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절기교 超絶技巧*
서윤후
1.
매일 계속 무거워지는 문
내가 나갈 수 있는 날이 몇 번 안 남았다는 듯이
부서져야 비로소 흩날릴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쓴다
뼈로 시작해서 뼈로 끝나는 마디
유령은 자신을 위한 세레나데인 줄 알고 영혼을 흘리며 다니다가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본다
더러운 눈송이
더는 간직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희망은
2.
한 꺼풀 멀미를 벗겨내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바다
방 하나 출렁일 자신 없는 파도와
바캉스가 까마득하게 잊은 나
이 측은한 풍경화가 걸려 있는 가건물과
눈길만 주고 가는 폐업 신고자
눈보라를 뚫고 사라지는 개
이것은 해골 속 모퉁이의 풍경
3.
지혜로운 인간은 벽을 오릴 줄 안다
제 키보다 큰 문을 짓고자 하는 서글픔으로
잡아본 가장 따뜻했던 손을 본떠 손잡이를 만드는 수리공은
이제 글썽거리지도 않는다
나의 문은 통과의례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무겁게 어색해지는 것으로 잠기는 장치
실내 안의 실내 안을 실내가 장악할 수 없을 때까지
나는 눈을 감고 터널을 지어 통과하고
운전 미숙으로 교통대란을 일으키며
밤새운 파수꾼에게로 가 눈인사 건넨다
밤이 몰래 키운 숲속으로 향한다
움막 짓고 역사를 재현한 원시인들의 내부까지
텅 빈 플라스틱 육체를 내다 버리는
분리 수거함 안까지
그림자 도시는 시민들의 육체 없이도 성행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문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
그리고 궁금해하지 않는 것
4.
나가기 위해 기꺼이 들어온 사람아
웅장한 실내악을 켜둔 채로 잠들어 있는가
허밍이 빚은 곁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나 없이도 휘황찬란하게 연속되고 있는가
부정할 수 없는 / 돌이킬 수 없는 / 나아질 리 없는
불행한 시리즈처럼
비가 많은 구름일 것이다 아직 내리지 않은
(멈춘 적이 없어 도착할 줄 모르는)
연습이 끝난 피아노 페달처럼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생활 속의 교양)
비와 음악 사이에 가지런히 놓인 진공관이 되었다
(중계자의 삶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서서히 커지는 파장
그러나 다가오지 않는 인기척
그런 의심으로부터
이 지루한 비극을
다 해진 플롯을
이야기가 필요한 거리의 동냥꾼에게 건네고 싶다
이제 시시하게 소멸해가는 것을 보라
:
:
:
:
:
그것이 어떻게 이 악물고 커나가는지를 보라
5.
창문밖 전복 사고 난 차량이 있다
신호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건너지 못하는 광경이 있다
이 도시는 그렇게 멈춰 있다
식어가는 커피잔과 대치하는 창틀에서
침묵도 발길을 끊은 입술이 참 재미있었다
슬픔을 친인척으로 둔 혀가 매일 아슬아슬하게
가정사를 반복하려고 했다
불 꺼진 귀, 살아서 들키지 않는 귀
그런 악기가 필요했으므로
이곳에 살아서 듣게 된 고요는 음질이 좋지 못하다
6.
검은 눈을 바라보는
석탄 공장의 새카만 창문 속에
흰 눈동자를 보라
부디
나의 오랜 연습이
누累가 되지 않았기를
*Franz Liszt.
계간 《시현실》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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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 1990년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산문집 『방과 후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