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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존귀한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또한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에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인사, 축복의 인사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부터 추수감사주일 절까지 9주 동안 여기 계신 분들 다 예수 믿으시잖아요. 그렇죠. 믿고 성령 받은 사람 예수 믿으면 성령이 이 안에 계시는데 성령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9가지 주제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겠고요. 그중에 오늘 첫 번째 말씀으로 이제는 말을 바꿉시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말과 믿는 사람의 말은 달라야겠다.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얼굴을 보면 여러분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난다고 하는데,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을 빨리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제 외적인 것을 이제 옷을 입으면서 우리의 모습, 우리의 삶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우리의 외적인 이 옷차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일부는 알 수 있겠죠. 그러나 깊이 알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런 것보다도 그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알려면 대화를 해보면 되지요.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우선 배경적인 것도 알 수 있고 말투를 통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대화가 매우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람의 마음은 결국 이 말로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알아냅니다. 우리 마음 가득한 것이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생각은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래 숨기지 못해요. 말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군가는 마른 사람의 인격이 입고 있는 옷과 같다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옛말에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말 한마디로 천냥 갚기도 그렇죠. 한마디 말이 평생 원수를 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 때문에 웃기도 하고요. 말 때문에 울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용기를 얻습니다. 반면에 말 한마디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여러분 수고했다. 괜찮다 자랑한다. 이 말이 내 평생을 기쁨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너 왜 그거밖에 안 돼? 그만 됐어 실망이야 이런 표현들은 사실 상대의 마음을 상처 주고 상처로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잠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 있다. 성경은 혀를 단순히 신체 기관만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도 분명히 말하죠. 혀를 향해서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우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잎은 배지와 같다. 그래서 사공이 배를 운전하는 키를 붙잡는 거예요..
실제로 여러분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 안에서의 갈등, 또 직장 내에서의 어떤 갈등의 요소들, 교회 성도들 간의 문제, 결국 말 한마디 거기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이죠. 그걸 우리는 부정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낙심한 사람을 더 낙심되게도 만드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말 한마디가 정말로 우리를 살립니다. 낙심한 사람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요. 상처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기도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에게 소망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가장 변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사실 말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마음 가운데 그래 예수 믿고 이쯤 고쳐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사실 쉽지 않은 부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교회에 오래 다녔어도 여전히 말이 거칠 수 있습니다. 직분이 있어도 말은 여전히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말씀 앞에 나를 비추면서 나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만들어 가야 되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장 먼저 입술을 조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은 가장 먼저 아래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잘 드리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잘 이끌어줍니다. 봉사를 누구보다 멋지게 하는 것보다 참 중요하죠.
그런데 내 입술에서 어떻게 어떤 말이 흘러가느냐가 내 신앙을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나의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나의 말이 지금 누군가를 살리는 말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고, 이왕이면 오늘 말씀을 듣고 그래 이제부터는 나의 주를 통해서 그가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통해서 누군가가 살고 누군가가 행복을 느끼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말로 많은 영혼들을 세우는 은혜 끼치는 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 번째 오늘 본문에는 중요하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더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우리 29절 앞부분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무릎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여러분 예수 믿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신 사람 가장 먼저 변화되는 영역이 입술인데 오늘 본문의 바울은 무슨 말을 먼저 해라라고 말하지 않고 그보다도 먼저 우리가 버려야 할 말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말 더러운 말을 계속하면서 거기에 좋은 말을 섞어서 한다는 것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먼저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부터 다 버려야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이라는 것은 사프로스라는 단어인데 썩은 나무 썩은 과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겉은 멀쩡해도 이렇게 딱 쪼개보면 안이 썩은 것들이 있잖아요. 마치 그런 것과 같은 이미지 우리가 볼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속 안에서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이 바로 이런 썩은 열매와 같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박스 하나에 과일을 담아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썩은 과일 하나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어떻게 됩니까? 그것만 썩어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 사과들 주변에 과일들이 썩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대로 방치해 두면 전부 다 썩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험담의 말, 원망의 말, 불평 비난 정죄 거친 말 분노의 말 여러분 이것은요. 사실 들으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분만 나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죠. 내 말 한마디가 내 영혼을 병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의 영혼만 병들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고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아주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사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 말부터 조심해야 된다는 여러분 민수기 13장에 보면 12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그 성경 말씀은 아주 명확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약속이 먼저 있습니다. 그리고 12 정탐꾼에게 야 너희들 가서 그 땅을 좀 보고 와라 그렇게 이야기했죠. 정탐꾼이 돌아와서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10명이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저들 너무 강합니다. 우리는 올라갈 게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10명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사실 그들은요. 칼 한 번 휘둘러보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진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보고 느낀 상황을 나름대로 인식해서 전했을 뿐이죠. 그런데 그 말 때문에 온 백성이 낙심했다는 거예요. 그 말 때문에 백성들이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통곡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인생들이 그 말 한마디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렸다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13장에 기록돼 있다는 것이죠.
