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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인 주태백 이백(李白) '술에 취하게 될 것'
蒙曼品最美唐诗:李白《将进酒》
소스: 이페어케이
"당시 삼백수를 숙독하면 시를 읊지 않아도 읊는다" 오늘은 시선이백의 대표작 '술에 취한다'를 나눠드립니다.
군주가 보이지 않으면 황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임금님은 보이지 않으셨고, 고당명경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되어, 아침은 새파랗게 질렸다.
인생이 흥성하려면 반드시 기뻐해야지, 술잔을 비워 달맞추지 않도록 해라.
천성적으로 내 재주는 반드시 유용하지만, 천금이 다 떨어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양을 삶아 소를 잡는 것이 즐거울 것이요 한 번에 삼백 잔이 마시리라
천자, 단구생이여, 술잔을 기울이소서.
그대와 함께 노래 한 곡, 나를 위해 귀 기울여 주옵소서.
종고찬옥은 비싸지 못하나 장취는 깨지 않으려 한다.
옛적부터 성현들은 모두 적적하였지만,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진왕은 옛날에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술싸움에 열을 올렸다.
주인이 무엇 때문에 돈을 적게 썼는지, 바로 당신께 술을 사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말, 천금 모피, 호아가 좋은 술로 갈아타려 하니, 이것과 함께 팔릴 만고의 근심이 있다.
君不见,黄河之水天上来,奔流到海不复回。
君不见,高堂明镜悲白发,朝如青丝暮成雪。
人生得意须尽欢,莫使金樽空对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尽还复来。
烹羊宰牛且为乐,会须一饮三百杯。
岑夫子,丹丘生,将进酒,杯莫停。
与君歌一曲,请君为我倾耳听。
钟鼓馔玉不足贵,但愿长醉不愿醒。
古来圣贤皆寂寞,惟有饮者留其名。
陈王昔时宴平乐,斗酒十千恣欢谑。
主人何为言少钱,径须沽取对君酌。
五花马,千金裘,呼儿将出换美酒,与尔同销万古愁
'장진주'는 본래 한악부(漢樂府)의 고취곡( 鼓吹曲)', '권주가( 劝歌)'라는 뜻으로 술을 권하는 내용이었지만 호방하기는커녕 남조(南朝) 유송(劉宋)의 문학가 하승천(河承天)이 '술에 들어갈 것이다'를 썼다.번잡한 예의를 갖추어 좋은 요리를 추천하다"고 말했는데, 정말 질박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이백필의 하필이면 '진입술'이 단번에 물 만난 교룡처럼 날아오르는데 어떻게 썼을까.앞의 두 문장을 보시오.
군주가 보이지 않으면 황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돌아오지 않는다.君不见,黄河之水天上来,奔流到海不复回。
임금님은 보이지 않으셨고, 고당명경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되어, 아침은 새파랗게 질렸다.君不见,高堂明镜悲白发,朝如青丝暮成雪。
이 두 구절의 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인생은 짧고, 시간은 쉽게 지나간다.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지만 누가 이백의 기세를 말할 수 있을까."군은 보이지 않는데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시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 너 못 봤니?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아니하고이것은 황하의 진로와 행방에 대한 이야기이다.황하의 물은 청장 고원에서 발원하고, 중국의 지세는 또 서고동저이니, 하류에 서서 보면 황하가 마치 종속하는 것과 같다.'황하의 물'이다.황허의 동쪽은 바다로 흘러가고, 하나는 바다로 흘러간다.사천 리,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번, 다시 반복되는 영탄이 되겠으니 어찌 펴지겠는가!그럼 인생도 긴 강이잖아, '황하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또 어떤가.
두 번째 문장을 보자.너 못 봤니? 그 화당 위에 있는 주인공, 거울을 보며 한탄하고 있는데, 아침에도 푸르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다가, 밤에 어찌하여 눈더미가 되었는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이것은 대하분류에서 시간의 흐름까지 이야기한 것이다.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젊음을 맛보기도 전에 늙었다.이런 청춘이 쉽게 가는 감개는 이백만이 아니라, 우리도 다 있지요.그런데 누가 저렇게 과장되게 말할 수 있겠어요?"조여청사모성설"청춘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생을 그가 하루 일과로 잡았다.시간이 이렇게 짧은데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 두 구절을 함께 놓고 보면, 앞 구절이 공간적 범위의 과장이요, 황하의 웅장함이요, 뒤의 구절이 시간적 범위의 과장이요, 인생의 단촉을 극언할 수 있을 만큼 기세가 올랐다.이것은 큰 강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할 뿐만 아니라, 큰 강이 한 번 가면 다시 그 큰 강이 한 번 멀어지면 다시 큰 강이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할 수 있다.어떤 감정이든 비애로움이 느껴지죠?그러나, 극도의 과장으로 그 슬픔이 다시 거창하게 찾아온 것은, 더 이상 누군가의 슬픔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운명감이었다.'자녀들이 수건을 나눠 가졌다'가 아니라 일종의 거인(巨人)적 슬픔, 그게 이백이다.그 생명이 이렇게 짧은데 어떻게 하지?이백의 해결 방식을 보자.
