘆先祖詩
사 년 동안 남녘의 귀양살이로 / 四載竄南徼
삼성과 상성처럼 각자 하늘 끝에 있었지요 / 參商各天涯
멀어라 화악산의 기슭이여 / 迢迢華岳麓
아득해라 미호의 언덕이여 / 渺渺渼湖陂
등성이에 올라 몇 번을 바라보고 / 陟岡幾瞻望
구름 보며 꿈에도 그렸지요 / 看雲勞夢思
소식은 멀어서 드물었고 / 音徽邈以疏
밤낮으로 보고픔 끌어안았거늘 / 日夕抱調飢
임금 은혜는 내쫓긴 신하에게 너그러워 / 天恩寬逐臣
유배지를 내지로 옮기도록 허락하셨지요 / 鞮屨許內移
형제들 다행히 머지않은 곳에 살고 / 鴒原幸不遐
동주 골짝은 경기와 접했기에 / 東峽接王畿
바라는 건 곧 형님들 찾아가고자 / 念之便相就
양식 준비해서 말 채찍질함입니다 / 宿舂策黎眉
바닷가에 떨어져 있을 때 돌이켜 보며 / 翻思瘴海隔
산과 길이 험하다 말하지 않으렵니다 / 不道山蹊巇
다정하게 한 방에서 이불 함께 덮고 / 姜衾共一堂
번갈아 훈과 지 불며 노래하면 / 迭唱塤與篪
겨울밤이 어찌 길지 않으랴만 / 冬夜豈不長
촛불 잡고 각각 피곤한 줄 모르네요 / 秉燭各忘疲
웃으며 하는 얘기 들어도 물리지 않으니 / 笑言無倦聽
형제간의 즐거움 얼마나 기쁩니까 / 湛樂何怡怡
황홀해서 마치 꿈만 같은데 / 恍然如夢寐
기쁨 다하면 도리어 슬픔이 생기는 법 / 歡極轉生悲
슬프도다 황천으로 떠남이여 / 悲哉泉下別
한번 떠났으니 언제나 돌아오려나 / 一去何時歸
동기간이 절반은 세상 떴고 / 同氣半喪亡
남은 형제들도 벌써 노쇠했지요 / 餘生亦已衰
골육들 평안하게 모이는 게 귀한데 / 骨肉貴安集
공명이란 성패가 있기 마련이지요 / 功名有成虧
소식 형제처럼 빗소리 듣기 약속했는데 / 蘇家聽雨約
안타까워라 오늘에 이르러 어긋났으니 / 耿耿至今違
비록 침상 맞대고 잠을 이룬다 해도 / 雖成對床眠
이곳은 고향이 아니니 어찌할까요 / 奈此故鄕非
어느 산엔들 낙토가 없으리오만 / 何山無樂土
세상의 그물 걸핏하면 묶고 얽매네요 / 世網動牽羈
부러운 건 크고 작은 하씨들 / 緬羨大小何
같은 언덕에 함께 깃들어 사는 것이지요 / 一丘同棲遲
이별에 임해 다시 만감 일어나 / 臨分更百感
손 잡고 한갓 한숨만 더하나니 / 執手徒增欷
바라건대 선조의 유훈 받들어 / 願言奉先訓
세한의 기약 저버리지 마십시오 / 勿替歲寒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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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5권 / 시(詩) 156수 / 김수항(金壽恒)
낭주의 절구 여덟 수를 떠올리다가
구림의 여러 분에게 부치다〔憶朗州八絶 寄鳩林諸君〕
물은 주룡 나루에서 합쳐지고 / 水合住龍渡
산은 가학령에서 나뉘는데 / 山分駕鶴嶺
이 가운데 별세계가 있으니 / 就中有別區
서호가 만 이랑의 물결로 열렸어라 / 西湖開萬頃
둘째 수〔其二〕
관란정에는 죽도의 가을 / 觀瀾竹島秋
요월정에는 구림의 저녁 / 邀月鳩林夕
아름다워라 국사암이여 / 應憐國師巖
시인의 자취 남았으리라 / 留著騷人跡
관란과 요월은 모두 정자 이름이고, 국사암은 구림에 있다.
셋째 수〔其三〕
어느 곳이 가장 그리운가 / 何處最相思
유배지의 꽃다운 두약이라 / 江潭芳杜若
멀리서도 알겠으니 노 젓는 어부 / 遙知鼓枻人
귀양객 아직도 기억하리란 걸 / 尙記行吟客
넷째 수〔其四〕
안용당 노인 / 安用堂中老
평생 의리가 하늘에 닿으셨더니 / 平生義薄雲
우뚝 하던 호해의 기상 / 居然湖海氣
도리어 광릉 무덤에 묻히셨구려 / 埋却廣陵墳
다섯째 수〔其五〕
도갑사의 아름다운 경치 / 招提道岬勝
바위 폭포와 북지가 그윽했지 / 巖瀑北池幽
가장 생각나니 수남사 / 最憶水南寺
산취루에서 시 지었지 / 題詩山翠樓
여섯째 수〔其六〕
구정봉 앞길에서 / 九井峯前路
대나무 수레로 눈을 밟고 갔었지 / 筠輿踏雪行
고산에 다시 가기 어렵지만 / 孤山難再到
맑은 경쇠 소리 꿈속에도 들린다오 / 淸磬夢中聲
일곱째 수〔其七〕
귤나무 서리 오기 전 열매에 맺고 / 橘樹霜前實
매화가지 눈 속에서 꽃이 피지 / 梅梢雪裏花
맑은 향 응당 변치 않으리니 / 淸香應不改
누가 다시 하늘가에 부쳐 줄까 / 誰復寄天涯
여덟째 수〔其八〕
옥 같은 생선회는 송강의 별미 / 玉鱠松江味
실 같은 순채는 천리 밖의 국 / 絲蓴千里羹
그렇지만 북쪽 국수 새참으로 먹자니 / 雖然餐北麪
오히려 저절로 남쪽 음식 생각나네 / 猶自憶南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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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6권 / 시(詩) 98수 / 김수항(金壽恒)
옛일이 생각나
이별이 아쉽기에 입으로 절구 여섯 수를 불러, 평안도 오 감사 두인 에게 적어 주다〔感舊惜別 口占六絶 錄贈關西吳按使 斗寅〕
험난한 시절 중요한 관서 방백 임명했으니 / 時危授鉞重西藩
조정의 판서 벼슬에서 잠시 물러나시어 / 暫屈朝端八座尊
경월이 잠시 한성부 떠나가자 / 卿月乍離京兆府
복성이 먼저 대동문 비추누나 / 福星先照大同門
둘째 수〔其二〕
견사할까 보장할까 급선무 생각해서 / 繭絲保障思先務
미리 우환 대비 단단히 하소서 / 桑戶綢繆趁未陰
관서 지방 근래에 매우 피폐해졌으니 / 西土邇來凋瘵甚
왕화 잘 펼쳐 인심 결집하시게나 / 好宣王化結人心
셋째 수〔其三〕
재송정 아래는 평평한 모래펄 길이오 / 栽松亭下平沙路
부벽루 앞은 방초 자라는 모래톱이라 / 浮碧樓前芳草洲
삼십 년 동안 오가던 길이었는데 / 三十年來來往地
지금은 묵은 자취 꿈처럼 아득하구려 / 只今陳跡夢悠悠
넷째 수〔其四〕
연광정 남쪽 물가에 고운 추녀 기대고 / 練光南畔倚雕櫺
패수의 맑은 물결에 채색 배들 출렁이리 / 浿水晴波漾彩舲
눈 들어 산하 바라보면 느낌 많으리니 / 擧目山河多少感
난리 후 풍경이 신정을 닮았으리라 / 亂來風景似新亭
다섯째 수〔其五〕
천손의 기린 말 떠난 지 벌써 오래지만 / 天孫麟馬去已遠
기자의 정전은 완연하게 남았다오 / 箕子井田留宛然
성 서쪽에 눈물 닦던 곳 가장 생각나니 / 最是城西掩淚處
황량한 사당에 아직 명나라 연호 적혔다오 / 荒祠猶記大明年
여섯째 수〔其六〕
높다란 망일헌은 특히나 기이한 곳 / 望日高軒特地奇
나그넷길에 얼마나 많이 유숙했던가 / 客中留宿幾多時
그대가 이곳 떠나면 늘 그리워할 걸 알겠으니 / 知君此去煩相憶
사롱으로 옛 시 보호한 일 부끄러워라 / 愧殺紗籠護舊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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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6권 / 시(詩) 98수 / 김수항(金壽恒)
강바람〔江風〕
봄부터 하루도 바람 그칠 날 없으니 / 春來無日不終風
언덕 버들과 물가의 꽃 어두침침해라 / 岸柳汀花黯慘中
강가 누각에 발 내리고 편안히 누워 / 江閣下簾高臥穩
창밖 물결이 허공에 날리거나 말거나 / 任敎窓外浪翻空
둘째 수〔其二〕
어스름에 거센 바람 사람에게 불어오고 / 薄暮狂風吹倒人
큰 강의 물결 아득해서 나루조차 없어라 / 大江波浪渺無津
누각 위 병든 나그네 한가해서 일 없어 / 樓頭病客閒無事
외로운 배 자꾸 출렁이는 걸 앉아 보노라 / 坐見孤舟出沒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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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6권 / 시(詩) 98수 / 김수항(金壽恒)
아들 창흡의 〈봄밤〉을 차운해서 꿈을 적다〔次翕兒春夜韻 記夢〕
밤 고요하여 늘 온갖 생각 / 夜靜常百慮
몸 피곤해 잠시 눈 붙이는데 / 身倦暫成睡
짧은 꿈이라도 길 멀지 않아서 / 短夢不道遠
고향에 잠깐이나마 들르네 / 鄕園片時至
쓸쓸해라 목식와여 / 寥寥木食窩
