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겨울 쓰레기장에서 데려온 화분의 나무는 아직도 그 이름을 모른다 그리하여 무명군無名君, 내 술 취해 돌아오면 또 그 이름을 바꿔 불러보는 쓸쓸한 애인
폭염에 잔뜩 짜증이 난 당신은 이 식물성 애인마저 그냥 놔두지 않는다 푹푹 찌는 날의 빨래들이 건조대를 넘쳐 이 버들잎처럼 갸름한 잎새와 쇠스랑처럼 휜 가지에 하나둘씩 시름처럼 질투처럼 널린다 색색의 빤쓰와 뒤꿈치가 얼비치는 양말과 하루하루 고민과 땀을 훔치던 손수건이 새처럼 내려앉은 화분의 나무는 내 집에 와 물 몇 잔씩 얻어먹은 거밖에 없다 그래도 죽어 내 집 밖을 달아나지 않으니 가끔씩 애처가 되기도 하는 애인
그런 열대야의 밤이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새벽잠이 깨어 바라보니 울긋불긋 잔뜩 트리장식을 달고 먼동을 걸어오는 애인의 가는 팔뚝이 내 손에 잡혔던 것이다 빨래는 어디다 두고 여러 나라 유럽의 복색을 한 점씩 걸친 그 파란만장의 눈물콧물은 다 흘려서 뿌리에 서려두고 내 손등에 제 잎들의 그림자로 가만히 입맞춤을 하는 거였다 흠칫 손을 물려서 점잔을 빼기는 했지만 꿈결인가 그날처럼 화끈한 애인의 이름은 석녀石女가 아닌 목녀木女
그렇게 먼동을 밝아 찾아온 아침 당신은 밤새 뽀송뽀송하게 마른 빤쓰와 양말과 러닝을 시샘을 거둬가듯 잘 마른빨래들로 거둬갈 뿐 애인과 나의 백일몽白日夢은 낮별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때마침 싸하게 번진 매미소리가 죽자사자 캐롤송의 볼륨을 높여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