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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트윈스>
9. 9대감독 천보성
@ 1953년생
@ 출신지 : 대구
@ 선수경력 : 경북고-한양대-아마롯데-공군-아마롯데/삼성
@ 현역시절포지션 : 내야수
@ 이전감독경력 : 없음
@ 재임기간 : 1997년~1999년
@ 재임기간 성적
- 1997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정규시즌 2위)
- 1998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정규시즌 3위)
- 1999년 매직리그 3위(종합 6위)
삼성맨으로 분류되던 천보성감독은 93년 이광환감독이 팀을 개편하던 93년에 LG의 코치로 합류해 황금기를 함께 보낸후 이광환의 뒤를 이어 LG에서는 첫 현역프로선수출신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96년 후반기 감독대행으로 팀을 맡은 반년까지 합산하면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3년반 동안 팀을 이끌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취임 첫해부터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쉽지않은 기록을 내기도 했고, LG감독으로는 최초로 2년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70년대 엘리트코스인 경북고와 한양대를 거쳐서 대학졸업무렵 창단된 아마롯데에 창단맴버로 입단해서 MBC시절까지 거슬러 감독선배가 되는 김동엽감독의 지도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말은 즉 부산-서울간을 구보로 돌파하던 맴버중에 한명이었다는 의미가 되죠...
3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삼성의 코치로 승격되어 지도자생활을 시작했고 미국연수후 친정팀 삼성이 아닌 LG의 수석코치로 복귀하게 됩니다...
같은 미국연수파인 이광환감독을 보좌했으나 96년 매너리즘에 빠진듯한 이감독이 송구홍을 본인이 원치않는 2루수로 고집스럽게 기용하고, 심지어는 1차지명 외야수인 심재학을 투수로 기용하려고까지 하자 이에 반기를 들면서 충돌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천보성은 감독이 된 이후 심재학 투수전향을 실현시키게 됩니다...)
결국 이광환이 시즌중에 사퇴하자 수석코치인 천보성은 자연스럽게 감독대행직을 맡게 되죠...
시즌초반 에이스 이상훈의 부상낙오로 이미 순위경쟁에서 멀어진 터라 97년의 최종순위 7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7위의 순위는 98년 2차지명으로 흘러나오는 진갑용을 잡기위해 OB와 서로 최하위를 하기위한 경쟁에서 밀려 올라간 순위이기도 합니다...
천보성이 대행 꼬리표를 떼어내고 정식감독으로 맞은 98년은 가능성과 아쉬움이 반반씩 남은 해입니다...
예상을 뒤엎고 시즌중반까지 선두로 치고 나갔지만 뒷심부족으로 후반기에 해태에게 1위자리를 내주면서 아쉽지만 기대이상의 2위자리에 올랐던 겁니다...
이 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삼성과의 부정배트 시비로 인해 LG-삼성간은 시즌내내 신경전을 벌여야 했고, 야구계의 선후배지간을 초월하는 백인천과 천보성의 신경전은 화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앙금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천보성 뿐만 아니라 사제지간 이상의 관계였던 김용달 당시 LG타격코치 역시 백인천감독과 사이가 소원해진 사건이기도 합니다...)
시즌내내 신경전을 벌였던 LG와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충돌하게 되는데 이미 백인천감독은 시즌중반 팀을 떠났고 삼성의 지휘봉은 천보성감독의 절친한 선배이자 사돈지간이기도 했던 조창수감독대행이었습니다...
LG는 단 1.5게임차로 아쉽게 시즌 1위자리를 내준 해태와 한판 승부를 해보기 위해서는 PO에서 삼성을 깔끔하게 떨궈냈어야 했는데, 2승을 먼저 올려놓고도 5차전까지 승부를 끌고가는 바람에 한국시리즈를 노리기는 힘이 부치게 된 것입니다....
해태에 선동열은 없었지만 이대진과 이종범이 신들린 활약을 하는 가운데 반대로 LG는 연투에 유난히 약한 이상훈이 PO때부터의 무리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면서 1승 4패로 완패합니다...
2년계약만료의 마지막해였던 98년은 LG로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였습니다...
