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쿠바를 처음 갔다. 멕시코 칸쿤에서 아바나행 비행기를 탔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쪽 작가예술인동맹(UNEAC) 초청으로 우리 작가 다섯과 동행 취재 길이었다. 혁명광장에서 봤던 체 게바라 얼굴 그림이 아직 생생하다. 내무부 외벽에 체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목탄으로 굵게 특징을 잡아 그린 듯 실루엣이 붕 떠 있었다. 밑에는 스페인어로 '아스타 라 빅토리아 시엠프레'라고 휘갈겼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였다.
▶이튿날 쿠바 작가들과 무릎을 맞댔다. 소설가 이청준이 먼저 입을 뗐다. "쿠바와 한국은 먼 나라였다. 이 자리가 문학적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기념비가 됐으면 한다." 작가 페르난데스가 맞받았다. "이 선생은 두 나라가 멀다고 했는데 안 그렇다." 그는 "한국 작품을 읽어보니 역시 사람은 똑같았다"고 했다. 쿠바는 경제가 안 좋았다. 우리가 좀 우쭐했던가 싶다. 지금은 한 해 한국인 5000명이 들르는 곳이다. 그땐 가기 어려운 곳이라 '기념비'라도 된 기분이었다.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를 넘은 적대(敵對)를 끝내고 관계를 트기로 했다. 우선 정치범부터 서로 풀어줬다. 테러 지원국 해제, 이민 협상이 다음 순서다. 새해엔 대사관도 열고 정상들이 오갈 모양이다. 학창 때 배운 쿠바는 케네디가 1962년 미사일 위기로 맞짱을 뜬 소련의 교두보였다. 김일성을 "내 둘도 없는 벗"이라고 했다던 턱수염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때문에 신음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결국 영원한 적은 없나 보다.
▶쿠바 문학에는 스페인풍 사실주의에 인디오와 흑인의 세계가 녹아들었다. 그렇게 섞인 상상력이 마술적 기법으로 발전했다. 피카소 그림을 닮았다. 유럽 주인공이 중남미 얼굴을 한 느낌이었다. 그때도 아바나는 평양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작가 로드리게스가 했던 농담이 떠오른다.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다. 거리에서 카스트로에게 욕을 실컷 퍼붓고 끝에 가서 투덜댄다. '빌어먹을 나라, 말할 자유가 있어야 살지'."
▶헤밍웨이는 아바나에 7년을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럼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러 카페 라보데기타에 자주 들렀다. 한국 여행객이 그 자취를 더듬는다. 쿠바 노익장 밴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한국 팬이 더 열광한다. 그쪽 한류 열풍도 뜨겁다. 우리 드라마 시청률이 70%를 넘긴다. 교역은 3억달러를 웃돈 해도 있다. "수교를 안 맺은 게 외려 비정상 같다"고들 한다. 체가 살아있다면 누가 '영원한 승리'를 거뒀다고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