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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아흘의 동안 성원용 목사님을 위시하여 14명의 선교사님이 토고에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선교의 처음과 나중 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늘 성도님들과 제가 나눌 하나님 말씀은 제가 이번 선교에서 경험한 일들과 또 오늘 본문에서 이해한 내용들의 일종의 랑데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랑데부, 랑데부 했었는데 저는 그것이 프랑스어에서 온 줄 몰랐었어요.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이게 랑데부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랑데부라는 말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두 대상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주선이 궤도에서 우주 정거장과 우주선이 만나는 순간 도킹이라고 하죠. 이 순간을 또한 랑데부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을 신학적으로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또 선교적으로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권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그 거리를 넘어서는 주님의 임재입니다. 서로 만날 수 없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이 랑데부를 이해하려면 한 가지를 먼저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복음이 예수의 승천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승천하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그 이전의 이야기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권세가 이미 본문 곳곳에 누가복음 1장부터 24장까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천이라는 완성된 이 구원의 사실이 복음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망하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같이 읽진 않았지만 누가복음 9장 51절이 그 지배의 시작점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실 날이 다가옴을 아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서 얼굴을 굳게 하셨다.오늘 우리 성경에는 마음을 굳게 하셨다라고 표현했는데, 원래 원문의 뜻은 얼굴을 굳게 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의 목적지는 물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승천을 의미합니다. 오늘 누가복음 9장 51절에 승천이라는 단어는 신약 전체에서 단 한 번 사용된 단어입니다. 여기에 깊은 신비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습니다. 9장에서 는 아직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죠. 23장 24장에서요.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이 이야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영혼 전부터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미 성취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보면은 그리스도를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 하면서 시간을 뛰어넘어 공간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영원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누가 복음은 동시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그 길을 걸어야 했다 실제로 걸어야 했다. 그래서 얼굴을 굳게 하셨다라는 표현에 이 실제적인 예수님의 발걸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결말을 아는 사람으로서 초연하게 그렇게 될 거야가 아니고 그 삶을 살아내려는 주님의 굳은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도 이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포고라는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돌아와 지금 이 순간에 그 아흐레를 되짚어보면 우리가 몰랐던 순간에도 그 사이사이마다 시간의 틈틈마다 골목 골목마다 주님께서 거기 계셨다 언제나 늘 함께하셨다라고 여러분에게 저는 감히 증언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여정은 승천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의 편지 안에 주님의 인도 아래 있다. 선교 기간 내내 우리는 우리 선교팀은 한 기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한 귀로는 토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 첫날에는 7월 1일 아침에는 누가복음 9장 44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예수님을 따라 우리 선교팀도 토고 사람들의 손에 우리의 자신을 넘겨주자 헌신하자. 또 7월 5일에 마가복음 2장 말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기 위해 지붕을 뚫고 내렸던 그 사람들의 믿음, 우리 선교팀의 믿음의 한계 속에서 그 끝에 주님이 일하실 것이다. 주님의 권세가 그때 발휘될 것이다. 역사하실 것이다. 그런 기대와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또한 7월 5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7월 8일에는 마가복음 8장에 7개의 떡을 나누는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야 피조물의 결핍을 향한 주님의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랑, 그 사랑을 가지고 또한 그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 선교팀은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예수님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선교의 시작과 끝을 온통 주관하셨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여정을 비추고 있습니다.
예수는 70인의 제자들을 세워 자신보다 먼저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보냅니다. 우리 선교팀도 그렇게 토고에 보내졌습니다. 먼저 그래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인자의 헌신입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이 넘겨짐은 예수님 한 분에게만 닫혀 있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12 제자들과 70인의 제자들과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교팀에게 이르기까지 열려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세상에 우리 자신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어라.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예수님은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헌신은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이 경이로운 사랑이 예수님 마음 안에 심장에만 있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선교팀에까지 또 여러분에게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16절이 그 초대의 성격을 밝힙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오,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오. 이것은 단순한 격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따르면 니가 나고 내가 너야. 예수님 자신이 받는 대접과 예수님이 파송한 제자들의 대접이 동일하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 그 사랑의 모습과 삶의 규범이 제자들의 삶을 통해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예수님을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때로는 십자가가 있고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 오늘 이 순간에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팀 대부분은 다 언어에 능통하시고 두세 가지 언어를 한꺼번에 구사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완벽하게 구사하시는 분은 딱 두 분밖에 없었어요. 두 분은 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보여드리는 이 에 큐브라는 게 있어요. 이 큐브를 가지고 그 롬의 전 지역을 누비면서 그 토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다음에 오시면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서툰 프랑스어로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도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이제 거의 10년이 다 돼 가는데 생각해 보니까 프랑스어로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요. 막상 현장에서 프랑스어로 기도를 하려니까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또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다 느끼셨을 거예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어에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을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낯설던 표현들이 계속 반복하고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게 입에 익어가지고 너무 말씀을 잘하는 거예요. 복음을 너무 잘 전하시고 사람들에게 기도를 하는 거예요.
