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새파란 청춘 때의 일로서, 선불교 바람이 불 때 시민선방을 전전하며 대여섯 철을 산 적이 있었다. 어떤 시민선방은 입승 스님 한 분과 남녀 노소가 같이 산다는데 내가 전전한 선방은 스님들도 서 너분과 처사들만 사는 곳이었다. 어떤 곳은 중간 죽비 없이 내리 두 시간을 앉는 곳도 있었고 중간 죽비란 한 시간을 앉고 대략 10분은 선방 안을 우측으로 빙빙 돌다가 다시 한 시간을 앉고 하는 구조다. 근데 두 시간을 내리 앉는 곳은 좀 빡세다.
생각해 보라 젊은 청춘이 공부는 이미 물건너 갔고 그에 따라 특별한 꿈도 없고 견성성불하면 그 얼마나 멋지랴 싶은데다가 하필 짝사랑녀가 거의 24시간을 내 머릿속에 딱 붙어 있었으니 이거다 싶었다. 어딘가에 이런 말을 대충 끄적였던 기억도 나는데 여튼, 유명하다는 스님을 찾아가서 삼배를 올리고 공손히 앉았더니 어디서 왔노? 떠오르는 데로 아니 생각해 둔 깜량으로 도둑놈 소굴서 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가 말을 해도 삼십방이요 말을 안해도 삼십방이다. 한번 일러 봐라 ..속으로 저 영감탱이가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니냐 당신이 구덩이를 파놓고 뭘 일러보란 말인가 싶어 조용히 일어나 일 배를 드리고 앉았더니 아니다 그정돈 며칠만 앉아 봐도 한다. 뜨끔 속으로 얼굴이 달아 올랐음에도 지기는 실어 다시 일어나 절을 하는 척 하면서 뒤도 안 돌아 보고 돌아서 나가려고 하자 야 니 좀 이리 와봐라. 어른이 말씀하시니 다시 앉자
여기서는 내가 법이다 니 머리깍고 여기서 한철 산다면 내 특별 허락하겠다. 어떻노? 아닙니다 전 선약이 있어 다음에 뵙겠습니다 하고 소문 들은 시민선방을 향한 것이었고 말을해도 삼십방이요 말을 안해도 삼십방이 화두가 되어 일주일도 안 되어 짝사랑녀는 온데간데가 없어지고 영감탱이 화두도 역시 영감탱이가 구덩이를 판 것이 맞구나 하고는 화두가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게 주워들은 벼라별 화두를 머릿속으로 간택을 해봐도 딱히 꽂히는 것이 없었는데 어느 날은 문득 어떤 화두가 드뎌 꽂혔다. 정말 그 조사의 뜻이 뭘꼬?
시민 선방에서 만난 스님 중에 지금도 또렷히 기억나는 스님이 있는데 거구의 스님이었는데 그 스님은 당시 이종식을 했는데 새벽 5시에 방선을 하면 거의 대부분이 지대방이나 가서 좀 쉬었다가 아침이 준비 된 식당으로 향했는데 대부분 시민선방은 스님 체험으로 발우공양을 했는데 그 시민선방은 식당이 따로 있었다 근데 그 스님은 그러니까 점심시간까지 내리 일곱 시간을 앉아 있었다 그 거구가 말이다. 어느날 부터 난 그 스님을 똑같이 따라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좌복이 딱 붙으며 편안해 졌다.화두도 화두지만 난 그게 더 신기했다.그 모습이 이뻤던지 한날은 포행길에 스님이, 어때요 처사님? 좌복에 딱 붙죠? 의외로 편안해지죠? 네..의외로 편안해 져서 점심밥도 안먹고 앉아도 앉겠습니다 했더니 하하하 그렇다니까요 하하하 . 그 스님은 요가도 달인이었다. 그 거구가 얼마나 유연하던지 한 유연하던 우몽도 혀를 내둘렀다..