반면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곧 올라가서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것이 그들이 선포했던 그러면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12명이 가서 똑같이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왜 10명과 2명의 말이 달랐을까요? 기준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눈이 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달랐기 때문에. 무슨 일이냐?
하나님께서 가난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믿음으로 그 땅을 본 것이에요. 별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놓아버리고 그 땅만 바라본 거죠.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그 땅만 바라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이 땅을 주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땅을 이길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성령의 사람은 문제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기 때문에 말도 달라지는 것이다.
할렐루야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상황만 보지 말고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문제를 보는 사람 그래서 문제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임재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고 그 시선으로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이사야를 보십시오. 이사야 6장에 하나님 만납니다. 그런데 그 만남의 시간 가운데 이사야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한번 질문해 볼게요. 왜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딱 만나고 하나님 내 손이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나님 내 발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갈 수도 있죠.
그런데 그는 손의 죄도 아니고 발의 죄도 아니고 바로 입술의 죄를 고백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뭡니까? 손입니까? 발입니까?
아니죠. 입술. 그리고 여러분 그 입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촛불로 입을 대게 하셔서 깨끗게 하셨고, 그 후에 하나님은 그를 사명자로 쓰게 하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기 전에 사람이 가명자로 세우기 전에 이렇게 입술을 만드실 경우를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입술은요. 우리의 영적 상태를 어쩌면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은 여러분 이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창문과 같다. 이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목사님 저는 원래 말이 좀 직설적입니다. 이제 이렇게 다를 수 있잖아요. 말이 직설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저를 보세요. 눈도 푸셔고 귀로 들으시겠어요 주님은 저를 보시고 어떤 사람은 말이 직설적이어서 그 부분에 있어서 고민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직설적인 것과 상처를 주는 건 다릅니다. 그렇죠 직설적이라고 해서 상적 인다는 사람 그렇게 성립시킬 수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저는 뒤끝이 없어서 그냥 말하는 겁니다. 매우 중요하죠. 뒤끝이 있으면 정말 피곤할 수도 있어요. 뒤끝 없는 게 그래서 세상 사람 더 좋다고들 이야기해요. 그런데 여러분 그 뒤끝 없어서 내가 자유롭게 말하는데 말하는 사람은 자유로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말 때문에 낙심하고 하기 때문에 눈물이 있는 스타. 그래서 여러분 옛말에 칼로 입은 상처는 아물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오래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사랑은요. 먼저 버려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 가운데 이번 한 주 동안 원망의 말이 사라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난의 말이 떠나가기를 소원합니다. 정조의 말이 우리의 입술 가운데 버려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때부터 입술의 변화가 시작되는 거죠. 먼저 좋은 이야기를 하면 물론 없어질 수 있습니다만 버리셔야 돼요.
두 번째는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해야 된다 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반전에 보니까 이렇게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며 성령의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은 우선 먼저는 더러운 말을 버려야 돼요. 그런데 단순히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 되고요. 더 나아가서 사람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죠. 바울은 여기서 덕을 세운다 그렇게 말합니다. 세우다는 이 표현이 중요하죠.
여러분 건물을 지을 때 벽돌 하나씩 쌓아 올리는 그 모습을 떠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허무는 자가 아니라 이제 사람을 세우는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철거반이 되어서는 안 되고요.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건축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포크레인 갖고 와가지고 긁어내면 무슨 말이에요?