토고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제가 또 발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에 갇혀 있지 않구나 인간 영혼의 모국어구나. 하나님의 언어는 그래도 프랑스어를 잘하면 좋겠죠. 그렇죠 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잘 이야기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잘 연습해서 기도도 연습하고 에봉주 키로도 연습해서 좀 더 잘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음 전도에만 헌신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섯째 날 어린이 캠프가 있었는데 이 어린이 캠프를 위해서 우리가 정말 몇 개월 동안 준비를 했어요. 찬양을 준비하고 연극을 준비하고 댄스 춤을 준비했습니다. 어린이 캠프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저 춤추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몸을 던지자 나중에 영상이 만들어지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 아이들의 그 토고 사람들이 추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추는 그 춤 왜 저렇게 열광하고 왜 저렇게 출까 이해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췄습니다. 다음에 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린이 캠프에 10개 지역의 교회에서 10개 교회에서 각 교회당 30명의 아이들이 왔어요. 한 300명의 아이들이 모였는데 저희는 보통 찬양 인도를 하면은 한두 곡 길면은 3~4 곡 이렇게 하잖아요. 처음에 예배 시작할 때 우리 그래서 우리 팀들도 한두 곡이면 끝나겠지 그래서 불태웠어요. 한두 곡이 막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막 찬양하고 했는데 또 있대요. 또 있대요. 세 곡 세 곡을 끝냈어요. 이제 끝냈겠지 네 곡 다섯 곡 여섯 곡 7곡 그래서 모든 교회가 한 곡씩 10곡을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두 곡 부르고 지쳐가지고 막 땀 흘리고 있는데 또 나오라 그러고 그래서 우리 선교팀들이 아주 열심히 춤을 췄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몸을 그 아이들에게 내던졌습니다.지친 몸, 땀 흘리는 그 몸을 가지고도 그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해해보고 그 영혼과 함께하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의 몸도 그들과 함께 우리의 몸을 그들에게 들렸습니다.
여덟째 날에는 시의 지역의 한 초등학교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가서 우리가 준비한 식사가 밥이랑 계란 삶은 계란이랑 그리고 생선 튀긴 거 이렇게 3분의 1 토막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소스를 이렇게 얹어서 그게 한 끼로 아이들한테 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 한 끼도 너무 기다리고 이 시의 지역에 급식하러 오는 것만 기다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너무 반겨주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식사를 나눠주는데 평소에 이거보다 참 못한 식사를 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가서 아이들이랑 또 전도도 하고 또 춤도 같이 추고 또 기도도 해주고 그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떠날 시간이 오자 아이들이 쫓아오면서 손가락을 이렇게 잡는 거예요.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우리 다 손가락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주러 갔는데 우리가 도리어 사랑을 받고 오는구나 이렇게 복음 전한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구나 너희를 영접하는 자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이 말씀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루어졌구나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 피조물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그 창조주가 자신의 몸을 던진 자신의 몸을 그 피조물에게 나눈 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우리가 그 주님의 몸을 조금 우리의 작은 손에 담아서 그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토고 사람들이 너무 잘 받아주었어요. 정말 정말 너무 잘 받아주었어요. 한국이나 여기 프랑스 파리에서 복음 전하려고 하면은 바쁘다 시간 없다 거절을 많이 당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복음 전하러 갈 때 토고 사람들이 날 거절하면 어떡하나 어떡하나 그 두려움이 있었는데 웬걸 가니까 너무 잘 들어주는 거예요. 여러분 거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으시면 꼭 토고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토고 사람들이 얼마나 복음을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잘 들어주는지 몰라요. 그래서 좀 치유가 됐습니다. 복음을 너무 잘 들어줬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조금이라도 한마디라도 기도해 주면 너무 아멘 아멘 하면서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지금 기억나는 사람들이 얼굴들이 있습니다. 이슬람을 믿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그들 중에 몇몇은 몇몇 과는 토고 목사님들이 이제 연락이 닿아서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계속 유지되고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넘겨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넘겨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권 아래서 받는 사람과 전달하는 사람이 하나 되었습니다. 16절 말씀 그대로 우리를 영접해 준 토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넘겨주는 자와 받는 자가 예수님 이름 안에서 하나 되는 것. 그것이 랑데부다.