첫댓글이 말도 어딘가에 끄적거렸을 긴데..그 거구 스님은 대중들 수근거리는 소문에 약 마흔 이쪽 저쪽으로 100키로가 넘게 보였는데 지대방에서 몸을 풀 때 보면 세상에 다리가 쩍 완전히 벌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우몽은 다리를 찢으면 약 5 센티 정도가 바닥에 떠서 도저히 어찌 안 되었는데 거구 스님이 슬쩍 보고는 그냥 씨익~웃으며 처사님 곧 되겠는데요..근데 되긴 개코나 일주일을 아무리 끙끙거려도, 거구스님은 바닥에 쩍 붙어서 다리가 그러니까 그것이 몆도냐 250 도도 넘게 왔다 갔다하는 데 난 그놈의 대체 3센티냐 5센티냐가 해결이 안 되어 거구스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짓거리도 시들해질 무렵 지대방엔 대중들이 다들 포행을 갔는지 서 너명이나 차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또 다리찢기에 끙끙대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꾹 누르는데 거짓말 안보태고 사타구니 쪽에서 뽁! 소리가 나면서 바닥에 쩍 붙는 게 아닌가 놀라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거구스님이 씨익 웃으며 처사님 이제 됐구만요 ㅎㅎ 나는 의심스러 다시 찢자 거짓말 처럼 쩍 붙으며 상하로도 왔다갔다 해보니 햐~ 처사님은 나보다 더 잘하네요 하하하 포대화상 같은 그 모습 아!!
그당시 대중들은 스님 세 분 포함 스무 명으로 기억하는데 입승 스님 좌우로 스님들이 앉고 처사들은 나이순으로 앉았는데 우몽 바로 위 처사는 우몽보다 5살이 더 많았고 많게는 30년도 넘게 차이나는 처사들도 있었는데 우몽이 제일 막내니 이런저런 소일은 당연히 우몽 몫이었다. 규율이 서로 존대는 하지만 우몽이 얼마나 귀여웠으랴. 입승 이하 스님들에게는 각 방이 배당 되었고 지대방도 따로 있었으나 가끔 처사들 지대방도 들려 차담도 하면서 실없는 농담으로 키득거리기도 했는데 입승 스님의 입담은 좌중 압권이었다. 화두 이바구? 공부 이바구? 천만에, 나름 다들 소위 한 칼씩 품은 사람들에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해서 우몽이 청풍명월님이 어디서 퍼온 소설인지를 보고 만약 저 글쓴이가 선객이라면 도대체 저런 글이 나올 수가 없단 것이다. 시민선방에서도 틈만나면 글짓기에 몰두하는 처시도 봤는데 대중들은 그 사람 살림살이를 척 봐도 알았다. 그 처사는 이미 화두는 십만팔천리요 좌복에 앉으면 몸부터 비틀려서 궁리궁리 시상이나 떠오르면 그것으로 버티는 처사였다, 선방에 들어가 늦게 드러나는 사람은 한 달 빨리 드러나는 사람은 일주일 또는 보름 그러니까 최하
한달이면 상대와 말한마디 나누지 않더라도 그 사람 똥꼬까지 훤히 보인다. 그게 선방이요. 심지언 노가다 판도 그 사람 일이 십분 하는 짓 보면 그 사람 똥꼬까지 다 보이는데 아무리 시퍼런 칼들을 감춰도 그렇게 다 드러난다. 그러니 실없는 농담이 농담이랴 배꼽 잡는 입담이 입담이랴..
