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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의 역사 (하)
1717 년의 프리메이슨의 설립을 이해하려면 그 언저리 유럽의 상황을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17 세기 말부터 18 세기에 걸쳐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읽기 좋게 나열해 보자.
1689 년: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 탄생
1694 년: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 탄생
1704 년: 영국 계몽/경험주의 사상가 존 로크 사망
1711 년: 영국 철학자 데이빗 흄 탄생
1712 년: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 탄생
1712 년: 초기 형태의 대기압 증기기관 발명
1715 년: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 세의 사망
1717 년: 프리메이슨 런던 그랜드 랏지 설립
1723 년: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탄생
1724 년: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탄생
1743 년: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 탄생
1749 년: 프랑스 천문학자/수학자 라플라스 탄생
1756 년: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 탄생
1767 년: 하아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 발명(산업혁명의 시작)
1776 년: 미국 독립 선언
1789 년: 프랑스 대혁명
이상의 연표에서 알 수 있는 이 즈음의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루이 14 세로 대변되는 유럽의 절대왕정이 약화되며 계몽주의가 퍼져 나감.
2. 기독교 철학을 대신하는 관념론, 경험론 등 근대 철학 대두됨.
3.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의 시작 - 자본주의의 기틀이 마련됨.
4. 음악 및 문화의 전성시기
5. 화학, 수학 등 근대 과학이 발전함
6. 미국의 성립과 프랑스 대혁명 등 정치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나타남
... 이 시기는 한 마디로, 유럽 대륙이 기독교 중세의 공고한 틀을 벗어나면서 명실공히 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혁명적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 프리메이슨이 발흥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일단, 프리메이슨은 초월자의 인정을 그 가입조건으로 한다는 데서 분명히 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비기독교적-그다지 반기독교는 아님-이다. 살펴봤다시피 프리메이슨의 모태는 분명 성당 기사단의 잔존 세력이나 그 언저리와 관련이 있지만, 이미 성당 기사단 때부터 이들은 기독교의 테두리에 머물기에는 너무 많은 외부 개념을 받아들여 버렸다.
그러나 중세라는 시대는 어떤 경우에도 비기독교를 표방하는 대형 종교적 단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때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은 장미 십자회 같은 유사 기독교 단체의 외형을 취하거나-포괄적인 의미에서 기독교를 '포함' 했을 것이다- 석공 조합 등 엉뚱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성당 기사단의 비참한 최후에서 교훈을 얻은 이들은 비록 비밀결사의 형태로라도 감히 큰 조직으로 발전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15세기, 16세기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중세 기독교의 파워는 상당히 약화되었고 종교개혁과 계몽사상 등으로 교황권과 왕권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학 및 수학, 기술의 발전과 기독교 교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각종 철학이 등장하면서 지식인들은 점차적으로 기독교에서 이탈하는 기미를 보였다. 한 마디로 도그마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지배하던 도그마의 붕괴는 곧 사회 전반의 헤쳐모여를 의미한다.
이런 시점은 그간 숨죽이고 있던 은비주의 계열의 인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수백년간의 암중 모색을 끝내고 보다 큰 규모의 전 유럽적 조직을 건설함으로써 세상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가 된 것이다. 그 결과 1717 년 런던 그랜드 랏지가 야심차게 성립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18세기 초 프리메이슨의 발흥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시대적 상황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생각은 실은 앞뒤가 완전히 뒤집혀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냐구?
... 과연 프리메이슨이 이렇게 수동적으로 시류에 편승할 수준에 불과했을까.
장미 십자회가 등장했을 때 데카르트,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들이 오랜 기간동안 큰 관심을 나타냈었다는 사실,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연금술 등에 뉴튼 등 당대의 석학들이 크게 경도되었던 점 등을 기억하실 거다. 이는 기독교 도그마로 억눌렸던 중세 기독교 유럽에서조차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성당 기사단 등에서 흘러나온 고대의 비의가 파편적인 형태로라도 돌아다니고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점, 지난 편들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다.
그리고 장미 십자회가 발흥했던 것은 1614 년으로 프리메이슨이 창립되기 거의 정확히 한 세기 전이다.
알다시피 장미 십자회는 선언문 등을 통해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대놓고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동지가 되고 싶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접촉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결국 장미 십자회는 로젠크로이츠라는 허구의 인물을 배경으로 한 정체불명의 해프닝으로 일반에 인식되어 버린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생각해보자. 장미 십자회는 철저한 비밀 결사고, 동지들을 불러 모은다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연락할 방법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때문에 유명 인사를 포함해서 관심있던 많은 사람들이 접촉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뭔가를 정말로 알고 있던 사람들, 장미 십자회의 선언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암호화 되었을지도 모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수백년동안 이런 호출을 기다려 오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말이다.
