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gujoron.com/xe/19027
경제는 사기다. 미국발 금융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폰지사기, 메이도프사기 따위가 언급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가 총체적 사기극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라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청맹과니 좌파들이 하는 소리다.
경제는 통째로 사기다.(역설적 표현이지만) 원래 사기가 맞는데 새삼스럽게 폰지사기 따위를 강조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다. 물론 ‘경제가 사기’라는 당연한 사실도 몰랐던 바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정도의 의미는 있다.
경제하는 시스템에 대한 무지를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듯이 자랑하고 다니는 좌파들의 주장을 액면에서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경제 자체를 원천부정한다는 점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자.
오늘날 지구가 이 모양 이꼴로 엉망이 되어버린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가 고작 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양차세계대전 직후는 더 엉망이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미미한 존재다.
별 볼일 없는 존재인 인간의 원초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 금융제도, 경제 시스템에 대한 원천부정은 결국 그 제도를 만든 인간에 대한 부정이다. 자본주의를 없애라는 말은 인간을 없애라는 말로 된다.
비판은 좋으나 뭘 비판할 건지 가려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은 의사들의 역량이 그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학을 없애고 주술을 찾으랴?
만병통치약은 원래 없다. 병을 못 고치는 것은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이렇게 된 것은 경제가 고도화 된 데 비해 그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제대로 된 명의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 멱살잡는다고 환자가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가 너무 나서면 안 되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문제 있는 시스템은 보완되어야 하지만 의학을 부정하고 무당의 주술로 돌아가자는 식은 아니다.
### 왜 경제가 ‘사기’인가? 모르기 때문에 사기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과 같다. 아는 사람에게는 사기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백퍼센트 사기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는 당연히 사기다.
자신이 ‘돼지’라는 판단이 서면 예술이라는 진주목걸이는 던져버려야 한다. 묻노니 그대는 돼지인가? 그대가 돼지라면 예술은 확실히 사기다. 돼지인 그대에게는 그 어떤 예술도 우스꽝스런 코미디일 뿐.
마찬가지.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경제는 통째로 사기다. 주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주식은 당연히 사기고, 부동산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부동산이 사기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역설’이다.
역설을 이해못하는 사람에게만 사기다. 역설이란 결과가 의도와 반대로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경제는 항상 반대로 간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한다는 양반 있는데 그거 유럽에서는 500년 전부터 했다.
그게 중상주의. 중상주의가 경제를 망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경제를 망친다는 학설이 아담 스미스의 시장경제이론이다. 경제살리기 하면 경제죽는다고 아담스미스가 200년 전에 이미 갈파했다.
경제는 의도와는 반대로 간다. 북유럽의 경우 노조가 들고 일어나서 경제를 망쳤는데 그 결과로 경제가 번영했다. 경제의 숨통을 조이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난다.(항상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담 스미스의 시장경제이론도 사기다. 경제가 항상 의도와 반대로 가니까 ‘모르면 놔둬라. 중간이나 가게.’ 이게 시장경제이론이다. 아마추어가 모르면서 손대다가 망치는 것 보다는 시장에 맡겨두는 게 낫다.
가만 놔둬도 시장이 저절로 경제를 살리다니!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렇지 않나? 가만 놔둬서 아프리카경제가 살아나고 필리핀경제가 살아났나? 시장이 저절로 경제 살린다는 말은 경제살리기를 실패한 경험칙에 불과하다.
저절로 살아나는 수도 있다. 감기 환자는 놔두면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 나름이다. 암도 저절로 낫는 경우가 있다지만 감기로 죽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보듯이 가만 놔두면 죽는 경우도 많다.
경제는 역설. 항상 반대로 간다. 살리려 하면 죽는다. 비전문가가 환자를 손대면 어떤 경우에도 죽는다. 전문가라면 다르다. 전문가가 살리면 산다. 문제는 이명박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이 저절로 경제를 살릴 때도 있지만 대개 누군가를 희생시킨다. 명의는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경제를 살린다. 문제는 그린스펀이라는 명의가 있어서 경제가 살았는데 지금은 명의가 없다는 사실.
상대적이다. 쉬운 병은 전문가가 고치지만, 어려운 병은 전문가도 못고치는 수가 있다. 시장원리니 보이지 않는 손이니 하는 말은 30년대 대공황처럼 전문가도 쉽게 못고치는 중병에 걸렸을 때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 근대 자본주의를 열어젖힌 프랑스의 존 로와 동업자 캉티용은 원래 사기꾼이었다. 존 로는 영국에서 사기치다가 들켜서 프랑스로 튀었는데 미시시피 주식회사라는 것을 만들어 일종의 폰지사기를 쳤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대륙의 금광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황금을 엄청나게 실어온다고 속이고 지폐를 발행하다가 한계에 부닥치자 외국으로 튀었다. 존 로와 캉티용의 지폐사기를 지금은 프랑스 정부가 하고 있다.
이 양반이 화폐경제로 대변되는 근대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함께 사기치던 캉티용은 살해되었는데 죽은 후 불타버린 집에서 그의 저술 ‘상업론’이 발견되었다. 이 책이 근세 자본주의의 교과서 격으로 되었다.
자본주의는 애초에 사기꾼이 만든 것이고, 처음부터 사기로 성장했고, 사기로 지금까지 굴러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을 속일 것이다. 그러니 눈 부릅뜨고 조심하라.
항상 언급되는 튤립효과만 해도 그렇다. 네덜란드 자본주의는 튤립소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주식회사 제도와 보험제도 금융제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시스템이 그 시점에 생겨났다.
누군가가 사기를 친다. 잠시동안은 잘 돌아간다. 사람들은 환상에 빠져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쏘다닌다. 졸지에 떼부자가 된 하인과 옛주인이 오페라 극장에서 조우한다. 3~4년간 잘 돌아가던 시스템이 고장난다.
회사는 파산하고 주주는 거지가 된다. 그러나 나중 문제를 보완했다는 누군가에 의해 그 수법은 다시 사용된다. 급기야는 국가가 그 수법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삼백년을 굴러온 것이 자본주의다.
서부시대 미국은행의 달러는 절반이 위조지폐였다고 한다. 은행에 금이 있는 만큼 달러를 발행해야 하는데, 금고에는 금박 입힌 돌을 넣어놓고 달러를 발행했으니 사기다. 사기극 덕에 미국경제는 번영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달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들은 재빨리 그 종이를 남에게 줘버리고 물건으로 바꿔간다. 언제 휴지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상품의 유통속도가 높아져서 경제가 번영한다.
