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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질서속의 교우관계
하늘의 회의에서는, 사단의 권세를 즉시 멸망시키지 않게 만들 그런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목적은 사물들을 영원한 안전의 토대 위에 두시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사단이 고안(考案:무질서의 반역적 행위)해 낸 새 질서와 대조(對照:비교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단의 통치의 타락시키는 원칙들이 폭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에 표현된 의의 원칙들은 변경되지 않는 영원한, 완전한 것으로 전시(展示:확실하게 볼 수 있게 증명)되어야 한다.(CTr 13.6)
율법은 거룩한 존재들에게 알맞은 것이었음—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에덴’에서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후에, 그분은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아담’의 죄와 타락 후에도, 율법에서 삭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십계명의 원칙들은 타락 전에도 있었고, 그것은 거룩한 존재들의 질서에 맞는 것이었다. 타락 후에도 그 계명들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맞도록 부가적인 계율(戒律:법조항)이 더하여졌다.(1BC 1104.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이와 같이 행할 때에, 복된 결과가 그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 순결한 마음으로 열렬하게 서로 사랑하도록 우리를 강권해야 할 강한 동기가 여기에 제시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셨다. 그분은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사셨다. 사랑은 그분의 모든 행동을 아름답게 하고 고상(高尙:비범)하게 하였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동일한 상황에서 하여 주기를 원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 한다. 우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는 언제나 다시 헤아림을 받는다. 순수한 사랑은 그 활동에 있어서 단순하며, 행동의 다른 원칙들과는 구별된다. 살아 있는 경건은 계발되어야 할 원칙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효력을 끼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위해 성취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인 성품의 완전은, 전적(全的:모든것이 창조주의 전능하심)으로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되는 은혜와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의 노력에 도움을 주고 우리의 수고를 성결케 하는 심령에 작용하는 은혜의 능력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조직과 질서는 지극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신과 심령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없이 일을 할 것이라는 인상을 아무도 받아서는 안 된다. 마음과 육신은 거듭되는 의식과, 또한 우리의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영감을 주고, 수행할 능력을 베푸는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실패할 것이다.(3T 188.1)
왕국[하늘]의 질서와 번영은 교회의 훌륭한 질서에 의존되었다. 그런데 교회의 번영과 조화와 질서는 가정의 훌륭한 질서와 철저한 훈육에 달려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불 충성을 처벌하시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부모의 통치의 원칙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위탁하셨다. 이것은 교회의 징계와 국가의 번영의 기초에 놓여 있다. 한 명의 훈육 받지 못한 아이가 자주 교회의 평강과 조화를 깨뜨리고, 한 국가로 하여금 불평과 반역에 휩싸이게 한다. 가장 엄숙한 방식으로 주님께서는 애정을 다하여 그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 의무를 자녀들에게 주신다.
반면(半面:의무의 다른 쪽 면)에 그분께서는 부모들로 하여금 그 자녀들을 훈련하고, 부단히 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대해 교육하고, 또한 여호와께 대한 지식과 그분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저들을 가르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크게 엄숙히 유대인들에게 짊어지게 하신 명령은 마찬가지로 중대하게 그리스도인 부모들 위에 놓여 져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 자녀들을 교육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가족들에게 명령하도록 하신 빛과 교훈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은, 해결하기에 무서운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아론’이 자기 아들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요구해야 하는 일을 등한히[소홀이] 한 죄악 때문에 그 아들들의 죽음이 초래[불러들임]되었다.(3T 294.1)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그대의 행동을 통하여 건전한 제지와 훌륭한 질서와 평안이 지도 원칙이 되도록 지금 보여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생애의 길이, 그들이 경박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도덕적 가치의 저울에서 낮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들이 형성시키고, 지배하는 영향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믿는 그대의 백성들이 그분과 연결되어 예수님의 발자취를 겸손하게 따라감으로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의견의 교만과 의복의 자랑과, 자아 존대[자기사랑의 이기심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훌륭하고 고상한 정신의 능력들을 사용함으로써 강화[믿음의 정진]시키도록 요구하신다.(5T 128.2)
우리는 하늘에서 온 기별을 대표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흑암에서부터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을 찬미로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진영[진리의 싸움터]을 두루 다니며, 모든 천막의 질서와 정돈상태를 살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장소에 나아오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모든 준비상태는 집회를 개최하는 사람들의 신조와 원칙을 드러내는 예가 된다. 이 예는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 모든 주위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별히 가족 천막들은, 단정함과 질서를 통하여 가정생활의 단면을 보여줌으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버릇과 습관과 실생활에 관한 산[살아있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6T 35.2)
나는 기숙사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숙사에서 지워진 의무에 성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작은 의무들을 이행하는 데 성실하라. 기숙사에서 진정으로 산 그리스도인이 되라. 그리스도인 원칙들이 그대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대들의 행동을 지배하게 하라. 교사가 제안하는 모든 말에 유의하되, 언제나 무엇을 하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도록 처신하지 말라. 그대를 스스로 분별하라. 그대들의 방안에 있는 모든 것은 흠잡을 데 없이 질서 정연하며, 하나님께 거슬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들의 방을 지나갈 때 거기에 나타난 질서와 청결에 끌려 머무르게 될 것인지 살펴보라.