무너뜨리는 거는 쉽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건물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계가 필요하고요. 시간이 필요하고요. 정성과 수고를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죠. 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난의 말은 사실 매우 쉬워요. 웬도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흠을 잡고 험담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죠 지적하는 것 어쩌면 우리 일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세우는 말은요. 기도가 필요합니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요. 인내가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사람의 단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실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것이죠. 과거에 실수했던 것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너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현재보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바라보는 것이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나바 그 뜻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기하죠. 사람마다의 특징을 잘 해서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 바울은 신학이 뛰어난 사람이겠죠. 그리고 요한은 사랑의 사도,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 이거는요. 사실 성도들이 지어준 별명과 왜 그렇게 지어줄 수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에요. 저 사람은 정말 말씀이 좋아 저 사람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탄탄해. 저 사람은 진짜 사랑이 많아 이 사람은 정말 위로하면서 이를 보여줬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왜 그런 별명을 세워줬을까?
여러분 그 사건을 우리는 압니다.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다메섹 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변화되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절대 받아줄 수 없다.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죽이러 다닌 사람이 그래서 사람들은 다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 바나바는 달랐던 것이죠. 아닙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변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를 받아줬고 그로 인해서 그는 사울에서 바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실 바나바라는 인물이 없었다면요. 절대로 바울은 바울이 될 수가 없었어. 하나님은 바나바라는 귀한 인물을 그에게 붙여주셔서 그를 잘 돕게 해주고 그로 하여금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 뿐만 아니죠. 여러분 바나바 하면 나가라는 인물도 떠올리셔야 됩니다. 마가 1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함께 이마가와 함께 바나바와 이 해도 여행을 갔다가 마가가 중간에 중도 탈기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의 신뢰를 잃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갈 때 같이 가자. 바나바가 이야기하니까 나는 같이 갈 수 없다. 바울이 노 저어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따로 떨어져서 그때 바나바가 바를 여러분 그렇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위로하고 세월 주고 섬겨줬던 사람이 누구냐 바로 바나바였다는 것이죠. 결국 이 바나바를 통해서 나가는 성경을 쓰는 자에까지 가게 된다는 그러니까 한 사람의 그런 위로 축복 경기가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하는 높은 자리에 서게 했다는 것이죠.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것 그 무엇일까?
돈으로 이렇게 주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까요?
아니면 능력을 내가 최대치로 끌어서 그에게 넘겨주겠다는 일까요?
아니요. 어쩌면 사람을 세워줄 수 있는 딱 한마디 말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말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는 축복의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도 살면서 이런 경험들은 한 번쯤은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서도 그런 수고에 또한 감사의 경우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집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도 우리 예배 전에 서로 나눴잖아요.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이것이 우리의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들어합니다.
그렇게 나누는 이 말들이 우리의 삶이 그래 내가 세상에서는 축복받지 못하는 인생 같았지만 주님이 나를 축복하시는구나 내가 세상에서는 사랑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여기 오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생생하구나 느끼는 사람이 계실 거라는 것이요. 그러면 그 말이 매우 축복이 되는 것이죠. 짧은 말 한마디가 여러분 우리의 눈물을 쏟게 하고요. 한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10번 칭찬을 들었어요. 그런데 한마디 비난으로 말미암아 저게 약심하고 저기 까지 시천까지 떨어져가고 는 공격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 우리 안에 성령이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 하기 전에 꼭 한 번씩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내가 말하는 이 말이 누군가를 세우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 입술을 열어서 선포할 때에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세우는 것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 멋진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여러분 사람은요 본능적으로 비판하는 게 빠릅니다. 우리 이거 인정해야 돼요. 이 사람의 속성이 격려하는 데는 인색한 이 그래서 노력이 필요한 거죠. 사실은 그런 수고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두 번째 사랑의 수고 이 수고는 내 노력과 헌신인 것이 사랑은 그냥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고가 따라야지만 그 사랑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말이 누군가를 세워줄 수 있는 축복의 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건축자의 입술이 되셔서 가정에서 가족들을 세워주시고 목장에서 목원들을 세워주시고 교회에서 성도들을 세우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들이 또한 세상 가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 입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세우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인데요. 세 번째는요. 은혜를 흘려버리는 것 이게 사실 메인이에요. 지금까지는 메인이 아니 여기에 좀 집중을 해 주십시오.
