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나이 37살인 이글스 팬입니다.
86년부터 현재까지 27년 이글스 팬으로 살아온 요즘 같이 참담한 기분이 드는 적이 없어 처음 글을 씁니다.
제가 국민학교 4학년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이었던 86년 이글스가 처음 창단했고
대전사람도 아닌 제가 얼떨결에 어린이팬클럽에 가입했다가 공짜로 나누어준 주황색 이글스 야구잠바 하나에
팔려서 지금까지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도 TV중계도 없던 시절 라디오에서 중계해주는 빙그레 야구 경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라났고
한희민, 이상군 원투펀치가 맹위를 펼치던 88년도에는 올림픽보다 야구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1) 우리에게 이글스란 무엇인가
야구는 어린 저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었고, 단순한 공놀이 이상의 무엇이었습니다.
야구는 저에게 인생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연습생신화였던 장종훈 선수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눈부신 재능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송진우 선수를 보며 배웠고,
요즘도 정신적인 강인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류현진 선수 경기를 보며 배웁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덕목들을 저는 야구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그래서인지, 저는 김태균, 김태완 이런 최근 선수들 보다는
장종훈, 송진우, 이정훈, 한용덕, 이강돈, 유승안,
이런 옛 선수들이 좋습니다.
바티스타보다 데이비스가 더 좋고, 로마이어가 그립습니다.
요즘 젊은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2번타자로서 희생의 가치를 일깨워준 이중화
무등경기장에서 박수 받았던 김대중,
44번 레지젝슨을 닮았던 대타홈런왕 송일섭,
2층 높이에서 내리 꽂던 최장신 김홍명,
노히트노런의 주인공 이동석,
형제 야구선수 지화동, 지화선,
낯선 타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외로운 야구를 했던 쪽집게 도사 고원부,
1사 3루에서 가장 믿음직했던 강정길,
묵묵한 투수리드의 김상국,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유이아빠라고 해야 알 위대한 멘도사 김성갑,
그리고, 강석천, 전대영, 조양근, 황대연...
지금은 배나온 중년의 아저씨들이 된 이런 옛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를 보며
울고 웃으며 자라왔습니다.
프로야구가 처음 생겨났을때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낭만을’이었습니다.
야구와 함께 꿈을 꾸며 자라왔던 베이스볼키즈 1세대인 나에게 이글스 야구는 야구 이상이었고
저는 야구를 보며 인생을 배워왔습다.
선동열과의 정면승부가 두려워서 1차전을 포기하고 갔던 김영덕 감독의 비겁함이
현실적인 고뇌였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되었고,
노력을 하면 장종훈 선수처럼 된다고 알아왔지만,
죽어라 노력을 해도 안되던 수많은 무명의 선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믿음과 기다림을 중요성을 알려주었던 김인식 야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력의 차이를 떠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끈끈했던 한대화 야구,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베이스볼 키즈들이 다 그랬듯이, 이글스 팬들은
이글스 야구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껴왔고, 그것이 이글스 팬으로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글스 야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왜 이글스 팬이어야하는지도 모른채 아빠가 사준 주황 야구모자를 쓰고
이글스가 가장 좋은 팀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 아들이 "왜 이글스여야하냐"고 묻는다면
아빠로서, 이글스 팬으로서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요즘 같아서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27년 이글스 팬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고양원더스 야구가 더 와닿을 정도입니다.
첫댓글 야구 오래된 팬이시군요^^ 초반엔 제가 모르는분들도 많이 알고 계시고 ㅋ 고양원더스 감독님이 한화로 오셨어야하는데 ㅠㅠ
솔직히 한대화감독 야구가 그립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