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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에게 주주(株主)나 고객(顧客)은 안중에 없었다. 퇴진 압박을 받던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최근 일괄 사퇴를 발표했지만 그들이 내놓은 입장 자료에서 '주주' '고객' 같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사외이사직을 내년 3월 주주총회 때 내려놓겠다고 밝힌 게 눈에 들어왔다. 사퇴 의사를 밝힌 사외이사 7명 중 4명은 임기가 내년 3월 말에 끝나니 절반 이상이 임기를 채우고 나가는 셈이다. KB지주 사외이사의 연봉은 9200만원으로 다른 금융지주보다 3000만~4000만원 더 많다.
대학교수들이 대거 포함된 명망가 집단이었기에 더욱 실망이 큰지 모르겠다. 그들이 사회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책임지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번번이 저버렸다.
지난 9월 17일 KB지주 이사회가 임영록 당시 회장을 해임할 때 사외이사들은 KB금융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 대신 임 전 회장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고민하는 한숨이 더 많았다.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사외이사 역할보다 사적인 관계가 앞선 것이다.
11월 12일 이사회가 KB지주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이른바 '셀프 개혁' 사건 때 사외이사 제도 개선을 약속하면서도 그 이유를 주주나 고객에게 설명하는 모습은 없었다. 금융인들은 KB 사태를 방치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KB 개혁을 지휘하겠다고 앞장서는 사외이사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11월 21일 주총에선 사외이사들이 주주에게 사과는커녕 말싸움을 벌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주주 자격으로 나서 사외이사들을 질타했지만 김영진 사외이사는 "KB지주 사외이사들이 경험이나 덕목 등 모든 면에서 대중의 질타를 받을 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들고 맞섰다.
KB지주 사외이사들이 주주나 고객을 입에 올리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 것 같다. 금융 당국의 팔 비틀기에 떠밀리듯 퇴진하게 됐다며 억울해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은행장이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갈등을 겪어 KB지주의 경영 리스크가 극에 달할 때도 사외이사들은 아무런 역할을 못 했다. 그런 지경에 이른 걸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고도 방치했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KB지주 이사회는 스스로 사외이사를 뽑고 동료 사외이사를 평가해 봉급을 주는 '자기들만의 리그'로 유명하다. 선임 절차를 보면 주주나 고객을 생각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回航)' 사건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것도 자기만의 사고에 갇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제왕적 사외이사와 제왕적 재벌 3세의 공통점을 보는 것 같다.
KB지주는 자산 299조원에 은행 고객만 3000만명에 육박하는 국내 대표 금융그룹이다. KB지주 사외이사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