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장교와의 결혼을 피할 수 없었던 처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차모르 청년과 몰래 섬을 빠져나가기로 한다. 추장인 아버지와 스페인 장교의 추격으로 연인들은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절벽 끝에 이르렀다. 다음 생에서의 사랑을 기약하며 그들은 긴 머리를 함께 묶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몇 년 후 이곳에는 이들의 혼령인 듯 꽃이 피어났으니 하프플라워였다. 둘을 서로 맞추면 하나가 되는 반 쪽 꽃이다. 괌의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쏟아지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황홀한 밤 우리가 '사랑의 절벽'에 이르렀을 때 전설로 내려오는 차모르족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찡한 가슴이 쉬이 쓸어내려지지 않았다. 온전한 사랑이 있다면 하프플라워도 이 세상 어디엔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음날 헬기투어에 나섰다. 눈 아래는 어디를 둘러봐도 수평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끝간 데 없는 수평선으로부터 파도가 달려와서는 눈부신 포말을 일으키면서 넘어졌다. 물이 빠져나간 해변에는 해수욕객들이 모자이크처럼 박혀 있다. 헬기 조종사가 사랑의 절벽을 가리켰다. 나는 어젯밤 하프플라워의 신비를 캐리라 다짐하면서 헬기조종사에게 물었지만 그는 이 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답해 주지 못했다. 숫제 하프플라워라는 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괌에 머무르면서 관광센터나 기념품점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는 행인들에게조차 물었지만 하프플라워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관광가이드북, 괌을 알리는 정보지, 백과사전을 두루 뒤졌지만 이 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괌 원주민인 차모르족의 전설에 가이드가 하프플라워 이야기를 보탰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며칠을 설레며 허탕을 쳤지만 그의 거짓말이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괌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내 가슴에는 하프플라워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프플라워가 전설의 꽃이든 실재하는 꽃이든 아니면 가이드가 지어낸 꽃이든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 속에서 자라고 있는 하프플라워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불혹의 나이를 한참이나 넘기고서 나에게 찾아온 하프플라워는 쉽게 떠날 줄 몰랐다. 사전이나 식물도감이 눈에 띄면 어김없이 뒤적이는 습관이 붙었다. 들이나 산에 나가도 하프플라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두리번거렸다. 반쪽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존재한다. 다른 반쪽을 완성 시킬 때 비로소 자신도 완성되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라면 인생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자신을 비워나가기 시작해야 될 때가 아닌가. 줄곧 앞만 보며 달려온 나는 어떤 하프플라워일까? 내가 완성시켜야 할 하프플라워, 나를 완성시켜 줄 하프플라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 역시도 한 떨기 하프플라워로서 나의 반쪽이 되는 하프플라워를 찾지 못하면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잔디밭에 피어 있는 하얀 꽃에 눈길이 닿았다. 이 날도 들풀이나 꽃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손이나 발로 휘저어보는 습관 때문이다. 유레커eureka! 좁쌀만한 하얀 꽃잎이 갓난아기의 다섯 손가락처럼 꼬무린 채 반원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두 송이를 갖다 붙이니 영락없이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 난 이 꽃들이 생명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이꽃 저꽃 따서는 맞추고 또 맞추며 유레커를 중얼거렸다. 지천명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하프플라워를 찾은 것이다. 기쁨도 잠시, 실망이 앞섰다. 그토록 찾았던 하프플라워가 이렇게 보잘것없이 생긴 꽃인 줄이야. 눈길을 받을 만큼 색이 화려한 것도 아니요, 눈에 뜨일 만큼 볼품 있는 자태를 갖춘 것도 아니다. 자세를 낮추고 쪼그려 앉았다. 나를 완성시켜 줄 하프플라워, 내가 완성시켜주리라 간절히 찾던 하프플라워는 오직 하나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대단한 하프플라워로 여기며 자만과 교만으로 일관한 나의 삶을 돌이켜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하프플라워 위로 쏟아지는 한여름의 햇살을 가르며 바람이 지나간다. 그때마다 하프플라워들은 서로 짝을 짓는다. 한참이나 나는 그들에게 미소로 답하고 있었다.- 장호병 수필집 <하프플라워>에서 -
첫댓글 아~하프 플라워 그런 애절한 사연이 있었군요.보잘 것 없는 꽃으로~~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행복하십시오^^*
하프플라워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 좋은 자료 모셔 갑니다..^^
함께할수 있어 행복함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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