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1년 농사의 결실을 보는
때입니다.
이 무렵은 한 해 가운데 먹을 것이 가장 풍성하고 날씨도 더위가 가신 뒤라서 이래저래 여유롭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습니다.
또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란 말도 전해 옵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밥과 술, 송편,
대추, 밤, 배, 감, 사과 등으로 정성스럽게 상을 차립니다. 밥은 햅쌀로 지으며 과일도 모두 햇과일을 올립니다.
이때의 ‘햅-’이나 ‘햇-’은 모두 ‘그해에 난’이란 뜻입니다.
묵은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그런데 왜 쌀에는 ‘햅-’이 붙고 과일에는 ‘햇-’이 붙는 걸까요?
‘그해에 난’이란 뜻의 접사에는
‘햇-’과 ‘해-’가 있습니다.
‘햇-’이 붙은 예로는 ‘햇과일, 햇밤,
햇배, 햇사과, 햇감자, 햇고사리, 햇나물’ 따위가 있습니다.
이 ‘햇-’은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에 붙어도 똑같은 뜻이
됩니다.
‘햇강아지’는 그해에 태어난 강아지입니다.
‘햇닭, 햇소,
햇새, 햇비둘기’ 같은 말도 있습니다.
‘햇병아리’는 새로 부화된 병아리라는 뜻 외에도 ‘풋내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햇병아리
신입 사원’처럼 쓰죠.
그러면 ‘해-’는 어떤 때 쓸까요? ‘해-’는 다음에 오는 말이 ‘된소리’이거나 ‘거센소리’일 때 씁니다.
다시 말해 ‘쑥, 콩, 팥, 포도’ 같은 말에는 ‘햇-’이 아니라 ‘해-’를 붙여 ‘해쑥, 해콩,
해팥, 해포도’로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쌀’은
된소리니까 ‘해쌀’로 해야 마땅할 텐데 ‘햅쌀’이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쌀’의 원래 형태는 ‘’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서 ‘’에 지금의 ‘해-’와 같은 ‘-’가
붙어 ‘’이 되었으며 다시 ‘’의 ‘ㅂ’이 ‘’의 받침이
되면서 ‘햅쌀’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좁쌀, 멥쌀,
찹쌀, 입쌀’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좁쌀이나 찹쌀과는 달리
‘보립쌀’이 아닌 ‘보리쌀’이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보리쌀’이란 말이 좁쌀 찹쌀 같은 말보다 훨씬 뒤에 생겼기 때문입니다. 고어 ‘’이 ‘쌀’로 바뀌고 난 뒤에 ‘보리’란 말이 붙은 거죠.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을 보내는 것을
뭐라고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쉬다’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엔 이런 날들이 적어도 사흘씩 연휴를 이루고 있으니까 ‘쉬다’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명절을 보내는 것은 ‘쉬다’가 아니라 ‘쇠다’라고 합니다. 즉 ‘추석을
쇠다’, ‘설을 쇠다’처럼 쓰는 겁니다.
이 ‘쇠다’의 활용형을 적을 때는
헷갈립니다.
‘추석 잘 쇴니?’와 ‘추석 잘 쇘니?’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 얼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답은 ‘쇘니’입니다. ‘쇠었니’가 줄어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뒤에 ‘어’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고 이를 줄이면 ‘쇄’라고 씁니다. ‘쇠어-쇄,
쇠어라-쇄라, 쇠었으면-쇘으면’처럼 써야지 ‘쇠, 쇠라,
쇴으면’처럼 쓰면 틀립니다.
그러나 ‘어’로 시작되는 어미가 아니면 당연히 ‘쇠-’로
되겠죠. ‘추석 쇠러 고향에 가니?’라든지, ‘어디서 추석 쇠니’ 같은 경우는 ‘쇄-’로 써선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낱말로는 ‘되다, 죄다, 뵈다, 쐬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낱말들도 ‘쇠다’와 마찬가지로 ‘되어-돼, 되어라-돼라,
되었으면-됐으면, 되었니-됐니’, ‘죄어-좨, 죄어라-좨라, 죄었으면-좼으면, 죄었니-좼니’, ‘뵈어-봬, 뵈어라-봬라, 뵈었으면-뵀으면, 뵈었니-뵀니’, ‘쐬어-쐐, 쐬어라-쐐라, 쐬었으면-쐤으면, 쐬었니-쐤니’처럼 씁니다. 어렵나요?
어미에 ‘어’가 있는지 없는지만 정확히 판단하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정 헷갈리면 굳이 줄이지 말고 그냥 쓰세요. 짝을 이룬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을 쓰든
상관없으니까요. 자신 있을 때만 준말을 쓰도록 하세요.
이런 말들에 ‘-라고’나 ‘-라’가 붙을 때도 많이 헷갈립니다.
①선생님께서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성실한 사람이 돼라고 말했다.
이때는 어간 ‘되’에 간접인용을 나타내는
‘라고’가 붙은 것이므로 ‘되어라고’ 즉 ‘돼라고’로 쓰지 않고 ‘되라고’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②선생님께서 “성실한 사람이 되라”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성실한 사람이 돼라”라고 말했다.
이때는 어간 ‘되’에 명령형 어미
‘-어라’가 붙은 것이므로 ‘되어라’가 되며 이를 줄여 ‘돼라’라고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미에 ‘어’가 있는지 없는지만 정확히 판단하면 됩니다.
오늘 배운 것을 정리해 보면
‘그해에 난’이란 뜻의 접두어로 ‘햇-’과 ‘해-’가
있습니다.
‘ㄱ, ㄷ,
ㅂ, ㅅ, ㅈ’ 같은 예사소리로 시작되는
말에는 ‘햇-’을 붙입니다.
‘햇과일, 햇곡식, 햇사과, 햇보리’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ㄲ, ㄸ, ㅃ, ㅆ, ㅉ’ 같은 된소리나 ‘ㅋ,
ㅌ, ㅍ, ㅊ’ 같은 거센소리로 시작되는
말에는 ‘해-’를 붙입니다.
‘해쑥, 해콩, 해팥’이 그런 예입니다.
‘햅쌀’은 ‘쌀’의 옛말
‘’에 ‘해’가 붙은 셈인데
이때 ‘’의 ‘ㅂ’이 ‘해’와 결합해서 이뤄진 형태입니다.
추석 같은 명절을 보내는 것은 ‘쇠다’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이 ‘쇠다’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되다, 죄다, 뵈다, 쐬다’
같은 말에 ‘어’로 시작되는 어미가 오면 ‘쇄, 돼,
좨, 봬, 쐐’처럼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