무너진 벽만 사면에 둘러섰으니 / 破壁徒立四
떠나온 지 벌써 며칠이나 되었던가 / 別來曾幾日
봄 경치 어지럽게 눈에 가득 차는데 / 春物紛盈視
시내 복사꽃은 붉은 꽃잎 터뜨리고 / 溪桃欲綻紅
화분의 대 막 푸른빛이 어울리누나 / 盆竹正交翠
쓸쓸한 오두막 아래에서 / 翛然衡茅下
누웠다 일어났다 여유 피우다 / 偃仰有餘地
이웃에 사는 사람들 만나 / 相逢隣社人
말술로 이별의 시름 달랬도다 / 斗酒慰離思
뒤척이다 문득 놀라 깨어 보니 / 展轉忽驚起
처마의 달님 벌써 서쪽으로 기울었구려 / 簷月已西墜
이곳은 위안 삼을 만하니 / 玆焉可慰意
어찌 눈물 꼭 흘릴 필요 있으랴 / 何必浪垂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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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6권 / 시(詩) 98수 / 김수항(金壽恒)
아들 창흡의 〈저물녘 바라보다〉를 차운하다〔次翕兒晩望韻〕
아득히 머나먼 길 그리워하다 / 悠悠思遠道
쓸쓸히 텅 빈 집의 문 닫는데 / 悄悄閉空堂
산보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 散步憑孤杖
숙면이야 침상 하나로 족하구나 / 安眠足一床
집에서 온 편지 황금마냥 귀하고 / 家書抵金貴
봄밤은 일 년인 듯 길기만 한데 / 春夜似年長
일찍 돌아가리라고 감히 말하지 않으니 / 敢道歸期早
시름하는 눈썹에 황색 띄지 않았다오 / 愁眉未著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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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숙몽정〔夙夢亭〕
천지간의 동남 지역 아득 넓은 이 고장에 / 天地東南曠漠鄕
백년 세월 남은 감회 이 드높은 당에 있어 / 百年餘感此高堂
주렴 통한 이내 기운에 막 시야 한껏 바라보고 / 通簾嵐氣初窮目
베개에 감도는 물결 소리에 뱃속을 씻으려 하네 / 繞枕波聲欲洗膓
속세 밖의 얼굴 모습 익숙함이 꽤 기쁜데 / 頗喜容顔塵外熟
꿈속의 소식은 오랜 것을 비로소 알겠네 / 方知信息夢中長
짧은 노래로 검에 화답하고 서성이며 서 있는데 / 短歌和劍徘徊立
강가의 세 산봉이 석양녘에 거꾸로 드리웠네 / 江上三峯倒夕陽
저 강산은 누대 짓기 이전부터 있었고 / 江山自在起樓前
누대 짓고 저 강산에 또 백 년이 지났는데 / 樓起江山又百年
게다 다시 난간 위에 그지없는 달빛 있어 / 更有欄頭無限月
지금도 여전히 꿈속에 전한 듯하네 / 至今猶似夢中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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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압구정〔狎鷗亭〕
초록 버들 깊은 곳에 온갖 매미 우는 가을 / 綠楊深處萬蟬秋
정자 한 채 남쪽 강가 맨 위쪽에 서 있으니 / 亭在南江上上頭
속된 몸이 진경 찾아 별세계로 왔더니만 / 俗子尋眞來別界
주인은 벼슬 나서고 좋은 누대만 잠겨 있네 / 主翁遊宦鎖名樓
여울 속 바위에서 비 온 흔적 처음 보고 / 雨痕初見灘中石
달빛 아래 배에서는 사람 소리 희미한데 / 人語微聞月下舟
한밤중의 물소리에 천고 감회 일어나니 / 半夜水聲千古感
아득하여 곧바로 갈매기에게 물으려네 / 蒼茫直欲問沙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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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천일정〔天一亭〕
가벼운 상앗대로 저녁에 한강 북쪽으로 건너니 / 輕槳晩渡漢之陽
아스라한 붉은 누대가 한 쪽에 자리하여 / 縹緲丹樓在一方
수놓은 문은 깊숙이 통해 서화가 예스럽고 / 繡闥通幽書畫古
대사립은 먼 경치 머금어 물과 구름이 길어라 / 竹扉銜遠水雲長
선생의 지난 자취 서린 푸른 띠 집이요 / 先生往蹟靑茅宅
정자는 백사(白沙)의 옛 집터이다.
학사의 풍류 남아 있는 백옥당인데 / 學士風流白玉堂
다시금 이름난 꽃 삼백 그루가 있어 / 更有名花三百本
강마을에 사시사철 향기가 끊이질 않네 / 江鄕不斷四時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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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감흥〔感興〕 10수 중 1수를 선발했다.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고 / 上山採蕨薇
산을 내려와 고운 난초를 캐니 / 下山採幽蘭
고사리는 오히려 먹을 수 있지만 / 薇蕨猶可食
난초와 두약은 먹을 수 없다네 / 蘭若不可餐
향기는 스스로 그치지 않는데 / 香澤不自歇
세모에 바람 이슬이 차가우니 / 歲暮風露寒
어찌하여 빈 골짜기에 있는가 / 如何在空谷
향기로운 꽃 피기를 앉아서 기다리네 / 坐待芳華闌
꺾어와 누구에게 주려는가 / 折來欲寄誰
마음 맞기란 참으로 어려운 바라네 / 同心良所難
길은 막히고 물은 넘실대고 / 路阻水瀰瀰
산은 깊고 나무들만 빽빽이 자라 / 山深樹團團
그대를 볼 수가 없으니 / 之子不可見
배회하며 길게 탄식만 하네 / 徘徊以長歎
[주-D001] 두약(杜若) :
향초의 일종이다. 《초사(楚辭)》 〈산귀(山鬼)〉에 “산중의 사람이 두약처럼 향기롭고, 바위틈의 샘물 마시고 송백의 그늘에서 쉬도다.〔山中人兮芳杜若, 飮石泉兮蔭松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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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선산을 배알하고〔拜先墓〕
이끼 쓸고 비석 글자 자세히 읽고 나서 / 拂苔細讀龜頭字
재배하고 공손히 향궤 앞을 바라보네 / 再拜恭瞻香几前
늙은 전나무 뿌리 깊은 곳을 보아야 할지니 / 須看老檜根深處
가지와 잎 우뚝한 채 이백 년이 되었다네 / 枝葉亭亭二百年
초록 적삼 검은 두건 이 얼마나 영광인가 / 綠衫烏幞是何榮
선조 도움 힘입어서 작은 성취 이루었네 / 爲賴先庥小有成
지금껏 간곡한 훈계 받들지 못했으니 / 今來未奉丁寧訓
쓸쓸한 삼나무 소나무만 밤새 소리 울리네 / 蕭瑟杉松竟夜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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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표절사〔表節祠〕
사당은 충장공(忠壯公) 심대(沈岱)와 종사(從事)한 여러 충절들의 영령을 모신 장소이다. 충장공은 임진년의 국난(國難)을 당하여 안기보절(按畿輔節)로서 삭녕(朔寧)에 군대를 주둔했는데, 군대가 함락되어 두 그루 은행나무 아래서 순절했다. 나무는 지금 군(郡)의 아원(牙園) 북쪽에 있는데 푸르게 마주 서 있어서 시원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사당이 있는데 정조 신해년(1791)에 편액을 내렸다. 또 영당(影堂)이 있어서 심공과 부인의 초상을 걸어두었는데 사당 동쪽 담 밖에 있다.
옛 사당은 단청 떨어져 먼지가 되었으니 / 古廟丹靑落化塵
지금 누가 다섯 분의 충신을 알리오 / 至今誰識五忠臣
홍실 묶은 차가운 해골은 한 날 죽은 것 슬픈데 / 紅絲冷骨悲同日
종사관(從事官) 양지(梁誌) 공의 시호는 충렬(忠烈)인데, 전투할 때 미리 상투를 붉은 실로 묶었으니 들판에서 유골을 수습하려는 표식으로 삼은 것이었다.
