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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들여다보기] 종
아이들이 복사단에 입단하면 궁금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 “주복사”가 되어 “종”을 칠 수 있냐는 것이지요. 복사로서의 경험이 쌓여 종을 치게 되면 적절한 때에 적당한 울림을 주었는지 자기들끼리 설왕설래 합니다. 제단의 봉사자로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예쁘겠다 싶습니다.
통상적으로 종(鐘, bell)은 소리를 통해 시간 혹은 무언가를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가 전례 안에 들어왔지요. 교회는 “종”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봉사자는 축성 바로 전에 종소리로 신자들에게 신호를 한다. 마찬가지로 성체와 성작을 높이 들어 보일 때 그 지역 관습에 따라 종을 칠 수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150항)
종을 치는 순간은 사제가 성령 청원을 하며 두 손을 예물 위에 얹을 때, 축성된 빵을 들어 높이는 순간, 그리고 축성된 피를 담은 잔을 들어 올릴 때입니다. 타종을 통해 예수님의 몸과 피로 시선과 마음을 모아들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사제는 벽에 붙어 있는 제단을 향하여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회중들은 사제가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볼 수 없었습니다.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데 제약이 많았기에, 혼자 기도를 하거나 눈을 감은 채 수동적으로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빵이 축성되는 순간, 성체와 성혈이 거양되는 순간만이라도 회중들이 제단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고, 종을 사용했습니다.
종소리를 듣고 교우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바라보고 마음에 담습니다. 이런 의미를 기억하며 아이들의 타종 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 종을 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파스카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때 대영광송 중에 종을 치고 나서 부활 성야의 대영광송 전까지는 종을 치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알기 쉬운 전례 상식] 수단
어느 날 세례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신자가 웃으며 질문하였다. “신부님∼, 왜 신부님들은 검정 원피스를 입고 다니세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단을 검정 원피스라고 생각한 것 같아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매님∼, 검정 원피스가 아니라 수단이라 부르는데, 전례복과는 구별되고 성직 신분을 나타내는 평상복입니다. 그 형태는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입던 발목까지 내려온 긴 흰옷(tunica)에서 유래해요. ‘수단’이라는 한국어식 발음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 ‘수탄’(soutane)에서 따온 거예요. 3세기까지 성직 복장은 전례 거행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 복장과 구별이 없었고, 6세기부터는 투니카(tunica)를 본떠 만든 성직자의 독특한 복장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교회 내에서는 점차 수단을 성직자의 평복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 제14차 회기에서는 당시까지 흰색이던 수단 색깔을 검정색으로 바꾸고, 밀라노 관구 교회회의(1565년)에서는 검정색 수단을 성직자들이 착용하고 다니게 합니다. 식스토 5세(1585-1590) 교황은 교령을 통하여 수단을 성직자의 의무 복장으로 규정합니다.
1982년 9월 8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마 교구의 총대리 우고 폴레티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로마 교구 내에서는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성직 복장과 수도복을 착용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같은 해 10월 1일, 로마 교구 내에서 모든 재속 사제들은 수단 또는 검정 양복에 로만 칼라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수도자들은 수도복 또는 검정 양복에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하는 규범을 반포해요. 1995년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서도 ‘전례 예절 때에는 그 전례 규정에 따라 제의나 수단 등의 복장을 착용해야 하며, 모든 사목 활동 때와 공적 회합 및 공식 행사 때에는 성직자 복장(수단 또는 로만 칼라)을 착용하여야 한다.’(제1편 제3장 제15조 2항)고 규정해요. 수단을 입는 경우가 아니라면 양복 정장에 로만 칼라를 하는 것이 정식 복장이며, 여름에는 점잖은 모양의 노타이를 착용할 수 있다는 거죠.
