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 따져보니 '윤석열 해법'은 무리수 또는 꼼수
[시민언론민들레] 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 2023.03.07 14:02
일본이 채무 인정 않는 '제3자 변제' 성립 의문
게다가 정부 '피해자지원재단'은 제3자 자격 없어
수령거부 땐 공탁한다지만 주민번호 없으면 불가
"정부, 피해자 오랜 소송 피로감 이용하는 듯"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며 퍼포먼스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은 일본 전범 기업의 아무런 사죄·배상도 받지 못하고 한국 정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간 지난한 싸움만 남긴 '최악의 외교 참사' '굴욕 외교'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문제를 푼다는 의미의 '해법(解法)'이 아니라 해(害)를 입힌다는 의미의 '해법(害法)'이다.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강제동원 배상 관련 '윤석열 해법' 핵심은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전범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을 대신해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판결금(위자료)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의 '제3자 대신 변제'다.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40억 원 규모의 판결금을 전범 기업 사과 없이 한국 기업이 돈을 대신 갚는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현재로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혜택을 받은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한국 기업들의 부담만으로 기부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윤 정부의 이 같은 해법은 피해자들이 오랜 세월을 견뎌 인정받은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완전히 무력화한 처사이기도 하다.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과 한국에서 이 문제를 다퉜고, 2018년에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전범 기업의 책임을 면제한 꼴이다.
박 장관은 이날 발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많은 유족분들께서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 이해를 표해줬다"며 "상당수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줬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새로운 법적 갈등으로 비화할 여지가 많다.
"제3자인 재단이 전범 기업 대신에 변제 불가능"
윤석열 해법의 핵심 쟁점은 제3자인 재단이 피해자 동의 없이 전범 기업의 채무를 대신 변제할 수 있는지 여부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법률전문가들 검토와 자문위원 거쳤다"고 설명했지만, 피해자 측 입장은 다르다.
민법 제469조 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2항은 "이해관계 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 한다"고 돼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피해자 대리인단, 지원단체 측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강제징용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전날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법 조항과 관련,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 한다"며 "재단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채무자는 일본 전범 기업인데 일본 기업은 채권·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채권·채무를 있는 것으로 보고 (정부가) 변제한다는 것 또한 채무자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기업이 채무를 인정하지 않는데 제3자인 재단이 변제하는 것은 법적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 김성주 할머니 등 3명은 모두 제3자 변제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모두 조만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재단 측에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문서로 발송할 계획이다.
양금덕 할머니는 전날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 뒤,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안을 두고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체 피해자 중에서도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은 "상당수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줬다"고 했지만, 피해자 측에 따르면 명시적으로 정부안을 긍정한 사람은 절반 이하다.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김 변호사는 "서울과 광주를 모두 합쳐 피해자가 15명인데 광주 그룹에서는 외교부에 명확하게 찬성한다고 의사를 밝힌 분이 없고, 서울 그룹은 9명 중 4명이 찬성의사를 밝혔다"며 "정부안에 대한 찬성 혹은 긍정적 평가가 과반이 넘지 않는다"고 전했다.
"공탁하려면 누군가는 교도소 담장 걸어야"
정부는 피해자들이 허용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공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갚아야 할 돈을 법원에 맡겨서 피해자들이 거부해도 채권을 소멸(포기)시키겠다는 것이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법리적으로는 끝까지 판결금 변제를 수령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법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피해자 측 입장이다. 피해자 측은 재단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할 경우 법원에 공탁의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제3자 변제는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민법 469조 1항)에는 가능하지 않다"며 "정부가 공탁으로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월 외교부 주최로 국회에서 이뤄졌던 토론회에서 공탁에 대해 (정부 측의) 한 변호사가 유력설이고 가능하다고 했다"면서 "이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판례도 없고 다수설도 아닌 일부 변호사의 유력설에 기대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공탁을 하기 위해서는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필요한데, 이를 재단이 나서서 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 위반 여부도 다툼이 될 수 있다.
임 변호사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공탁할 수 있다. (정부 측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 주민번호를 어떻게 알려고 하냐, 개인정보보호법과 주민등록법 위반할 거냐 묻는데 제대로 답을 안 한다"며 "실무적으로 봤을 때 누구든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 않는 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2월 28일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위자료와 미불임금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것을 밝히고 있는 모습. 2023.3.6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속한 전범기업 재산 매각결정 추진할 것"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단과 지원단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3자 변제안을 들고 나온 만큼,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를 위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전범 기업의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임 변호사는 "현재 확정판결사건의 집행절차는 3건 가운데 2건에 대해 대법원 재항고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대법원이 정부의 외교적 교섭을 이유로 판단을 미뤄 왔다면, 이제 교섭이 종료됐고 채권자(피해자)가 교섭 결과를 거부하고 집행절차를 통해 채권 만족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히니 신속한 매각결정 확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피해자 측은 추가적인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배상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최대한 집행을 하겠다는 의지다.
법률대리인단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소송(대법원 2013다67587호 확정 사건) 관련 피해자 3명은 지난 2021년 9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기업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 주식회사에 가지는 채권에 대해 압류 및 추심명령신청을 했다.
임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그동안 한일 정부 간 외교적 협의 상황 등을 지켜봤고, 그 최종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경우 기존의 집행절차를 신속히 밟을 것과 새로운 압류 및 추심명령에 따른 추심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은 채권은 엠에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가 미쓰비시중공업과 IT서비스 용역계약 등을 체결하고 지급한 수수료이며 2021년 3월 31일까지 7707만 1436원이 발생했다. 현 시점의 채권액은 알기 어렵지만 피해자 측은 이를 전부 추심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3.6 [공동취재] 연합뉴스
"오랜 소송 피로감…정부가 상황 이용하는 듯"
다만 일련의 법적 절차는 대리인단을 통해 진행되지만 오랜 기간 소송에 지친 일부 유가족은 피로감을 호소한다는 점은 우려가 된다. 여기에 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변칙적이고 변태적인 해법을 들고 나와 정부와 피해자 간 또 다시 지난한 싸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부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고령인 피해자나 유가족들이 사망하거나 지쳐서 스스로 채권을 포기하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한 가족을 사례로 들며 "아버지 소송을 아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있는데, 아들도 아프고 고령이고 자식에게까지 준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한다. 내 대(代)에서 끝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가족이 편찮으셔서 빨리 받고 싶다는 상황 자체를 정부가 이용하는 거 아닌가 생각된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범 기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확정판결에 따른 권리는 20년이고 30년이고 절차만 밟으면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정부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위한 시만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지원단체 등이 피해자 사후에도 권리를 상속받아 끝까지 전범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 변호사는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최소한 피해자가 가해 기업과 싸우는 형국이었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국내 문제로 전환됐다"고 참담해 했다. 그는 "정부가 반대하는 분들을 두 번, 세 번, 네 번, 찾아간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정책을 받아달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일본 기업은 만나주지 않는 것과 차원이 다른 압박으로 피해자 개개인이 받아들일 것"이라며 "정부가 공탁해서 내 채권을 없앤다는데 합의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거 같아 걱정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