여러분 본문 마지막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잊히되 여러분 이것이 이 본문의 정점입니다. 더러운 말을 버리는 것 매우 중요하죠. 그렇죠 그리고 사람을 세우는 말 중요하죠. 누군가에게 짐을 주고 연기를 주는 거. 그런데 정령의 사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된다. 은혜를 흘려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은혜라는 것은 카리스 헬라 카리스라는 것인데 여러분 늘 들어봤잖아요. 은혜가 뭡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신 선물이 은혜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 여러분 은혜라고 하면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우리가 용서받은 것,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 그런 게 은혜죠. 내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이 오셔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선물이란 말이죠. 그 은혜 여러분 은혜를 끼치는 말이라고 해요. 그냥 말이 아니라 은혜를 끼치는 말 그러면 여기에는 뭐가 다르겠죠?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야 되고요. 복음이 담겨야 되고요. 회복이 담겨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비교해 보시죠. 앞에 두 가지 첫 번째 더러운 맛 그리고 누군가를 배우는 맛 이거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세상 사람들 다 해요. 아니야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입 조심해야지 내가 예수 안 믿어도요. 얼마나 입을 통제하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 안 믿어도 누군가를 축복하고 재워주는 말 잘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조직에 들어가면 더 잘해요. 왜 내가 살아야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도 더 한단 말이야. 좋은 관계를 맺는 이거는 세상도 할 수 있고 우리도 할 수 있는 그런데 은혜를 끼치는 말은 세상이 할 수 없는 거예요.
믿으십니까? 어떻게 은혜를 알지 못하는데 은혜를 끼칩니까?
그거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끼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은혜를 알기에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할 수 있는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부어주신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세상 가운데로 흘러가 또 우리 성도 가운데 가정 가운데 흘러가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냥 괜찮습니다. 이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게 붙어야죠. 세상 사람들도 다 괜찮다. 이거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삶 가운데 있기도 하는 하나님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하심 오늘 찬양이 전하심이 라죠. 하나님의 선하심 그 선하심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상 이것이 필요한 것이죠.
여러분 사람은 위로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것이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가늠한 여인을 이렇게 용서하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죠. 사람들이 그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정죄했습니다. 돌을 들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문화 상황 환경으로 볼 때 비난받아 마땅한 상황이었어요. 누가 비난해도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이죠.
여러분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죄를 향한 은행의 메시지였다는 것이죠.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복음이었고요. 그 한마디가 그 여인의 인생을 완전히 송두리째 바꿔놓는 메시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죠. 그는 세 번 부인해서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와서 왜 그랬느냐 책망하거나 실망했다 말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너를 사랑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게 질문하시면서 그를 회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은 사람을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회복시키는 말이에요.
우리도 사실 그럴 게 많아요. 박심만 집사님 집사님 힘내고 기도하겠습니다. 입장을 하죠. 우리도 사실 그런 거 못하지 하는데, 그러나 바라기는 그러한 은혜의 나름 우리의 삶 가운데 인간이 많이 표현되어지고 젖어있고 그것이 흘러가는 축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입술을 통해서 불평보다는 감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평한 일이 많아요. 사실 그런데 불평한 일이 많아도 불평보다는 주님 생각하면서 감사하시고 비난보다는 축복의 말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정죄의 말보다 내 말로 인해서 누군가가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상처보다는 은혜가 끼칠지 있는 여러분 우리 하루에 수천 마디 해 정말 많이 말해요.안 하는 것 같지만 정말 많이 말해요. 이거 한번 모아보면 수천 마리라고 그런데 그중에 내 말이 은혜의 말이 하나도 없다면 안 되잖아요. 이왕이면 수천 마디 말 중에 그 핵심 가는 은혜의 말 내가 적어도 생각나고 의도적으로 하는 은혜의 말이 있다는 그렇다면 여러분 보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실천하는 성도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로 인해서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간 한 주 동안 사랑이 강할 거예요. 사단이 방해할 텐데 그래도 기억하시고 가정에서 축복의 말 하십시오.
할렐루야 일주일 동안 가정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축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의도적으로 사단을 못하게 할 거니까 아침부터 짜증 나는 일들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그러면 이 사탄이 나를 지금 넘어뜨리려고 하는구나 생각하시고 우리 적으로 축복해 주시고 또한 목장 식구들에게 성도들에게 세워주는 말을 하시고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세상 가운데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기술로 우리가 쓰임 받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