둘째로 연약함과 권능의 랑데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방비한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왜 우리를 그렇게 위험 지역으로 보낼까 위험한 곳으로 보낼까.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언가 안전 장치도 없이 전쟁에 나가려면 무장한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리 대 앞에 누군가를 보내려면 강한 사자 같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가장 연약한 것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십니다. 전대도, 배낭도, 신발도 없이, 방어 수단도 전혀 없이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실패의 전조처럼 보입니다. 실패의 전조.
그런데 17절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선교를 보고합니다. 기쁨에 차서 외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는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정가를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할 권능을 주었으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정확히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연약함이 사라지고 그것이 강함으로 바뀐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어린 양입니다. 우리는 늘 어린 양입니다. 그 연약함이 조금도 감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교팀이 있던 토고에 있던 기간 나흘의 동안 우리는 내내 연약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연약하라. 그 연약함 위에 그것이 주님이 그것을 대체하거나 그것을 사라지게 하거나 없앤 것이 아니고 그 연약함이 주님의 권능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서 오히려 우리가 주님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린 양과 권능 능력이 약함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를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랑데부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연약함이 있었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선교를 떠나는 첫날 공항에서 일주일 전에 수술을 받은 분이 있어요. 그 공항에서 그 수술 부위에서 출혈이 있어가지고 급하게 담당 의사에게 전화하고 또 약을 처방받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선교회 가기로 선교에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또 다른 팀원의 체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얼마나 더웠습니까?
선교 가기 전에 3주 전에요. 40도가 넘었잖아요. 그 뙤약볕에 경시청은 오늘 제목도 헝대부지만 홍대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경시청이에요. 그 경시청 밖에서 하루 종일 그 태양볕에 40도 아래서 다른 팀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피곤 본인의 그 피로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거기 서 계셨던 분이 계세요. 그분이 선교 올 때 얼마나 힘드셨는지 이 눈꺼풀에 염증이 생기셔가지고 눈이 이만큼 부어서 오셨어요. 선교 기간 내내 선글라스 끼고 계셨어요.
또 도착한 지 며칠 한 사흘 정도 됐네요. 됐나요? 사흘에서 나흘 정도 됐나요? 팀원의 절반이 오한과 설사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물갈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음식을 조심하게 먹는다고 섭취한다고 했는데 힘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힘들어 했어요. 그래도 그런 연약한 몸을 가지고 우리가 사역, 우리에게 맡겨준 사역을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체력이 남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일이 있는 곳은 가서 먼저 솔선수범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는 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약한 사람들이 하는 거다. 약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다. 예수님도 약한 몸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는가 예수는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의 고통을 친히 짊어지신 분이다.우리의 연약함이 곧 그분의 몸이다. 이러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가 회복과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가 정말 우리 연약함 가운데 일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병원 병원에 가서 거의 환자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기 토고의 원목 님들과 함께 병실을 돌았는데 우리 팀원 중 한 분이 ICU에 들어갔어요.
여러분 ICU 뭔지 아시죠? 중환자실 여러분 중환자실 하면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 있나요?
하얀 방에 무균실에 산소 호흡기가 있고 그렇죠 언제든지 배를 누르면 간호사나 의사가 뛰어올 수 있는 그런 환경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 팀원이 저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이 팀원이 와서 거기 두 분이 들어갔는데 우리에게 증언하기를 ICU 환자 병실 안에 파리가 돌아다니더라. 파리가 웬말입니까? 그리고 대소변을 이제 빼가지고 하는 그 팩이 가득 찼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갈아주질 않더라. 거기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거기서 한 분이 혼자 계신 분의 손을 탁 잡고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고 해요. 눈물을 흘리면서 옆에 있던 분이 그 모습을 보면서 야 천사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진짜 말씀을 하더라고요.