반대로 양화인 금화는 사용하지 않는다. 금은 믿을 수 있으므로 남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금고에 보관한다. 화폐를 사용하지 않으니 물산이 유통되지 않아 경제가 망한다. 그러니 경제는 사기다.
만약 은행들이 정직하게 장사를 했다면? 달러가 없어서 경제는 아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경제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발동을 걸어줘야만 작동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발동을 거는 과정이 거의 사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고장나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파산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과정에 문제는 계속 보완되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남아있다. 위험은 계속 증가한다.
금이나 은이라는 것은 원래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고, 탈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니 사기다.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이걸 믿으라. 믿으면 벌지니라’ 하고 선교를 해대니 사기다.
그 사기에 속을 것인가 속지 않을 것인가? 마호멧은 말했다. ‘내가 돼지가 새끼를 치는 것은 봤어도 돈이 새끼를 치는 것은 못봤다. 사기다.’ 그래서 아랍에는 이자를 받는 은행이 없다. 이자를 안받으니 정직하게 경제가 망했다.
경제는 사기다. 속지 않으면 망한다. 아랍처럼 망한다. 속아도 망한다. 미국처럼 망한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한다면 수백년 동안 계속된 무수한 사기와 파산과 실패를 딛고 또 한 걸음 전진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미국 운하붐에 투자했던 유럽 귀족들은 거진 다 망했다. 왜? 철도가 등장했기 때문에. 철도붐에 투자한 유럽 귀족들은 다 망했다. 왜? 자동차가 등장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속이고 또 속인다.
신대륙에 투자한 귀족들은 결국 거지가 되었다. 속여먹은 미국은 대박. 그 과정에 경제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간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데 전체적으로는 사는 사람이 많으므로 시스템은 계속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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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지사기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폰지사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단 때로 성공하는 폰지사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메이도프는 20년 동안 불법다단계를 했는데 그 20년 동안은 순조로웠다. 그 20년을 100년으로 연장하는 기술만 개발하면 안전하다. 사기꾼이 늙어죽고 난 다음에야 부도나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런 식이다.
지폐경제를 실험한 존 로가 사기꾼으로 몰린 것은 그가 조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이고 어쨌든 그 여파로 자본주의가 태동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이 돌려막기 경제를 하고 있는데 미국 자본주의가 그랬다.
운하로 사기친거 철도로 돌려막고, 철도로 사기친거 자동차로 돌려막고, 전력으로 돌려막고 그런 식이었다. 줄기차게 사기친 미국은 대박이 나고 줄창 사기당한 유럽귀족은 거덜이 나고.
자본주의란 메이도프 20년 사기를 100년 사기로 늘여놓은 것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사기를 치되 손실은 후손들에게 떠넘긴다. 미국경제가 망한 것은 사이클을 너무 빠르게 순환시켰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이 속도조절을 했다면 더 오래도록 사기쳐먹을 수 있었다. 사기가 계속되는 동안 미국경제는 번영한다. 사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기가 아니라 마술이다. 마술에 속는 사람이 문제다.
주식에 속고 부동산에 속고! 속지 말라. 안속으면 사기가 아니라 예술이다. 경제는 마술이고 또 예술이다. 마술사의 진짜 속임수는 마술사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가려놓은 천 뒤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극장 입구 매표소에서 이미 사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아채는데 성공한다면 자본주의는 예술이다. 그 사기수법을 이해하고 이에 대항하여 위험을 회피하는 전술을 찾아내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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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에서 1+1은 2다. 구조의 세계에서 1+1은 구조를 조직하기에 따라 3이 될 수도 있고 4가 될 수도 있다. 구조는 복제되므로 잉여가 창출된다. 구조는 두 당구공의 사이다.
●와 ●의 사이에 무엇이 있나? 접점이 있다. 접점은 혼자서 두 ●를 상대한다. 1로 2를 해결하므로 잉여가 창출된다. 구조는 포지션이다. 포지션은 최적화 될 수 있다. 공격수가 수비수를 겸하는 멀티플레이어라면 가능하다.
칼로 무를 한토막씩 썰면 칼질 1회에 토막 1개가 탄생한다. 종이를 여러번 접어서 칼로 자르면 칼질 1회에 무수한 카드가 생산된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명백히 잉여를 탄생시킨다. 구조는 사기가 아니다.
백 명의 고립된 마을이 있다. 백 명의 주민이 숟가락 한 개로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사용하면 1개의 숟가락으로 백배의 효율을 얻는다. 이익이 백 배나 된다. 잉여는 여기서 창출된다.
문제는 숟가락이 부러졌을 때 백 명이 모두 밥을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위험 역시 백배로 증폭된다. 그러므로 사기다. 공산주의 집단소유개념도 본질은 숟가락 하나로 둘아가면서 밥먹자는 식의 눈가림이자 사기다.
일시적 효율을 얻지만 위험이 증폭되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도 본질은 같다. 세계의 네티즌들이 MS의 익스프롤러 하나로 밥먹고 있다면 위험하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느냐가 자본주의의 발전의 핵심이다.
지금의 불경기도 위험분산 실패에 따른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숟가락이 부러진다. 언젠가는 망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단 시간을 벌 수 있다. 경제의 본질은 시간차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다.
시간차를 활용해서 요소투입 최적화로 얻은 잉여를 에너지로 돌려 시스템에 재투입하면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백명이 숟가락 하나를 공유하고 남는 99개로 산업을 건설하면 이익을 낼 수 있다.
시간과의 경주가 벌어진다. 위험의 증대가 생산력 혁신보다 빠르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자본주의 엔진의 시동이 꺼져버린다. 생산력 혁신이 더 빠르면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 이는 경제의 선순환이다.
메이도프가 20년 동안 조용히 사기쳐서 번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해서 큰 이익을 낸 다음 피해자를 구제하면 된다. 경제는 이런 식으로 순환된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통째로 이 수준의 불안정한 구조라는 거다.
자본주의 핵은 잉여다. 잉여는 최초 단계에서 시스템의 구조화로 인한 요소투입 증대로 얻어진다. 요소투입을 늘리면 잉여가 얻어지고, 회수된 잉여는 에너지로 변환되어 신기술, 신발명, 영토개척, 시작확대, 고밀도화에 투입된다.
발견, 발명, 시장개척, 공공투자로 생산력 혁신이 일어나면 재질서화가 일어난다. 요소투입에 의한 구조화를 폐기하고 혁신된 생산력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변경한다. 이 과정이 선순환의 1사이클이다.
