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해변* 외 2편
바다를 입양키로 했지
조건이 까다로운 건 아니야
가슴에 들인 해안선 따라 자주 산책하기
발등을 덮어주는 모래처럼 따스한 손길로
쓰담쓰담하기 흔적을 주워오기 곁에 있어 주기
아플 때 혼자여서 슬플 때
눈물샘에 차오르는 너라는 해변
정오의 그림자같이 사라진 발목으로
윤슬에 반사되며 우리는 걸었지
발톱을 감추고 주름진 이마를 핥아대는 파도
서로의 이름을 모래밭에 묻고
목줄은 없지만 사인을 하고
넌 참 속이 깊지,
누군가는 돌 던지고 술병을 던지고 욕을 하고
누군가 오일을 바르고 바나나보트에 올라타고
흥성흥성 여름밤의 폭죽을 기억해?
물고기는 왜 눈 뜨고 잠잘까,
답을 구하는 사이 보란 듯이
아침이면 발치에 넘쳐나는 쓰레기 더미
붉은바다거북 새끼가 죽은 채 떠밀려왔을 때
부검한 뱃속에서 기어 나온 폐그물, 라면 봉지, 유리 조각……
미안해,
흔들리는 감정선이 수평선에 흘러가 좌초될 때
유리병에 담겨 떠내려가는 물때 낀 변명들
잘 돌볼게,
마음의 조각배를 너의 해안에 정박시킬게
얼어 터질 계절에도 그러나 사랑은 멈추지 않을게
우린 가족이니까
*1986년 미국에서 시작된 해양 환경보호 활동. 우리나라는 2020년 시범사업이 시작됨.
‘해저도시, 워터코
사람들은 양서류로 변해가고 있었다.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사이 물갈퀴가 자라고
지구의 날씨는 자포자기. 섭씨 59도. 논밭 갈라지고 말라붙은 강. 공중을 뒤덮은 황사. 짐승들 뼈와 죽은 나무, 버려진 로봇들. 침묵하는 육지. 살아남은 인간의 탈출 러시. 바닷속 유일한 서식지,
수중도시 워터코. 사이렌이 울렸고 시장의 긴박한 목소리. “산소가 부족합니다. 발전기 가동이 어려워 큐브형 아파트에 공급하던 무료 산소를 줄이겠습니다. 부득이 정오부터 현재의 절반만… 공급…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고래 떼가 지나가는지 스피커가 지지직거렸고
파래2는 비타민 함유된 점심 캡슐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돈 없음 죽으란 소리잖아!” 아빠는 냉동 정자. 엄마는 오래전 물귀신이 됐고 애완 로봇 쭈쭈가 유일한 가족. 최저시급 14만 원 받는 생수 공장 노동자. 비정규직 여자. 오후반 일이 시작되자 컨베이어 위로 흘러가는 유행가
슬픈 밤은 나의 친구
진통제 영혼은 차가운 알루미늄
심장이 녹슬까 봐 잠도 못 들지
이걸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 나의 사랑 검은 태양
심해 200m 워터코 시장 집무실인 잠수함B. “선거가 코앞인데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대머리를 양손으로 싸매며 호통치는 시장. “인공 지반이 빠른 속도로… 침식하고 전력망도 버틸 여력이… 별로…” 쭈뼛쭈뼛 비서실장. 여론조사 선두는 야당인 우주당 후보. ‘화성으로 이주’ 캐치프레이즈 내건 인물. “거짓말쟁이! 워터코를 다 팔아봐야 우주선을 몇 대 만들겠다고” 시장이 쾅,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자 돌연 암전.
불 꺼진 아파트. 파래2는 책을 듣고 있었다. 밀린 월세 고지서가 유리문에 팔락거렸다. 고작 다섯 평. 산소 헬멧을 쓰고 침대 뚜껑을 닫았다. 자가 배터리로는 고작 세 시간 견딜 수 있다. 이어폰에 재잘대는 창작동화 『나비와 고양이』
구름이 술렁이고 은빛 뭇별들 강으로 모여드네
살살이꽃 앉은 호랑나비 날갤 접었다 폈다 부채춤 추면
담장에 엎드린 삼색 길고양이 게으른 하품 기일게 하네
파래2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어떻게 오는지 상상했다. 들판을 맨발로 내달리는 꿈. 호흡이 점점 가빠오고 있었다. 인공 부레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해밝은 꽃들이 만발해서 괜찮다는 생각이 잠깐 번졌다. 보고 싶어, 흙이란 것을 한번 밟고 싶어
엄마, 영화 같은 이야기는 왜 죄다 현실이 되는 거지
거위가 낮달에게 발로 쓴 편지
5랜만 나 5늘 속상
자꾸 밀어 넣고 쑤셔 넣으면
견딜 수 있겠어? 플라스틱 b닐 플라스틱
빵 터질 텐데, 찢어질 텐데, 꺼우꺼우
정말 p가 말라 바짝바짝
물 마른 라인강에 배고픈 돌* 나타났대
글쎄, 쓸모없는 날개 찢어버리고
탈출하고 싶어 너의 행성으로, 뛰뚱뛰뚱
인간을 위해 난 모든 걸 바쳤어
푸아그라 접시에 살찐 간을 내줬어
9스다운 점퍼에 하얀 털을 뽑아줬어
자갈을 삼키면서 황금r 꿈꿨g, 젠장
내 몸의 북극 녹아내리고 옆구리 갈라 터지고
항문은 물 폭탄, 탱크는 서지 않고 서로 총질
g9력 탕진한 나의 5대양 6대주, 도망쳐
도망쳐 환청 속에 엉망과 진창을 자전하면서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어디 안 좋아?