또 그 ICU 병동에서 그렇게 쓸쓸히 혼자 생을 마감하던 그분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분이 아멘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뒤돌아서서 나오는데 몇 분 후에 그분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연약한 순간에 하나님의 평안이 그 사람에게 임한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을 나누는데 또 성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사람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에 기도를 받고 눈을 감았으니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또 다른 팀원은 손과 발이 절단되고 골절된 사람들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어떤 어린아이가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부서져 가지고 전체 기부스를 한 아이가 있었는데 한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머니가 알코올로 그 아이의 몸을 닦는데 아이가 그 알코올이 싫어가지고 계속 우는 거예요. 어머니 표정이 정말 죽은 사람의 얼굴보다 더 죽은 사람 얼굴 같은 거예요. 우리 팀원이 그 사람에게 그 어머니에게 축복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또 우리 토고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우리 토고 목사님들 중에서 우리 전도팀을 이끄신 목사님이 있는데 이슬람 가정에 태어나서 개종했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에 쫓겨난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직업도 갖지 못하고 그렇게 굉장히 오랜 기간을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생과 싸웠다. 그 상처의 기억이 얼마나 생생한지 저한테 너무 세세하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전도하다가 손찌검을 당한 적도 있대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 때렸던 여인이 와서 용서를 구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는 또 그런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상처가 남아 있지만 그 상처 위에 주님이 새로운 나무를 자라게 하시고 또 열매를 맺게 하셨다.
또 다른 목사님의 아버지는 이슬람이 아버지는 이슬람의 이맘입니다. 이맘은 기독교로 따지자면 목사와 신부와 같은 사제입니다. 사제. 그런데 아프리카의 이 이암은 주술사예요. 그래서 막 저주를 퍼붓고 이만들끼리 서로 저주 대결을 하는 거예요. 누가 누가 죽나 누가 저주받아 죽나 그런 대결을 한다고 해요. 근데 이 목사님이 그 주술과 저주 또 이슬람은 일부 다 처제잖아요. 그렇죠 어머니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형제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분은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을 당했는데 아버지가 이러더래요. 거울을 니 얼굴 거울을 봐라. 이 거울에 있는 너는 니가 아니다. 니 안에 있는 악룡이라는 거야. 니 악령과 대화해라. 그렇게 정신적으로 영적인 폭력을 당하면서 그런 트라우마 속에 자랐는데 이분이 목회자가 되셨어요.
목회자가 토고의 리더 리더가 되셔서 목사님들의 리더 상처가 지워진 것이 아니고 그 상처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권능이 임했다. 부러진 다리는 그대로 부러져 있었고, 죽어가는 몸은 그대로 죽어가고 있었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 그 환부 그 상처 그 순간에 뱀과 전갈를 받는 권세가 그 위에 있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거기에 뱀과 전갈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연약함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연약함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인자의 손 하네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연약함과 권능의 랑데부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 근거는 승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70인이 돌아온 그 시간, 예수는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선언하십니다. 모든 것을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다. 여기서 주셨다 할 때 이 동산은 예수님이 자기를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줬다 줬다. 이 동사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방향만 반대인 거죠. 자신의 모든 삶을 피와 살을 다 내어준 그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너무나 탁월하게 있는 그대로 증언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정권을 주신 거예요. 주의 이름으로는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것이 바로 승천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선교의 전권도 예수님에게 있구나, 이 예수님에게 선교의 전권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승천이 말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간을 초월합니다. 공간을 예수님의 권세는 한 장소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각 지역 각 마을로 흩어졌어도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이 다 쫓아나가는 거예요. 주님의 승리가 곳곳에 곳곳에 전파되고 흘러들어가고 통치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파리 서안 장로교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비록 파리에 있지만 토고를 위해서 기도했잖아요.
