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운동 참여자, 작두 처형 만행>
전북 김제 장터에서 3.1 만세 운동을 벌인 다음날 김제의 내촌과 외리에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아새끼들까지 집에 하나도 남지 말고 다 나와, 다!’
헌병들은 총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모두가 야산 자락으로 끌려나갔다.
‘빨리빨리 저쪽으로 둘러서!’ 헌병들이 총대를 휘두르며 몰아대는 대로 사람들은 산자락에 반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그때 마을 쪽에서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쪽의 두 명은 헌병이었고 가운데 사람은 농사꾼 차림이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마을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이곳으로 끌려나왔는지 알아차렸다. 10여 년 전에 의병들을 잡아다가 저지른 일들을 또 저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두 헌병에게 팔을 끌려 그 남자가 풀밭 가운데에 멈춰 섰다. 그때 헌병이 무슨 물건을 끌기 시작했다. 묵직하게 끌리고 있는 물건은 작두였다. 사람들은 그 순간 그만 질리고 말았다.
헌병대장이 ‘다들 똑똑히 들어라. 이놈은 어제 장터에서 난동을 일으킨 주동자들 중의 한 놈이다. 이놈을 사형에 처한다. 너희들도 천황폐하께 불경한 짓을 저지르면 이놈처럼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며 니뽄도를 휙 뽑았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그 농부를 붙들고 있던 헌병 하나가 농부의 눈을 가린 검정 천을 풀었다. 그는 내촌 한 첨지네 늙다리 총각머슴이었다.
‘사혀엉 집행!’ 헌병대장이 니뽄도를 내리쳤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헌병이 머슴을 잡아끌었다.
총각머슴이 “요런 도적놈들아! 이 살인강도들아! 나가 무신 죄가 있어!”라고 외쳐대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요런 도적놈들아! 살인강도들아!”라고 부르짖고 발버둥 치며 작두 가까이 끌려가고 있었다. 수건이 동여진 그의 오른쪽 허벅지는 온통 검붉게 말라붙은 피맥질이었다. 어제 장터에서 총을 맞고 사로잡힌 것이었다.
두 헌병은 총각머슴을 작두 옆에 쓰러뜨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자 헌병이 등을 짓밟았다. 다른 헌병은 둔부를 짓밟았다. 작두날을 들고 있던 헌병이 작두를 총각머슴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총각의 머리카락을 작두 쪽으로 사정없이 잡아끌었다. 머리카락에 끌려 목은 기어이 작두 위에 올려졌다. 다음 순간 작두날이 여지없이 목을 내리쳤다. 목이 댕겅 잘렸다. 머리통이 굴러떨어지고, 몸뚱이가 들썩 솟다가 가라앉았다. 머리통이 두어 바퀴 굴렀다. 목에서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머리통에서 흐르는 피는 곧 약해졌다. 그러나 몸통에서 나오는 피는 마치 소방호스에서 물을 뿜듯 하고 있었다.
헌병대장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앞으로 얼마든지 만세를 불러라. 전부 다 이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해질녘이 되면서 작두질을 한 소문은 어지럽게 뒤엉키고 있었다. 그 흉한 꼴을 당한 동네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제 장터에서 칼이나 총에 부상을 당해서 잡힌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죽어간 것이었다.
4월 상순이 되면서 만세시위는 더욱 열렬하게 일어났다. 그에 맞서 경찰과 헌병들도 더 심하게 총을 쏘아댔다. 그들은 총만 쏘는 게 아니라 공개처형도 더 빈번하게 자행했다. 그리고 공개처형에서 작두나 칼로 자른 목을 수십 개씩 가마니에 넣고 다니며 장터니 역전 같은 곳에 즐비하게 늘여놓고 구경을 시켰다.
4월 중순으로 넘어가면서 시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총독부의 조직적인 폭력행사 앞에 그 불길은 사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위를 주도할 만한 사람들은 거의 죽거나, 잡혀 들어갔거나, 피신한 상태였던 것이다.
- 조정래 『아리랑』 6권 pp.265~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