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경 친구
저와 가장 오래 된 친구 두 명이 모두 전의경 출신이며 이들은 과거 한미자유무역 반대시위등에 참가해서 부상을 입기도 했었는데 친구의 의경 복무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른 바 '빡센' 시위는 '양대 노총'이 개입을 했을때라고 하더군요. 이유인 즉, 규모도 규모지만 이들 조직은 의경들만큼이나 잘 훈련된 조직이어서 진압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 말로는 흡사 군대 조직같다는 것이었어요. 흔히 우익진영에서 늘 문제삼는 '전문 시위꾼'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지요. 이 '전문 시위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친구의 입을 통해서 듣고 나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름이 아니라 이들이 '전문 시위꾼'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니 서글펐던 것입니다.
한국 근대 역사에서 최초의 노동자들은 말이 노동자지 '머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몇몇 자각한 노동자이나 현장으로 들어간 지식인들에 의해 노동자로써의 정체성을 찾고 권리를 주장했었고 잘 알다시피 그 이후에는 갖은 탄압을 받았으며 전태일의 분신 이후에나 겨우 노동3권을 손에 쥐어 볼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요. 그 노동3권을 누려보려 맨손으로 피켓이나 들고 나가 시위 벌이다 얻어맞고 연행되기를 몇번이고 거듭했고 그렇게 맞다가 결국에는 단련되어 오늘날 친구가 감탄할 정도의 '전문 조직(?)'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전문 시위꾼을 생산해낸 주범은 공권력의 폭력인 셈이고 지금 '전문 시위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폭력성은 정확하게 공권력이 지금껏 시대 속에 축적해 놓은 폭력량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노동자의 권리나 최저임금, 주5일 근무제 같은 성과는 자본가들의 아량에 의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이라고 욕먹는 사람들이 흘린 피를 양분으로 삼아 성장해 온 것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저들의 폭력성을 문제 사람들 조차도 실은 저들의 은혜를 은연 중에 입고 있는 것이지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비단 민주주의 뿐만은 아닙니다. 정의 실현은 언제나 폭력에 노출되어 왔으며 상당부분은 그 폭력에 저항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저항 폭력
폭력은 모두 나쁜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는 비폭력의 대명사 간디의 대답이 있습니다. "저항없는 비폭력보다 차라리 저항하는 폭력이 낫다". 간디의 비폭력이 역사에 길이 빛나는 것은 그 비폭력이 저항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간디의 비폭력 뒤에는 늘 따라붙는 말이 존재하죠. 그것이 바로 '불복종'입니다. 간디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비폭력을 버리고 불복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덧붙여 말하건데 간디의 비폭력도 그가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목격한 영국의 양심에 대한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자면 간디는 어쩌면 비폭력의 대명사가 아니라 불복종의 대명사로 기억되는게 더 합당할지도 모릅니다.
작년 촛불집회는 열심히 비폭력을 외쳤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초기 '비폭력 저항' 성격의 시위가 점점 커지자 정부는 전의경을 내세어 비폭력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시위는 성격이 변했죠. 비폭력을 택하느냐 저항을 택하냐의 갈림길에 선 것입니다. 더이상 비폭력으로는 저항을 지속 할 수 없다고 본 사람들은 손에 각목을 들었고 비폭력을 택한 사람들은 비폭력이라는 가치는 지켰지만 저항은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죠. 이후 내용을 잘 알다시피 한국 주류세력에 의해 '촛불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고 매도되었고 촛불 시위는 결국 어떤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 흩어진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질없지만 그렇게 흩어지고 말거면 왜 촛불을 들었을까요? 단순히 pd수첩의 내용에 혹해서? 아닙니다. 촛불 집회의 최초 동력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광우병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그것이 오프라인에서 실천으로 옮겨진 것이었어요. pd수첩은 촉매제였을 뿐 결코 사안의 주동적 역할을 갖지 못했지요. 보통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야만 한 이유는 이거였습니다. 식탁의 안전. 즉, 광우병이라는 식탁을 위협하는 '폭력'에 '저항'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바로 '폭력'이었기에 우리는 '촛불'로 '저항'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럼 여기가 되물어 보지요. 촛불이라는 저항의 수단이 각목으로 변하면 미국산 쇠고기라는 '폭력'은 안전한 쇠고기가 되어 '비폭력'이 되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촛불이 각목으로 변하여 '저항' 그 자체가 '저항'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복종'이 되는가요?
우리는 한국인을 수탈하던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같은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정신나간 뉴라이트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분명 나석주의 폭탄 투척으로 죽은 사람은 단순히 군국주의의 일본 제국에 불가항력적으로 태어나 자식 먹여 살릴려고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어느 착한 보통 일본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석주를 살인마라고 부르지 않지요. 그것은 그 행위가 저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저항의 대상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는 일본의 군국주의였기 때문이지요. 비폭력은 '불복종(저항)'을 주장 할 수 있을때만 아름다울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폭력을 문제 삼기에 앞서 그 폭력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죠. 폭력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고서 폭력을 문제삼는 것은 언제나 큰 악이 작은 악을 제물삼기 위한 주요한 방편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문제를 내세우듯이 말이지요.