척 봐도 얼굴에 명문대 출신으로 보이는 50대 처사는 약간 떠벌이 처사였는데 지대방서 은근히 노장이며 형이상학이며 누가 듣지도 않을 말을 해대는 대는 얼마안가 그 처사가 떠벌이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지대방을 나간다. 보다 못한 입승이 거 처사님 허리하학이나 말해 보소 하면 좌중은 배꼽을 잡는데도 그 냥반은 그때뿐이었다. 그렇다 그 처사는 요즘 말로 입을 털지 않으면 못사는 병이 걸린 사람으로 우몽도 한철 내내 그 처사를 피하기 바빴다. 더구나 우몽이 막내니, 우리 딸 주까 우몽아 얼마나 졸졸 따라다니던지 ㅎㅎㅎ
뒤죽박죽 이어지는데, 포대화상을 따라 거의 일곱 시간을 내리 앉는 일은 한달을 못 채우 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입승 스님이 포대화상 옆구리를 찌른 것이었다. 대중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도 좋으나 불편해 하는 대중들도 보이는 듯도 하니 스님께서 좀 양보 좀 하시오 강요는 아닙니다만..
그렇게 어느 날 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싶어 주위를 둘러 보니 스님이 안 보이기에 점심 공양을 마치고 포행(산책)길에 스님께 여쭈니 씨익 웃으며 아 내가 요즘 몸이 좀 안좋네요 너무 무리를 한거 같습니다. 처사님은 계속 그리하셔도 됩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때 거짓말처럼 난 입승스님이 번쩍 떠올랐다.
그때 우몽은 첫 철이요 스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구참급이고 처사들도 대부분 서너 철은 난 사람들이라 입방 첫날 입승스님이 방을 짤 때 처사들 군기도 잡을 겸 중간죽비는 없는 것으로 합시다 해서 2시간을 내리 앉게 된 것인데 보름도 안되어 입승 스님이 힘이 부치는 게 우몽 눈에 분명 보였다. 보이는 건 보이는 것이다. 포대화상과 말 수가 거의 없는 스님은 2시간은 식은죽 먹기로 보였고
그렇게 나는 고민 아닌 고민으로 슬그머니 5시 방선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2시간은 식은죽 먹기가 되었다. 그 뒤 힘이 딸리는 입승 스님은 틈만나면 입선 전에 좌우보처 스님들과 뭔가 수근대다가 ..대중님들 오늘은 족구나 한게임 어떻습니까? 공양간에는 국수를 삶도록 통보도 하겠으니 어떻습니까? 하면 좌우보처 스님들이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하면 우리 처사들은 뭐라 할것인가 ..속으로 합장공경 잘됐네 지..
그렇게 반 철 넘어 가서는 이틀 사흘 걸러 족구가 벌어졌으니 그건 또 얼마나 재밌었던고 ..주변은 온통 눈으로 쌓인 곳에서 대충 눈을 걷어내고 족구도 했다가 축구도 했다가 또 그 국수맛은 얼마나 기가막혔던고 아!!
잠시 화면을 바꿔 본다. 문득 두번 째 철에 그러니까 하안거 철에 만난 처사님인데 그때 그 처사님도 마흔 이쪽저쪽으로 지적인 이미지와 인품이 남달라 푸근한 형님 같아서 죽이 잘 맞았다. 후리후리한 키에 바짝 깍았는 데도 푸르스름하고 빼곡한 턱수염으로 보아 수염을 기르면 꽤 멋진 구랫나루가 될 것 같은 분이었는데 명문대 출신임을 스스럼 없이 밝히며 자신은 관법을 3년 했다고 해서 관법이 뭐지? 흥미로워 쉬는 시간이면 거의 붙어 있다시피 경청을 했다.