재질서화가 중요하다. 최초 단계에서 위험의 증대를 수반하는 형태로 설계된 구조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게가 허물을 벗듯이 경제구조는 부단히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에는 항상 파괴가 따른다.
전혀 경제적이지 않은 파괴가 도리어 경제를 살린다. 그 파괴는 물질의 파괴가 아니라 낡은 패러다임의 해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적 가치와 방법이 일정부분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30년대 공황은 급격한 생산력 증대를 생활양식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충격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인식이 바뀌자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자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자 불경기에서 벗어났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야 경제는 살아난다. 그러므로 개혁이 필요하고 계몽이 필요하고 사회주의적인 여러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파괴와 해체에 의한 재질서화는 항상 일어나야 한다.
90년대 IT거품 뿐이 아니다. 19세기 운하거품, 그 다음의 철도거품과 전기거품(에디슨 이후 영국에 전기회사 수백개가 난립해서 다 망했다. 그때도 엄청난 투자광풍이 불었고.)
자동차거품(포드자동차 등장으로 영세공장 5만개 몰락.) 등 거품의 몰락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경제는 사기다. 시장이 재질서화를 위해 교착을 타개하고 방향성을 얻으려면 일정부분 거품이 있어야 한다.
거품 때 창업했다가 망하여 생겨난 훈련된 백수들이 살아남은 구글과 NHN에 취업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이익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재질서화를 위해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는데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능하는가는 재질서화에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시장이 새로이 리더를 선출하고 리더에게 힘을 몰아주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느냐다. 이 지점에서 거대한 권력교체가 일어난다.
마차시대에서 운하시대, 철도시대를 거쳐 자동차시대로, 또 전기시대에서 전자시대로, 가전시대에서 컴퓨터시대로 바뀌면 사회구조가 재편된다. 인식도 바뀌고 삶도 바뀌고 문화도 바뀐다.
교육, 문화, 예술까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느냐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운명이 달려있다. 자본주의가 사기인 이유, 그대의 믿음을 배반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기존체제가 부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공황이 일어난 이유는 마차시대에서 자동차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생산력 증대로 자동차는 있지만 팔리지 않는다. 왜? 운전수를 고용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손수운전 하면 되잖는가? 만약 직접 핸들을 잡고 손에 기름을 묻힌다면(당시 자동차는 고장이 잘나서 기름범벅) 운전수로 신분이 격하된다. 자동차는 마차가 발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운전수는 원래 마부다.
마부는 신분이 맞은 하층민이다. 오너가 직접 핸들을 잡으면 부르주아에서 마부로 신분이 추락한다. 그러므로 생산된 차가 팔리지 않는다. 마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30년대의 문제였다.
운전수를 고용하면 식모, 찬모, 유모, 정원수, 소사, 집사까지 고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문화적인 수준차가 너무 커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운전수를 고용하는 마차패러다임을 부수지 않으면 손수운전의 자동차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공황은 필연이다. 중요한 것은 이 힘든 과정을 신속, 명확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다.
김대중 때의 빅딜은 기술적인 실패였다고 볼 측면이 있다. 그러나 빅딜 덕분에 IMF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빅딜의 세부적인 내용은 그렇다치고 시장에 보내는 신호는 건전했기 때문이다.
생살을 찢어서 멀쩡한 기업을 죽인 혐의도 있지만 크게 보아야 한다. 망할 기업이 정해지니까 동시에 살아날 기업이 정해져서 이후로 투자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시장이 안정된 것이다.
두 패러다임 사이에서 결정은 신속해야 한다. 내용은 파괴라도 결정의 신속함이 이후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손해보는 수주계약이라도 일단 계약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재질서화다.
본질은 생산력의 혁신
경제의 본질은 신기술, 신발명, 신시장, 신대륙과 같은 생산력 혁신이고 생산력의 혁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초기투자가 있어야 하며 생산력 혁신이 달성된 다음에는 그 패러다임에 맞춰서 재질서화 해야 한다.
여기서 시간차에 의한 착시가 일어난다. 정확히 말하면 역설. 그러한 경제의 다이나믹한 효과, 일정부분 파괴를 안고가는 역설적인 진행이 경제가 생물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기로 비쳐진다.
대부분 원래 의도했던 것과 다른 쪽에서 재질서화로 인한 엉뚱한 효과가 나타나서 경제를 다시 살리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원래의 의도를 순진하게 믿었던 사람에게 경제는 사기가 된다.
대학가서 전공 바꾸듯이, 또 전공과 무관한 다른 직장에 취업하듯이 경제는 항상 엉뚱한 길로 간다.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투자자들은 미친듯이 전기회사에 투자했지만 실제로 돈은 전기가 아닌 전자가 벌었다.
전기는 예상과 달리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자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백색가전이 등장하면서 건물구조도 바뀌었다.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다. 거대한 신규수요가 창출되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명박 경제도 역설적이다. 지금의 고환율, 저유가는 한국경제에 큰 기회다. 물론 큰 희생을 수반한다. 이명박 경제는 호랑이 입에서 도망치다가 거꾸로 오히려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간 경우다.
용케 유가가 하락되는 바람에 치킨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찬스를 잡았다. 한국경제는 당분간 망하겠지만 일본경제와 대만경제가 더 망하면 상대적인 비교우위에 의해 장기적으로 큰 이득을 본다.
이명박의 경제살리기가 경제죽이기 효과를 가져왔고 그 여파로 희생자가 발생했고 희생자 덕분에 거꾸로 경제살리기 효과로 나타났다. 반전에 반전. 역설의 역설. 이러한 복잡한 공식을 모르는 사람에게 경제는 사기다.
이명박이 침착하게 대응해서 경제를 살렸다면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피해자도 생겨나지 않았고, 국민지지도는 올라갔겠지만 기회는 잡지 못했을 수 있다. 중요한건 재질서화이기 때문이다.
어중간하게 경제가 살아나면 이도저도 아닌 교착상태가 장기화되어 재질서화에 실패하게 되기 때문에 더 나쁘다. 엎어졌을때 신발끈을 고쳐매듯이 이 기회에 패러다임을 확 바꾸어야 한다.
북한을 의식한 박정희의 중공업 과잉투자가 80년대초 한국경제를 죽였지만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났다. 일본은 80년대초 오일쇼크로 망했기 때문에 대박을 맞았다. 경제죽이기가 경제를 살린 대표적인 예.