설죽가의 가을 소리는 뒷사람을 흥기시키네 / 雪竹秋聲起後人
심공은 평소에 〈설죽가(雪竹歌)〉를 지었는 바 세상에서 모두 전하여 암송하였는데, 식자들은 이미 그 뜻을 알았다.
대려의 맹세는 향기로운 제사에 이어지고 / 帶礪將盟仍苾祀
기수의 온전한 절개는 밝은 신령이 되었네 / 旂綏全節作明神
장군이 떠난 후 잎 흩날려 떨어진 나무에 / 將軍去後飄零樹
학이 와서 둥지 튼 지 몇 해나 지났던가 / 水鶴來巢問幾春
은행나무 위에 황새가 와서 둥지를 틀고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은행나무 녹음 짙고 새들은 요란히 울어대니 / 杏樹陰陰鳥亂啼
어느 해에 벽혈이 꾀꼬리로 변했던가 / 何年碧血化黃鸝
천추에 별과 해는 패옥을 빛내는데 / 千秋星日光環佩
한 자루 칼로 풍진 속에 북소리 울렸다네 / 一劍風塵動鼓鼙
구원병 늦은 장순은 큰 공적 이루었고 / 差緩張巡成偉績
위험에 맞선 변곤에겐 어진 처자 있었다네 / 當危卞壼有賢妻
황폐한 사당 엄숙한 초상이 기린각 같으니 / 荒祠肅像如麟閣
붓 들고 머뭇대며 감히 짓지 못하겠네 / 攬筆徘徊不敢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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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가친께서 당시 운을 뽑아내어 시 10첩을 읊었는데 그 자리에서 삼가 화답하다〔家親拈唐人韻賦詩十疊席上敬和〕 7수를 선발했다.
푸른 솔을 잘 길러서 열 길이나 자랐나니 / 護得靑松滿十尋
빈 뜰에서 밤낮으로 절로 맑은 소리 내며 / 虛庭日夕自淸音
일생토록 성근 잎은 바람 맞아 온화하고 / 一生疎葉承風穩
구 리에 서린 뿌리 빗물 받아 깊다네 / 九里盤根着雨深
차고 고운 하얀 매화는 몹시 사랑하지만 / 冷艶劇憐梅素雪
봄날 교태로는 황금빛 버들은 쳐주지 않나니 / 春嬌不買柳黃金
하늘 찌르는 원대한 기세를 누가 함께 감상할까 / 干霄遠勢誰同賞
만고토록 마땅히 굽히는 마음이 없으리 / 萬古應無屈曲心
거문고 소리를 손가락으로 애써 찾지 않아도 / 不勞琴語指頭尋
빈 골짝의 청산에서 솔바람소리 들을 만하니 / 空谷靑山可賞音
이월 맞은 연못에는 봄물이 그득하고 / 二月池塘春水漫
온 집들의 꽃나무엔 저녁 안개 짙었어라 / 萬家花木暮煙深
명성 사양하니 어찌 옥을 세 번 팔겠는가 / 辭名肯作三沽玉
도구 날카로우려면 결국 쇠를 백 번 정련해야지 / 利器終須百鍊金
천년 세월이 앞에 있고 뒤에도 있으니 / 千歲在前千歲後
경서 사서 가지고서 초심을 저버리지 말아야지 / 莫將書史負初心
가슴속에 가득한 시정을 애써 찾아내어 / 滿肚詩機强欲尋
장차 쌓아 두고서 지음을 기다리네 / 且將含蓄待知音
삼성이 서쪽 누각에 있는데 종소리 들려오고 / 參星西閣鍾聲度
열흘간 봄바람 부니 버들 색이 짙어졌네 / 十日東風柳色深
호사가 옥을 흩뜨릴 줄 누가 알았으랴 / 誰識胡沙能解玉
단홍이 곧 금이 된다고 잘못 가르쳤다네 / 枉敎丹汞直成金
강가 매화 한 그루가 봄을 전송하니 / 江梅一樹春相送
동산 숲에 적막한 마음이 은연중에 일어나네 / 暗動林園寂寞心
봄눈이 막 개고 객이 다시 찾아오니 / 春雪初晴客復尋
들판 다리 물소리가 솔바람소리에 화답하네 / 野橋流水答松音
한 평생 버드나무는 나이 젊은 것 같은데 / 一生楊柳如年少
몇 권의 도서에 또 날은 깊어가네 / 數卷圖書又日深
비 올 기운이 못에 잠기니 촉옥이 날고 / 雨氣沈塘翻屬玉
술 자국이 주막 깃발에 묻어 금박문양 말렸네 / 酒痕生幔捲銷金
누워서 하늘 끝 보자 한가한 구름 일어나니 / 臥看天際閑雲起
오히려 절로 남쪽 바다 만리심 일어나네 / 猶自南溟萬里心
객은 옛 둥지 찾는 새 제비를 따라서 / 客隨新燕舊巢尋
춘사에 서로 부르니 속된 소리 드물어라 / 春社相呼罕俗音
두장의 수 놓인 부용은 붉은 꽃 흔들리고 / 斗帳芙蓉紅聶聶
궁정의 버드나무는 푸른 가지 우거졌네 / 弓庭楊柳碧深深
일평생 울적한 마음 오직 검이나 볼 뿐인데 / 百年碨礧惟看劍
하루의 맑고 한가함은 황금과도 바꾸지 않네 / 一日淸閑不換金
옥 항아리 상락주를 가득 따르고 / 滿寫玉缸桑落酒
그저 산 위 달이 하늘 가운데 이르는 것을 보네 / 坐看山月到天心
맘에 드는 푸른 산을 꿈속에서 찾으니 / 愜意靑山夢裏尋
마른 오동은 오랫동안 백아의 음률 품었는데 / 枯桐久抱伯牙音
부들 싹은 쥘 만큼 자라니 물이 막 따뜻하고 / 蒲芽堪把水初暖
제비는 오지 않는데 봄은 이미 깊었네 / 燕子不來春已深
강굽이에 놀던 옛 친구들 술잔 띄우고 / 江曲舊遊盃汎羽
한나라 조정의 새 고관은 금대를 둘렀는데 / 漢廷新貴帶橫金
서창에서 초 심지 자르며 흉금 논하던 곳에 / 西窓剪燭論襟地
늙은 나무는 한 조각 마음을 함께 비웠네 / 老樹同虗一片心
저자 거리를 이리저리 밤낮으로 찾아다니니 / 市路縱橫日夕尋
문전의 말발굽소리에 말방울 소리 뒤섞이네 / 門前馬跡雜珂音
부채질하여 먼지 다가옴을 꺼릴 필요 없으니 / 不須交扇嫌塵近
단지 스스로 사립문 닫으면 깊은 협곡 같다네 / 只自關扉似峽深
명예는 송나라 연석 같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 名價幾多宋燕石
세간 인정은 진나라 우금 같음이 태반이라네 / 世情强半晉牛金
종 울리고 물시계 마름이 그칠 때 없는데 / 鍾鳴漏渴無時已
겨를 없이 바쁜 것은 도리어 무슨 마음인가 / 滾滾悤悤却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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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시안정에서 빗속에 짓다〔是岸亭雨中作〕
누대 곁의 초목들은 시야 넓게 펼쳐지고 / 樓邊草樹一望平
누대 밑엔 돛 높은 배 종일토록 매였는데 / 樓下高帆盡日橫
오월의 청량함은 두공부의 시경이요 / 五月淸凉杜工部
반 걷힌 발 푸른빛은 사선성의 시경이네 / 半簾蒼翠謝宣城
하늘 가득 비바람에 온 마을은 어두운데 / 連天風雨全村暗
땅에 널린 강과 못엔 가득한 물 맑았어라 / 滿地江湖積水明
능히 이모 내버리고 고요한 곳 찾는다면 / 能捨耳謀尋靜界
천둥소리 센 폭포도 소리 없이 조용하리 / 殷雷急瀑寂無聲
나는 배를 이끌고서 해문으로 들려는데 / 我欲挐船入海門
부용봉 아래로는 동이 쏟듯 비가 오니 / 芙蓉峯下雨翻盆
하백처럼 대양 보고 비로소 도 깨치고 / 河伯望洋方悟道
자기처럼 천뢰 듣고 이미 말을 잊었다네 / 子綦聽籟已忘言
남쪽 물가 누대들은 유독 물에 가까운데 / 南畔樓臺偏近水
동쪽 편의 홰나무 버들은 반쯤 마을 가렸도다 / 東頭槐柳半藏村
나루 잃은 많은 객을 웃으면서 보나니 / 笑看多少迷津客
어느 때나 조각배를 고향에다 매겠는가 / 何日扁舟繫故園
[주-D001] 시안정(是岸亭) :
서울 용산에 있었던 정자 이름이다. 한장석의 외조부인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정자였다.