괴롭다는 것이었다. 분명 화두가 관법보다 힘이 있음은 느껴졌는데 화두를 들면 잘나가는 듯 싶다가 바로 빛무리에 휩싸인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 형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어쩔 땐 눈을 뜨고도 선명한 칼라 영화보듯 펼쳐져서 아차 다시 화두로 잡도리를 하면 사라졌다가 일이 분도 안돼서 눈을 감으면 또 그런 화면으로 넘어가니 대체 내가 미쳐가는 것인지, 선방에 오기전에는 거의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페해져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실례지만 선방은 몆 철이나 나셨습니까? 물으니 이번 철이 첫 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화두가 확실히 힘이 있다고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아!! 그게 잘 안됩디다. 근데 그러고 보니 눈을 뜨고도 그런 화면이 보인 것은 지금 잘 생각해보니 눈을 감고 한참 화면에 빠져 있다가 아차 눈을 뜨면 잔류 영상으로 보였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눈을 감고 있었던 게 먼저입니다. 정말 눈을 부릅뜨고 밀어 부쳐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서로 탁마를 했는데 그는 그 뒤 거짓말 처럼 한 달도 안돼서 그 증상이 없어졌다며 감격해 했다. 우몽이 짱구를 굴린 게 다행히 통했던 것이지 뭐 ..
그리고 삼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도심의 선방을 지나다 스님이 된 그 처사님이 우몽을 먼저 알아보고 우린 얼마나 반갑던지 호프도 한 잔 땡기며 그것도 모자라 여관에서 하룻 밤을 같이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극장 앞을 지나다 지금도 기억하는 크라잉 게임을 보고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는 데 지금까지도 몬 만났다. 근데 우몽은 아직까지도 위 처사님이 말한 관법을 모르겠다. 티벳쪽 계판가?
첫댓글 이 말도 어딘가에 끄적거렸을 긴데..그 거구 스님은 대중들 수근거리는 소문에 약 마흔 이쪽 저쪽으로 100키로가 넘게 보였는데 지대방에서 몸을 풀 때 보면 세상에 다리가 쩍 완전히 벌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우몽은 다리를 찢으면 약 5 센티 정도가 바닥에 떠서 도저히 어찌 안 되었는데 거구 스님이 슬쩍 보고는 그냥 씨익~웃으며 처사님 곧 되겠는데요..근데
되긴 개코나 일주일을 아무리 끙끙거려도, 거구스님은 바닥에 쩍 붙어서 다리가 그러니까 그것이 몆도냐 250 도도 넘게 왔다 갔다하는 데 난 그놈의 대체 3센티냐
5센티냐가 해결이 안 되어 거구스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짓거리도 시들해질 무렵 지대방엔 대중들이 다들 포행을 갔는지 서 너명이나
차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또 다리찢기에 끙끙대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꾹 누르는데 거짓말 안보태고 사타구니 쪽에서 뽁! 소리가 나면서 바닥에 쩍 붙는 게 아닌가 놀라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거구스님이
씨익 웃으며 처사님 이제 됐구만요 ㅎㅎ
나는 의심스러 다시 찢자 거짓말 처럼 쩍
붙으며 상하로도 왔다갔다 해보니 햐~
처사님은 나보다 더 잘하네요 하하하
포대화상 같은 그 모습 아!!
무궁무진하구만요.. ㅎㅎ
너무 무리하지 마소서!
오미~ 출근 안하시오? 우몽은 네버 거의 무리 안합니다. 미치씨요 무리하게 우몽은
재미없으면 죽어도 몬합니더 .숨결댁도 재미 없는 것은 죽어도 하지 마세요 ..생병납니더 (^.^)
ㅎㅎ
출근버스 안입니다.
클났구먼..흠..무조건 안전제일 !!!
사람들 관찰이나 잘해보시오 혹 압니까?
