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 길 모든 게 익숙한 곳이다.
하늘 아래 큰 산이 있고, 그 산 아래 뜻을 품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릇의 크기를 논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길을 걸어보면 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오늘도 그 마음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다.
곳곳에 스며있는 남명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만끽하였다.
덕산–천평교(0.4km)-중태안내소(3.1km)–유점마을(3.1km)–중태재(1.3km)–위태(상촌)(1.8km)......[총 9.7km]
남명기념관
26명의 회원이 전주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였다
지난달에 걸음을 멈추었던 남명기념관 앞에 모여 깃발을 펼쳤다
덕산(德山)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의 시작점인 덕산은 지리산 관문 가운데 하나다.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인 중산리, 세석고원까지 이어지는 거림골 등 동부 지리산 곳곳으로 연결된다.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이란 지명은 남명이 지었다.
덕산은 하얗게 눈이 쌓인 장엄한 천왕봉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있었다
무슨 행사인지 모르지만 트롯가수 진해성이 온다는 현수막이 여러개 붙어 있었다
진해성은 모방송국 '트롯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였는데 존재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덕산시장
덕산장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큰 장이었다.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이곳에서 장을 보고 갈 작정이었지만 아쉽게도 장날이 아니어서 문이 닫혀 있었다
원리교를 건너다
원리교는 사실상 덕산-위태 구간의 시작점이다.
지리산 중산리계곡을 거쳐 내려오는 물줄기와 대원사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여기서 합류된다
두 물줄기는 이곳에서 합류하여 덕천강의 몸집을 불린다.
도화정(桃花亭)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 강변에 덕천강을 향해 선 정자가 도화정이다.
여기에 서면 지리산 두 갈래의 물이 만나 덕천강이 돼 남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에서 두류산 양단수의 절경에 감탄하는 시를 읊었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회야 무릉이 어드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덕천서원(德川書院)1.
덕천서원은 둘레길 코스에는 들어있진 않지만 잠깐 들리었다.
홍살문 뒤로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위엄있게 서 있는데 수령이 400년도 넘었다고 한다.
남명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6년 후학들이 창건한 덕천서원은 1609년 사액을 받았다.
덕천서원(德川書院)2.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복원했지만 다시 흥선대원군 때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는 수난을 당한다.
현재의 서원은 1920년대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덕천서원의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세 여인들의 미소는 선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다 ㅎㅎ
덕천서원(德川書院)3.
'덕천서원'이란 현판의 안쪽에 경의당(敬義堂)이란 또 다른 현판이 붙어 있었다.
경의당은 서원 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을 논의하는 강당이다.
남명이 평소 중시했던 경(敬)과 의(義)의 정신을 담고 있는 곳이다.
세심정(洗心亭)
서원 앞 강가에는 세심정이란 작은 정자가 서 있었다
남명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 옛날에도 마음을 씻어야 공부가 될 만큼 잡념이 많았나 보다
금환락지(金環落地)
덕천서원에서 유턴하여 천평교를 건너면 사거리에 '금환낙지'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금환낙지(金環落地)는 풍수지리의 명당 중 하나를 말한다.
맑은 계곡물에 목욕을 마친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으로 길지(吉地) 중 길지를 가리킨다.
살천(矢川)
지도상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덕천강이라 표기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살천’이라고 부른다.
물길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뜻으로 ‘살천’이라고 부른다.
한자로 바꾸어 ‘시천(矢川)’이라고도 하며, 이 일대를 지칭하는 '시천면'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지리산 천왕봉이 하얗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지리산 천왕봉이 줄곧 따라왔다.
눈이 하얗게 덮인 천왕봉은 마치 히말라야의 고봉처럼 장엄하였다
어느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을 잡아 천왕봉에 오를 행복한 꿈을 꾸며 걸었다.
천왕선녀
천왕봉에서 하산한 두 선녀가 재롱을 피우고 있다
그곳에서 수도하는 남정네의 공부에 방해가 되어 하산시켰나 보다 ㅋㅋ
중태마을
1시간쯤 걸어 길은 덕천강과 헤어져 오른쪽 중태마을로 향한다.
중태마을의 한자어는 ‘中台’이다.
마을의 이름을 풀이하면 그 자리에 여인이 누워 만든 탯자리를 뜻한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 일부가 추격하던 관군을 맞아 이곳 중태마을에서 목숨을 버렸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지처럼 붉게 핀다.........................................................이기철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부분
점심식사를 하다
놋점골쉼터 아랫쪽에 있는 양지쪽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정성껏 준비해온 반찬 위에 가을볕과 우리들의 미소가 내려앉아 풍요로웠다.