그대들은 신속하고 깨끗하고 성실하게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선교사들이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원칙과 행동에 있어서 단정치 못하거나, 거칠거나, 교사들에게 불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권면과 교훈에 별반 유의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지 않게 해준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상 신앙은 실천하기만 하면. 그대들을 친절하고 사려 깊고 성실하게 해 줄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등한히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눅16:10)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들의 표어로 택하라.(6T171.2)
“골로새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7,19). 우리의 사업은 어느 길[방향]로나 십자가의 영향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구속의 계획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업은 분단된 방법으로 수행되지 말 것이다. 무작위로 운영되지 말 것이다. 십자가의 감화를 제공한 계획이 이 영향력을 확산하는 방법도 준비하였다.
이 방법은 원칙에 있어서는 단순하며, 그 분명하고 독특한 노선에 있어서는 종합적이다. 완전한 질서와 관련 속에서 부분 부분이 연결되어 서로 연결된다.(6T 235.2) 교인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올바른 질서와 훈육의 모본을 보이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 기관의 관리자들의 노력을 후원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부모들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들이 자녀들에게 바라는 바의 모본[모범]을 보여야 한다. 언어의 순결과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예절이 끊임없이 유지[지속, 계속] 되어야 한다.
죄에 대한 조장(助長:범죄를 부추김)이나, 나쁜 말이나 악한 추측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스스로를 존중하고, 원칙에 진실하고, 하나님께 진실하도록 가르치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가정의 규율을 존중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라. 그러면 그들이 이 원칙들을 그들의 생애에서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에서 그것들을 실행할 것이다. 그들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들은 순결한 분위기를 만들고 거룩함과 하늘로 향해 가는 길에서 약한 영혼들을 격려(激勵:마음과 기운을 북돋우어 구원)하기 위하여 감화를 발휘할 것이다.(7T 186.2)
주께서는 사업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그 사업의 출발부터 사업을 구성하고 있는 원칙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구분해 놓으신 것과는 전혀 다른 면으로 사업을 꼴 짓는 세속적인 질서가 들어오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업은 그 기원자의 성품을 간직해야 한다.(7T 209.3) 영혼의 어느 한 구석도 이기심이 숨어 있을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각 가정, 각 교회, 각 기관에서 하늘의 계획이 수행되고 하늘의 거룩한 질서와 조화가 보급되기를 바라신다.
