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이었다. 강화 시루미에 사는 청년 이승환이 어머니를 업고, 1.2km 뻘밭을 걸어 신포 나루에 떠 있는 쪽배에 올랐다. 조원시(趙元時, G.H. Jones, 1867-1919) 선교사가 모자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해 쪽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세기 내내 조선은 캄캄했다. 민란이 그치지 않았고, 천주교에 대한 박해도 극심했다. 저항하고 신앙하는 사람들은 죽고, 또 죽었다. 캄캄한 밤 같은 19세기 조선의 서쪽 끝 강화, 강화의 서쪽 끝 시루미에서 소작하던 이승환이 캄캄한 밤에 늙은 어미를 업고, 뻘밭을 길 삼아, 쪽배를 찾아갔다. 선교사 입도를 금지한 지주 김상임의 눈을 피해, 이승환과 늙은 어머니는 달빛 아래 배 위에서 세례를 받는다.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간 때도 밤이었다. 밤길을 짚어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다시 태어남에 관해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3, 5). 광야에서 놋뱀이 매달렸 듯,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이라 암시하셨다(요 3:14).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캄캄한 밤 이승환은 세례를 받고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인천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그가 강화 첫 번째 교회의 권사가 된 것이다.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카라바지오(Caravaggio, 1571-1610)는 ‘그리스도의 매장’ 장면을 보여 주면서 니고데모를 복판에 세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받아 안은 니고데모는 주름 깊고 등 굽은 맨발의 노동자 같다. 카라바지오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를 평범한 서민으로 그렸다. 카라바지오가 그린 니고데모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받’을 수 있는 행색이 아니다. 니고데모는 죽었고, 다시 태어났다.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리스도의 매장〉 전체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붉은 망토를 두른 요한과 등이 활처럼 굽은 니고데모가 예수를 돌판 아래에 매장하려 한다. 한 뼘 반 두께의 돌판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있다. 돌판 아래 무덤 속에 그림을 보는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지치고 힘겨운 표정의 니고데모가 액자 아래 서 있는 사람에게 준비되었는지 눈으로 묻는다. 니고데모의 눈빛을 들었다면, 그가 손을 놓기 전 돌판 아래 무덤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안아야 한다. 혼자선 안 된다. 한 명은 니고데모가 잡고 있는 예수의 다리를, 다른 사람은 요한에게서 몸통을 받아야 한다. 요한의 오른손에서 그리스도의 상체를 넘겨받아 안을 땐, 갈비뼈 사이 창에 찢긴 자국에 손이 닿겠다. 미술관에 선 내 창백한 손이 예수의 상처를 헤집겠다. 다시 태어난 니고데모의 손은 검고 짙다.
첫댓글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안을 준비가 되었는지 눈으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