아마도 이들이라면 즉각 장미십자회의 부름에 응할 수 있었 것이고, 그 결과 기독교 유럽에서 파편화되어있던 '전수자 네트워크' 의 재편이 가능했을 것이다. 장미 십자회의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려한다면 누군가가 이런 방법으로 접촉했다고 해도 어차피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접촉하는 사람들도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처럼 대놓고 눈에 띄게 행동했을리 만무하다. 매우 은밀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움직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각도로 상상해 보면 이렇다. 장미 십자회의 소집령이 떨어진 후,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의 지도층도 포함되어 있었을, 자신들이 전수받은 암호 풀이 방법을 통해 다각도로 장미 십자회에 접촉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라는 이름은 실은 어떤 장소를 의미할 수도 있다. 크로이츠는 십자가이기도 하지만 십자 교차로를 뜻할 수도 있고, 장미는 실제로 유럽의 지명에 잘 들어가는 단어다. 이들은 이 이름을 통해 로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어느 도시의 교차로가 있는 교회 (Rose + Cross + Christian) 라는 회합 장소를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와중에 관련 없는 유명 인물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오히려 이들의 움직임을 가려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고, 회합과 네트워킹은 일반인의 관심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이들이 왜 만났는지, 그리고 무엇을 논의했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성당 기사단의 부활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고-어쩌면 이것들조차도 이 사람들이 암암리에 관여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흐름의 변화는 일치감치 감지되었다. 문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리더급 인물들이었던 이들은 비밀스러운, 그러나 조직적 행보를 통해 이를 더욱 앞당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소집령이 떨어진 후 불과 6 년후인 1620 년에 있었던 영국 청교도의 미국 이주(메이플라워 호)에 동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신대륙에 프리메이슨의 이상을 실현할 새롭고도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사회 각계에서 비밀스럽게 영향을 미친 지 백년이 지나자 유럽은 바야흐로 근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짐은 곧 국가' 를 외쳤던 루이 14 세가 사망하면서 프랑스의 전제정치는 급속히 흔들렸다(프랑스는 당시 유럽을 리드하는 나라였고, 성당 기사단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세상은 과거와는 다른 곳으로 변할 준비가 된 것이고,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이 장미 십자회의 이름하에 모였던 그들에 의해 시행된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자 이제 이들은 새로운 조직, 여전히 비밀스럽지만 장미 십자회보다는 훨씬 규모가 크고, '전수자' 들은 아니지만 지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보다 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모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기독교 도그마에 반감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혁명가들,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가들, 왕족과 귀족들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을 나눠갖고자 하는 부르주아지들, 우주의 비밀을 습득하고자 하는 과학자들, 부패한 가톨릭의 박해를 피하고자 하는 프로테스탄트들... 모두가 프리메이슨의 포섭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프리메이슨에 참여했다.
게다가 프리메이슨은 사해동포주의에 입각한 사고 방식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 등 진보적이면서도 계몽적인 슬로건을 내세웠고, 이는 역시 18 세기에 있었던 프랑스 대혁명의 모토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근대의 정신과 철저하게 부합되는 그 무엇이었다. 물론, 프리메이슨 자체가 근대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 마, 이렇게 추론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말씀이다.
위의 상상/추론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프리메이슨은 1717 년 런던 그랜드 랏지 창설 이전에도 존재했던 조직이다. 따라서 기존의 프리메이슨 조직과 장미 십자회의 소집령으로 모인 인물들이 모두 합쳐 대규모로 확장된 것이 이때부터의 프리메이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프리메이슨이 석공 조합이라고 하지만 그랜드 랏지가 창설되기 전부터 이미 돌을 만지는 프로페셔널의 모임만은 아니었다. 이미 17 세기 이전부터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은 Operative Mason 과 Speculative Mason 의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자는 실제 석공으로서 석공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활동한 경우였고, 후자는 소위 '사변적 석공' 으로 프리메이슨의 정신적인 리더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 사변적 석공이 바로 성당 기사단의 맥을 잇는 사람들임에는 두 말할 나위 없다.
초기의 석공 조합적 면모는 장미 십자회의 소집령과 사회 재편의 틈바구니에서 사라져가고, 1717 년 당시의 프리메이슨은 이미 사변적 석공만을 모으기 위한 단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불과 20 년이 채 지나지 않은 1733 년에는 이미 126 개 지부를 거느리게 된 것을 보면 당시 유럽에서 그들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영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던 프리메이슨은 성당 기사단의 본거지였던 프랑스, 장미 십자회의 발흥지인 독일 등의 유사한 군소 조직을 흡수하거나 그들과 연계한다. 그중 특히 중요한 조직은 독일에서 결성된 일루미나티(illuminati)이다. '광명' 이라는 뜻의 이 조직은 1776 년 5 월 독일 바이에른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에 의해 창설됐다. 이미 이십대에 잉골슈타트 대학의 법학부장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그는 독일의 유태인 금융업자인 로쓰차일드-원래 bauer 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로쓰차일드 가문은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를 연상시키는 유서깊은 금융 가문으로 현재 미국 정부의 주요 정책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담에 유태인들을 다루게 되면 한 번 접근해 볼지도-의 가세 속에서 프리메이슨과는 별개로 이 조직을 만들었는데, 역시 고대의 비의에 기반을 두기는 마찬가지였다.