수단 색깔이 검은 것은 하느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세속에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수단은 제의와 함께 성직자와 일생을 함께하는 복장으로 죽은 후에는 수의가 됩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상징하기 위해 단추를 33개로 맞춘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착용하는 사람의 키에 따라 30-40개의 단추가 달려 있어요. 수단은 성직자의 신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데, 일반적으로 신부는 검정색이나(지역에 따라 여름에는) 흰색, 주교와 대주교는 자주색, 추기경은 붉은색, 교황은 항상 흰색을 사용하죠. 이전에는 수단을 착용하기 전에 별도의 축복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착의식이나 독서직 수여식 때 수단을 착용하고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축복됩니다. 나아가 평신도 중에서도 교회 내에서 직무를 부여받은 이들(시종직과 독서직을 받은 이들, 성가대 지휘자나 선창자 등)도 입을 수 있어요.”
그 자매의 얼굴이 무척 진지하다. “아∼, 수단은 그렇게 오랜 역사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성직 복장이네요∼.”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안수
새 사제가 처음으로 주례하는 미사가 끝나면 안수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 사제는 정성껏 안수를 하지요. 제법 긴 시간 동안 안수를 하고 나면 어깨와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새 사제와 안수 받는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 가득 차 있음을 느낍니다. 일상이 늘 그렇듯 성령이 함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안수하는 장면은 성경에 자주 나타납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의 머리에 팔을 얹어 축복하였고(창세 48,14 이하), 모세는 자신의 직분을 이어받을 여호수아에게 축복하였습니다.(민수 27,18-23; 신명 34,9)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셨고(루카 4,40), 어린아이들에게 안수를 통해 축복하셨습니다.(마태 19,15)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은 행동을 했는데 그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졌고(사도 8,17), 히브리서에서는 안수가 기초 교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히브 6,2) 이에 따라 교회는 성사 집전에서 성령 청원 기도 안에 성령이 강하게 주어짐을 의미하는 이 표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99항)
안수는 성사 예식에서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세례성사에서 사제는 구마 기도와 예비 신자 성유를 바른 다음, 안수를 하는데 이를 통해 세례를 받는 사람이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어주고 보호의 손길을 보내시는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합니다.
견진성사에서는 세례 서약 갱신 후에 주교가 안수를 하는데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견진자들에게 성령의 특은을 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해성사에서 사제는 고해자의 머리 위로 두 손 혹은 오른손을 펴 들고 사죄경을 외우는데 죄의 용서를 위해 성령께서 고해자를 성화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자성사에서는 성경을 읽고 보편 지향 기도를 한 후 병자에게 안수하는데 치유의 은총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성품성사에서 안수는 중심 예식 가운데 하나인데 주교가 먼저 수품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다음, 예식에 참여한 사제들이 차례로 안수합니다. 안수는 수품자를 사제단에 받아들인다는 표시입니다.(가톨릭 대사전 “안수” 참조)
성체성사, 곧 미사 때의 안수는 성찬례 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사제는 손을 모아 빵과 포도주 위에 펴는데, 이는 성령이 빵과 포도주에 내려와 그것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달라는 청원의 의미로서 성변화의 핵심적인 순간입니다.
이처럼 안수는 단순히 손을 얹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활동이 교회를 통해 전달되는 표징입니다. 이 동작을 통해 축복과 치유, 성령의 선물 혹은 직무의 위임이 상징적으로 표현됩니다. 안수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새겨보며 미사에 참여해 보면 어떨까요?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으로 보는 전례음악 Q&A
노래도 기도… 전례 거룩함 온전히 담아낼 수 있어야
“말로 하는 미사랑 노래로 하는 미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왜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나요?”, “미사 중 아무 악기나 연주할 수 있나요?”
많은 신자들이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성음악에 대한 궁금증들이다.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펴낸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이하 「성음악 지침」)이다. 「성음악 지침」의 내용을 토대로 신자들이 흔히 갖는 성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본다. 괄호 안의 숫자는 위 책의 항 번호다.
Q. 꼭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A.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콜로 3,16)
널리 알려져 있듯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른다”고 했으며,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두 배로 기도한다”라는 말도 있다.