팀의 기둥이었던 이상훈이 해외로 진출했고 2년간 불편한 동거를 했던 임선동이 현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LG 마운드의 주체는 38세의 나이로 마지막 투혼을 발하면서 다승왕에 오른 김용수를 중심으로 용병 앤더슨과 최향남이 뒤를 받치게 됩니다...
전년도보다 한계단 떨어진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준PO에서 OB를 2연승으로, PO에서 삼성을 3승 1패로 비교적 가볍게 꺽고 2년연속으로 KS에 진출하게 되죠...
그러나 이해의 최강팀 현대는 LG가 아무리 체력의 소모가 없었다고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있는 팀이 아니었습니다...
현대는 98년에 정민태를 필두로 선발 5인이 모두 10승대를 올린 전무후무한 팀이었기 때문이죠...
LG는 플레이오프 중에 주전 2루수 손지환이 부상을 당해서 한국시리즈 출장이 불가능했는데, 이미 명단을 제출했기 때문에 내야수 운용에 결정적인 차질을 빚게 됩니다...
양팀 감독의 동의하에 엔트리교체가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상대팀 김재박감독은 끝내 동의를 해주지 않은거죠...
중학교 1년 선후배지간이면서 국가대표 키스톤 콤비로 77년 세계를 제패한 인연을 갖고 있는 양팀 감독들의 인정을 따지면 한없이 야속한 일이었지만, 승부에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정민태와 김용수가 맞붙은 1차전에서 LG는 이종열이 2루로 옮김에 따라 대체 3루수로 출장한 안상준의 뼈아픈 실책으로 그나마 경쟁력있던 매치에서 패하며 KS승부를 힘없이 내주게 됩니다.... 최종성적은 2승 4패...
하지만 2년연속으로 KS에 진출한 공을 높이사 천보성감독은 그 어렵다는 LG에서의 계약연장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자 천보성감독은 재계약 첫해인 99년에 작정하고 팀의 리빌딩작업에 들어갑니다...
그 첫번째 작업이 과거 이광환감독의 발목을 잡았던 심재학 투수전향이었는데, 이때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거죠...
천보성감독은 심재학은 물론 신인선수들인 김상태와 김광삼에게 선발의 중임을 맡긴다는 복안에 용병 두명을 타자로 데려왔는데, 신인급 투수 세명이 모두 실패하고 전년도 포스트시즌에 맹활약하면서 재계약한 메이저출신 팰릭스는 물론 새용병 대톨라까지 부진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죠...
시즌중에 김재현을 해태에 와있던 양준혁과, 김동수를 삼성에 있던 김기태와 맞교환하자는 안을 계속 내놓고 그것이 최종준단장이 이끄는 프론트에서 거절당하는 상황이 반복, 결국 신인중용에 반기를 드는 선수단의 불협화음과 프론트와의 반목으로 재계약 첫해임에도 시즌중에 천보성감독은 사임의사를 내놓고 맙니다...
99년은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지그재그로 나눠 양대리그를 시행한 첫해였는데, 만만치않은 현대, 해태, 두산과 반대쪽에 자리잡은 LG는 삼성과 함께 무난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복병인 한화에 밀리면서 매직리그 3위라는 성적을 낸 것도 사임의 한 원인이 됩니다...
(4개팀중에 나머지 한팀인 쌍방울은 재정난으로 시즌운영을 거의 포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천보성의 감독직 자진사퇴로 LG에서 3년이상 감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프로출신 1세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천보성은 자율야구도, 관리야구도, 그렇다고 강압적인 스파르타식도 아닌 중도보완적인 스타일로 주력선수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용병제가 실시되는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감독이 운신하기 어렵다는 LG라는 팀을 맡아 첫해부터 예상외의 성적을 내는 등 긍정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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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스타브레이크시에 전구단 감독모임에서 천보성 감독이 김응룡 감독에게 김재현-양준혁 트레이드껀 얘기 꺼냈다가 쌍소리 들었던 사건은 유명하지요..
천보성 전감독의 작품으로 누구있을까요? 신국환? 김혁섭?
만약에 김재현 트레이드 그때 성사됐다면..금지어가 먹을욕 천보성감독이 먹었을지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