평화
폭력에 대한 반댓말은 아마 평화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평화의 반대말 하면 전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그럼 과연 전쟁없는 북한은 평화로운가? 남한은? 미국은?' 하고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평화롭다고 느끼는 것은 대체로 가짜 평화에 가깝습니다. 실제 우리는 매우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폭력적이라고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둔감해 졌을 뿐입니다. 실제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이념적인 형태로도 많이 존재합니다. 하루를 24개로 쪼개서 각 시간별로 정해진 행동을 해야하는 삶을 강제하는 사회 시스템은 자유로움과 인간다움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에게 있어 폭력적 구조입니다. 물론 이런 체화된 폭력은 더이상 폭력이라고 감지되지 않기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것들은 아직 많습니다. 게중에 하나가 지금 문제가 되는 국방의 의무(전의경 복무) 같은 것이죠. 양심의 자유를 국가는 폭력적으로 침해합니다. 전의경의 불가항력적 입장을 토로하는 글에서 보면 결국 그가 양심에 반한 진압을 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의무'라는 제도적 폭력이 개입되어 있는 탓이죠. 실제 전의경의 폭력성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에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측면에서 전의경 또한 국가 권력의 피해자로 이해하는 것은 온당합니다. 국가라는 조직은 많은 부분에서 폭력을 합리화 해두고 있습니다. 그 폭력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고 그것을 조정하기 위해서 정치행위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강의석군처럼 군대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싸이코 취급을 합니다만 사실 진정한 평화라는 의미에 있어서는 강의석군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옳은 행동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그의 행위가 구성원 다수가 인정한 '합리화된 폭력'을 -우리가 겉으로는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 -노골적으로 "그것은 '폭력'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된 것 뿐이지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라면 그를 좀 더 실제적인 평화에 가까운 사람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갔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 거기까지 나아가니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중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강의석 같은 폭력거부자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서 동시에 전의경으로써 군 복무에 충실한 -복종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사람 역시도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전의경의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태도를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평화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깨야하는 것이고 폭력의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중이 깨달은 사실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우리 사회가 합법적 불의가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죠. 우리가 전의경의 합법적 폭력이 불의라고 인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큰 맥락에서는 사실 강의석 군이 '군대도 합법적 폭력이며 불의다'라고 인지한 것도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폭력의 실체를 좀 더 깊고 넓게 지각해 나가는 것이 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평화에 대한 올바른 지향인 것이죠.
전의경의 책임성
다시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와 보죠. 전의경 개개인에게도 책임은 존재하는가? 물론 존재합니다. 단순히 법적 일탈이 아닌 합법의 틀안에서도 전의경의 폭력은 그 개인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돌아갑니다. 이것은 쉽게 비유하자면 전쟁에 있어 졸병에게도 책임을 물을것이냐 하는 것이죠. 일례로 이미 역사적으로 나치 가담자들은 고위를 막론하고 사안에 따라 처벌받거나 때로는 참회를 통해 용서받곤 했습니다. 나치 조직의 말단으로써 나치의 악업을 수행한 이들도 지금의 전의경처럼 거부하기 어려운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처벌했습니다. 전의경의 문제는 그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당시 바스티유 수비군은 점령이후 시민군에 몰매를 맞아 죽었습니다만 우리가 흥분한 시위대의 그릇된 폭력이라고 이것을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그 맞아죽은 수비군을 죄악시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당연하게도 그 어느쪽도 폭력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폭력의 핵심 주체는 전의경도 시위대도 아닌 바로 이명박 정권에 있는 것이죠.
밀그램의 복종실험에서 잘 알다시피 인간은 부당한 관계에 놓인 이상 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 부분은 참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전의경 또한 정치권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불의라는 큰 틀에서 전의경의 폭력도 하나의 불의라면 억지 가담을 해야 했던 그들을 용서하되 기억하는 것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방식이니까요.
p.s
이른바 과거 전의경이었다면 각각의 경험을 내세워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권합니다.
[ 각각 다른 골목을 살아서 각각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방에서 혼거(混居)하게 되면 대화는 흔히 심한 우김질로 나타납니다.
귀신이 있다 없다, 소방차가 사람을 치어도 죄가 안된다 된다던 국민학교 때의 숙제를 닮은 것에서부터, 서울역 대합실 천장의 부조(浮彫)가 무궁화다, 사꾸라꽃이다라는 기상천외의 것에 이르기까지 그 제재(題材)의 다채로움과 그 목소리의 과열함은 스산한 감방에 사람 사는 듯한 활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나는 이를 시끄럽다 여기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精髓)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섬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 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 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 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
경험에 뿌리박힌 사실로 인해 저마다의 진실이 달라지는 것이죠. 충분히 논리적으로 써내려간 전의경의 '사회적 약자'로써의 면모가 진실로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그 폭력을 실제로 경험해 본 저마다의 강고한 경험때문입니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좁은 폭 안에서의 사실을 진실로 단정할 때 우리는 늘 편견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전의경의 입장을 열심히 토로했던 글쓴이들도 이점을 어느 정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p.s 댓글에 대해서 몇가지 보충을 해드리면
1.예외적인 경우는 글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전경 개개인의 의도적인 폭력이 존재한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다만 글에서 다루는 것은 일반적 사례를 두고서 쓴 것이기에 저의 글이 그런 특수한 사례(지금은 꽤 만연해진)들까지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2.의외로 이 글을 전의경의 책임없음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글에서는 분명히 전의경의 책임을 인정해 놓고 있습니다. 결코 상황 심리에 명분으로 전의경을 옹호한것이 아닙니다. 제가 굳이 저항폭력이라는 개념과 평화에 대한 원칙적 태도 같은 논지를 끌어와서 시위의 정당성을 입증해 놓은 이유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