이 사랑이 교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교양과 예절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산 자들 간의 그리스도인적인 사랑에서, 거룩한 원칙의 작용(作用:순종으로 주님의 품성과 정신)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인 개혁은 우리의 모든 가정과, 우리의 기관과, 우리의 교회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 변화가 이루어질 때, 이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빛을 세상에 나누어 줄 도구(道具:전도사업 실체)가 되고, 거룩한 훈육(訓育:가르침의 육성)과 훈련을 통하여 남녀들이 하늘의 교제(交際:하나 된 소통)에 적합해진다.(8T 139.3)
계명을 폐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 아니라고 선언하시는 분은 인류의 창조주이시며, 율법의 시여자(施與者:창조주)이시다. 천연계 속에 있는 모든 것, 곧 광선에 비치는 티끌로부터 하늘에 있는 세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법칙 아래 있다. 천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이 법칙을 순종하는 데 달렸다. 그러므로 지성적(知性的:지적, 이성적) 존재의 생애를 주관(主管:창조주의 통치)하는 이[창조주]의 큰 원칙이 있으며, 우주의 안녕은 이 원칙에 조화(調和:말씀에 순종하고 어울림)를 이루는 데 달렸다.(RC 68.2)
영향력에 대한 사랑이나 남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때때로 질서정연(秩序整然:곧고 바른 행동)한 생애와 흠[결점]없는 대화를 하게 한다. 자존심은 우리로 하여금 악의 모양을 버리도록 유도(誘導:미혹, 유인)할 수 있다. 이기적인 마음도 너그러운 행동을 할 수 있으며, 현대 진리를 인정하고, 외적인 태도로는 겸손이나 애정을 나타낼 수 있으나, 그 동기는 거짓되고 불순하며, 그와 같은 마음에서 흘러나온 행동은 생명의 향기나, 진정한 거룩함의 열매나 순수한 사랑의 원칙을 갖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마음에 품어져야 하며, 계발(啓發:개발)되어야 하는데, 이는 그 영향이 거룩하기 때문이다.(1MCP208.2)
[선교]사업발전으로 새로운 일들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우리는 그런 일들에 착수[시작]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교육사업의 중요성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우리 자녀들이 거짓 철학의 오류[거짓진리]들로부터 벗어난 교육을 받으며, 하나님 말씀의 원칙들과 조화되게 수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학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건강기관의 필요성도 긴박[촉박, 긴급히]하게 느껴졌는데, 이는 우리 백성들을 돕고 교육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축복과 계몽의 수단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사업도 마찬가지로 추진(推進:사업을 위해 전진)되었다. 이 모든 것은 최고의 질서가 요구(要求:꼭 필요하여 구하게)되는 선교사업이었다.(TM 27.1)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本土:고향 땅)에 선 푸른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시37:35.36). 시초[처음]부터 그 종말[마지막]을 보시며, 혼돈 속에 질서를 가져다주시는 분께서 모든 것이 잘 되도록 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림의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시37:37).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을 위해 마련된 모든 것을 제공(提供:사랑의 은혜로 거저 주심)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役事:구속의 능력으로)하며,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결코 믿음과 행실을 거절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진리를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원칙에 대해 신실하고 진실 되며, 변함이 없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가?(TM 336.2) 인간의 판단의 지배아래 마음과 재능을 속박(束縛:지배하여 꼼짝 못)하게 될 그 어떤 계획이나 방법이 우리 기관에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만 속해 있는 감화력의 달란트[재능, 능력과 재주]를 인간에게 주셨다.
따라서 비록 사업에 이익이 되도록 그 이점이 사용된다고 할지라도, 한 명의 유한한 대리자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자기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도 더 크게,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조치를 통해서 한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지배를 받게 되며, 인간 대리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유혹 앞에 노출된다. 사단의 방법들은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는데, 곧 인간을 인간의 노예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그 결과로 혼란과 불신, 시기와 악한 추측들이 나타난다. 그러한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고, 우리를 지배해야 하며, 죄와 온갖 종류의 이기심과 위선으로부터 정결하게 해 줄 원칙들에 대한 믿음도 파괴(破壞:믿음을 무너뜨리게)한다.(TM 360.3)
사회의 기성(旣成:현재)질서를 독단적으로, 또는 갑자기 뒤집어엎는 것은 사도의 사업이 아니었다. 그가 만일 그런 시도를 했더라면, 그것은 복음의 성공을 방해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바로 노예제도의 기초를 공격하는 원칙들, 만일 시행된다면 제도 전체를 분명히 무너뜨릴 원칙들을 가르쳤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후3:17)고 사도는 선언했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發揮;성령의 능력을 나타내게)한다. 회개한 노예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肢體:팔다리와 몸-하나)가 되었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복음의 특권에 있어서, 그의 주인과 형제로서 유업(遺業:하늘의 유산)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 사랑과 대접을 받아 마땅했다.