그렇죠 토고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에 공간을 뛰어넘어 공간을 또 다른 하나는 영원성입니다. 십자가의 부활과 승천은 특정한 날에 일어났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보면 이 일이 동시에 다 일어난 거예요.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권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이나 그 후나 그 순간이나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은 선교하는 교회의 항구적인 기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다시는 어떠한 한 장소, 어떠한 한 시간에 메이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의 이름을 통해서 모든 곳에 모든 순간에 일하고 계십니다. 서툰 프랑스어가 마음에 닿은 것 지친 몸으로 10곡 넘게 아이들과 춤을 춘 것, 손끝으로 급식을 나눈 것, 병상에서 함께 울며 기도한 것, 폭력의 상처를 지나온 그 목사님들, 그 목사님들의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신 그 이야기들, 또 우리의 언어와 체력도 또 기획력도 이루지 못한 그것을 거기에 주 예수의 이름이 그 모든 것들을 완수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도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케이 선교사님의 체류증 이야기입니다. 우리 기도를 다 하셨기 때문에 제가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계실 거예요. 사실은 제가 행정적인 문제를 잘 꼼꼼히 살폈어야 됐는데 그래서 체류증이 있는지 출입국에 문제가 없는지 이미 선교 시작할 때부터 잘 살폈어야 했는데 좀 그러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야 이 출입국에 이 체류증이 필요한 분이 해결을 해야 될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분도 프랑스에서 오래 사셨고 또 이 체류증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아시는 분들 있을 거야 다 아실 거예요. 아마 체류증 없이는 절대 출입국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진짜 과장이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선교사님을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이분도 가고 싶어가지고 오랫동안 준비를 같이 했으니까 가고 싶어서 공항에 짐을 다 싸가지고 오신 거예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기도하고 같이 가자 권유를 하니까 전화하고 오겠대요. 전화 누구한테 하냐? 아내하게 하고 오겠대. 왜냐하면 혼자였으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는데 자기 아내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내분도 또 흔쾌히 갔다 오라 이렇게 얘기하신 거예요. 그래가지고 비행기에 같이 탔어요. 근데 그전에 그 꿈을 꾸신 분이 있어요. 비행기에 오르는 꿈을 꿨어요. 그 초체한 얼굴로 비행기에 올랐대요. 그 선교사님이 진짜 비행기에 올라서 그래서 토고 땅을 밟았습니다.
근데 토고 땅을 딱 밟았는데 갈 때는 좋았는데 이 체류증이 계속 안 나오는 거예요.체류증이 나올 줄 알고 갔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접수가 이미 됐다 다 확인했다. 근데 이 증이 안 나오는 거예요. 임시 체류증이 그래서 점점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웠을 것 같아요. 그 선교사님이 그 선교사님이 우리 주일 예배 때 에스다오라는 큰 아주 큰 채플실에서 2천 명 넘게 모이는 예배실에서 어떠한 광경을 봤어요? 어떤 사람이 흰 옷을 입었었나요?
흰 옷을 어떤 입은 어떤 분이 다른 분들 다 쳐서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혼자 이 복도에 얼굴을 땅에 대고 완전히 엎드려 있더라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마음에 깨달은 게 있어요. 주님 앞에 엎드리는 거 주님 앞에 엎드리는 거 그런 간증을 하면서 조금 자기 마음에 자유함을 얻었다. 그런데도 체료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는 날까지 나오지 않았어요. 주요. 그래서 우리 케이 선교사님을 위해서 우리 프랑스 파리에 있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 또 토고에 있는 토고 목사님들과 우리 선교팀, 거기 계신 프레디킨 목사님과 크리스 목사님, 또 그 두 분 목사님을 이와 함께 중보해주는 한국에 있는 중보팀, 미국에 있는 중부 팀 다 같이 기도한 거예요. 공간을 뛰어넘어서 시간을 뛰어넘어서 이분 한 분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한 거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 도대체 이 사람 누구냐 이거는 제 생각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 날 이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첫날 출발할 때 꿈을 꾸셨던 분이 또 꿈을 꾸신 거예요. 비행기 타는 꿈을 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버스 안에 마지막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가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이 들었어요. 가겠다 빨리 가겠다 되겠다 그러고 공항을 갔는데 정말 이거 너무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우리 구교찬 장로님과 우리 안태영 미성년이기 때문에 먼저 들어갔거든요. 그 두 분은 체류증 검사를 안 했어요. 근데 정승민 선교사님부터 체류증을 검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하필 정승민 선교사님일까?
정승민 선교사님하고 그다음에 우리 이상현 선교사님하고 그다음에 저하고 뒤에 줄줄이 사탕으로 계속 체류주 검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케이 선교사님 차례가 딱 되니까 검사를 안 하는 거예요. 진짜입니다. 정말 놀랐어요. 그래서 통과했습니다.