노조와 시민단체가 대기업을 감시하면 대기업이 기술개발을 해서 경제가 산다. 반면 정격유착을 해서 비즈니스프렌들리를 하면 대기업이 생산을 기피하고 유통을 장악해서 경제가 망한다.
돈버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구와 출구를 지키는 것이다. 입구는 자원이다. 토지를 독점하거나 광산을 개발한다. 석유를 캐는 것이다. 출구는 유통이다. 산업은 하지 않고 백화점과 부동산 장사만 하는 거다.
이렇게 땅짚고 헤엄치기식 돈벌이 방법이 있는데 왜 힘들게 그 중간의 제조업을 하느냐다. 입구와 출구를 장악하는 거저먹기 돈벌이를 하려면 정경유착을 해야한다. 입구와 출구는 이권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가 부패한 나라들은 재벌들이 그 입구인 매장자원의 독점, 출구인 유통과 부동산에 전념해서 경제가 망한다. 시민에 의해 감시되지 않는 청맹과니 재벌경제는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다.
중상주의를 하면 경제가 죽고 중상주의를 폐지하면 경제가 산다. 사회주의적 가치와 공공투자를 도입하면 경제가 살고,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면 경제가 죽는다. 결국은 밸런스다.
밸런스는 50대 50의 어중간밸런스가 아니라 좌로 1보 후 우로 1보의 살아서 움직이는 밸런스, 파괴와 재질서화를 수반하는 다이내믹한 밸런스다. 끊임없이 시장을 흔들고 부단한 재질서화를 시도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불경기가 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옥석이 구분되고 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리더가 선출되며 고급두뇌의 재배치가 일어난다. 진정한 강자는 불경기에 기회를 잡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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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면 태산 서쪽의 산서상인이 유명하다. 근본을 더듬어 보면 고대 은나라 곧 상나라가 망해서 상인이 되었고(상인이라는 말의 어원은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 상인조합을 ‘행’이라고 한다.
예컨대 ‘은행’ 따위다. 비단행, 소금행, 차행, 도자기행 등 많은 행들이 있다. 행(行)은 ‘걸어갈 행’ 자라 상나라 사람이 나라를 빼앗기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행이 생겨난 것이다.
유태인도 나라를 뺏기고 세계 곳곳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금융업 위주로 장사를 하게 되었고 개성상인도 고려가 망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상업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경제의 역설이다.
망해야 흥한다는 것. 한 번 망해본 사람이 흥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 항상 그렇다. 자본주의는 무수히 속고 무수히 망하면서 커왔다. 자본주의 본질은 위험관리. 망해보지 않은 자는 위험관리 노하우를 쌓지 못한다.
경제는 시스템이고 시스템에는 사이클이 있다. 요소투입에 의한 최적화≫잉여창출-그러나 위험의 증대≫시간차 획득≫생산력 혁신≫재질서화가 경제의 1 사이클을 이룬다. 여기서 시간의 경주가 벌어진다.
생산력 향상이 위험의 증대를 따라잡으면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위험의 증대가 생산력 혁신을 따라잡으면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경제의 본질은 혁신에 있다. 혁신은 결국 과학이다.
생산력 혁신은 정복(영토개척, 신대륙 개척), 밀도상승(고층건물, 전화, 인터넷 등에 의한 고밀도 집적), 전쟁(인구감소), 발명과 발견, 공공투자, 교육과 계몽, 신기술에 의해 얻어진다.
만약 이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기술적인 최적화만을 추구하면 시간차를 소모한 다음 필연적으로 경제는 붕괴한다. 최적화는 위험을 증대시키며 위험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반드시 폭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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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비판한다면서 알고보면 폰지사기에 지나지 않는 경제시스템 그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를 맹신해도 안 된다. 경제는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살아있고, 살아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시스템은 그 역동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그대를 배신한다. 정답은?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전문가 양성 뿐이다. 전문가라도 충분하지 않다. 전문가도 다만 고칠 수 있는 병을 고칠 뿐이다.
결국 앓으면서 크는 거다. 그 과정에 공론에 의한 집단지능의 건설이 중요하다. 불경기는 피할 수 없고 불경기라야만 새로운 리더가 떠오르고 새로운 리더 중심으로 질서를 재편하면서 경제는 계속 가는거다.
자본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란 한 마디로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라 하겠다. 인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일정한 조건에서 실제로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또 ‘돼지가 새끼를 치는 것은 봤어도 돈이 새끼를 치는 것은 못봤다’며 아랍에서 고리대금업을 금지시켜버린 마호멧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마르크스와 마호멧은 틀렸다. 노동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다. 돈이 새끼를 친다. 그래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돈은 죽는다. 새끼를 낳지 못하는 돈은 반드시 죽는다.
죽어서 휴지가 된다. 이건 절대적이다. 경제는 시스템이며 엔진과 같다. 엔진은 계속 돌아야 한다. 출력측의 입력전환이 있으므로 출력이 입력보다 커야 한다.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부하가 걸려서 시동 꺼진다.
노동하여 돈 버는 시스템은 옛날부터 있었다. 그러나 돈이 돈 버는 시스템은 명백히 근대의 산물이다.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금융제도, 주식회사 제도, 보험제도는 18세기 이래 불환권의 등장과 함께 생겨났다.
그러나 중국의 진상(晉商)은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주주가 자본을 투자하고 결산기에 이윤을 배당받는 근대적인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송나라 때 이미 자본주의 맹아단계에 도달해 있었다는 설이 있는 것을 보면, 돈이 돈 버는 현상은 18세기 이래 유럽에서 생겨난 근대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법칙이라 하겠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사람의 논리가 아니라 돈의 논리를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돈의 논리가 무엇이냐다. 위험관리다.
‘돈이란 무엇인가? 또 자본이란 무엇인가’가 궁극의 문제다. 자본은 인간이 생산해놓은 물화나 혹은 그 물화를 생산하기 위하여 투입한 노동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권리’를 숫자로 표시하여 나타낸 것이다.
말했듯이 ‘권리’는 저울이다. 저울이 기울어지는대로 결정한다. 저울의 결정이 문제다. 저울이 무엇을 결정하는가? 연동을 결정한다. 연동이 문제다. 연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할 위험이 증대하기 때문이다.
연동된다는 것은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맨 앞에 가는 사람이 비뚤비뚤 가면 길이 비뚤게 나서 무수한 비효율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때문에 권의 법칙이 문제로 된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원사사회에서도 영토가 있다. 영토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 권리가 있다. 그것은 노동의 결과가 아니며, 인간이 생산한 물화가 아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권도 일종의 권리다.