인생이 흥성하려면 반드시 기뻐해야지, 술잔을 비워 달맞추지 않도록 해라.
人生得意须尽欢,莫使金樽空对月。
인생은 짧으니, 그때그때 즐겨라. 반드시 명월을 마주 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백은 "인생은 천명에 달하고 근심 걱정이 많으니 좋은 술을 마시고 높은 누각에 오르라"고 했잖아요.득의란 달명과 비슷하다.이백은 정말 득의양양한가?이 '술에 취하게 될 거야'가 이백의 말년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면, 그는 이미 인생의 태반을 거쳐서, 그해에 '어수조탕', '용건타일질'을 할 때, 그는 득의양양했지만, 잠시 후에 다시 깊은 실망에 빠졌다.임금에게 필요한 것은 시를 잘 쓰는 농신일 뿐이지만, 그는 한사코 임금님이 되려고, 한사코 임금님을 위해 담소를 나누며 조용히 호사하려 하니, 결국 금을 주고 산으로 돌아오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과연 그럴까.그는 결코 정말로 만족스럽지 않다.그러나 이백은 원부가 아니어서 구석에 숨어서 눈물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으며, 실의에 빠져 득의만면한 것처럼 격분을 호매하게 만든다.모는 부정, 텅은 부정, 우리는 앞서 금루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중부정은 유난히 강한 긍정을 의미한다고 했다.'금주루가 달을 마주하게 하지 말라'는 말은 '꽃 없이 가지를 꺾지 말라'는 종용과 호소에 가득 차 있다."인생을 만족시켜야만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의 낭비이지만, 그러나 "금주루가 달을 마주하게 하지 마라"는 것은 반드시 돈의 낭비를 의미할 것이다.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이백이 말했다.
천성적으로 나만이 쓸모가 있고 천금이 다 떨어져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天生我才必有用,千金散尽还复来。
이 두 구절의 시는 정말 기세가 있어, 이백이 아니면 말할 수 없고, 이백이 아니면 할 수 없다.당시 이백은 유랑 생활을 하며 1년도 안 돼 30만 위안을 잃었으니 이만저만한 멋이 아니다.예로부터 '물건보다 물물'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는데, 즉 노역과 돈에 의해 사역되지 않는다는 뜻이다.하지만 실제로 몇 명이 더 해낼 수 있을까?하지만 이백은 할 수 있다.'천금산산만환복'은 '태어나야 내가 산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내 천재가 살아 있는 한 돈벌이는 손들 일이 아니다.그렇다면 오늘의 흥청망청 무엇을 우려하겠는가.참 말문이 막히는 호사다.그런데 아, 우리가 오늘 이 시가 좋다고 하는 것은 이백의 호의를 대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속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신적 욕망을 대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실 거야'를 잘 모르지만 자연스레 '태어나야 내가 한다'는 말로 자신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만물의 영으로서 천지간에 대문자를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나만이 쓸 수 있다"는 구체적인 시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천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는 것이 이 시의 위대함이다.그러나 당시 이백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저 근거로 했을 뿐이다내면의 호기로서, 한 장면이라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다.그런 잔치였다.
양을 삶아 소를 잡는 것이 즐거울 것이요 한 번에 삼백 잔이 마시리라
烹羊宰牛且为乐,会须一饮三百杯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보세요.맹호연의 잔치는 '고인 구계기장, 전택으로 초대'였고, 백거이의 잔치는 '푸른개미 새 거주, 붉은 진흙 화로'였다.그들은 모두 평범한 결혼생활에 만족하며, 보통 사람들에 속하는 따뜻하고 소문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그러나 이백은 다르구나, 이백은 사람이지만 범인도 아니고, 그는 적선인이다. 그는 겉치레를 하려고 한다. 그는 귀족적인 풍채를 원한다. 그는 산이나 야채를 먹지 마라. 그는 양을 삶아 소를 잡는다. 그는 "무한잔 마실 수 있다."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한잔에 삼백잔이 필요하다."그 술잔치가 여기까지 오니, 시작의 슬픔에서 시작은 흥겨움으로, 심지어는 광폭으로 바뀌어 버렸으니, 이백도 광란의 노래를 불렀다.