「성음악 지침」에 따르면 미사 거행에서 교우들의 특성과 전례 회중의 능력을 고려하면서 ‘교회적 측면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는 노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평일미사에서는 전례문을 반드시 모두 노래하지는 않더라도 주일과 의무 축일 미사에서는 봉사자들과 교우들의 노래가 빠지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9항)
Q. 그레고리오 성가는 왜 부르나요?
A. ‘노래는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로마 전례에 고유한 그레고리오 성가가 첫 자리를 차지한다.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연구와 교육뿐만 아니라 올바른 사용을 위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이를 장려해야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 특성상 성음악 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10항)
신자들 중에 라틴어 성가나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 왜 우리말이 아닌,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된 성가를 부르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의 오랜 전통이자 문화로, 음악(musica)이 아니라 노래(cantus)로서의 기도다.
또한 날이 갈수록 여러 나라의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가 많아지므로 적어도 미사 통상문의 몇 부분, 특히 신경과 주님의 기도는 신자들이 라틴어 노래로 함께 부를 줄 알면 매우 좋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10항)
Q. 미사 중 아무 악기나 연주할 수 있나요?
A. 전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는 오르간이지만 다른 악기들은 지역 직권자의 판단과 동의에 따라 성전의 품위에 알맞고 예배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며 신자들의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허용될 수 있다.(31항)
한국교회 교구들에서는 관악기, 현악기도 사용할 수 있으나 금관 악기와 타악기는 특별한 경우에 신중하게 검토해 사용하도록 돼 있다.(31항) 악기 사용은 거룩한 목적에 알맞아야 하고, 신자들의 노랫소리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32항)
Q. 성가대의 특송에는 제한이 있나요?
A. 사실 특송이라는 말은 이 노래의 전례적 성격을 잘 드러내지 못하므로 ‘영성체 후 찬가’라는 말이 더 바람직하다. 전례 성가에서 중요한 것은 곡조가 아니라 가사다. 성가에 붙여진 가사는 성경과 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져야 하며, 그 내용은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돼야 한다. 성경 본문이든 전례 본문이든 쉽게 음악을 만들려는 의도로 본문을 의역해서는 안 된다.(19항) 이 같은 맥락에서 대중가요나 가곡 등을 영성체 후 찬가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전례 영성 – 혼인성사] 혼인성사, 부부 사랑과 결합된 파스카 신비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교회가 남녀 간의 사랑에 무슨 말을 할라치면 세상 사람들은 “결혼도 안 해 본 사람들이 남의 사랑과 혼인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인과 그 ‘신비’, 혼인의 제정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의미, 그 기원과 목적, 구원의 역사를 통한 혼인의 다양한 실현, 죄로 생긴 혼인의 어려움과, 그리스도와 교회의 새로운 계약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1코린 7,39) 이루어진 혼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02항).
창조 질서와 혼인
혼인 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도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라 “신앙의 성사”(전례 헌장, 59항)가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의 혼인을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셨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가 “인격적인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사목 헌장, 48항)이라고 정의하였다.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969년에 발행되었고 1990년에 개정된 「혼인 예식」 제2표준판은 혼인성사의 중요성과 품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혼인 서약의 효력은 창조에서 비롯되며, 혼인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높은 품위로 들어 높여져, 신약의 성사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1항).
평생 공동 운명체
예식서가 처음부터 밝히듯이, 혼인은 창조에서 비롯된다. 혼인 거행은 창조 신비를 기억하는 행위이고, 혼인 예식 기도문들의 중심 주제도 창조 신비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혼인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것이다(창세 1,26-31 참조). 하느님께서도 그 혼인을 축복하시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 하고 말씀하셨다. 혼인이란 이처럼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교회법 제1055조 1항) 것이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차적으로 혼인을 자녀 출산과 교육의 도구로 보던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혼인의 강조점을 생명과 사랑의 친교에 둔다.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마치 정상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혼인 예식」, 3항)라는 말과 함께, 자녀를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혼인 예식」, 3항)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혼인의 핵심을 “정혼자들의 완전한 신의와 혼인 유대의 풀릴 수 없는 일치”(「혼인 예식」, 2항)에 둔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상징
신약 성경은 혼인을 ‘큰 신비’로 본다. 바오로 사도는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혼인으로 설명한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32).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부부 사이의 인간적 사랑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표현하는 상징이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고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마태 19,6)이 된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교회와 맺으신 계약”(「혼인 예식」, 6항)을 자신들의 풀릴 수 없는 부부의 계약을 통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내고 더 쉽게 본받게 된다(「혼인 예식」, 5항 참조).
