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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히11:1-3절)
뉴멕시코의 한 흑인 가정에서 지병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어머니가 열두 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유언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랠프야, 너에게 물려줄 것은 한 가지도 없구나. 그러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아다오. 아무리 괴로워도 믿음으로 살아라.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라.’ 랠프는 1년 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갖은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최고의 교육을 마쳤습니다. 인종차별과 가난 속에서 수십 번 학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위기마다 어머니가 최후로 남긴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믿음으로 살면서,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믿고, 믿고 기도하고...
소년은 마침내 대학을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UN에 들어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비록 흑인이었지만 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탔습니다. 그가 바로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 박사인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삶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결정적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 바라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서 마음속에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을 간절히 기도할 때 마음에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지면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실상이라면 실상은 내용입니다. 바라는 것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도록, 내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용이 없는데 껍데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바라는 것이 믿음으로 변합니다. 바라고 기도하고, 바라고 기도하니까 나중에 마음에 확신이 생기면서 그때로부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재료인 것입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재료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바라니까 재료인 믿음이 마음에 이루어지고 그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해서 바라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마음속에 바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을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마음에 믿어지면 벌써 실상이 이루어진 줄 아십시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믿음이 나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형성되면 그 다음에는 나무가 자라나고 가지가 생기고 잎사귀가 피고 꽃이 피는 것입니다. 믿음은 뿌리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없이 그냥 바라기만 하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생기면 뿌리에서 줄기가 생기고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믿음은 마음속에 뿌리인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젤라(Angela)라는 어린 소녀는 열한 살에 신체무력증에 걸려, 걸을 수도 없었고 몸의 움직임도 극히 일부분만 가능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온 전신이 무력증에 걸려서 몸을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한 살의 어린 소녀는 ‘나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걷게 되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늘 자신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뇌리에 그려보았습니다.
항상 마음에 바라고 꿈꾸는 것이 자기가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꿈꾸는 것입니다. 안젤라는 침대에 누워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두 발을 움직이려고 애를 씁니다.
언제나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지만 자꾸 손이 움직여지고 다리를 꼼짝도 안 하는데 하루는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침대가 움직이는 것을 발이 움직이는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 침대가 움직이니까 자기 감각에 발이 움직이는 줄 알고 ‘여러분 보세요. 내 발이 움직입니다. 발이 움직입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 고 도망을 칩니다. 바로 그 시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침대가 막 흔들린 것입니다.
그런데 안젤라는 자기 발이 움직이는 줄 알았습니다. 침대가 흔들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지진을 피해서 도망을 치는데 안젤라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내 발이 움직였다고...
지진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안젤라가 내 발이 움직였다고 자랑을 하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지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낙심할까 싶어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은 하지 않고 ‘놀랍네, 발이 움직였다니 정말 놀랍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발을 계속 움직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 번 움직인 것을 느꼈기 때문에, 실제는 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착각을 했더라도 마음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경험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경험이 있으면 자신이 생깁니다. 무슨 조그마한 일이라도 일을 해서 성공을 하면 그 다음 큰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경험을 하면 자신이 있고 자신이 있으면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험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안젤라는 다리가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는 말입니다. 지진이 난 것이지만 자기는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자신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얻어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생겨서 믿음으로 몸을 움직이고 꿈이 생기고 또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한 결과 2년이 지난 후, 안젤라는 드디어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목발이나 휠체어 따위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안젤라의 이야기를 기록한 글 끝에 이러한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생각해 보라!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일대의 지대를 뒤흔든 지진만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하찮은 병 따위를 정복할 수 없겠는가.’
바로 안젤라의 믿음이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 일어난 지진보다 더 강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녀는 오해를 했지만 그만한 지진과 같은 믿음을 마음속에 얻어서 자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은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훈련하지 않고 자신을 어떻게 가집니까. 훈련을 해서 자기가 성공을 하는 경험을 가지면 자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기면 꿈이 생깁니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꿈이 생기면 믿음이 생깁니다. 신체 무력증에 걸린 이 어린 소녀가 다시 걷기를 바라듯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처지에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현실에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바라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원으로 뛰어갑니다. 교회로 뛰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바라는 바를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바라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셔서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연히 믿어지게 됩니다. 일어나도 믿어지고 앉아도 믿어집니다.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강하게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믿음이 나가서 역사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만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실제는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부르는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바라는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재료인 실상이 생겨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집문서처럼 믿음이 생기면 증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이 있을 때 반드시 기도해서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로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보이는 그 자체가 스스로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안 보이는데서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물이 자체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만물이 진행해서 자체적으로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미남과 미녀가 결혼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만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 말씀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도록 입을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만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
성과 집을 지어도 하나님이 같이 계셔야 되고 성을 지켜도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같이 있어야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보여지도록 나타난 것이 만물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만세 전에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우리 형질도 생기기 전에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안 보이는 뜻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나타나서 눈에 보이는 우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 나온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안 보이는 능력이 얼마나 크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내 마음 속에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을 얻고 강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어떤 사람에게는 큰 분량의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큰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조그마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조그마한 고난 밖에 헤쳐 나가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큰 믿음을 흉내 내다가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못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 믿음의 분량을 알아야 됩니다. 안 믿어지는 것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 믿음이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크고 적은 차이는 있어도 믿음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이 믿음의 선물을 주십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성령이 믿음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어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납니다. 말씀이라는 보약을 먹으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니까 그 말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천지가 없어지면 내 말도 없어지리라. 그러면 그것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러니 그 말씀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 믿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 마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못 믿도록 훼방을 하기 때문에 마귀를 경계해야 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귀신이 들어가면 한 밤중에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이는 이 세상의 방탕한 풍속을 좇는 자들을 말합니다. 많은 범죄는 밝은 낮보다는 주로 밤에 일어납니다. 방탕한 자들은 어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귀신이 들어가면 무덤가에서 삽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이 무덤가에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무덤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꿈과 소망을 갖고 내일을 바라보기 보다는 낙심하고 포기하며 자살까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오면 자꾸 마음을 무덤가에 갖다 놓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귀신이 든 사람은 옷을 찢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벗으려고 합니다. 수치를 모릅니다. 귀신이 들어오면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염치가 없어지고 체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회가 부도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예절과 도덕을 다 버리고 양심까지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넷째, 귀신들린 사람은 좋은 것을 주어도 곧 부수어 버립니다.