천자, 단구생이여, 술잔을 기울이소서.
岑夫子,丹丘生,将进酒,杯莫停。
그대와 함께 노래 한 곡, 나를 위해 귀 기울여 주옵소서.
与君歌一曲,请君为我倾耳听
잠부자는 잠훈, 단구생은 원단구.그들은 대단한 사람도 아니지만, 반드시 속인도 아니다.이백이 술을 좋아하는 데다 술을 마실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이백이 가로되, 잠자리야, 단구생, 술 사, 술 한 잔 그치지 말고 내가 노래 한 곡 불러 줄 테니 귀를 기울여 들어 다오.여러분 이 몇 구절의 시가 얼마나 신기한지, 얼마나 신기한지 생각해 보세요.먼저 짤막한 문장에서 짧은 리듬을 탄다.몇 개의 긴 문장을 쓴 후, 갑자기 이렇게 급하고 힘찬 문구가 나오는데, 마치 음악 속에서 갑자기 북을 치기 시작하는 것 같구나!지금 우리가 파티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잖아요.점잖게 술을 마시던 중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며 권하기 시작했다.그것도 모자라 더욱 신기한 것은 임금님과 노래 한 곡, 나를 위해 귀 기울여 달라는 것이었다.이백이 원래 시를 쓰는 거구나, 시를 쓰는 게 노래하는 거구나, 그런데 여기서 시 중의 시, 노래 중의 노래가 나온다.그래도 오늘 잔치가 생각나네요.원래 술 권하는 거잖아요.권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어요.이백도 사실은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그는 문학 창작의 경지를 벗어나 술자리 장면으로 바로 돌아왔다.
종고찬옥은 비싸지 않으나 장취가 깨지 않기를 바란다.
钟鼓馔玉不足贵,但愿长醉不复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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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부터 성현들은 모두 적적하였지만,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古来圣贤皆寂寞, 惟有饮者留其名
고대의 귀족들은 종을 울리며 열정을 먹었기 때문에 종고라는 말이 귀했고, 찬옥은 옥처럼 정갈한 음식을 가리켰기 때문에 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이백은 명종열정(明宗烈正)을 짓고, 배를 채우고, 살을 찌우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손에 잡힐 듯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다.이것은 무슨 감정입니까?이것은 기쁨입니까? 이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은 격분입니다.온 세상이 탁해지고 내가 독청하며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해 나 혼자 깨어난다.정신을 차렸을 때 '큰길은 푸른 하늘 같고, 나는 혼자 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모모옷금(施母衣金), 서시(西時) 마이너스 임금'이라는 불평을 떠올리게 된다.이런 각성이 괴로운 까닭에 '장취(長酒)가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시인은 과연 부귀를 경멸하는 것일까.다 그렇지도 않고 이백은 시종 벼슬에 들려는 마음이 있어 공명을 추구했지만, 세상일이 혼탁하여 부귀는 결코 진정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인은 "종고찬옥은 비싸지 못하나 장취하여 깨어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그럼 장취할 바에야 술이나 마시자.
옛적부터 성현들은 모두 적적하였지만,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古来圣贤皆寂寞,惟有饮者留其名
예로부터 성현이는 모두 외로웠는데, 시인이 어찌 외롭지 않을 수 있으랴.그러면 그는 "옛날부터 성현이는 모두 외롭고, 마시는 사람은 그 이름만 남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사람이 이름을 남겼단 말인가?
진왕은 옛날에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술싸움에 열을 올렸다.
