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는 많은 마애불이 있지만 쉽게 볼수 있는 것은 몇좌가 안된다.
걸어서 20여분이면 갈 수 있는 마애불은 15좌이지만 그 것도 혼자는 어렵다,.
길을 잘아는 사람과 가면 쉽게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길을 해맬수 도 있다.
이번에 다녀온 불곡 마애불은 여러번 답사를 갔다온 곳이다.
혼자 가기도 하고 여러명 같이 가기도 하고 등등 답사를 여러번 가는것이다.
이번에는 겨울에 12시에 맞추어 갔는데도 제대로 사진을 얻지 못하였다.
마애불은 대로에서 15여분가면 볼수 있는 곳에 있다.
커다란 바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작은 바위는 아니다
3m정도의 바위에 깊이 1m 의 굴을 파고 거디에다 불상을 새겼다.
약간 숙인 얼굴이 할머니 같은 느낌이 나지만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옷의 모양이나 특징이 할머니 같지만 어느 누구라는 것도 없으며
동굴 같은 형태이라서 전체적인 모습은 1000년을 견더내고 있으며,
유교의 시대인 조선시대에도 어떠한 인위적인 훼손이 없어서 잘 보존 된 마애불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 남산 북쪽 기슭에 감실(龕室: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만든 집이나 굴 형태의 공간)을 파고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불감은 높이 약 3m, 너비 3.8m의 바위 면에 깊이 1m, 높이 1.42m의 규모를 지닌 삼각형에 가까운 단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감실을 파고 불상을 고부조로 새긴 가장 이른 예로서, 오른쪽 어깨와 왼쪽 무릎이 약간 부서진 것을 제외하곤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경주 남산 불곡(佛谷)은 이 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마애여래좌상이 언제 조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불곡 마애여래좌상 위부분에 목조 가구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고, 감실 주변에 근년까지 기와 조각이 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목조 기와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처음 조성됐을 당시에 함께 건립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불곡마애여래좌상은 마애불상의 일반적인 특징과 같이 윗부분을 보다 입체적으로 하고 아래쪽을 그보다 얕게 조각하였다. 불상은 선정인(禪定印: 참선하는 모습의 손 자세) 형태의 수인(手印: 손 자세)을 한 채 가부좌(跏趺坐: 양반 자세로 앉은 모습)를 하고 있다. 불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두 손은 소매 자락 속에 넣은 다소곳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초기 불상에서 많이 보이는 바와 같이 이 불상에서도 머리와 발이 몸에 비해 큰 편이다. 낮고 편평한 육계(肉髻: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 머릿결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소발(素髮), 둥근 얼굴, 미소를 띠고 있는 상호(相好: 얼굴), 부드러운 어깨 등 전체적으로 아담한 모습이다.
한편 선각(線刻)으로 표현된 법의(法衣: 불상의 옷) 자락은 흘러 내려 대좌를 덮고 있다. 이와 같이 상현좌(裳懸坐: 불상의 옷자락이 흘러내려 대좌 정면을 덮고 있는 것) 형식으로 표현되는 대좌도 초기 불상에 보이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불곡마애여래좌상은 낮고 넓은 육계와 둥근 얼굴, 아담한 체형, 부드러운 조형 등에서 중국 북제(北齊)시대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과 연관된다. 이로 미루어보아 불상은 삼국시대 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선각(線刻)으로 표현된 법의(法衣: 불상의 옷) 자락은 흘러 내려 대좌를 덮고 있다. 이와 같이 상현좌(裳懸坐: 불상의 옷자락이 흘러내려 대좌 정면을 덮고 있는 것) 형식으로 표현되는 대좌도 초기 불상에 보이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불곡마애여래좌상은 낮고 넓은 육계와 둥근 얼굴, 아담한 체형, 부드러운 조형 등에서 중국 북제(北齊)시대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과 연관된다. 이로 미루어보아 불상은 삼국시대 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다음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