이를 숫자로 표기하여 교환가능성을 나타내면 자본이다. 자본은 권리다. 권리는 어떤 대상을 통제하는 원리다. 권리는 일(work)에 의해 탄생하며 일의 연동법칙이 권리를 낳는 근본이다.
인간이 일하면 그 일에 연동되어 아직 확정되지 않는 미래의 성과에 대한 권리가 생겨난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추수할 이익에 대한 권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봄의 파종이 가을의 추수를 통제함이 권리다.
권리란 원인과 결과의 호응 형태로 존재하며 그 사이에 시간차가 있다. 그 시간차에 의해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다양한 결과적 현상에 대해 원인측이 미리 인과관계를 규정시켜 확인해 둔 것이 권리요 자본이다.
구조론이 자본을 설명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물질에 있어서는 1+1의 값이 2가 되지만, 구조는 집적하기에 따라 3이 될 수도 있고 4가 될 수도 있다. 도마에 무를 올려놓고 칼로 썰되 1회 칼질에 1토막을 얻는다.
그러나 종이를 반복하여 접은 다음 1회의 칼질로 무수한 카드를 생산할 수 있다. 이때 종이를 몇 번 접었느냐에 따라 칼질 1회로 생산되는 카드의 숫자가 많아지지만 동시에 칼질이 잘못될 경우 자원 전체를 못쓰게 된다.
구조론에 따르면 일은 기본적으로 5회 집적된다. 하나의 일은 다섯차례에 걸쳐 종이가 접힌다. 구조는 정확히 다섯이다. 막대는 5, 바퀴는 25, 저울은 125, 엔진은 625, 컴퓨터는 3125회 종이를 접어 집적한다.
종이를 접은 횟수와 집적구조의 효율은 비례하며 만일 일에 실패할 경우, 칼을 잘못 휘두를 경우 위험 역시 같은 비례로 증가한다. 이때 성공과 실패가 결과를 통제하는 현상이 권리다.
고립된 마을에 백 명이 산다고 치자. 숟가락 한 개를 100명이 공유하면 효율은 백 배로 증가하지만 숟가락이 부러지면 백 명이 밥을 굶어야 하므로 위험 역시 백 배로 증가한다.
공유개념의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도 이것이다. 자본주의에도 이와 같은 본질은 명백히 존재한다. MS의 익스프롤러 하나를 네티즌 90프로가 공유한다. 빅브라더가 되었다. 그만큼 한꺼번에 망할 위험이 있다.
집적구조에 따른 효율과 함께 가는 위험을 숫자로 표시하여 나타내면 돈이다. 돈이 새끼를 치는 이유는 위험이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실현 결과를 통제하기다. 큰 이윤은 큰 권리다. 큰 권리는 큰 통제다.
왜 위험이 따르는가? 구조론의 연동원리에 따라 후자가 전자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질≫입자≫힘≫운동≫양 순서로 연동된다. 전자가 후자를 결정한다. 상위포지션이 하위포지션을 통제한다.
사(士) 계급은 원래 문사가 아니라 무사였다. 사(士)가 전쟁하여 지키지 않으면 공(工)이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할 수 없고, 공이 생산하지 않으면 상(商)이 그 소금을 돌아다니며 팔 수 없다.
앞의 결정이 뒤의 결정을 지배한다. 이것이 권이다. 이때 연동되는 횟수가 종이를 접은 횟수다. 종이를 5회 접으면 이러한 연동이 5회에 걸쳐 일어난다. 그만큼 위험이 커진다.
사(士)가 염전을 뺏기면 공(工)도 상(商)도 일자리를 잃는다. 그만큼 사가 큰 몫을 가져간다. 사(士)를 양성하여 위험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이 없는데도 계속 많이 가져가는 수가 있으므로 경제는 사기다.
돈은 권리다. 권리는 집적구조의 연동원리에 따른 효율과 위험의 통제권이다. 위험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하므로 권리는 특정한 누군가(개인이나 법인)에 주어져야 한다. 공유는 의사결정을 못하므로 위험의 통제가 아니다.
위험과 이익의 통제는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결정은 본래 저울이 내리는 것이며 저울이 권이다. 잠재적인 위험의 증대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을 사전에 비축해야 하므로 이자가 존재해야 한다.
자본주의 발달사는 효율의 증대에 따른 위험관리기술 발달의 역사다. 미국경제가 망가진 것은 위험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위험이 재질서화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이면에 축적되고 있는 긴장이 있다. 신자유주의가 그 긴장을 극대화 시켰다. 효율과 위험은 한 쌍이므로 효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축적되는 위험이 있다. 뭔가 잘 돌아간다면 불안한거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 위험이 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는 증거이므로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 전혀 이상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위험이 축적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매우 긴장해야 한다.
경제는 요소투입에 의한 최적화-구조화≫효율과 위험의 증대≫원인과 결과 사이 시간차 획득≫생산력 혁신≫재질서화(패러다임의 변화)로 1 사이클을 그린다. 위험이 증대되므로 시간차가 소진되면 필연 붕괴한다.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이윤을 모아서 보험으로 대비하는 한편 정해진 시간 안에 생산력을 혁신하여 재질서화에 성공해야 한다. 시장이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여 그쪽으로 패러다임을 옮겨가는 것이다.
저울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권리의 교체다. 돈은 그렇게 돌고 돌아야 한다. 멈추면 죽는다. 돈이 돈을 낳지 못하면 반드시 죽는다. 포드시스템이 레일을 따라 움직이듯 주도권은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만약 한 곳에서 자동차를 계속 조립하면 반드시 비효율이 발생한다. 위험은 시간차에 의해 일어나므로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반드시 옮겨야 한다. 그래서 인류문명은 한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중심지를 바꾼다.
문명이 처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나더니 이집트≫지중해≫그리스≫이탈리아≫아랍≫스페인≫프랑스≫영국≫미국≫아시아로 계속 거점을 옮겨다니는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생산력 혁신이 극도로 향상된 미래사회에는 육체노동의 강도가 축소하는 대신 그 저울의 교체와 사용은 더욱 활발해져서 인간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판단과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육체노동은 감소하지만 결정해야 할 일의 절대량은 결코 줄지 않는다. 컴퓨터를 시켜서 대신 결정하게 해도 역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총결정량은 끝없이 증가한다.