陈王昔时宴平乐,斗酒十千恣欢谑
진왕이란 진사왕 조식이죠.이백거의 예를 보자, 우리는 그의 마음속에 누가 탄복하는지, 또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자비할 줄 알았다.조자건재고팔두인데 이백이 어찌 동류로 받아들이지 않겠소.남의 시샘을 받아 평생을 좌절한 조자건과 이백이 어찌 동고동락하지 않겠는가.그래서 강음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왕조식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자신의 소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조식(趙植)이 쓴 《명도편(名都편)》에는 "돌아와 연회를 베풀면 평락(平樂)이 오고, 미주는 10천(美酒)을 싸우면 된다"는 시(詩)가 있다.그럼 이백은 이 시를 그대로 빌려서 '천왕석시 평락(平樂)으로 술싸움은 천행(千行)으로 즐겼다'고 한다.이것은 사실 고인을 자신의 몸값과 비교하는 것이지만, 또한 고인을 마음속에 불어넣는 덩어리이기도 하다.이런 외로움은 '즉시행락(時時行樂)'이란 단어로 요약될 수 없다.그러므로 누가 이 시를 말하면 즉시 행락이라 하였더라면 이백도 우습게 보았을 것이다.정서가 어떻든 이 시는 술을 권하고 통쾌하게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이백이 그 소임을 다한 좋은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마지막 몇 마디를 보자.다양한 종류의 말과 천금 같은 가죽옷, 후이가 좋은 술로 갈아타고 나와 동고동락한다"고 말했다.원래 이백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었지만 그는 참 호방하고 호방한 직접적인 반객 위주였다.사실 주인보다 더 주인인 그는 주인을 직접 지휘하기 시작했다."다양한 말, 천금 모피, 호아장교.좋은 술"이라고, 이렇게 통쾌하게 술을 마시니, 네가 어찌 돈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니?이제 그만해, 너는 너의 그 귀한 말을, 너의 그 귀한 천금 모피를 모두 꺼내서, 너의 어린아이가 술을 마시러 가도록 해라!이 얼마나 시원시원한 사람인가, 사소한 일에 구애되지 말고!여기까지 말하자면, 정말 이백의 기개를 감개해야 한다. 그 사람이야말로 타고난 황제라니까!어찌나 당명왕이 그를 만나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지, 금거북을 술로 바꿔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문제는 그가 이렇게 미친 노래를 실컷 마시고 있는데, 아무도 그가 한 번에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팔리니 만고의 근심이 쌓인다.
与尔同销万古愁。
애처롭던 설움이 싹 가시기 시작했다.인생은 그렇게 짧고, 세상일은 그렇게 탁한데, 우리는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시고, 만고의 근심을 풀 수밖에 없는데, 무슨 술로 이 만고의 근심을 풀 수 있겠습니까?아무 술도 못 풀어서 시는 여기서 뚝 그쳤다.심지어 너로 하여금 격동을 부리게 해서 정신을 차리고서야 이 시가 정말 강처럼 일사천리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오색의 꽃처럼 활짝 피었고, 들쭉날쭉하며, 심금을 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군주가 보이지 않으면 황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임금님은 보이지 않으셨고, 고당명경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되어, 아침은 새파랗게 질렸다.
인생이 흥성하려면 반드시 기뻐해야지, 술잔을 비워 달맞추지 않도록 해라.
천성적으로 내 재주는 반드시 유용하지만, 천금이 다 떨어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양을 삶아 소를 잡는 것이 즐거울 것이요 한 번에 삼백 잔이 마시리라
천자, 단구생이여, 술잔을 기울이소서.
그대와 함께 노래 한 곡, 나를 위해 귀 기울여 주옵소서.
종고찬옥은 비싸지 못하나 장취는 깨지 않으려 한다.
옛적부터 성현들은 모두 적적하였지만,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진왕은 옛날에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술싸움에 열을 올렸다.
주인이 무엇 때문에 돈을 적게 썼는지, 바로 당신께 술을 사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말, 천금 모피, 호아가 좋은 술로 갈아타려 하니, 이것과 함께 팔릴 만고의 근심이 있다.
君不见,黄河之水天上来,奔流到海不复回。
君不见,高堂明镜悲白发,朝如青丝暮成雪。
人生得意须尽欢,莫使金樽空对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尽还复来。
烹羊宰牛且为乐,会须一饮三百杯。
岑夫子,丹丘生,将进酒,杯莫停。
与君歌一曲,请君为我倾耳听。
钟鼓馔玉不足贵,但愿长醉不愿醒。
古来圣贤皆寂寞,惟有饮者留其名。
陈王昔时宴平乐,斗酒十千恣欢谑。
主人何为言少钱,径须沽取对君酌。
五花马,千金裘,呼儿将出换美酒,与尔同销万古愁。
당나라는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술에 들어갈 것이다'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시귀(詩鬼)' 이하(李賀)도 '술에 들어갈 것이다'를 대조해 읽어보니 '선(仙)'이 무엇이고 '귀(귀)'가 무엇인지 알게 돼 다음 호에서 이하(李賀)의 '장진(將進酒)'를 공유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