[주-D002] 오월의 …… 시경(詩境)이요 :
두공부(杜工部)는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지낸 당나라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시 〈장유(壯遊)〉에 “감호는 오월에도 서늘하여라〔鑑湖五月凉〕”라고 한 표현을 의미한 것이다.
[주-D003] 사선성(謝宣城) :
선성 태수(宣城太守)를 지낸 남조 제(齊)나라 사조(謝朓)를 가리킨다. 안휘성 동남 선성시(宣城市)에 승경으로 유명한 사조루(謝朓樓)가 있다. 사조는 산수시로 유명했다.
[주-D004] 이모(耳謀) :
귀로 듣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영주팔기(永州八記)〉중 〈고무담서소구기(鈷鉧潭西小丘記)〉에 “콸콸 흐르는 샘물소리가 귀와 교감한다.〔瀯瀯之聲與耳謀〕”라고 했다.
[주-D005] 하백(河伯)처럼 …… 깨치고 :
하수(河水)의 신 하백(河伯)이 천하의 물이 하수에 있는 줄 알았다가 북해(北海)에 가서 끝없는 물을 보고 자신의 좁은 견식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를 망양지탄(望洋之歎)이라고 한다. 《莊子 秋水》
[주-D006] 자기(子綦)처럼 …… 잊었다네 :
자기는 남곽자기(南郭子綦)인데, 남곽자기가 자유(子游)에게 말하기를 “너는 인뢰(人籟)는 들었더라도 지뢰(地籟)는 듣지 못했을 것이고, 너는 지뢰는 들었더라도 천뢰(天籟)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莊子 齊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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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밤에 금석산방에 모이다 민경원 댁이다. 〔夜集琴石山房 閔景圓宅〕
머문 구름 지나는 새도 정이 있는 듯한데 / 停雲過鳥若爲情
뇌락함을 서로 지녀 우리 바로 벗이라네 / 磊落相將是友生
한 자락 가을 산은 항상 창을 마주하고 / 一桁秋山常對牖
반 갈고리 새벽달은 기둥을 엿보는 듯한데 / 半鉤晨月欲窺楹
사람 기다리다 이내 오늘밤 모임을 이뤘는데 / 待人仍作今宵會
집 옮기니 옛 마을 이름을 잊기 어려웠다네 / 移宅難忘舊巷名
김청우(金淸友)가 약속하고도 오지 않았다. 경원(景圓)은 매동(梅洞)으로 집을 옮겼는데, 동네는 곧 옛 거처이다. 그래서 두 구에 그것을 언급했다.
접부채에서 그대가 초성에 통함을 알겠으니 / 摺扇知君通草聖
담계의 근골로 진경의 서법을 베껴냈네 / 覃溪筋骨寫眞卿
경원(景圓)이 장난삼아 내 부채에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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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장안사에서 비를 만나다 2편〔長安寺値雨二篇〕
《해산소사》에 누락되어, 여기에 추가로 기록하다.
그대와 서로 옥경을 걷기로 기약했더니 / 與子相期步玉京
봉래산 제일의 동천 속을 가네 / 蓬萊第一洞中行
비 맞고 바위 옆에서 자는 것이 몹시도 가련한데 / 剛憐被雨巖邊宿
단지 비낀 봉우리가 안개 속에 평평함만을 보네 / 但看橫峯霧裏平
샘물에서 불심을 얻으니 참으로 본성을 보고 / 泉得佛心眞見性
산 이름은 승려의 손길을 따라 비로소 아네 / 山從僧手始知名
안개 노을이 일찍 맺혀 생원이 많은데 / 煙霞早結多生願
해상의 신선 거처가 갓끈을 씻을 만하네 / 海上仙居可振纓
신령한 곳 절간을 신경이라 부르는데 / 靈區蘭若號神京
회정 스님이 낡은 가사로 수행했던 일을 회상하네 / 回憶懷師破衲行
회정(懷正) 스님의 옛 자취가 있다.
봄 나무에 꽃 지니 산사가 예스럽고 / 春樹落花山寺古
새벽바람 비를 부르니 계곡 다리까지 물이 찼네 / 曉風吹雨澗橋平
범종소리는 공연히 귀가할 꿈을 흔드는데 / 鍾梵空攪歸家夢
비석 두전은 피세 이름 몹시 부끄럽네 / 石篆深羞避世名
옥경대 앞은 내일 갈 길인데 / 玉鏡臺前來日路
폭포가 한 자나 더하니 먼지 낀 갓끈이 부끄럽네 / 飛泉添尺愧塵纓
금강유람시(金剛遊覽詩) 115수는 《해산소사(海山小史)》에 묶어놓았기 때문에 다시 군더더기를 기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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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광릉잡시 10수〔廣陵雜詩十首〕 10수 중 2수를 선발했다.
쿵더쿵 서쪽 집에서 방아를 찧고 / 伊軋西舍舂
비틀대며 동쪽 우물을 길어오네 / 蹣跚東井汲
시골 여자는 가을밤을 아까워하고 / 村女惜秋夜
이정은 세금 징수 급하게 하네 / 里正徵租急
또 금년에 거두어들인 쌀은 / 又言今年糴
옮겨 실어 산창으로 들여간다 하네 / 轉輸山倉入
한밤중에 쫓아와 부르는 소리 듣고 / 半夜聞追呼
산에 올라 달아나 피하여 우네 / 登山走避泣
전하는 말이 강화도의 전쟁에 / 傳道沁水戰
경기 지역 병사를 모두 징발했다 하네 / 悉發畿輔甲
세찬 바람에 서리가 마르려하고 / 風高霜欲晞
밭두둑 위에는 가을 잎이 날리네 / 隴上秋葉飛
골짜기로 들어가니 이미 어둡고 / 入洞已瞑色
마을엔 남은 햇살 희미하네 / 墟里曖餘暉
울타리 허술하니 닭과 개가 나오고 / 籬疏鷄犬出
산이 추워 나무꾼 목동들 돌아오네 / 山寒樵牧歸
사일의 술로 매일 서로 부르는데 / 社酒日相招
오히려 스스로 동쪽 사립문 안에 누워있네 / 猶自偃東扉
깊은 거처에서 이미 한가히 은거하니 / 幽居已息影
교유가 드문 것을 한스러워하지 않네 / 不恨交游稀
[주-D001] 사일(社日) :
입춘(立春) 이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인 춘사(春社)와 입추(立秋) 이후 다섯 번째 무일인 추사(秋社)를 통칭한 말인데, 여기서는 추사일을 가리킨다. 이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함께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풍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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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심곡서원을 알현하다〔謁深谷書院〕
용인에 있으며 정암 선생을 제사하는 곳이다.
내 일찍이 주역을 읽었는데 / 我嘗讀周易
차마 태괘와 비괘는 읽을 수 없었네 / 不忍讀泰否
군자의 도가 바야흐로 성장하다가 / 君子道方長
한 번에 소멸함은 무슨 이치이던가 / 一消亦何理
하늘이 끝내 송나라에 복을 내리어 / 皇天竟祚宋
원우비를 넘어뜨려 부수었는네 / 踣破元祐碑
지금 선생의 사당을 배알하며 / 今拜先生廟
동시대가 아님을 슬퍼하네 / 怊悵不同時
가시나무 덤불만 날로 자라고 / 荊蓁日以長
연못은 메워지고 나무는 이미 고목 되었네 / 池平樹已古
사당 왼편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미 말라버렸다. 또 선생이 손수 심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지금 우뚝한 채 가지가 없다.
