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90) - 50년을 내다본 다짐
지난주로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사랑과 행복을 염원하며 우여곡절의 행로를 역주하여 오늘에 이른 것을 큰 보람으로 자축한다. 50주년 다음날 아내는 멀리서 날아온 친구 만나러 대구행, 곁을 비운 아내에게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결혼 50주년을 건강하고 평안한 가운데 맞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50년, 강산이 몇 차례 변하는 세월을 원대하게 기약하였고 우여곡절의 여정을 무사히 통과하여 오늘에 이른 것을 스스로 축하하고 큰 보람으로 여깁니다.
그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념일에 즈음하여 '사랑과 행복에의 기원'을 혹은 편지로, 혹은 책자로, 근년에는 메일로 송부하였고 금년에는 결혼 전 50일간 기도하며 쓴 편지글을 되새겨 '사랑과 행복에의 기원 - 결혼 50년의 설계와 회고'라는 기록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뜻깊습니다.
50주년을 맞아 권속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가까운 인척이 축하화분을 보내주어 금혼의 분위기를 돋우었습니다. 이른 아침, 지난주 페치카모임을 가진 천혜경로원장 부부가 멀리서 축가를 불러주고 둘째네 가족이 영상으로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반갑고.
지난 주말 서울의 누이들이 청주에 들러 담소한 것과 모처럼 광주를 방문하여 30년 지기 옛 친지들과의 교제도 뜻깊었습니다. 오랜 친구의 귀국에 맞춰 대구의 동창모임에 간 발걸음이 바쁘고 여러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꾸준히 걷는 일상이 빠듯합니다. 남은 때도 그러하기를. 대구 일정 잘 마치고 씩씩하게 돌아오라, 즐거운 우리 집으로!’
사촌이 보내온 화분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지기와 나눈 대화, ‘다음 주로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결혼 때 기도하며 약속한 내용의 80%를 성취하여 뿌듯하다. 이애 대한 베테랑의 평가, 50년을 내다보며 이룩한 80% 성취는 기적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오랜 동안 거실에 건 액자의 문구는 ‘남은 때를 주 뜻대로’ 늘 그러하소서.
50년 전 기원 중에 약속의 실현을 다짐한 항목이 있다. 공사 간에 약속은 소중, 그때의 다짐과 지금의 회고를 살펴보며 모두의 경계로 삼는다.
사랑하는 00이여!
이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우리가 구상하고 계획한 것들이 하나의 약속이 되어서 그 실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하나님께 맹세하지 말 것과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마태복음 5장 33~36절)고 명하는데 우리가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겠지요?
나는 약속의 효험을 체험하였습니다. 대학시절에 친구와 제과점에서 한 다짐, 졸업 전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겠다는 것과 총장과 악수하겠다는 두 가지. 이를 늘 상기하면서 그 실현에 힘을 쏟았습니다. 다행이 졸업 전 둘 다 성취, 결혼생활을 통하여 이루고자 한 목표들도 이 약속과 같이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서로 다짐한 것들을 지키는 습성을 기르고 힘쓰기 바랍니다.
* 나는 대학 4년 평균 성적이 A학점에 근접할 만큼 양호하였는데 우리의 여러 설계와 다짐의 성적도 비슷하리라 여긴다. 결혼생활의 설계와 구상을 구체화하고 이의 실현에 힘을 기울인 서로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는 동안 여러 차례 함께 받은 상처럼 혹여 보이지 않는 면류관이 예비 되었을지도. 바라기는 다 이루지 못한 우리의 소망과 기원(제4장 생활의 설계 중 열두 번 째 통일과 평화)이 사후에라도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이다. 결혼 전의 약속을 지킨 사례 한 두 가지, 10년 내로 가보기 원한 알프스구경은 10년 더 지나서 예상보다 알찬 탐방이 되었고 체코의 자유화운동에 앞장서다 분신한 얀 팔라흐의 무덤을 찾기로 한 다짐은 30여 년 후 충실하게 이루어졌다.
40여 년 전 언론에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 내용,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신용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신용사회의 요체는 서로간의 약속이행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수표는 한 낱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불이 약속되는 보증수표는 현금이나 귀금속과 똑같은 소중한 물건이 되지만 지불이 거절되는 부도수표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신용이 있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증수표라 부른다. 따라서 신용이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부도수표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가.
지난 여름방학에 육군 00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입소한 제자들이 훈련을 받는 곳인데 그들이 입소하기 전 인사차 들렀을 때 훈련 중 한 번 방문하겠다고 한 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일부러 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스승의 방문에 제자들이 반가움과 고마움의 뜻을 표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방문은 그들 못지않게 아무도 그 약속을 촉구하지 않는 스스로의 다짐을 실천에 옮긴 자신에게 더 큰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관계는 정부의 약속이행에 의하여 결정된다. 우리는 정부수립 후 두 번씩이나 그 임기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례를 경험하였다. 국가의 기강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정부와 집권자가 솔선수범함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엄청난 국력의 손실과 국민적 갈등을 겪어오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두 번의 약속불이행은 치명적인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두 번 했던 소년이 세 번째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서 구조를 요청했을 때 두 번이나 속은 마을주민들이 세 번째의 진실한 구조요청을 외면했음은 약속의 파탄이 가져다주는 불행한 결과를 교훈적으로 암시해주는 것이 아닐까? 현 정부와 대통령은 과거의 정부와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위약한 짐을 안고 출범한 셈이니 그 법과 행정의 운용에 , 더 나아가 정치적 책임과 공약의 이행에 더욱 세심한 배려와 결연한 각오가 요구되는 것은 췌언할 필요가 없겠다. 무릇 개인이나 국가나 자신 없는 청사진을 제시하여 주변이나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고 언행일치의 약속이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도록 힘쓸 일이다.(광주일보 198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