부자가 돈을 함부로 써버리면 위험관리 포기다. 결국 망한다. 부자가 빈자에게 돈을 나눠줘 버려도 역시 위험관리 포기다. 나눠줄 것은 나눠줘야 하지만 자본 자체는 일정한 규모로 보존되어야 한다.
자본의 과도한 집중은 위험의 과도한 집중이다. 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위험 역시 규모가 커지므로 자본은 일정한 정도로 집중되어야 하지만 그럴수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자본의 집중과 분산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증권제도다. 주가가 오르면 자본이 집중되지만 오너가 멍청이라는 사실이 시장에 공개되면 주가가 폭락해서 자동으로 위험이 헤지된다.
주가상승은 오너의 옳은 결정에 힘을 몰아주는 것이며 주가하락은 잘못된 결정에 따른 위험분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인류의 집단지능으로 함께 지혜를 모아 만든 것인데 왜 이익을 대자본가가 독식하는가다.
이 부분은 정치가 해결할 일이다. 자본의 증식 시스템은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자본이 새끼를 치지 못하면 시스템은 사망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외에 다른 구조는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란 인간이 힘과 지혜를 모아 출력측의 입력전환에 의해 저절로 돌아가는 커다란 엔진 - 그러나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고장나게 되어 있는 - 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 엔진의 가동에 따른 잉여를 비축한 것이다.
그 고장의 위험에 대비하며 한편으로는 옆구리에 빨대를 꽂아 조금씩 빼먹는 것이다. 빼먹는 이유는 인간도 그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자본을 비축하여 시스템 붕괴의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비도 재투자의 일종이다. 자본을 소비하여 양질의 교육받은 인간을 양성하여 두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집 아이가 더 우수한 인재일 수 있다.
이명박의 무개념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것만 알아도 개념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통제원리를 안다는 것이다. 재투자와 위험관리 그리고 재질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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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강만수도 갔다. 조용해졌다. 진작에 보내버렸으면 진작에 조용해졌을 것을! 강만수는 한 마디로 ‘?일 넘’이지만, 진보-보수진영을 망라하여 강만수 정도 되는 사람도 이 나라에 몇 없다는데 진정한 비극이 있다.
다들 강만수를 욕했지만, 단지 욕이나 해댈 뿐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제대로 꺾어주는 인물 하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진보진영에도 진짜 전문가는 없었다. 그러니 졸지에 미네르바가 뜬 것이다.
아마추어 미네르바가 난다긴다 하는 이쪽저쪽의 프로들을 갖고 놀았다. 미네르바가 돌연히 스타로 부상했다는 사실 자체로 이 나라 경제전문가 모두는 확인사살된 셈이다. 그들은 이미 시체다. 좀비다.
이제 그 어떤 경제연구소도, 그 어떤 경제전문가도 큰소리칠 자격이 없다. 강만수 뿐 아니라 그들 모두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 네티즌의 집단지능만이 이 나라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우리 자신을 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갈 밖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론’이 정답이다. 네티즌의 집단지능 외에 믿을 것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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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없다. 무개념의 증거는 선제적 조치, 선제적 대응의 결여다. “외국언론이 한국을 죽이려고 한다.”는 이명박 정권의 호소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같다.
“바보야! 그럼 죽이려 하지 살리려 하겠나?” 외국언론사가 국제투기자본과 한통속이라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당연한 사실 가지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게 개념이라곤 없는 것.
알아야 한다. 투기세력은 외환보유고가 적은 나라를 공격하는게 아니라, 가장 약한 나라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한국이 만만해 보이니까 공격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만이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치명적이다.
왜 만만이 보였겠나? 이명박에 강만수니까 만만이 보인 것이다. 뭔가 약점을 보였으니까 공격받은 거. 저쪽에서 이명박, 강만수의 존재를 발견하고 “한국은 저쪽이 구멍이다. 저리로 서브를 날려!” 이렇게 된 거.
이명박, 강만수의 “다 세계 경제위기 때문이지. 내가 잘못한게 뭐 있나?” 하는, 미네르바탓이나 하는, 남탓전문의 무개념 때문에 만만히 보인 것이다. 호구로 보이고, 구멍으로 보인 것이다. 잡아먹으려고 덤빈다.
비행기가 추락하려 한다. 누군가 한 명이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려서 무게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모진 놈이 옆자리에 가만이 앉아있는 사람을 비행기 밖으로 떠밀어버리는 이유는?
지가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게 놈들의 선제적 대응. 이에 이명박 어린이 울며 호소한다. “나는 잘못없걸랑요. 그냥 가만있었걸랑요. 근데 외국언론이 나를 비행기 밖으로 떠밀었걸랑요. 저놈이 날 죽이려 했다구요.”
이러면 불쌍히 여겨서 낙하산이라도 던져준다던가? 누군가가 죽어야 나머지가 살아난다면 누군가를 고의로 죽이는 거다. 누굴 죽이겠나? 반드시 외환보유고가 적은 나라만을 죽이려 드는 것은 아니다.
죽여보아서 죽어지는 자를 죽인다. 죽을 때까지 죽이려고 달려든다. 지가 살려고 남을 죽이는 거다. 이거 알아야 개념있다는 소리 듣는다. 한국경제가 위험하다는 외국언론의 보도는 한국의 외환사정이 좋지 않다는게 아니다.
사정이 안좋아질때까지 공격해서 기어이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선언이다. 왜? 만만하니까. 하는 짓이 어리버리하니까. 지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니까. 그게 냉혹한 국제사회 정글자본주의 법칙이니까.
무엇인가? 미네르바가 3월위기설의 한국경제를 살렸다. 그것이 바로 미네르바의 ‘선제적 대응’이었다. 국제투기자본이 한국을 공격하려고 노린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수출기업들은 달러를 쟁여놔야 한다.
그들이 한국을 맹렬하게 공격할 때, 수출기업이 쟁여둔 달러를 일시에 풀어버리면 누가 죽겠는가? 양을 공격하는 늑대는 당연히 발톱을 숨긴다. “나 공격하겠소.” 하고 미리 선포하면 그 공격이 먹히겠는가?
외국자본이 한국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는 식이어야 한다. 느닷없는 공격을 역시 느닷없는 되치기로 막아야 한다. 국내에 외국자본의 공격을 역이용하여 한몫 잡으려는 세력이 있어야 공격을 못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사전 경계경보가 외국투기자본의 준비된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경제가 계속 나빠질 때는 비관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낙관론을 전파하고 있으면 그게 바로 치명적인 급소가 되기 때문이다.