탄식하며 내 어디로 갈 것인가 / 歎息我安歸
산중의 날이 또 저무는데 / 山中日又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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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농막에 물러나
여름날 삼은 이 직각 규서 승오 와 운자를 뽑아 함께 읊다〔退墅夏日與三隱李直閣奎瑞 承五 拈韻共賦〕
너른 들판 일대는 밝은 모래밭과 경계 이루고 / 平蕪一帶界明沙
푸른 숲의 강 언덕에는 몇 채 집이 자리했네 / 碧樹江臯罨數家
지난달에 길손이 눈 속에서 배를 돌렸었는데 / 前月客曾廻雪棹
이 산에는 봄에 이미 복숭아꽃을 심었네 / 此山春已種桃花
바위 기운 잠긴 못에 맑은 그늘이 돌고 / 涵塘石氣淸陰轉
바둑돌소리 가득한 집에 해가 기울었네 / 滿院棋聲白日斜
대숲 집과 꽃 언덕이 가는 곳마다 있으니 / 竹館華岡隨處有
한가한 마음을 그림 속에 보탤 필요 없네 / 閑情未必畫中加
제비집의 진흙 마르고 보리밭 기후가 서늘하니 / 鷰壘泥乾麥氣凉
강마을의 사월이 내 고향과 같네 / 江村四月似吾鄕
산중의 나그네 되어 세 밤을 지내니 / 山中爲客成三宿
숲 아래 관직을 쉬며 온갖 바쁜 일을 쓸어버리네 / 林下休官掃百忙
골짜기 새는 이름 없지만 모두 특별한 음조이고 / 谷鳥無名皆別調
들나물은 종류가 많은데 본디 그윽한 향기 있네 / 野蔬多種自幽香
한가한 구름은 골짜기에서 나와 다시 깊게 잠기니 / 閒雲出洞還深鎖
단비가 되어 팔방을 위로하길 바라네 / 願作甘霖慰八方
[주-D001] 이 직각(李直閣) 규서(奎瑞) :
이승오(李承五, ?~?)로, 무오년(1858, 철종9)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22등으로 합격했다. 규장원 경(奎章院卿)으로 있었을 때 제주도 종신 유형을 받았는데, 민비가 시해되었을 때 폐후고묘문(廢后告廟文)을 제술한 때문이었다. 이때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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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1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淸潭 골짝 안에서 곽경순의 유선시에 차운하여 짓다〔淸潭洞中作次郭景純游仙詩〕
산을 보는 것은 사람 보는 것과 같아 / 觀山如相人
오래 소문을 들으면 곧 명사이니 / 久聞乃名士
깊고 고요한 화산 북쪽 못을 / 窈窕華北潭
책속에서 생각하며 잊지 못하다가 / 結想書卷裏
깨어나 기원 노인께 말하고 / 寤言杞園翁
서로 삼연자를 따랐네 / 相隨三淵子
그윽한 구경은 내 바람에 흡족하고 / 幽賞愜吾願
폭포 소리는 뒤 귀를 맑게 하네 / 鳴泉淸兩耳
물을 거슬러가며 맑은 물결을 놀리고 / 沿洄弄淸漪
때때로 흰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네 / 時見白雲起
오르내리며 도경을 징험하는데 / 陟降證圖經
붉은 글씨가 바위틈에서 선명하네 / 丹書明石齒
내가 비단주머니의 시를 짓고자 하니 / 我欲裁錦字
청도에서 오는 사자가 있네 / 淸都有來使
[주-D001] 곽경순의 유선시 :
곽경순은 곽박(郭璞, 276~324)으로, 하동(河東) 문희현(聞喜縣) 사람이며, 자는 경순(景純)이다. 서진(西晉) 건평 태수(建平太守) 곽원(郭瑗)의 아들이며, 동진(東晉)의 저명한 학자로 문학과 훈고학에 뛰어났다. 곽박은 유선시(遊仙詩)의 조사(祖師)로 불리는데, 유선시는 선계(仙界)를 노니는 내용의 시를 말한다.
[주-D002] 화산(華山) 북쪽 못 :
북한산의 청담(淸潭)을 말한다. 화산은 북한산의 별칭이다.
[주-D003] 기원(杞園) :
어유봉(魚有鳳, 1672~1744)으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이다. 어유봉의 《기원집(杞園集)》 권20에 〈청담동부기(淸潭洞府記)〉가 있는데, 어유봉이 홍석주(洪奭周)와 함께 청담동을 유람하고 쓴 것이다. 한장석은 친구 어성집(魚聖執)에게 어유봉의 〈청담동부기〉를 빌려서 읽어보았기 때문에 여기에 어유봉을 언급한 것이다.
[주-D004] 삼연자(三淵子) :
김창흡(金昌翕, 1653~1722)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자이며, 영의정 수항(壽恒)의 셋째 아들이다. 김창집과 김창협의 동생이기도 하다. 형 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김석주(金錫胄)의 추천으로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고,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자 은거했다. 1696년 서연관(書筵官), 1721년 집의(執義)가 되었다. 이듬해 영조가 세제(世弟)로 책봉되자 세제시강원(世弟侍講院)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신임사화로 외딴 섬에 유배된 형 창집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도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여기에 김창흡이 언급된 것은 그가 어유봉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주-D005] 도경(圖經) :
산수(山水)의 지세(地勢)를 그리어 설명(說明)한 책(冊)이다.
[주-D006] 비단주머니의 …… 있네 :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동료들과 함께 나가 노닐 적에 종에게 다 해진 비단 주머니를 등에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써서 그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뒤에 다시 꺼내어 시를 완성했다는 이른바 ‘시재금낭(詩裁錦囊)’의 고사가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 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청도(淸都)는 천제(天帝)가 거주하는 궁궐인데, 〈이하 소전〉에서 천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지어놓고 그 기문을 쓰게 하기 위하여 사자를 파견하여 이하를 데려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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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2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중궁전 단오첩〔中宮殿端午帖〕
꾀꼬리는 꾀꼴꾀꼴 관목에서 맑게 우니 / 黃鳥喈喈灌木淸
천중가절에 온갖 화평을 맞이하네 / 天中佳節百和迎
주나라 교외에 해 길어 동이로 세 번 고치 켜고 / 周郊日永盆三繅
순 궁전에 바람 불어 부채 이름이 오명이네 / 舜殿風來扇五明
동궁전에서는 금루의에 길이 더하고 / 金縷添長蒼震邸
벽하의 성에서는 수정 쟁반 받들어 나오네 / 瑛盤擎出碧霞城
여자 사관이 황상의 길함을 기록할 줄 아니 / 彤毫解撰黃裳吉
곤도가 덕을 품고 교화의 성취를 돕네 / 坤道含章贊化成
초위에 아름다운 명절이 돌아오니 / 椒闈回令節
더운 한낮에 붉은 햇빛이 도네 / 炎午轉朱光
창포주는 금 술잔에 푸르고 / 蒲酒金觴綠
난탕은 푸른 가마솥에서 향기롭네 / 蘭湯翠釜香
용루에는 잠이가 고요하고 / 龍樓簪珥靜
학금의 척의가 길어졌네 / 鶴禁尺衣長
주남의 교화에 흠뻑 젖으니 / 共沐周南化
휘음이 천하의 창생들에게 입혀졌네 / 徽音被海蒼
도부와 증전에 다섯 명협 잎 더해지고 / 桃符繒篆五蓂加
구자종은 온갖 복을 멀리 전하네 / 九子粽傳百福遐
시녀가 수를 놓아 보불 무늬의 선을 만들고 / 侍女繡成朱黻線
궁궐 섬돌에는 석류꽃이 두루 피었네 / 玉階開遍石榴花
강 가운데 비친 한 조각 거울은 / 江心一片鏡
달이 궁궐 처마에 걸린 듯하네 / 如月掛宮簷
곤화는 사사로이 비춤이 없어 / 壼化無私照