여러분 인셉션이라는 영화 아세요? 인셉션 마지막에 보면 레오나드 디카프리오가 입국에 문제가 있던 사람이 다 지나가면서 여권 보내주고 딱 웃으면서 서로 눈을 이렇게 보면서 입국을 통과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그게 떠올랐어요. 정말 웃으면서 유유히 지나가는구나. 우리 다른 팀원은 막 기도하고 옆에서 우나 안 오나 어떻게 됐나 지금 막 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다니니까 저분이 믿음이 참 대단하구나.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파리에 도착했는데 나갈 때가 또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그렇죠. 나가는데 그 선교사님은 20번 대 주일에 20열에 앉아 있었고 우리 저랑 이제 구교천 장로님이랑은 30대 30열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먼저 분명히 나갔을 거다. 근데 안 보이는 거예요. 이분이 그래서 놀래가지고 어디 갔냐 뭐 잡힌 거 아니냐 너무 당황해가지고 빨리 전화해 봐라 이랬는데 화장실에 갔대. 화장실에 정말 마음의 여유가 넘치시는구나.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면 통과했나 안 했나 이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느긋하게 여유롭게 화장실 한번 들리시고 여러분 절대 입국 심사 전에 화장실 가시면 안 됩니다. 그 화장실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어요. 화장실 가시면 안 돼요. 그래서 이분이 전화했더니 자기 이제 곧 나간대요. 그래서 우리가 입국 심사대 나오는데 거기에 자동 입국 심사대가 만들어졌어요. 파리 입국하는 데 그래서 여권만 찍으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앞에 이제 비유럽인 유럽인 이렇게 나눠서 가는데 딱 가니까 꼬해양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해양 위 꼬해양 그랬더니 자동 입구 신사대로 가래요. 여권만 찍고 들어왔어요. 정말 진짜 유유히 진짜 나왔어요. 아무렇지 뭐 거치는 것 없이 그냥 나와서 통과했어요. 그냥 우리 집 들어가듯이 그냥 통과했습니다.
너무 신비한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너무 신기하다. 그래도 체류증은 미리 해놓자. 다음부터 선교 갈 땐 체류증은 미리 해놓자 이게 교훈입니다. 여러분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근데 때로는 주님의 선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일부러 의도로 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기 때문에 행정 절차가 늦어져서 그런 거기 때문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선교를 할 때 주님의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때로는 조금 이렇게 해 주시는구나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시는구나.
여러분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이 법이 적용되면 안 됩니다. 이 경우가 왜냐하면 무법 천지가 돼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여러분 체류증은 미리 해놓자. 선교 가기 전에는 물론 우리의 원대로 잘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류증을 잘 준비해 놓자. 저도 이제 다음 선교 갈 때는 잘 행정 문제를 잘 해결해야 되겠다 신경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거기 우리 선교팀 갔을 때 거기 프레디 킴 목사님, 크리스킴 목사님이 너무 우리를 잘 섬겨주셨어요. 식사도 해 주시고 저 정말 세 끼씩 먹었어 세 그릇씩 먹었습니다. 세 그릇씩 먹고 정말 선교사님들이 아침마다 잠 잘 잤냐 모기는 없었냐 어디 아픈 곳은 없냐 약 챙겨주시고 자기 전에 뭐 괜찮은 데 없냐 약 먹을 사람 없냐 챙겨주시고 정말 우리를 심 정성을 다해서 성심성의껏 극진히 우리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승천은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신 사건이 아닙니다. 시공간을 넘어서 시공간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현존,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우리가 토고에서 겪은 일들은 바로 이 예수님의 현존의 증거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이 하나님의 현존을 주님의 현존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그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선교의 모든 순간의 주인은 처음부터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 선교의 전권을 가지시고 선교의 처음과 나중 대신 우리 주 예수님이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완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채로 서툰 언어와 지친 몸을 이끌고, 그저 주님의 조그마한 몸을 몇 조각의 몸을 안고 토고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부러진 다리를 씻기던 그 손끝에서, 마지막 숨을 아멘으로 내쉬던 병상에서, 저주와 폭력의 상처를 딛고 목회자가 된 그분들 곁에서 우리를 쫓아와 손가락을 잡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던 그 작은 손끝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주님의 능력이 만났습니다. 거리가 생기고 대륙이 갈라져도, 비록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살지라도 그 이름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그 이름 안에 하나입니다. 우리도 오늘 바로 오늘 선교는 과거의 일이 아니고 앞으로 뻗어나가는 오늘 현재의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랑데부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바로 우리 이곳 연약한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