얼굴2 창백하네, 야간조 아니었어?
폐사한 광어 눈알을 붉은 사막에 뿌리는 악몽
불안e 공장 컨베e어처럼 돌고 돌아5고 있어
조심해! 탐사를 가장한 정복, 파괴, 돈 되는 인간의 습성
중력을 따돌리고 산소 용기에 탐욕을 공급하겠g
우주복 입고서 달나라 섹스는 가능한 거니?
여튼, 그 많던 꿀벌은 어d로 사라졌을까
아프g 말자, 그게 인간에게 복수하는 거거든
*헝거 스톤 : 유럽에서 심각한 가뭄 지표로 삼아왔던 돌.
**페르난도 페소아.
실천사항
※ 해양수산부가 ‘반려해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려견처럼 바다를 잘 돌보자는 취지다. 지인이 ‘푸른 별 지구 수비대’라는 밴드에 가입해 ‘줍깅’을 자주 실천한다고 했다. 분해가 잘 되는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준다고 했다. 나도 50리터 종량제봉투를 사서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생각보다 한참 시간이 소요됐다.
※ SF 영화에서 종종 지구 멸망이라는 소재가 선택된다. 우주를 개척하거나 외계인과의 전쟁은 흔한 장면이 됐다. 미세먼지와 온난화 등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그래서 수중도시를 상상해봤다. 영화 같은 이야기는 꼭 현실이 되곤 했다.
오늘은 1회용품 안 쓰기. 봉지 커피를 습관적으로 종이컵에 마셨는데 머그잔 사용하고 설거지하기로 했다.
※ 불법포획된 돌고래 비봉이. 16년 동안 수조에 갇혀 쇼만 하다가 자연 방류됐지만, 추적 신호가 끊겼다는 보도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콩 1개를 주는데, 부지런히 모아서 해양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3천여 원의 소액이지만 뿌듯했다.
※ 제주 해안에서 죽은 바다거북의 배에서 비닐과 노끈, 플라스틱이 쏟아졌다고 한다. 택배 온 것과 페트병 등 하루에도 적잖은 플라스틱이 집에서 나왔다. 오늘 산행 때는 물통을 챙겼다.
※ 시골에 작업실을 두고 있어 새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사계절이 또렷해서 철마다 오는 새들도 틀리다. 마당에 벚나무 묘목을 다섯 그루 더 심었다.
※ 반려견 몰티즈 ‘동동이’를 키운다. 어쩌다 우리가 지구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인연이란 단어에 머물러본다. 강아지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쓰겠지?
플라스틱 세상이다. 플라스틱 용기가 넘쳐난다. 테이크아웃 대신 가게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배달 음식과 택배시키지 않기. 딸도 동참했다.
※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소싯적 로보트 태권브이 만화가 좋아 숙제도 까먹고 흉내 내고 다녔다. 지구가 아플 때 태권브이가 와서 구해줬으면 좋겠다. 악당을 물리치듯이.
오늘은 차를 두고 웬만한 곳은 걸어 다녔다. 면사무소와 식당, 우체국 업무까지 걸어서 봤다.
※ 북극이 녹아내리고 있다. 설산인 그린란드 정상에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순록이나 북극곰 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늘은 에너지를 절약해 보았다. 전기를 함부로 쓰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고 불필요한 불을 많이 켰다. 안 쓰는 플러그를 전부 뽑았다.
※ 명품 옷에 명품 가방까지. 신상들로 백화점은 늘 북적댄다. 하지만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선 산더미처럼 쌓인 헌옷 쓰레기 더미를 젖소들이 뒤지고 있었다. 서랍장 헌옷을 다시금 정리하게 되었다.
※ 가뭄이 극성이라 농부들이 울상이다. 이상 고온으로 40도를 넘긴 날씨다. 온난화로 점점 더워지는 지구.
함부로 트는 수도꼭지, 무심코 흘리는 수돗물. 오늘은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하고 에어컨을 껐다.
손준호
1971년 경북 영천 출생.
2021년 『시산맥』 등단.
시집 『어쩌자고 나는 자꾸자꾸』 『당신의 눈물도 강수량이 되겠습니까』.
2022년 대구문화재단 문학작품 발간지원 수혜.
대구문인협회 회원, ‘다락헌’ 동인으로 활동 중.
제2회 문학뉴스 &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수상.
이메일 link1157@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