혼인 예식 끝에 사제는 혼인을 축복하며 주님께서 “부부의 인연을 숭고한 성사로 축성하시어, 이 혼인 계약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성사를 미리 보여 주셨나이다.”(「혼인 예식」, 74항) 하고 기도를 바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인 부부의 삶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신비롭게 참여하는 특별한 부르심이 된다.
혼인성사의 은총
혼인성사로 결합된 그리스도인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풍요로운 사랑과 일치의 신비를 드러내고 그 신비에 참여한다”(「혼인 예식」, 8항). 부부 생활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며 서로에게 헌신하여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사랑으로 결합되어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몸과 마음으로 신의를 지켜”(「혼인 예식」, 9항)나아가는 것, 여기에 그리스도인 정혼자의 소명이 있다.
교회는 창조에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자연적인 결합을 ‘하느님 사랑의 표지’로 여기고,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덕으로 나아가는”(「혼인 예식」, 10항) 진정한 성소로 본다. 「혼인 예식」의 미사 감사송도 하느님 사랑의 표지인 혼인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자애로이 창조하시고 그 품위를 드높이시어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서 주님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셨나이다.
또한 사랑으로 창조하신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의 길로 이끄시어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에 참여하게 하시며
주님 사랑의 표지로 거룩한 혼인성사를 세우시어
인간의 사랑을 거룩하게 하시나이다.”
(「혼인 예식」, 246항)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파스카 신비인 그리스도의 신비 한가운데에 위치해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애가 그리스도와 결합된 신비적인 혼인 생활이다. 교회는 창세기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묵상하면서, 그 결합이 그리스도의 큰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신앙의 성사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의 “유효한 혼인은 언제나 성사가 되는 것이다”(「혼인 예식」, 7항).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는 인간 존재를 초자연적으로 바꾸고 그의 전 생애를 변화시킨다. 특별히 인간의 일상인 혼인까지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파스카 희생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현장이 되게 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부부는 혼인성사를 통하여 축성된다. “이 성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온 삶을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 정신에 젖어 들어, 날로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 성화를 위하여, 또 그럼으로써 다 같이 영광을 위하여 나아간다”(사목 헌장, 48항).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님의 황금’ 해바라기, ‘묵주알’ 칸나
해바라기의 또 다른 이름 ‘성모님의 황금’
그리스 신화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요정이 꽃이 된 이야기가 나온다. 먼 옛날, 클리티에라는 요정이 태양의 신 아폴론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클리티에는 요정들 중에서는 아름다운 축에 속했지만, 아폴론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클리티에는 아폴론이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렸다. 하릴없이 9년 넘게 흠모하던 클리티에는 해바라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태양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클리티에는 아폴론이 언젠가는 반드시 찬란하게 빛나는 마차를 타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린다고 신화는 전한다.
이렇듯 태양을 사모하여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고 전해지는 식물인 해바라기는 중앙아메리카 원산으로 2m 내외로 훤칠하게 자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8∼9월이면 지름 8∼60cm의 큼지막한 노란색 꽃을 피우고, 이어서 20∼30%의 기름을 함유하는 씨앗을 맺는다.
인류는 일찍부터 관상용으로, 그리고 중앙아메리카(기원전 3000~1000년경), 러시아, 유럽의 중부와 동부, 인도, 페루, 중국 북부에서는 씨앗을 거두어 먹고 기름을 짜기 위해, 또한 줄기의 속을 이뇨, 진해, 지혈에 유용한 약재로 이용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에 해바라기는 유럽에도 알려지고 전해졌다. 그리고 이내 독특한 아름다움과 식품 자원으로서 유용성 때문에 높이 평가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밝게 빛나는 태양을 닮은 생김새와 색깔을 보고 이 식물을 ‘태양의 꽃’(Sunflower) 또는 ‘황금꽃’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그리고 이 꽃에서 그 이름에 걸맞은 따뜻함, 긍정성, 권능, 힘, 행복이라는 상징성을 읽어냈다.
