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는 정미소에 가서 방아를 찧어오면 쌀가마니에 담아 방 안에 쟁여 두고
일부는 쌀독에 퍼 넣어 매 식사때마다 쌀독에서 쌀을 꺼내 밥을 하였다.
먹을 게 없을 땐 쌀 독에서 맨쌀을 한 주먹 집어 내어 씹어 먹기도 하였다.
쌀독에 쌀을 오래 두면 쌀벌레가 생겼다.
쌀벌레란 쌀을 갉아 먹는 벌레로 작은 구더기만 하다.
어제 시집간 딸들이 서울에서 학교 다니면서 자취할 때 쌀벌레가 생겨서 기겁을 하고 그 쌀을 버리진 못하고
이웃에 있는 김밥집 앞에 편지와 함께 두고 왔다고 자백을 했다.
내 어릴 때는 쌀이 귀해서 쌀을 아끼려고 먹지 않고 일부러 오래 보관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쌀벌레가 생겼다. 아무리 잘 보관하려고 노력해도 쌀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진 못하였다.
어떻게 해서 쌀벌레 알들이 쌀통에 붙어 들어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쌀벌레가 생겼다고 쌀을 버릴 수는 없었다. 벌레가 생긴 쌀은 햇볕이 좋은 날 마루나 마당에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벌레가 섞인 쌀을 쏟아부어놓으면 벌레들은 햇볕을 싫어해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벌레를 골라 낸 후 다시 보관했다. 아까운 쌀을 버리 수는 없었다.
대학 ROTC때 여름방학 동안에는 진해 해군부대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다.
당시 53함에 배치를 받았었는데 점심 때 밥을 먹을 때 보면 밥 속에 허어연 쌀벌레가 들어 있었다. 군량미는 대개 일년이상 묵혀둔 것이라 쌀벌레가 생긴 것이다. 밥을 할 때 쌀벌레를 건져 내고 밥을 하면 될텐데 마구잡이로 하다보니 쌀벌레가 그대로 밥에 들아간 것이다. 한참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 쌀벌레가 눈에 띄면 그냥 들어내고 밥을 먹었다. 어찌 보면 단백질원인지도 모른다.
엽기세상에서는 아마존 어느 부족은 열대우림속의 썩은 나무에서 잡은 굼벵이 같은 벌레를 별미로 삶아서 먹는 장면을 TV에서 본 적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쌀벌레는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이 아닌가?
요즘 우리집에는 쌀독이 없고 코스트코에서 10kg짜리 푸대를 사다 놓고 먹는다.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아서 그런지 쌀벌레가 생기는 경우를 보진 못했다.
쌀벌레가 갉아 먹은 쌀은 쌀을 씻을 때 비중이 가벼워서 물 위로 뜬다. 몰론 쌀 벌레가 있으면 쌀 벌레도 함께 뜬다.
아직까지 쌀 씻을 때 쌀벌레가 나오는 것을 보진 못했으니 다행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쌀벌레가 나왔다 하더라도 햇볕에 늘었다가 벌레를 잡은 후 다시 넣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