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반도체 대기업 똑같이 투자해도, 韓 법인세는 대만 1.3배
입력 2023-08-28 00:09업데이트 2023-08-28 08:46
한국의 반도체 산업 최대 경쟁자인 대만이 이달 초부터 ‘대만형 반도체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내걸고 글로벌 반도체 투자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자국의 첨단산업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는 법이 통과되자 연구개발(R&D) 투자를 20% 늘리기로 했다. 한국도 올해 초 반도체 시설·R&D 투자에 혜택을 더 주는 법을 도입했지만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형 반도체법은 ‘글로벌 공급망 핵심업체’가 대만 내 투자를 늘릴 경우 법인세를 깎아주는 게 핵심이다. 서울시립대 김우철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순이익과 설비·시설투자 규모가 같은 기업이라도 대만과 한국에서 받는 혜택은 차이가 크다. 연간 순이익 2조 원인 반도체 기업이 설비, R&D에 각각 5000억 원, 총 1조 원을 투자할 경우 대만에선 2550억 원, 한국에선 그 1.3배인 3400억 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양국 법인세 차이가 크게 벌어진 건 기본적으로 우리 법인세율이 대만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1.5%보다 높다. 반면 대만은 20%로 평균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나치게 높은 최저한세율도 문제다. 각종 공제·감면으로 세액이 너무 낮아지는 걸 막기 위해 정해 놓은 하한선이 최저한세율이다.
대기업의 경우 한국의 최저한세율은 17%인 데 비해 대만은 12%다. 한국의 정치권이 여론의 압박을 받아 세법을 고치면서도 대기업 특혜 논란 등을 의식해 최저한세율 문턱을 낮추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R&D 투자 세액공제 비율이 한국은 최고 40%로 25%인 대만보다 높은데도 최저한세 때문에 이런 감세 혜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유례없이 긴 빙하기를 통과하고 있다. 강점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불황은 대만이 선두인 파운드리 부문보다 훨씬 혹독하다. 이럴 때 과감한 투자로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해 미래에 대비해야 다음 반도체 사이클 상승세에 올라탈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쟁국보다 무거운 우리 기업의 ‘세금 모래주머니’를 더 늦기 전에 떼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