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在陳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적에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내 고향의 제자들이 뜻은 크지만 면밀하지 못하고, 문채는 이루었으나 그것을 올바로 재단할 줄을 모르고 있다.”고 하셨다.
○ 此孔子周流四方, 道不行而思歸之歎也. 吾黨小子, 指門人之在魯者. 狂簡, 志大而略於事也. 斐, 文貌. 成章, 言其文理成就, 有可觀者. 裁, 割正也. 夫子初心, 欲行其道於天下, 至是而知其終不用也. 於是始欲成就後學, 以傳道於來世. 又不得中行之士而思其次, 以爲狂士志意高遠, 猶或可與進於道也. 但恐其過中失正, 而或陷於異端耳, 故欲歸而裁之也. 이것은 공자께서 사방에 주유하였으나 도가 행해지지 않자 돌아갈 생각을 할 적의 탄식이다. 오당소자는 문인 중에 노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광간이란 것은 뜻이 원대하나 일에는 소략한 것이다. 斐는 문채 있는 모습이다. 成章은 그 사람의 문리가 성취를 이루어 볼만한 것이 있는 것을 말한다. 裁란 바르게 자르는 것이다. 공자의 처음 마음은 그 도를 천하에 실행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이 때에 이르러 그것이 결국 행해지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이에 비로소 후학들을 성취시켜서 그 도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중행지사를 얻지 못하자 그 다음을 생각하여, 광사는 뜻이 고원하지만 오히려 혹시라도 더불어 도에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중도를 지나쳐 올바름을 잃고서 혹시라도 이단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에, 돌아가 그들을 재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本孟子不得中行而與之一章說 맹자의 ‘중항지사를 얻어서 그와 함께하지 못하면’이라는 한 장을 본받아 말한 것이다.
如曾點之狂易流於老莊 예컨대 증점의 狂은 노장사상으로 빠져 흐르기가 쉽다. 問何故只思狂士不及狷者 朱子曰 狂底却有軀殼可以驅策 狷者只是自守得些 便道是了 所謂言必信行必果者 是也 누군가 묻기를, “무슨 이유로 그저 광사만을 생각할 뿐 狷者에는 미치지 않은 겁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狂인 사람에게는 오히려 몸과 껍데기가 있어서 달리도록 채찍질할 수 있지만, 狷者는 그저 스스로를 조금 지킬 줄 알게 되면 곧바로 옳다고 말해버리고 마는 사람이니, 이른바 말하면 반드시 신의를 지키고 행하면 반드시 결과를 낸다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成章是有首有尾 雖狂狷非中 然各做得這箇道理 成箇物事 不是半上落下 故聖人雖謂其狂簡不知所裁 然亦取其成一箇道理 大率孔門弟子 隨其資質各能成就 如子露之勇 眞箇成一箇勇 冉求之藝 眞箇成一箇藝 言語德行之科 一齊被他做得成了 문장을 이룬다는 것은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다는 것이니, 비록 狂과 狷이 中行은 아니지만, 그러나 각자 이러한 이치들이 어떤 존재를 이루도록 할 수 있기에, 반쯤 오르다 그만 떨어지고 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비록 그들이 狂簡하여 재단할 바를 모른다고 말하였지만, 또한 그들이 하나의 도리를 이룬 것을 취하신 것이다. 대개 공자 문하의 제자들은 그 자질을 따라서 각자 성취를 이룰 수 있었으니, 예컨대 자로의 용기는 진짜로 하나의 용기를 이루었으며, 염구의 기예는 진짜로 하나의 기예를 이루었다. 언어와 덕행의 과도 일제히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2 | 成章是做得成片段 有文理可觀 蓋他狂也 是做得箇狂人成 문장을 이룬다는 것은 편단을 만들어서 볼만한 문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개 그가 狂이기 때문이니, 이는 광인이 되어야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問孔子欲歸而裁之 後來曾晳之徒 弔喪而歌 全似老莊 聖人旣裁之後 何故如此 曰 裁之在聖人 聽不聽在他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돌아가서 재단하고자 하였지만, 나중에 증석의 무리가 조문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 온전히 노장사상과 비슷하였는데, 성인께서 이미 재단을 한 뒤에도 무슨 이유로 이와 같았던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재단하는 것은 성인에게 달려있고, 듣고 듣지 않고는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大凡學者易得有狂簡之病 非篤志爲己者 不能免也 雖琴張曾點猶或墮於此失 志意高遠 則所謂志大也 過中失正 卽其略於事者也 大凡人之志意高遠 則勢利拘絆他不住 故或可與進於道 然溺於高遠 又有脫略世故之弊 故過中失正而或陷於異端 是以不可不有以裁之而使歸於中正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무릇 배우는 자는 광간의 병을 갖기가 쉬우니, 뜻을 독실하게 하여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는 자가 아니라면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금장이나 증점일지라도, 오히려 간혹 여기에 빠져서 잘못을 했던 것이다. 志意가 높고도 멀다면, 이른바 뜻이 크다는 것이다. 中道를 지나쳐서 올바름을 잃는 것은 곧 일에 소략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릇 사람의 뜻이 높고도 멀다면, 권세와 잇속으로 그를 붙잡아 얽어맬 수 없기 때문에, 간혹 그와 더불어 도에 나아갈 수도 있지만, 너무 고원함에만 빠지고 또한 세상일을 빼놓거나 간략하게 보는 폐단이 생기기 때문에, 중도를 지나쳐서 올바름을 잃고서 간혹 이단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그를 재단하여 중정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徽庵程氏曰 狂簡者 志大而略於事 宜其梗槪䟽率 乃能斐然成章者 蓋其稟氣英明 賦質堅勁 雖致廣大而不屑於精微 然其規模之廣大 實非卑下者 所能攀 雖極高明而不屑於中庸 然其志趣之高明 實非平凡者 所能企也 其立心制行 豈不斐然可觀 但各矜所自得 非得聖人以裁之 則廣大雖可觀而精微猶未究 高明雖可喜而中庸猶未恊 且有琴張曾點牧皮之夷 考其行而不揜焉者矣 휘암정씨가 말하길, “狂簡이라는 것은 뜻이 크지만 일에는 소략한 것이므로, 마땅히 그 대강의 줄거리가 성기고 경솔한 것이 마땅하다. 이에 능히 문채가 나게 문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대체로 그 품부받은 기운이 영명하고 부여받은 자질이 굳세기 때문이다. 비록 광대함을 지극히 할 수 있지만 정미함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규모가 광대하여 실제로 비천하고 낮은 자가 능히 기어오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비록 고명함을 지극히 할 수 있지만, 중용을 무슨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뜻과 지향의 고명함은 실제로 평범한 사람이 능히 도모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 마음을 세우고 행실을 절제함이 어찌 문채가 나서 볼만하지 않겠는가? 다만 각자 자신이 터득한 것만 자랑하고서 성인의 재단을 얻지 못한다면, 광대함은 비록 볼만할지라도 정미함은 아직 궁구되지 못했고, 고명함은 비록 기뻐할 만할지라도 중용에는 여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금장, 증점, 목피(모두 공자의 제자들이다)의 행실을 돌아보면(夷考), 그들의 말을 가리지 못한 부분도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狂者易過中失正 得聖人裁之 則得中正矣 狂則必貴於裁 裁則不終於狂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狂者는 중도에 지나쳐서 올바름을 잃기가 쉬우니, 성인께서 재단해줌을 얻는다면, 中正을 얻게 될 것이다. 狂은 곧 재단함을 귀하게 여기고, 재단한다면 곧 狂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