사랑을 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아주 염치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 주어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거짓말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질병에 걸리게 합니다.
또한 살인하게 하고 자살하게 하며,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고 폭력을 일삼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 믿음의 원수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 하도록 할 뿐 아니라, 믿는 자도 실족하여 믿음이 떨어지도록 훼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정적인 환경과 감각이 우리에게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환경이나 감각을 살려 놓으면 믿음을 빼앗아 갑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잘 걸어갔는데 바람과 바다를 보고 겁이 났습니다. 마음에 공포심을 가져다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겁이 나니까 믿음은 사라지고 물에 빠졌습니다. 주님은 오시면 믿음을 주시고 마귀가 오면 공포심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공포심을 일으키는 곳에 가지 말아야 됩니다.
성경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의심이 들어오는 곳에 우리가 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고 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이 얼마나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큰 요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야 말로 실상의 청사진입니다. 장차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지금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꿈꾸고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일을 할 때 청사진을 먼저 만들지 않습니까. 집도 기계도... 그 청사진이 여러분의 꿈과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가진 적은 믿음은 적은 실상을 가져오고, 큰 믿음은 큰 실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적은 실상을 가진 사람은 적게 이루어지고 큰 실상을 가진 사람은 크게 이루어집니다. 돈이 우리의 재산이 아니라 꿈과 믿음, 이것이 우리 인생의 근본 재산입니다.
*마17:20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너무나 믿음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있으면 태산이 옮겨진다는데 왜 가난하게 삽니까. 왜 병들어 살아요. 왜 고통당하며 살아요.
주님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문제 오케이다 해결이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핸드폰에 겨자씨를 붙이고 다니면서 매일 그 겨자씨를 쳐다보고 하나님, 나는 이 겨자씨만한 믿음은 있지요. 하면서 묻는다고 합니다.
뉴욕의 베스 이스라엘 종합병원의 프레드 엡스타인(Epstein, Fred) 박사는 신경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박사인데 그가 쓴「내가 다섯 살이 되면」이라는 책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 책에는 그가 실제로 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병원 응급실에 나오미라는 이름의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혼수상태로 들것에 들려 왔습니다. 뇌 속에 있는 종양 때문에 동맥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살릴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즉시에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 되어 나오미는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뇌수술을 했기 때문에 아이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눈과 코만 살짝 드러내 놓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안 보입니다.
그런데도 나오미의 두 눈은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매일 자기를 진찰하러 들어오는 엡스타인 박사에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불가능한데도 그 꿈을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줄넘기 하는 법을 배울 거예요.’
다음 날은,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거예요.’ 다음날에는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오빠처럼 만화책도 읽을 거예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자기가 네 살 밖에 못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나오미는 네 살밖에 못 살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네 살에 죽는다고는 절대로 안 합니다. 다섯 살이 되면 줄넘기를 배우고 뜀뛰기를 배우고 무엇을 하겠다. 믿음과 꿈을 가진 소녀인 것입니다. 다른 것 다 없습니다. 다른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희망과 소망이 없는데 그 소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꿈과 믿음인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꿈과 믿음을 말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꿈과 믿음이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과 영성이 살아난 것입니다.
네 살에 죽을 아이가 자꾸 다섯 살을 이야기합니다. 다섯 살이 되면 이런 것 할 것이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어린 소녀는 절망하지 않고 매일 희망의 싹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의학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 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서른이 가까이 된 지금도 어느 가게의 점원이 되어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네 살에 죽을 아이가 서른 살까지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꿈과 믿음과 신앙고백을 가지면 120살은 능히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믿음으로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희망찬 내일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희망을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영성을 살리십시오. 꿈과 믿음과 생각과 말이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꾸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태어날 때 빈 손 들고 응아하고 울고 태어났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날 꿈과 믿음과 생각과 말이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한대로 됩니다. 여러분들이 꿈 꾼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됩니다. 쉽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세요. 쉽게 부정적인 꿈을 꾸지 마십시오. 쉽게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쉽게 파괴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저주하거나 욕하거나 탄식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그런 것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 바라는 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꿈꾸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나는 끝까지 꿈꾸고 믿는다. 그러면 하나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민족의 특성이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굉장히 괴로울 때도 내일이 좋아질 것을 꿈꾸고 믿는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큰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나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의 삶이 강해지고, 나의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나의 삶이 약해진다.’고 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는 ‘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꿈과 비전을 품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실의 고통 가운에서도 마음에 품은 꿈과 믿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덩어리입니다. 여러분은 꿈꿀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없는 것이 있게 되고, 죽은 것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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