부업으로 깃발 꼽을지 ㅋㅋㅋ
그당시 대중들은 스님 세 분 포함 스무 명으로 기억하는데 입승 스님 좌우로 스님들이 앉고 처사들은 나이순으로 앉았는데 우몽 바로 위 처사는 우몽보다
5살이 더 많았고 많게는 30년도 넘게 차이나는 처사들도 있었는데 우몽이 제일
막내니 이런저런 소일은 당연히 우몽 몫이었다. 규율이 서로 존대는 하지만 우몽이 얼마나 귀여웠으랴. 입승 이하 스님들에게는 각 방이 배당 되었고 지대방도 따로 있었으나 가끔 처사들 지대방도 들려 차담도 하면서 실없는 농담으로 키득거리기도 했는데 입승 스님의 입담은 좌중 압권이었다. 화두 이바구? 공부 이바구? 천만에, 나름 다들
소위 한 칼씩 품은 사람들에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해서 우몽이 청풍명월님이 어디서 퍼온 소설인지를 보고 만약 저 글쓴이가 선객이라면 도대체
저런 글이 나올 수가 없단 것이다. 시민선방에서도 틈만나면 글짓기에 몰두하는 처시도 봤는데 대중들은 그 사람
살림살이를 척 봐도 알았다. 그 처사는 이미 화두는 십만팔천리요 좌복에 앉으면 몸부터 비틀려서 궁리궁리 시상이나 떠오르면 그것으로 버티는 처사였다,
선방에 들어가 늦게 드러나는 사람은 한 달 빨리 드러나는 사람은 일주일 또는
보름 그러니까 최하
한달이면 상대와 말한마디 나누지 않더라도 그 사람 똥꼬까지 훤히 보인다.
그게 선방이요. 심지언 노가다 판도 그 사람 일이 십분 하는 짓 보면 그 사람 똥꼬까지 다 보이는데 아무리 시퍼런 칼들을 감춰도 그렇게 다 드러난다.
그러니 실없는 농담이 농담이랴 배꼽 잡는
입담이 입담이랴..
척 봐도 얼굴에 명문대 출신으로 보이는 50대 처사는 약간 떠벌이 처사였는데 지대방서 은근히 노장이며 형이상학이며 누가 듣지도 않을 말을 해대는 대는 얼마안가 그 처사가 떠벌이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지대방을 나간다. 보다 못한 입승이 거 처사님 허리하학이나 말해 보소 하면 좌중은 배꼽을 잡는데도 그 냥반은 그때뿐이었다. 그렇다 그 처사는 요즘 말로 입을 털지 않으면 못사는 병이 걸린
사람으로 우몽도 한철 내내 그 처사를 피하기 바빴다. 더구나 우몽이 막내니, 우리 딸 주까 우몽아 얼마나 졸졸 따라다니던지 ㅎㅎㅎ
오메~ 과거 삼매 구신이 붙은 건지 아 숨결댁아 ~제발 근무나 잘하시오..
뒤죽박죽 이어지는데, 포대화상을 따라 거의 일곱 시간을 내리 앉는 일은 한달을 못 채우 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입승 스님이 포대화상 옆구리를 찌른 것이었다. 대중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도 좋으나 불편해 하는 대중들도 보이는 듯도
하니 스님께서 좀 양보 좀 하시오 강요는 아닙니다만..
그렇게 어느 날 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싶어 주위를 둘러 보니 스님이 안 보이기에 점심 공양을 마치고 포행(산책)길에 스님께 여쭈니 씨익 웃으며 아 내가 요즘 몸이 좀 안좋네요
너무 무리를 한거 같습니다. 처사님은 계속 그리하셔도 됩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때 거짓말처럼
난 입승스님이 번쩍 떠올랐다.
그때 우몽은 첫 철이요 스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구참급이고 처사들도 대부분 서너 철은 난 사람들이라 입방 첫날 입승스님이 방을 짤 때 처사들 군기도 잡을 겸 중간죽비는 없는 것으로 합시다 해서 2시간을 내리 앉게 된 것인데
보름도 안되어 입승 스님이 힘이 부치는 게 우몽 눈에 분명 보였다. 보이는 건 보이는 것이다. 포대화상과 말 수가 거의 없는 스님은 2시간은 식은죽 먹기로 보였고
그렇게 나는 고민 아닌 고민으로 슬그머니
5시 방선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2시간은 식은죽 먹기가 되었다. 그 뒤 힘이 딸리는 입승 스님은 틈만나면 입선 전에 좌우보처 스님들과 뭔가 수근대다가 ..대중님들 오늘은 족구나 한게임 어떻습니까? 공양간에는 국수를 삶도록 통보도 하겠으니 어떻습니까? 하면
좌우보처 스님들이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하면 우리 처사들은 뭐라 할것인가 ..속으로 합장공경 잘됐네 지..