정글에서 사자는 다친 사슴을 노린다. 뭔가 약점을 보이면 이심전심으로 전파되어 공동의 표적이 된다. 공격은 느닷없는 집단기습 형태로 전개되며 기습공격은 시장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그 공포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는 거다. 미네르바의 무수한 경고에 의해 충분히 면역이 된 한국시장은 외국자본의 준비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패닉으로 치닺지 않았다. 진짜 무서운건 시장의 패닉이다.
패닉은 예상하지 못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당국은 경고하여 시장의 패닉을 막은 미네르바에게 상을 줘야 한다. 이명박 말 듣지않고 원하의 하락을 예상하여 달러를 쟁여둔 수출기업들에게도 상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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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은 5천만원 출자로 시작해서 10년만에 굴지의 재벌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5천만원이면 지금 화폐가치로 십억을 넘겠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는가다.
필자의 산수로는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단순히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 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숫자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면 일단 착취당할 노동자가 공장에 모여있어야 한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노동자를 불러모으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시골에 있는 농부들을 버스로 실어나른다고 해도 불능이다. 언제 그들에게 일거리 줄 공장을 짓고 일을 가르치고 하겠는가?
김우중의 방법은 다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방법이 아니라 권력의 방법이다. 러시아 피터대제가 서구를 모방하여 급속한 경제개발을 추진하거나, 일본의 덴노가 봉건영주를 시켜 반강제로 재벌을 일으킨 예와 유사하다.
김우중은 미국 백화점들을 순회하며 독점납품을 조건으로 구매담당자와 이면계약을 맺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저임금이라는 기초 외에 밀어내기식 물량공세라는 카드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원가 얼마에 이윤 얼마를 붙여 얼마에 팔겠다가 아니라 ‘가격은 원하는대로 쳐드릴테니 물량만 넉넉히 받아주시오. 얼마로 해드리면 될까요?’였다. 국내 하청기업에도 같은 방법을 쓴다.
단가는 사정없이 후려치고 대신 물량을 두배도 아니고 열배, 백배로 받아주는 식. 이 수법이 먹혀서 한국의 하청기업과 미국 백화점 양쪽을 동시에 갖고 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가격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재주로도 엄청난 돈을 벌기는 불가능. 김우중이 돈을 번 비결은 다른데 있다. 본질은 달러권력이다. 당시는 양담배만 피워도 경찰이 잡아가던 시절. 그 시대에 달러는 권력이었다.
김우중이 달러를 쟁여놓고 풀지 않으면 당국이 경제계획을 꾸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김우중은 달러로 권력을 쌌다. 기업사냥에 나선 것. 처음은 무역이나 하는 종합상사였을 뿐인데 졸지에 무수한 기업을 거느린 재벌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돈을 벌 수는 없다. 결국 돈은 부동산에서 나왔다. 기업을 하려면 땅이 필요하다. 문어발 확장은 문어발 부동산 사재기의 구실에 불과하다. 김우중이 거느린 그 많은 계열사는 대개 적자였다.
그룹이 해체되고 김우중이 손떼자 대부분 흑자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본질은? 부동산이다. 종합상사와 재벌계열사는 부동산으로 가는 정거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부동산 가격은 왜 올랐나?
한국이라는 국가의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 무엇인가? 기업이 주식을 상장하면 주가가 오른다.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주가상승으로 돈을 벌었다. 빌게이츠도 그렇고 스티브잡스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주식회사가 경제성장을 하면 땅값이 오른다. 기업의 주가상승과 국가의 지가상승은 본질에서 같다.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는. 김우중이 돈벌던 70년대는 주식으로 벌던 시대가 아니었다.
거의 지가상승으로 번 것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가치상승을 김우중이 자기 명의로 명의이전하여 돌려놓은 것. 그 본질은 달러권력. 그때 그시절 달러와 원화의 가치는 비교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이러한 집금메커니즘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역시 개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버는 것이 개념. 요즘 기업들은 주가상승으로 돈을 벌지만 주식도 역시 권리들의 집합이다.
핵심은 시장에서의 주도권. 일정한 영역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조금씩 잉여를 남겨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돈을 버는 것이며, 그 무에서 창조된 유는 권력이다.
이윤은 현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에서 유를 남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천문학적 거액의 돈을 벌 수 없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돈을 번다. 무에서 만들 수 있는 유는 권력밖에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사람이 모이면 권력이 생겨나고, 권력이 작동하면 신용이 발생한다. 권력이 위태로울수록 신용은 1인에게 집중된다. 권력은 집중될수록 의사결정은 신속, 명확해진다.
그러한 신속성, 명확성이 신용의 창출이며 그것을 종이에 숫자로 나타낸 것이 화폐다. 시장에서의 신용 그 자체가 돈이다. 그러므로 돈은 물질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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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뉴스에서 본 내용이 참고할 만. 독일의 어느 동물원에서 대장 침팬지가 아침 일찍 마당으로 나와서 관광객이 오기 전에 미리 돌을 모아두었다가 관광객 중에 야유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을 던진다고 한다.
침팬지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 침팬지는 같은 동료 침팬지에게는 던지지 않고 오직 침팬지를 놀리거나 보고 웃는 인간에게만 던진다고 한다. 관객의 웃음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왜 두목 침팬지는 돌을 던졌을까?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그들은 자기 영역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게 권력이다. 권력은 인간의 영역통제본능이다. 인간의 모든 추구는 이 부분에 닿아있다.
자유란? 사랑이란? 행복이란? 자유란 자기만의 독립적인 영역을 가지려는 본능적 몸짓이며, 사랑이란 상대방과의 공유를 통하여 영역을 확대하려는 본능이며, 행복이란 그 영역을 통제하는데서의 안정감이다.
경제도 마찬가지. 경쟁자를 눌러서 비교우위가 되면 통제가능하게 된다. 개념있는 기업가는 몇 푼의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김우중의 방법도 그런 것이었다.
김우중은 수직계열화를 통한 대규모 물량소화의 방법으로 영역을 통제하는데, 성공했으며 이는 곧 성공적인 집금으로 연결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은 주식의 가치, 부동산의 가치에서 얻어진다.
이 가치는 결국 영역을 통제하려는 의도의 가치다. 그러므로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지금 경제가 위기다. 위기 때는 재질서화를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통제방식과 리더의 출현이다.
시장이 스스로 움직여서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고 방향성을 얻어 교착을 타개하고 돌파하려고 한다. 이때는 몸집을 줄이고 속도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길이 막혀 있는데 한곳이라도 뚫리면 모든 힘이 그쪽으로 집중된다.