밝은 빛이 온 세상에 고루 더해진다네 / 明光四海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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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2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회포를 진술하다〔述懷〕
삼년간 일한 것이 무엇이던가 / 三年何所事
백리재를 끝내 그릇쳤어라 / 百里才終非
백성들 힘든 일은 어느 때나 그치려나 / 民力那時已
내 마음은 정사와 어긋났도다 / 吾心與政違
임금 은혜 갚지 못해 탄식하지만 / 君恩嗟未報
부모가 늙었으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 親老盍言歸
눈보라 속의 배는 나뭇잎처럼 가벼운데 / 雪艇輕如葉
표연히 웃으며 옷을 턴다네 / 飄然笑拂衣
이미 오랫동안 형체의 부림을 받고서 / 已堪形役久
인끈 내던지니 한 몸이 가벼워라 / 投紱一身輕
지친 새는 오히려 돌아갈 줄 아는데 / 倦翮猶知返
피로한 말로 어찌 갈 수 있겠는가 / 疲蹄詎可行
강산은 전에 봐서 익숙한데 / 江山經眼慣
빙설은 마음을 비출 수 있게 맑으니 / 氷雪照心淸
저 도원량이 / 悟彼陶元亮
귀거래하여 세속 마음 벗어났음을 깨닫네 / 歸來出世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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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2권 / 시(詩) / 한장석(韓章錫)
선죽교〔善竹橋〕
내가 탄 말 선죽교에서 머뭇거리니 / 我馬踟躕善竹橋
다리 아래 물 슬피 울고 나뭇잎 바삭대네 / 橋流哀咽葉蕭蕭
옛 궁터의 벼와 기장 밭에는 가을바람 일고 / 故宮禾黍秋風起
남은 사당 초상화의 의관에는 해가 빛나네 / 遺廟衣冠白日昭
천명이 끝내 성주에게 귀속될 줄 알았으나 / 大命終知歸聖主
사직지신은 스스로 전 왕조에 보답했네 / 宗臣自有報前朝
돌 머리의 얼룩진 피를 어찌 애써 묻겠는가 / 石頭斑血何勞問
한 번 죽음이 적막하지 않음을 보아야 하리 / 一死須看不寂寥
[주-D001] 성주(聖主) :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李成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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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감흥 4수〔感興 四首〕
추로 땅에 가을 해 저무니 / 魯鄒秋陽沒
어둡고 어두운 밤 왜 이리 기나 / 冥冥夜何長
명유가 비록 도학을 보호하나 / 名儒雖衛道
별에 크고 작은 빛 있음 같았네 / 星有小大芒
염관에 초승달 떠오르니 / 濂關弦月出
하락엔 보름달 밝아오네 / 河洛望宵昌
빼어나도다, 자양산이여 / 卓哉紫陽山
상서로운 해 부상에 솟네 / 瑞日湧扶桑
건곤은 대낮처럼 밝으니 / 乾坤焂白晝
온갖 오묘함 다 드러내어 / 萬微盡昭彰
눈으로 모두 볼 수 있으나 / 有目皆可覩
다만 큰 길 높여야 하리 / 但當尊康莊
어이하여 두세 학자들은 / 云何二三子
경망스레 틈새 빛 빌리는가 / 沾沾借隙光
경전 공부에선 쌍봉 비웃고 / 治經笑雙峯
역사 편찬엔 정강을 의심하네 / 纂史怪正綱
고루하도다, 왕씨의 학문은 / 固矣王氏學
감히 대학장구 어지럽혔도다 / 敢亂大學章
도를 풀어 세상의 맹주 되니 / 解道主世盟
북계 선생을 잊지 못하리라 / 北溪不可忘
나는 주자의 뒤에 태어나 / 我生後朱子
이미 삼백 년이나 떨어졌고 / 三百年已疎
내 사는 곳은 건양과 멀어 / 我居遠建陽
그 거리가 만여 리라네 / 其里萬有餘
거동과 모습 뵈올 수 없어 / 儀形不可見
공연히 지은 책 읽어보았는데 / 空讀所著書
처음엔 사탕 깨무는 듯했으나 / 初味猶啖蔗
결국 통하니 맛난 음식 같았네 / 遂通芻豢如
옛 것을 익혀 점차 새 것 아니 / 溫故漸知新
처음에 막힌 것 뒤엔 허명하였고 / 先礙後還虛
윤편에게 비록 기롱당하였으나 / 輪扁雖見譏
노재가 실로 나를 일으켰네 / 魯齋實起予
한밤중에 춤을 추고 싶으니 / 中宵欲舞蹈
발랄함은 강호의 물고기인 듯 / 沛若江湖魚
궁통은 만 가지로 변한다 하나 / 窮通縱萬變
이 즐거움은 항상 처음 같다네 / 此樂恒如初
종자기의 죽음 한스러울 뿐이니 / 只恨子期逝
거문고는 누구를 위해 튕기리 / 瑤琴爲誰攄
도의 근원은 책 속에 있으니 / 淵源黃卷裏
홀로 성인의 문하를 찾아가리 / 獨尋聖人閭
나는 동산의 나무를 보고서 / 吾觀園中樹
지리가 이에 있음 알았으니 / 至理諒斯存
드높은 행실은 그 줄기이고 / 崢嶸行是幹
넓디넓은 덕은 뿌리 되었네 / 磅礴德爲根
사업은 가지처럼 무성하고 / 事業枝條盛
문장은 꽃잎처럼 번화하니 / 文辭花葉繁
도는 터전으로 비유하고 / 道將基地喩
학문은 심고 물 준다 말하네 / 學以栽灌言
뿌리와 가지는 차등이 있으나 / 本末雖有等
바탕과 쓰임 본래 하나였으니 / 體用元一原
속히 덕의 씨 뿌리기 힘쓰면 / 勉哉邁種德
아름다운 꽃이 울을 비추리라 / 英華照藩垣
성인 주자는 세상의 맹주 되어 / 朱聖主世盟
긴 밤을 밝은 낮으로 바꾸었고 / 長夜變白晝
오묘한 이치를 깊이 꿰뚫으니 / 玄思徹萬微
후생이 어찌 쉬이 궁구하리오 / 後生那易究
강목에는 유와 윤이 있었지만 / 綱目有劉尹
격언에는 부합한 짝 없으니 / 格言偶未附
문집과 어류에는 / 文集與語類
누가 주석을 이룰까 / 註釋誰當就
조선에선 문하에 들 수 없으니 / 陋邦不得門
어찌 백관의 부를 알리오 / 寧識百官富
아, 나는 그 천분의 일 엿보았지만 / 嗟我窺千一
전수치 못함이 부끄러울 뿐이네 / 但慙非傳授
오묘한 이치 궁구하여 / 鑽仰化工妙
그윽이 아로새기고자 하는데 / 竊欲妄雕鏤
어찌 정밀하고 오묘함 발명하여 / 何能發精蘊
행여 장과 구 나눌 수 있을까 / 庶以分章句
이미 담장에 댄 내 낯 열었으니 / 旣開吾墻面
어린애의 어리석음 일깨웠으나 / 亦爲童蒙扣
어느 해에나 서책을 깨우치리요 / 何年會書籍
이 작은 정성 하늘은 도와주리라 / 寸誠天應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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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한퇴지가 재상에게 세 차례 올린 글을 읽고 읊은 시〔讀韓退之三上書詩〕
한퇴지는 강직한 선비로 / 退之剛腸士
오히려 빈천을 옮기었고 / 猶爲貧賤移
문장은 황유 빛낼 만했으나 / 文堪煥皇猷
벼슬 없어 베풀 곳 없었네 / 蹭蹬靡所施
비록 한 명성 겨우 얻었으나 / 一名雖僅得
박봉이나마 받을 기약 없었고 / 微祿沾無期
집엔 쌀 한 섬 남아 있지 않아 / 家無甔石儲
불쌍케도 기한에 괴로워하였네 / 恤恤苦寒飢
마침내 광범문에 엎드려서 / 遂伏光範門
재상에게 벼슬 구하는 글을 올려 / 上書干台司
첫 번째로 영재를 기르라 했으니 / 始言育英材
스스로 천거함 결코 흠되지 않았고 / 自進不必疵
두 번째는 위험을 무릅쓰라 하며 / 中言蹈水火
큰소리로 인을 소망하였고 / 大聲望仁之
마지막엔 천하를 근심하라 했으니 / 終言憂天下
논설이 어찌 보탬이 없었으리오 / 論說豈無裨
혹여 구품관이라도 얻었다면 / 儻得九品官
공사 간에 도움 있었을 것을 / 可補公與私
명령 기다리기를 사십여 일 / 待命四旬餘
문지기의 거절 몇 번이었던가 / 幾被閽人辭
변변치 못한 당시의 재상들 / 碌碌當時相
업신여겨 귀담지 않았으나 / 藐藐莫聞知
천 년 후에 남긴 글 읽으니 / 千載讀遺文
북두성처럼 찬란하게 비추네 / 星斗光陸離
한스러워라, 민생고 진술하여 / 恨不陳民瘼
청문에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 仰塞淸問時
어찌 밝은 달 같은 구슬 되어 / 胡爲明月珠
어둠에서 뛰어남 보이지 못하였는가 / 暗投不見奇
또한 하물며 옛날의 지사는 / 又况古志士
시신 구렁에 버려짐 잊지 않으며 / 不忘溝壑屍
함부로 나아감을 원치 않았으니 / 冒進非所願
가난과 병고를 어찌 슬퍼하리오 / 貧病豈足悲
녹을 구한 자장 인하지 못하니 / 干祿張未仁
단표의 안회를 누가 멸시하리오 / 簞瓢顔孰夷
한유가 옛날의 도를 배웠으나 / 韓公學古道
진수는 잃고 가죽만 얻었구나 / 失髓得毛皮
아니 이것은 젊어서의 일이니 / 抑此少時事
만년엔 맘속으로 부끄러워했네 / 晩年心忸怩
