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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386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다음차례는 김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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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패밀리’ 한국 역사에 새로운 ‘부정축재’의 한 페이지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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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웃기네요...
'반칙과 특권이 없다'는 살기좋은 마을 노무현을 찾아가보니.....
가락국 옛 땅에 한 고을이 있으니 노무현(縣)이라 한다. 노사모(帽)라는 노란 모자를 쓴 무리들이 너도 나도 입을 모아 외치기를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고을”이라 하기에,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고장이라고 여겨 물어물어 그 고을을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너른 평야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곳 사람들은 노건평(坪)이라 했다. 여름철에 이 들판에 나가보면 푸른 벼들이 마치 1만원권 지폐 다발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처럼 보여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 옛날 임금의 형님인 봉하대군이 내려와 토색질을 일삼아 이 벌판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임금에게 호소하자 임금은 오히려 “우리 형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노인”이라며 역정을 냈다던가.
노건평을 지나면 박달재보다 더 험한 고개가 나오는데 일컬어 이광재라 한다. 이 고개에는 옛날부터 '활빈당'의 후예를 자처하는 열우당(黨)이라는 화적떼가 출몰했는데, 이들에게 돈을 내지 않으면 고개를 넘을 수 없다고 한다.
이 고개를 어떻게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운동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나타났다. 불독같은 얼굴을 한 운전사에게 “노무현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며 차에 타라고 한다. 차 안에서 돈 냄새가 진동하기에 의아하게 여겨 물어보니 한국은행 현금수송차를 개조한 것이라나. 그는 차의 이름이 박연차(車)라 했다. 내내 덜컹거리는 것이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고개 위에는 볼품없이 생긴 정자가 하나 있는데, 안희정(亭)이라. 잠시 차에서 내려 안희정에 올라 쉬려고 하니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있는 영감이 나와 돈을 내라고 한다. 인심 참 사납다고 생각하며 몇 푼 집어 준 후 안희정에 올랐다.
산 아래를 바라보니 작은 마을이 둘 보였다. 운전사에게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강희원(院)과 서갑원(院)이라. 장호원이나 이태원처럼 조선시대에 역참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의 여관들은 손님들이 찾아온 순서에 관계없이 노사모를 쓴 자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요금까지 할인해준다 하니 심히 괴이쩍었다.
이광재를 내려와 마을길로 접어드니, 길 이름은 추부길이라. 이 길도 통과하려면 역시 돈을 내야 한다나. 강 하구에는 작은 나루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박진(津) 나루라.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여기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복어 낚시를 할 수 있는데, 이 복어의 이름은 송은복(鰒)이라 한다. 돈을 미끼로 써야만 낚인다는 희한한 물고기다.
박진 나루 옆에는 심하게 썩은내를 풍기는 연못이 있다. 그 냄새가 심히 견디기 어려워 영문을 물어보니 노무현 고을의 온갖 오물이 밀려와 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못의 이름은 교도소(沼)였다.연못에는 노구리가 득실 하더라... |
철없는 노 아무개, 세상살이가 제 손안에, 제 말주변 속에 있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야 깨닫고 있는지? 불쌍하구나!!!!
-입 꽉 다문 盧 전 대통령 -
★*…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시작된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26일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지만 역시 아무 언급이 없었다. 입을 꽉 다문 노 전 대통령이 27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김해=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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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수 홍콩 특파원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이 9일자 홍콩과 대만 신문에 일제히 실렸다.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해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아서 사용했다"고 고백했다는 기사는
국제면 톱 또는 주요 기사로 배치됐다.
대만의 연합보(聯合報) 인터넷판은
"한국도 우수전 판박이? 노무현, 부인이 돈 받았다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우수전(吳淑珍)은 2000~2008년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볜(陳水扁)의 부인 이름이다.
뇌물수수와 해외 돈세탁 혐의로 구속된 천 전 총통이 지난 몇 달간 재판을 받으면서
"뇌물도 아내가 받고 돈 관리도 아내가 해서 나는 모른다"며
부인에게 떠넘긴 태도를 빗댄 제목이다.
홍콩 명보(明報)는
"천수이볜 사건의 복제판,
한국의 전(前) 제1부인 수뢰"
라는 제목으로 아예 한 면을 할애했다.
비교표까지 만들어 천 전 총통이 구속되고
부인과 아들, 며느리, 사위와 처남이 소환됐듯이
노 전 대통령 형님은 이미 구속됐고 부부와 아들,
조카사위까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노 전 대통령은 '클린 이미지'로 집권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패는 아직도 한국정치에 전염병(epidemic)처럼 남아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중화권 언론들은
두 사람이 재임할 당시에도 자주 비교했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 다 변호사 출신에 달변이고 체제에 저항하다 구속된 전력,
당선 때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국내파,
분단 이후에 태어난 분단국의 젊은 지도자라는 점,
근소한 표차로 집권한 직후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가 거꾸로 집권당을 키운 점,
국민 속을 뒤집어 놓는 특유의 말투,
일부 역사를 부정하고 뒤집으려 했다는 점,
야당에 연정(聯政)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
경제정책 실패로 국민을 힘들게 했다는 점 등
닮은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천 전 총통이 친미반중(親美反中) 정책을 폈고,
노 전 대통령이 반미친북(反美親北) 노선을 걸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천 전 총통은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 출신인
일용 잡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국립 대만대학에 입학 후 3학년 때 최우수 성적으로 법률고시에
합격해 4학년 때부터 변호사로 활약했다.
대만 정부의 정당결성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재야인사의 변호를 맡으면서 유명해졌고,
1985년에는 직접 반체제 잡지를 만들다 붙잡혀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상고만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와 변호사를 지낸 노 전 대통령이 1987년 시위 도중
사망한 노동자 사건을 맡았다가 49일간 구속됐던 전력도 흡사하다.
공교롭게 퇴임 이후도 비슷하다.
둘 다 청렴 이미지로 집권에 성공했지만,
집권 기간에 청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 마을에 새집을 짓고 내려갔듯이
작년 5월 물러난 천 전 총통도 고향에 새집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천 전 총통의 현재 거처는 대만의
수도 외곽에 있는 투청(土城)구치소다.
작년 11월 그가 대만 역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전직 총통이 됐을 때 대만 언론들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된 사례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8년간 나라를
이끌던 권력자를 구속한 낭패감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비교 대상이 노 전 대통령으로 옮겨왔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새로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최종 결말이 구치소행(行)은 아니길 빌고 싶다.
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셋이나 구속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또다시
국제적인 망신을 살까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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