반면에 종들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되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엡6:6)여야 했다. 그리스도교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복음 전도자와 죄의 부담(負擔:죄의 책임)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위안을 찾은 가장 타락한 죄인과의 관계를 강하게 하나로 결속(結束:뜻을 같이하게)시킨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피로 씻겨, 동일한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LP 288.3) 하나님께서 부모들과 자녀들의 지도를 위하여 주신 규칙을 이탈(離脫:벗어나고 탈퇴)하고서는, 결코 죄 없지 않다[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일치하는 교육을 시키기를 기대하신다. 믿음과 행함이 결합되어야 한다. 가정생활과 학교생활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고상하고 질서 있게 행해져야 한다.(CG 66.1) 예전에는 부모의 권위가 존경을 받았으며, 그 당시에는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복종하여 그들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으나, 이 말세에는 그 질서가 거꾸로 되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복종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의 뜻을 어기기를 두려워하므로 아이들에게 굴복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들을 의뢰하면서 그의 집에서 살 동안은 반드시 부모의 지배에 복종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정(正:바른 기준)에 대한 견해를 좇도록 요구하면서, 판단성 있게 행해야 한다.(CG 240.2)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족과 교회와 기관에서 하늘의 계획이 수행되고, 하늘의 신령한 질서와 조화가 편만[당연]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이 사랑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품위와 예모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에서 이 고상한 원칙이 잘 드러남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가족과 기관과 교회에 영적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 변화가 일어날 때에 이런 매개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하늘의 빛을 나누어 주고, 이같이 하여 거룩한 단련과 훈련을 통하여, 남녀들로 하늘사회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줄 방편(方便:완전한 방법)이 될 것이다.(AH 535.3)
사단을 지도자로 삼고 그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되어 온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교만과 허위와 방탕과 잔혹이 그들의 품성으로 굳어졌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 세상에서 그들이 멸시하고 증오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진리는 거짓말하는 자에게 결코 듣기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온유는 자부심과 교만으로 더불어 화합할 수 없다. 순결과 부패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다. 이타적 사랑은 이기적인 사람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다. 완전히 세속적이요,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沒頭:온 정신의 집중)되어 있는 자들에게 하늘이 어떤 기쁨을 줄 수 있겠는가?(GC 542.1)
하나님과 참으로 일치한 이들은 다른 사람과 서로 어긋나게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이 다스림은 저희들의 마음 가운데 연합과 화평과 사랑을 창조하실 것이다. 사단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이와 반대되는 일 즉 계속적인 모순이 있게 될 것이다. 다툼과 증오와 질투가 저들을 다스린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다. 자비심과 친절과 긍휼과 사랑은 무한하신 지혜로부터 기원[창조주의 능력]한 것들이다. 이와 다른 요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화합되지 않는 마음의 거룩하지 못한 열매들이다. 연합에는 힘이 있다. 분열은 허약(虛弱:힘과 기운이 약함)과 결함(缺陷:부족, 불완전)을 의미한다.(OHC 170.3)
이해의 눈이 밝아져야 하며, 마음과 심령이 진리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화합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써 예수를 바라보는 이는 구세주의 영광이 그의 마음에 반사되므로 그 자신에게서 영광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피의 구속의 대가를 이해하고 죄의 제거에 대한 감사로써 마음이 감동케 될 것이다.(OHC 203.3) 조금이라도 우리의 귀한 시간을 다른 사람들을 우리 개인의 이상과 의견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허비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 큰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교육하여, 가장 높은 믿음의 훈련을 받고 서로 화합하는 정신을 더욱 발달하게 하신다.(GW 482.1)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동일한 재능들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나 그들은 모두 그분의 일꾼들이다. 각 사람은 크신 교사에 대하여 배우고 후에는 배운 바를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신들 각자에게 각각 할 일을 주셨다. 재능은 각각 다르나, 모든 일꾼들은 성령의 성화케 하시는 감화를 받아 조화를 이루어 화합되어야 한다. 그들이 구원의 복음을 알릴 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할 것이다. 인간이란 도구[일꾼]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 아주 사랑스러운 분으로 드러나신다.(AA 274.2)
나는 하늘의 질서, 그 완전한 질서를 보았으며, 그 곳의 완전한 음악을 듣는 가운데 도취(陶醉:마음이 홀려 빠짐)되었다. 이상에서 깨어난 후, 지상의 찬양은 매우 거칠고 시끄럽게 들렸다. 일단[한 무리]의 천사들이 각자 금 거문고를 들고 사방으로 질서 있게 둘러서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거문고 끝에는 돌려서 음정을 조절하거나 고정시키는 기구가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은 부주의하게 줄 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으며, 서로 다른 소리를 내기 위하여 서로 다른 줄을 눌렀다.
항상 한 천사가 지휘하였는데, 그가 먼저 거문고를 쥐고 음정(音程:높이가 다른 두 음의 간격)을 울리면, 모든 천사가 풍부하고 완전한 하늘 음악으로 화합[함께 연주]하였다. 그것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늘의 거룩한 음률(音律:소리와 음악가락)이었으며, 모든 얼굴마다 예수님의 형상과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다.(1TT 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