어떤 꼬마애가 와서 자기네 고양이를 우리가 훔쳐 간 것 같다고 해서 허허허 웃었다
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견디는 일이라 했다...........................................민병도 <삶이란> 전문
놋점골쉼터
쉼터이름은 유기(놋그릇)를 만들던 마을에서 유래된듯 하다
대여섯명이 올라가 쉬기에 안성마춤인 널찍한 바위가 있었다
오랜만에 여인의 체취를 맡은 바위가 은밀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ㅋㅋ
유점마을
중태마을에서 1시간쯤 깔끄막을 오르면 유점마을이 나온다.
예전에 유기(놋그릇)를 만들던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나 지금은 관련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굴뚝에서 연기 나오는 광경을 보았는데... 유년시절의 고향마을에 돌아온 느낌이다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몇 가구 되지 않는 유점마을에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라는 간판을 내건 소담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38년부터 안식교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어 ‘안식교 마을’이라고도 한다.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재림주의 운동의 계파를 잇고 있다
서어나무 쉼터
대숲길을 지나면 언덕배기에 수백 년 된 서어나무 네 그루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유점마을을 포함한 중태리의 가장 어른 나무다.
서어나무는 임진왜란과 동학혁명도 지켜보고, 한국전쟁의 살육도 지켜보았으리라.
쉼터는 정성이 가득 담긴 여러가지 조형물로 꾸며져 있어서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쉬어갔다.
감나무밭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이 감나무밭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감나무밭은 덕산장이 곶감장으로 유명한 이유에 대한 실증이다.
이곳 곶감은 지리산의 고온 건조한 바람과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기운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칠산 앞바다의 조기가 영광에서 굴비가 되듯, 지리산의 고종시가 덕산에서 천하일품 곶감이 된다.
마지막 쉼터
중태재를 넘기 전에 마지막 쉬어가는 곳이다
예전에는 길손들에게 막걸리를 팔기도 한 모양인데 지금은 적막하기만 하다
각 시군마다 둘레길을 만드는 바람에 지리산으로 오는 발길들이 뜸해졌나 보다
중태재(갈치재)
유점마을의 마지막 집을 지나면 임도가 시작된다.
길은 임도를 따라 이어지다가 소릿길로 들어서고 중태재를 넘는다.
이 재를 산청사람들은 위태재라 부르고, 하동사람들은 중태재라 부른다.
이 고개는 산청과 하동의 분수령이다
김재희 카타리나....쑥대머리
최귀임 글라라...단장의 미아리고개
김형식 시몬...막걸리 한잔
숲속의 노래자랑
중태재를 넘어오느라 지친 몸을 쉬어갔다
세 분의 가수가 출연하여 특별한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거금의 상금을 손에 쥔 가수들의 해맑은 미소가 아름답다
대나무밭
고개를 넘으면 곧이어 밀도 높은 대나무밭을 만난다.
과거에는 논밭이었던 곳인데 이제 대밭이 돼 버렸다.
대나무밭에 들어서면 개기일식처럼 어둠살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해를 삼킨다.
대밭 안의 세상은 대밭 밖의 세상과 별개로 움직인다.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복효근 <어느 대나무의 고백> 부분
위태마을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위태마을에 당도하였다.
그런데...중태, 위태 다음엔 사망이라 추측했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는 콩타작이 한창이었고, 할머니의 체취가 느껴지는 정감있는 마을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시골집이다
은행나무 아래 흙집이 납작 엎드려 있고, 담장 옆에 있는 감나무엔 몇개의 감이 매달려 있다
머리가 허연 할머니께서 창호지 바른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나오실 것만 같다.
겁외사(劫外寺)
돌아오는 길에 성철 스님의 생가 부근에 있는 겁외사에 들렀다
성철 스님(1912∼1993)은 산청 단성면 묵곡 출신이다.
그는 스물다섯에 지리산 대원사로 출가했다.
그의 생가 터엔 겁외사(劫外寺)란 커다란 사찰이 있다.
‘시간 밖의 절’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성철스님 기념관'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이 위압적이다
겁외사 유물전시관에서 본 스님의 누더기 승복과 검정고무신이 대조되었다
성철스님도 이런 식의 거대한 기념관은 원치 않으셨을게 분명하다.
첫댓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자연스러움이
우리들의 신조였는데
절아닌 기념사당에서 우리들의 자연이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칼라풀한 정취와 파아란 하늘과 천왕봉의 힌눈이 달래줬지요
네팔 히말리아에서나 볼듯한 지리산 천왕봉 설경은 정말 일품이었죠?
마지막 깊어가는 가을정취 만끽하고 다녀온 지리산둘레길인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든 하루였습니다.
사색과 사고보다는 행동의 진가가 빛을 발한 여정~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