강둑에 구멍이 나면 그 강물 전체의 수압이 그 작은 구멍으로 쏠려서 구멍은 더욱 커지게 된다. 큰 둑이 터져서 일제히 범람한다. 경제란 강물과 같아서 방향성만 결정되면 신속하게 진도나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그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센터가 될 수 있느냐다. 위기에 시장은 그 센터 하나에 전체의 힘을 몰아준다. 그러므로 위기가 기회다. 시장은 위기에 몸집을 줄인다. 일
본의 거품경제가 망하자 지방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테마파크가 두바이 망하듯 망했다고 한다. 두바이는 인류의 테마파크다. 한류우드처럼 망하고 한강섬 오페라극장 계획처럼 망한다.
이런 것들은 센터가 되지 못하므로 망한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큰 파도를 만나 위기를 당하면 첫째 화물을 바다로 던져 몸집을 줄이고 흘수선을 높인다. 둘째 전속력을 내어 파도를 직각으로 타고 넘는다.
시장이 몸집을 줄일때는 전 분야에 걸쳐 조금씩 줄이는게 아니라 사치영역을 먼저 줄인다. 테마파크부터, 한류우드부터, 두바이부터 작살내는 것이다. 속도를 내서 파도를 넘을 때는 평소보다 두배로 가속한다.
그 가속의 시점에 한국경제가 엔진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경제의 엄청난 기회다. 그러한 판단은 한국이 잘하는가 못하는가가 아니라 경쟁국보다 앞서있는가에 달려있다.
비행기가 추락하려 할 때 살아남는 방법은 옆사람을 비행기 밖으로 떠밀어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타켓만 되지 않으면 된다. 잘할 필요는 없다. 이명박 강만수가 국제 투기자본에 찍혀 망했듯이, 그렇게 찍히지만 않으면 된다.
찍히면 죽는다. 찍히지 않으면 산다. 경쟁국인 대만, 일본보다 경쟁력이 있기만 하면 된다. 일본은 망해가고 있다. 80년대 오일쇼크 때에 일본이 미국을 꺾은 상황과 판박이로 가고 있다. 엔고현상은 일본이 죽어가는 방증이다.
왜 엔이 오르는가? 진실로 말하면 엔이 오르는게 아니라 일본에 갑자기 달러가 넘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러를 팔아 엔을 사들이는 것이다. 왜 달러가 넘칠까? 해외에 투자처를 잃었기 때문이다.
외국에 투자되어 있던 자본이 투자처를 잃고 일본으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엔고는 조선시대의 전황과 같다. 경제가 망하면 금값이 오른다. 금값이 오르면 모두 금을 금고에 쟁여놓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악화인 달러와 더 악화인 한국원화를 팔아치우고 양화인 엔을 사들여서 금고에 잔뜩 쟁여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화증발이 일어나서 더욱 엔고가 가속화 된다.
시중에 통화가 부족해지면 금값은 더욱 오르고 그럴수록 통화는 더욱 부족해진다. 금을 사재기하기 때문이다. 악화는 다르다. 한국 원화와 같은 악화는 언제 휴지가 될 지도 모르므로 재빨리 남에게 줘버린다.
화폐의 유통속도가 두배로 빨라져 경제가 살아난다. 지금 엔은 과거 금본위제 하의 금화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시장에서의 화폐기능을 상실하고 금고속으로 급속히 퇴장하고 있다.
돈이 갑자기 금으로 변해버렸으니 모두가 돈을 금고에 감추고 시장에 내놓지 않아 돈가뭄이 일어난다. 이러한 본질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는 금과 같은 양화가 아니라 지폐와 같은 악화에 의해 굴러간다는 본질을.
개념이 있어야 한다. 경제의 본질은 몇 푼의 이윤이 아니라 세력화를 통한 시장통제가능성이다.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주도적 위치에 오르면 모든 권한이 주어진다. 시장을 자기 입맛대로 판을 바꿔짤 수 있다.
구글과 NHN의 방식이 그렇다. 그들은 광고를 팔아 집금하고 있는게 아니라 사실상 세금을 받는다. NHN에 광고를 안할 수 없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이건 합법적인 사설세금이나 마찬가지다.
물건을 판매하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광고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이다. 그들은 사설권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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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부자들에게 감세해 준다고 하지만 그 감세의 혜택은 외국으로 유출될 뿐이다. 부자들은 언제나 외국에서 돈을 쓰기 때문이다. 반면 근로자의 소득 증가는 직접 소비로 연결된다.
경제가 망하는 이유는 하나다. 근로자가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유는, 계획을 세울 만큼의 자본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도 어중간, 차를 사기도 어중간.
그렇다고 저축을 하기에는 내일 당장 일거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불안해서 오랜 기간에 꾸준히 해야하는 저축이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술을 먹거나 도박을 할 뿐이다.
연변 근로자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연변에 돌아가서 술집이나 노래방 혹은 식당 외에 마땅히 할 것이 없는 것과 같다. 한국연예인들도 보통 돈 벌어서 식당을 하는데 실패가 다반사다.
경제의 본질이 권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 돈을 재투자 할 곳이 없다. 중간에서 잘라진 고리를 이어서 순환구조를 완성시켜 주어야 돈이 벌어진다. 중국의 산서상인은 수백년 전에 이미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4년마다 결산하여 주주들에게 배당을 나누어 주었다. 번 돈이 재투자되어 계속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김우중은 달러권력에다 부동산을 연결하여 그러한 순환구조를 만들어 집금에 성공한 것.
핵심적인 고리는 역시 권력. 그 권력은 시골 농부나 노동자의 적은 액수 돈을 모아서 어느 한 방향으로 집결함으로써 원양항해를 막아서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넘을 수 있는 전속항진의 힘을 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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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은 일정한 영역 내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센터에 집중시켜서 외부로부터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이다.
하나의 결정에 모두 연동되어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 상황을 통제하고 외부 위험에 대응하기.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군대든 사회든 무엇이든 이 원리에 지배된다. 이것만 잘 알아도 개념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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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정치를 위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바오로
첫댓글 경제에 대한 폭넓은 통찰과 혜안 또 그에 따른 대안 제시에 경의를 표합니다.
뱀발로 과학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좀 걸립니다.
님이 전문가 올시다 그런데 님이 대통령하면 나토가 가만있지 않겠지요 그래서 자본주의가 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