쫓아다닌 지난날 슬퍼함이 세차니 / 趨營悼前猛
그대는 자회시를 한번 보게나 / 君看自悔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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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곤학〔困學〕
내 나이 스물두 살이 되어 / 行年二十二
비로소 진정한 맛 알았고 / 始知味眞腴
상원사에 홀로 앉아서 / 獨坐上院寺
주자 도학에 마음 잠겼네 / 潛心紫陽謨
《소학》 외편을 보니 / 小學觀外篇
두려워 살갗에서 땀이 나고 / 惕然汗生膚
《대학》을 혹문으로 연구하니 / 大學硏或問
말마다 세밀함을 궁구하였지 / 語錄窮錙銖
이에 나아갈 방향 알았으나 / 爰玆知向方
기송으론 좇아갈 수 없어서 / 記誦不足趨
은근히 옛날의 학문을 엮어 / 慇懃編古學
조석으로 스스로를 즐겼네 / 蚤夜持自娛
어찌하여 기질 유약하여 / 如何氣質弱
먼 길에 둔함 채찍하지 않는가 / 道遠不策駑
의리와 공리 대략 변별되나 / 義利雖粗辨
쌓고 쌓아둔 공부가 없었네 / 積累無工夫
가죽 차길 서둘지 않으니 / 佩韋不汲汲
병근은 어느 때나 없어지리오 / 病根何年無
구습에 편안함을 면치 못해 / 未免安舊習
장기꾼 대하기를 좋아하여 / 好對象戲徒
마침내 마음 자주 놓아버리니 / 終然心屢放
공연히 고기 몸덩이만 남았네 / 空却血肉軀
비록 훌륭한 벗 얻었다 하나 / 縱獲蓬麻益
큰 뿌리 없으니 어이하리오 / 奈無大根株
관규가 어이하여 기쁘리오 / 管窺何足喜
정와가 강호를 이야기하네 / 井蛙議江湖
걱정거리 어찌 날로 더하는고 / 憂患那增益
부질없이 세월만 흘러가누나 / 但見歲月徂
유유히 사십 년이 되었는데 / 悠悠四十年
단지 거친 《태현》만을 배워 / 只學太玄鹿
마음 보존 스스로 단념하니 / 操存甘自畫
마음이 날마다 거칠어지네 / 靈臺日以蕪
어제는 주자의 가르침 보고 / 昨看考亭訓
홀연 문짝 열리듯이 깨달아 / 忽覺轉戶樞
정녕히 방심함 거두어들이고 / 丁寧收放心
걸음걸음 먼 길을 떠나갔네 / 步步進長途
처음엔 삽시간에 조존하고선 / 始也操一霎
점점 종식을 넘게 되었고 / 漸到終食踰
다만 하루 사이에도 / 但使一日間
네다섯 번 정신 일깨웠다네 / 提撕三五蘇
경계하자 문득 절로 보존되어 / 自警輒自存
어둔 곳에서도 마음 밝아지니 / 暗室生明珠
이제부턴 온갖 이치 연구하여 / 從玆窮萬理
은미한 이치 천하에 밝히리라 / 顯微燭九區
수레 몰아 만리 길 가려 했더니 / 驅車萬里道
두 바퀴 함께 굴러가지 못하나 / 兩輪不可俱
삼십구 해가 마침내 기울어 가니 / 卅九日終斜
어찌 말년엔 거둔 바 없으리오 / 豈無收桑楡
후일 곤학을 기억할 때는 / 他年記困學
아득한 종산의 모퉁이라네 / 渺渺鍾山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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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꾀꼬리 시 한 수로 허연을 떠나보내며〔黃鸝一首送許演〕
어디에서 온 꾀꼬리인가 / 黃鸝來何處
좋은 노래로 사막을 놀래키네 / 沙漠驚好音
한강물에서 훨훨 날다가 / 翺翔漢江滸
흘간산의 참새와 해후하였네 / 邂逅紇干禽
날개 짓 새매와 대등히 배워 / 學習侔鷹隼
숲에서 산꼭대기까지 날아오르고 / 從叢飛上岑
맑고 고운 소리 봄바람에 전하니 / 晛晥隨春風
온갖 새들 다투어 날아 모이네 / 百禽皆盍簪
어찌 깃들 나무 없으리오마는 / 豈無捿托木
버드나무 그늘에 홀로 의지 하였네 / 獨依楊柳陰
모양은 다르나 기미는 통하니 / 形殊氣味契
겸궐을 어찌 부러워하리오 / 鶼蟨何足欽
한스럽구나, 너 안정을 벗어나면 / 恨爾出安定
등림에 모일 길이 없으니 / 無由集鄧林
난새와 봉황새 좇아갈 수 없는데 / 鸞凰不可追
어찌 훈풍금에 화답하리오 / 那和薰風琴
삼 년을 종산에서 맴돌았으니 / 三載遶鍾山
듣는 이들 모두 마음 기뻐하리 / 聞者盡歡心
고향의 학은 오랫동안 원망하고 / 故山鶴久怨
백구와의 맹세 홀연히 찾았네 / 鷗盟今忽尋
원거가 본래 눈물 흘리지만 / 鶢鶋元涕淚
너를 보내며 다시 슬피 읊노라 / 送渠轉悲吟
어느 때나 모여 재잘거릴까 / 何年會嚶嚶
아스라한 남쪽 바다 물가에서 / 渺渺南海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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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서암가〔徐巖歌〕
서암은 종성부의 백성으로 / 徐巖鍾府氓
어릴 때부터 효자였으니 / 孝性自童騃
가난하여 송곳 꽂을 땅도 없지만 / 貧寠無一錐
봉양하는 마음 게으르지 않았네 / 奉養心不解
무술년의 가뭄 너무도 심하여 / 戊戌旱太甚
냇물 말라 물고기와 게 문드러졌고 / 川竭爛魚蟹
분분히 구렁을 굴러다니다가 / 紛紛轉溝壑
골육이 서로 흩어지게 되었네 / 骨肉相捐擺
저들의 흐느낌에 느낌 일어 / 感彼爲反嘯
강개한 눈물 몇 번이나 뿌렸던가 / 慷慨淚幾灑
곡식 구하려 자신의 몸 팔려 하나 / 求粟欲自賣
군적에 매인 몸 누가 사겠는가 / 繫軍誰肯買
아비를 업고 다니며 구걸하니 / 負父行且乞
험난한 길 끝내 멈추질 않았네 / 間關終不罷
햇볕 맞이해 기쁘게 쫴 드리고 / 迎陽喜曝曬
바람 피해 짚신 벗겨질까 걱정했네 / 避風恐颯躧
낱알 한 톨까지 밥 지어 올리니 / 粒米輒炊進
정위새 발해를 메우려는 듯하였네 / 精衛塡渤澥
어찌 야박한 세상 따라 변하리오 / 寧隨薄俗變
강한 뜻 백 번 단련한 듯하네 / 志剛百鍊諧
어릴 때는 아비 무릎에 올라갔는데 / 父膝兒曾上
등에 업힌 아비 도리어 왜소하네 / 兒背父還矮
마침내 추위와 굶주림 면했으니 / 終焉免凍餒
아비는 문득 아이의 젖을 먹었다네 / 父却飮兒嬭
누가 말하였나, 북녘엔 사람 없다고 / 孰云北無人
대나무가 해곡의 것일 필요 없지 / 管竹不必嶰
사또가 화곤으로 포상하니 / 使君褒華衮
누추한 고을이 감탄하며 놀랐네 / 陋邦嘆且駭
범석보와 명성을 같이 하여 / 齊名範碩寶
길이 사람의 모범 되리라 / 永作人模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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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오언고시(五言古詩) 종성(鐘城)에서 간행한 초간본
기생의 노래〔娼妓歌謠〕
예전 구천 위에 있을 때 / 昔在九天上
일찍이 낭군을 모시고 살았지요 / 曾陪夫子居
자수를 천손에게 배우고 / 刺繡學天孫
푸른 노을로 옷깃을 기웠답니다 / 爲補靑霞裾
황정이 인간 세상에 귀양 오니 / 黃庭謫人間
영예와 미천함이 또 마을 달리 하네 / 榮賤又異閭
그대는 구름 사이의 학 같은데 / 公如雲際鶴
첩은 곧 구렁 속의 두꺼비랍니다 / 妾乃溝中蜍
영주산에 올라 옥서를 걸어보나 / 登瀛步玉署
어찌 다정한 옛날 기억하시리오 / 豈憶曩相於
어찌 알았으리, 오십년 만에 / 那知五十載
초거 타고 찾아주실 줄을 / 惠然乘軺車
요금으로 운화 곡조 연주하니 / 瑤琴奏雲和
옛 정 간직하여 날 멀리하지 않았네 / 懷舊不我疎
소상강에서 만남 비록 늦으나 / 瀟湘逢縱晩
봉도의 약속 헛되이 할 수 있으리오 / 蓬島約可虛
하물며 저 양자강과 한수도 변했으니 / 況彼江漢化
깨끗하게 내 초심으로 돌아가리라 / 皎潔返吾初
원컨대 한 치의 작은 옥이 되어 / 願爲徑寸玉
길이 허리 사이의 경거가 되고 / 長作腰間琚
원컨대 무의 뿌리가 되어 / 願爲菲下體
날로 소반 위의 김치로 올려지리라 / 日進盤中菹
한 번 웃어보자, 삼천 년의 세월을 / 一笑三千歲
모이고 흩어짐이 뜬구름과 같구나 / 聚散浮雲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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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2권 / 시(詩)○칠언절구보유(七言絶句補遺) / 유희춘(柳希春)
호남잡시〔湖南雜詩〕
이십 년 외론 배 발해를 떠다니다가 / 二紀孤颿渤海天
이제는 절월을 잡고 누선에 올랐네 / 如今杖節擁樓船
양후가 내게 고금이 다른가 물으면 / 陽候問我殊今昔
쇠하고 성함은 본래 우연이라 하겠네 / 衰盛從來本偶然
판옥선에 올라〔登板屋船〕
평생토록 활 잡는 놀이 안 해본 내가 / 平生不解戲操弓