한편 해바라기는 식물학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2년 이상 사는 다년생 품종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회복력이 강한 편에 속한다. 그런 해바라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장수(長壽), 내구력(耐久力), 시련을 견뎌내고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 등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삶에서 난관을 이겨내고 그것을 긍정적이고 활력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즐거움 넘치는 상징성을 해바라기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해바라기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을 따라가지 않는다. 물론 해바라기의 싹과 잎은 햇빛을 향하는 성질이 있지만, 일단 꽃이 피고 나면 더는 빛을 따라가지 않으며, 다만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해 고정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따라 돈다고 생각한다. 비록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있을 때라도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도 그러했다. 그러한 생각에 이어서 순수한 기쁨과 긍정적인 분위기,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조건 없는 사랑의 상징성을 읽어냈다. 나아가, 그러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법을 배웠다. 삶이 힘들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고달픈 삶에 함께하지 않으시는 듯이 여겨졌을 때도, 하느님은 그 삶에 함께 현존하신다는 믿음의 메시지를 받았다. 하느님은 마치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과도 같이, 인간이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고 그 너머에 있는 밝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어김없이 보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받았다.
해바라기의 꽃이 태양을 닮은 것처럼, 인간은 애초에 하느님을 닮은 존재다. 그분이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셨기에 말이다. 그러니 더욱 더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곧 인간의 운명이고 과제다. 인간은 그런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특히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도록 운명 지어진 피조물들이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해바라기를 ‘성모 마리아의 황금’(Mary’s Gold, 또는 ‘성모님의 고결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묵주알’이라 불린 칸나
여름부터 가을까지 시골집 담장 너머로 커다란 짙은 녹색 잎에 빨간색 꽃이 넘겨다보이는 풍경으로 제법 친숙한 꽃, 칸나. 우리말로는 홍초라고도 하는데, 현재 칸나라고 불리는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에 자생하는 원종들에서 개량된 원예종이다. 그러한 개량종이 100품종 이상이나 된다. 칸나의 개량은 19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크게 프랑스 칸나 계통과 이탈리아 칸나 계통으로 구분된다. 오늘날에는 이탈리아에서 개량된 품종보다는 프랑스에서 개량된 품종이 원예용으로 주로 재배된다.
칸나의 뿌리는 고구마처럼 굵고, 줄기는 곧은 원기둥 모양으로 2m까지 자라며, 잎은 양끝이 좁고 가운데가 넓은 타원 모양이고 그 밑부분(잎집)으로 줄기를 감싼다. 꽃은 빨간색 외에 보라색,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흰색으로도 피며, 지름 10cm 안팎 크기의 꽃이 지고나면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검은색 씨앗이 맺힌다. 개화기간(6월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이 길고 가뭄과 병충해, 공해에 강해서 가정뿐 아니라 도로, 공원 등에서 널리 재배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로서 제자였다가 배신한 데바닷타가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절벽에서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바위에 깔려 죽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석가모니는 고작 발만 다쳤다. 그때 발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는데, 그 피에서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그 꽃이 바로 칸나다.
- 칸나 씨로 만든 묵주.
칸나의 씨앗은 동글동글할 뿐 아니라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야물고 단단하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인도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 통치에 맞서 대대적인 저항 운동을 벌였을 때(세포이 항쟁), 실탄이 떨어진 인도 병사들은 칸나 씨앗을 총알 대신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영국에서는 칸나를 ‘인도인들의 총알’(Indian Shot)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칸나의 씨앗은 또한 음악을 연주할 때 달그락거리는 반주음을 내는 도구로도 쓰였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칸나 씨앗으로 염경기도를 바칠 때 쓰는 도구(묵주)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세기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은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씨앗을 맺는 식물인 칸나를 아예 ‘묵주알’(Rosary beads)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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