Mayer Amschel Rothschild (1744-1812)
일루미나티 창설 당시 불과 32 세였던 그는 이후 나폴레옹 전쟁으로 큰 돈을 벌게 되고, 이를 종잣돈으로 하여 다섯 형제를 거부로 만들어낸다. 이들의 전설적인 치부는 일루미나티 및 프리메이슨 조직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로쓰차일드 자본은 울나라의 IMF 때 들어오기도 했다.
일루미나티의 사상은 기본적으로는 프리메이슨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에 1782 년 7 월 하나의 조직으로 합병하게 된다. 그 결과 프리메이슨은 전체 조직원이 3 백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신생 조직 일루미나티 조직원들은 젊고 행동력이 강한 데다가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가진 프리메이슨과는 노선의 차이가 있었고, 혁명적 군사 행동 등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갈등 또한 없지 않았다.
이후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유지한 관계에 대해 많은 주장이 있지만 아무도 구체적인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다만 프리메이슨은 전면에 나선 거대 조직으로서 전체 그림을 그려 나가고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 내의, 다소간 독립적인 또 다른 비밀결사로서 보다 급진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대의 프리메이슨이 상당히 대중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에 반해 일루미나티는 보다 은밀한 활동을 음지에서 펼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편 프리메이슨의 수뇌들 중 일루미나티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고도 알려져 있다.
여튼간에, 프리메이슨은 이렇게 조직을 확장해 가면서 유럽 전역에 지부를 건설하고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주요 사건에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면서 일종의 숨은 세계 정부로서 커 간다.
특히 1789 년에 있었던 프랑스 대혁명은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구체적인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앞서 연표에 나왔던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계몽철학자들-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바탕이 된- 또한 대부분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 후 공포정치의 주인공인 로베스 삐에르와 자코뱅당 또한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보면 유럽의 근대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는 것도 그리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프리메이슨의 야심은 유럽의 근대화에서 멈추지 않았다.
유럽에서 막대한 인원과 조직, 자금력,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들은 동시에 대서양 건너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 중세 유럽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의 건설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던 이들에게 있어서 끝을 알 수 없는 저 거대한 신천지는 강한 유혹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은 이미 백년전부터 동료들을 그 먼 곳에까지 보내며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이미 유럽은 너무 늙었고,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고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톨릭과 교황청의 영향력도, 비록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대중들 역시 천년이 넘는 가톨릭의 도그마에 철저히 젖어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라면 모든 것을 우리 뜻에 맞게 새로이 건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당 기사단은 물론,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고대의 꿈을, 어쩌면 그 옛날 황금시대의 기억을 현실에서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잊혀진 제국의 영광, 세계 단일정부의 이상, 신세계 질서의 수립.
그렇다. 저 푸른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서라면...
* '프리메이슨의 역사' 라는 소제목하에 그간 너무 잡탕스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소재가 원체 이렇게 저렇게 모든 걸 연결시키면서 써야 이해가 되는 내용이라 어쩔 수 없었으니 이해하시길. 암튼 다음 편부터는 프리메이슨과 미국 이야기로 넘어가렵니다. 국장은 이 부분에 대해 국내 누구도 접해보지 못했을 만큼의 방대한 자료들을 갖고 있고, 이거야 말로 진짜 '음모론' 같은 내용이라는 사실... 흠.
그리고 이 부분도 끝나면 그 다음에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제국주의가 이들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었는지, 소위 고대의 비의를 전수받았다는 사람들이 현재 어떤 큰 가지들로 나뉘어져 있는지 등이 다루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언질을 드리자면, 2004년 현재 지구상에는 고대 비의를 배경으로 하는 네 개의 강력한 힘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종교/사상/역사적 배경, 민족적 성향 등 다른 백그라운드로 인해 서로 융합하지 못한 채 연합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물론 그 중 하납니다.
다만 당부드릴 말씀은, 앞으로도 재밌게 읽으시되 이 내용들이 결국 지적 게임, 추리일 뿐이라는 사실은 잊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국장도 이런 이야기에 푹 빠져서 중심을 잃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가능성으로 취미 삼아 추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내용이 삶의 중심에 놓이는 순간 사람은 자칫 발란스를 잃고 만다는 사실,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첫댓글 개꿀잼각 (상) 먼저 찾아 읽고 와야지 룰루
네 개의 강력한 힘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