붉은 해에 비친 깃발 세 번을 보았네 / 三見㫌旗映日紅
비로소 성관의 말 헛되지 않았으니 / 始識星官言不妄
녹원이 감궁 속에 들어갔다 했었지 / 祿元曾入坎宮中
역사에서 묵으며〔宿驛舍〕
젊은 날 일찍이 시서로 모였던 곳 / 靑春曾把詩書會
늘그막에 절월 가지고 돌아왔네 / 白首今持節鉞還
사십 년 전에 놀았던 이곳에서 / 四十年前游戲地
옛 자취 돌아보니 아직 여전하네 / 回頭古跡尙依然
담양 향교에서〔潭陽鄕校〕
일생동안 책과 인연 맺고 있다가 / 一生黃卷結因緣
이제 정기 세운 것 또한 우연이네 / 今擁旌旗亦偶然
우유는 끈으로 투석할 줄만을 알아 / 迂儒只知繩投石
또한 경오년에 왜적 이긴 일을 잇네 / 亦述戡倭庚午年
무사의 투석을 시험하고서〔試武士投石〕
꽃 보고 옥 희롱함은 모두 하늘의 소관 / 看花弄玉總關天
이별과 만남 돌고 돌아 열두 해 되었네 / 離合循環十二年
최후의 옥 가지 일찍이 꿈속에 들어와 / 最後瓊枝曾入夢
때론 유자 숲에서 완롱해도 무방하리라 / 不妨時玩橘林前
꿈을 기록하다〔記夢〕
북해에서 양을 돌본 지 십구 년 / 海上看羊十九年
성곽으로 돌아오니 예전 그대로네 / 歸來城郭故依然
이제 성공하여 고향에서 노니니 / 如今晝錦遊鄕土
위국 현신 아님이 되레 부끄럽네 / 卻愧人非魏國賢
올 가을 구곡 익어 얼마나 다행인가 / 何幸今秋九穀成
백성들 곳곳에서 모두 환성을 지르네 / 蒼生處處盡歡聲
누가 비바람이 순조로워 상서로우니 / 誰知雨順風調瑞
모두 군왕의 현명한 맘에서 나옴 알까 / 都出君王方寸明
옛날에 현감으로 □□□을 봉양하다가 / 昔養專城缺缺缺
중간에 북해로 옮긴 일 꿈인듯하네 / 中遷北海夢依然
이제 옥절 지니고 화현을 찾으니 / 如今玉節尋花縣
강보의 아이들까지 말 앞에 모여드네 / 襁褓頎頎擁馬前
비단 옷 지은 당년엔 갑작스러웠는데 / 製錦當年曾率爾
휘장을 거둔 오늘도 그저 아득하네 / 褰帷今日又茫然
하늘 같은 큰 성은 조금도 보답할 길 없어 / 聖恩天大無絲報
방장의 밥상 대하기 심히 부끄러워라 / 方丈深慙對案前
해남현에서〔海南縣〕
깊은 계곡 피리 부는 소리 팔마가 이끄는데 / 深谷簫聲導八騶
하늘은 맑고 날씨 따스해 들새도 즐거워하네 / 天晴日暖野禽娛
이제야 비로소 감사직이 귀함을 깨우쳤으니 / 如今始覺監司貴
옛날의 오솔길이 이제는 탄탄대로 되었구나 / 昔日幽蹊今坦途
심은동의 조상묘에서 제사를 모시고〔祭深隱洞先墓〕
어릴 적에 함이를 따라 왔는데 / 黃童曾逐含飴至
늙어서는 되레 절월을 들고 왔네 / 白首還成杖節來
반평생 떠돈 인생 그대는 묻지 말고 / 半世漂淪君莫問
창안 마주보며 기쁘게 술잔 드세나 / 蒼顔相對好銜盃
순천에서 친구에게 주다〔順天贈故人〕
이 묘가 황량해진 지 이백 년 / 此墓荒涼二百年
이제야 세 비석이 우뚝 섰구나 / 如今三石豎森然
현손이 어찌 선조 빛낼 줄 알까 / 玄孫豈解光先祖
유택이 오랫동안 전해져 온 것을 / 遺澤從來久遠傳
현조의 묘에 올라〔登玄祖墓〕
소년 때 이곳을 네 번 올라 재주 겨루어 / 少年較藝四登玆
세 번 장원하고 수령 술잔 받아 마셨지 / 三度倫魁飮守巵
이제야 절월을 들고 다시 찾아와 보니 / 如今杖節重來日
성곽은 의연히 예전 모습 그대로구나 / 城郭依然似舊時
나주의 금성루에서〔羅州錦城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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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집 제1권 / 시(詩) / 김원행(金元行)
큰기러기. 5장〔鴻鴈 五章〕
큰기러기 울음 울며 / 鴻鴈于鳴
새벽길 훨훨 날아가도다 / 肅肅晨征
오늘날의 선비들은 / 凡今之士
학문에 뜻을 두지 않도다 / 不志丁成
저 높은 수레에 멍에하여 / 駕彼高車
탄탄대로에 임하도다 / 臨于坦途
길이 멀기도 하니 / 途之云遠
어찌 빨리 몰지 않으리오 / 胡不遄驅
날이 가고 달이 가매 / 日往月來
온갖 꽃이 활짝 피도다 / 百卉敷榮
변함없이 전일한지라 / 維其不貳
이 때문에 낳고 낳도다 / 是用生生
하늘이 부여함이여 / 惟天之予
몹시도 크도다 / 亦孔之大
하늘이 네게 임하시니 / 天之臨女
어찌 혹시라도 태만하랴 / 其敢或怠
흘러가는 저 냇물을 보건대 / 相彼川流
도도하여 그치지 않도다 / 滔滔不止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 于今不力
어느덧 늙으리라 / 忽其老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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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집 제1권 / 시(詩) / 김원행(金元行
화담서원〔花潭書院〕
차츰차츰 산골짜기 깊숙이 들어가자 / 亹亹轉山谷
나를 향해 흐르는 맑은 시내 만났다오 / 淸溪向我流
나의 말 참으로 지친 지 오래건만 / 我馬良已疲
근원을 찾느라 쉬지 않고 가노매라 / 尋源未可休
숲길을 돌아드니 나래 편 듯 솟은 모습 / 林回見翼然
사람은 떠나가고 정자만 남았구나 / 人去有亭留
그윽하기 그지없고 풍광조차 시원하니 / 窈窕更灑落
즐겁고 즐거울사 참으로 명승이로세 / 樂哉信名區
말에서 내려서는 옷깃을 여미고 / 下馬整余襟
사당문 들어서니 엄숙하고 그윽해라 / 廟門肅淸幽
섬돌 따라 이리저리 거닐어 보노라니 / 循除以徊徨
금석에서 나는 소리 어렴풋이 들리는 듯 / 怳聞金石謳
가시덤불 헤치고 묘소를 찾아가 / 披榛訪馬鬣
이끼를 걷어내고 비문을 읽어보니 / 拂蘚看螭頭
의관을 갖추고 찾아왔던 선비들 / 衣冠仍杖屨
이 언덕 연연한 것 충분히 알겠어라 / 深知睠斯邱
여기저기 둘러보니 어느덧 저녁이라 / 吾遊屬遲暮
가을날의 자그만 산 쓸쓸도 하구나 / 寥落小山秋
개울가 검푸른 바위에 올라서서 / 臨流跂蒼石
이리저리 옮기느라 가야 할 길 잊었다오 / 屢徙忘前搜
당시에 일산을 꽂아 놓은 자리 있어 / 當時所植傘
가만히 앉아 유영하는 물고기떼 바라보네 / 默坐觀魚游
천지의 운행이야 고금이 그대로인데 / 天機自古今
순식간에 어쩌면 이리도 아득한지 / 俯仰一何悠
그 어른 지금 이미 저 멀리 떠났지만 / 其人雖已遠
오묘한 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으니 / 妙道斯可求
훗날에 혹시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 他時或重來
주역책 읽으려던 계획을 이뤄야지 / 擬卒讀易謀
[주-D001] 화담서원(花潭書院) :
개성(開城)에 있었던 화곡서원(花谷書院)으로,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609년(광해군1) 지방 유림에 의해 창건되어 1635년(인조13)에 ‘화곡(花谷)’이라 사액되었으며, 1871년(고종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주-D002] 사람은 …… 남았구나 :
당(唐)나라 최호(崔灝)의 〈황학루(黃鶴樓)〉 시에 “옛사람 이미 황학 타고 떠났으니, 이곳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라고 한 데서 차용한 말이다.
[주-D003] 금석(金石)에서 …… 듯 :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있을 때 사흘이나 불을 때지 못하고 십 년 동안 새 옷을 해 입지 못하는 극빈(極貧)의 생활 속에서도 신발을 끌고 상송(商頌)을 노래하니 그 소리가 천지간에 가득 차면서 마치 금석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청빈하고 고아하게 지낸 서경덕의 인품이 느껴진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莊子 讓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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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모음(제11부) 끝.
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 자료를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많이 더운 하루가 되겠습니다.
시원한 하루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