그렇게 반 철 넘어 가서는 이틀 사흘 걸러
족구가 벌어졌으니 그건 또 얼마나 재밌었던고 ..주변은 온통 눈으로 쌓인 곳에서 대충 눈을 걷어내고 족구도 했다가
축구도 했다가 또 그 국수맛은 얼마나 기가막혔던고 아!!
잠시 화면을 바꿔 본다. 문득 두번 째 철에 그러니까 하안거 철에 만난 처사님인데 그때 그 처사님도 마흔 이쪽저쪽으로 지적인 이미지와 인품이 남달라 푸근한 형님 같아서 죽이 잘 맞았다. 후리후리한 키에 바짝 깍았는 데도 푸르스름하고 빼곡한 턱수염으로 보아 수염을 기르면 꽤 멋진 구랫나루가 될 것 같은 분이었는데 명문대 출신임을 스스럼 없이 밝히며 자신은 관법을 3년 했다고 해서 관법이 뭐지? 흥미로워
쉬는 시간이면 거의 붙어 있다시피 경청을 했다.
괴롭다는 것이었다. 분명 화두가 관법보다 힘이 있음은 느껴졌는데 화두를 들면 잘나가는 듯 싶다가 바로 빛무리에 휩싸인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 형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어쩔 땐 눈을 뜨고도 선명한 칼라 영화보듯 펼쳐져서 아차 다시 화두로 잡도리를 하면 사라졌다가 일이 분도 안돼서 눈을 감으면 또 그런 화면으로 넘어가니 대체 내가 미쳐가는 것인지, 선방에 오기전에는 거의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페해져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실례지만 선방은 몆 철이나 나셨습니까? 물으니 이번 철이 첫 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화두가 확실히 힘이 있다고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집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화두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서 집에서 무자 화두를 해보니 방금 말한대로 화면이 멈췄다 다시 펼쳐졌다가 하는 것을 느끼고 그리 말한 것입니다.
그렇군요..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면 그건 분명
괴로운 일이죠. 근데 말입니다 우리 지금 선방에 온지 보름도 안됐으니 뭐라 드릴말씀도 없고 그대로 밀어부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처사님은 가급적이면 눈을 부릅 뜨고 화두를 하는 게 좋을 듯 싶네요.
아!! 그게 잘 안됩디다. 근데 그러고 보니 눈을 뜨고도 그런 화면이 보인 것은 지금 잘 생각해보니
눈을 감고 한참 화면에 빠져 있다가 아차 눈을 뜨면
잔류 영상으로 보였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눈을 감고 있었던 게 먼저입니다.
정말 눈을 부릅뜨고 밀어 부쳐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서로 탁마를 했는데 그는 그 뒤 거짓말 처럼 한 달도 안돼서 그 증상이 없어졌다며
감격해 했다. 우몽이 짱구를 굴린 게 다행히 통했던 것이지 뭐 ..
그리고 삼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도심의 선방을 지나다 스님이 된 그 처사님이 우몽을 먼저 알아보고 우린 얼마나 반갑던지 호프도 한 잔 땡기며 그것도 모자라 여관에서 하룻 밤을 같이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극장 앞을 지나다 지금도 기억하는 크라잉 게임을 보고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는 데 지금까지도 몬 만났다.
근데 우몽은 아직까지도 위 처사님이 말한 관법을 모르겠다. 티벳쪽 계판가?
으~ 크라잉 게임? 찾아보장..
약간 능글능글하게 들리는 곡인데 그땐
왜 그리 찡하고 촉촉하게 들렸던지 ㅎㅎ
https://youtu.be/kFfL_oglHZw?si=arUubOUrFwlrnd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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