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일성의 '유훈 교시(遺訓敎示)'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을 주 대상으로 하는 2005 수학 능력 시험 문제집에 지문으로 등장했다. 또 김정일의 저술인 '주체 사상에 대하여'와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문헌집', 김일성의 저술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등의 글에서, 일부 내용이 2005 수능 참고서에 지문으로 인용됐다.
이들 참고서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해 "개발의 효율적 추진이라는 구실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 기술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이뤄진 북한의 5개년 경제 계획에 대해서는 "경제 건설과 사상 사업을 연결해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확립했다"고 기술했다. 일부 참고서는 1972년 공포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을 설명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사상으로 선전했다"며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 적합한 독창적 사상"이라고 적어 놓았다. 또 "법은 권력층을 대변하는 제도에 불과하다"거나 "노동자들은 파업을 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등의 사회 갈등론적 시각을 담고 있다.
"교과서와 달리 특별한 검증 절차 없어"
이같은 내용이 수능 참고서 지문으로 쓰인 것을 확인한 주간 조선은 보도에 앞서 많은 고민을 했다. "때아닌 색깔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와 "이념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사회상을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격론 끝에 주간 조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가 달라진 만큼,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유훈 교시나 김정일의 저술과 같은 '표현물'을 공개해야 한다"는 시각과 "북한에 의해 가공된 선전·선동물이 학생에게 무비판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 두 가지 모두에 일리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을 담은 참고서들은 한국 근·현대사와 사회 문화 과목 수험서들로서, 금성출판사의 '다봄 수능 트레이닝 한국 근·현대사' '다봄 사회문화', 디딤돌 출판사의 '수능시리즈 사회탐구 한국 근·현대사', 학원TV의 '빠빠빠 사회문화', 좋은 책의 '알짬 사회문화' '신사고 수능 사회문화', 다봐의 '사회탐구영역 사회문화' 등이 그 예다. 금성출판사의 다봄은 디딤돌, 메가스터디 등과 함께 수험생이 가장 많이 찾는 참고서 중 하나다. 금성출판사 '다봄 한국 근·현대사' 234~235쪽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실려 있다.
01번 문제의 답은 '①근로 인민'이다. 여기서 자료 가)는 197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이고 나)는 1998년 개정된 현재의 헌법이다. '386' 운동권 출신으로 '뉴 라이트'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지호 서강대 겸임 교수(북한학)는 01번 문제에 대해 "북한은 법치 국가가 아닌 인치(人治) 국가"라고 전제한 뒤 "따라서 북한의 주권은 수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은 북한의 주장이자 선전"이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말 한마디가 헌법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법조문만을 인용해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런 주장은 북한 사회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얘기거나,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 말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02번 문제의 답은 '③ (다)'다. 신 교수는 02번 문제에 대해 "정치인이 말하는 내용에는 어쩔 수 없이 '레토릭(미사여구)'이 수반되게 된다"며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말했다 해서 그 행위가 정말로 국민을 위한 것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신 교수는 "북한의 경우엔 레토릭이 훨씬 심한 나라"라며 "북한을 사실대로 보여주려 한다면 그들의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까지 알려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03번 문제의 답은 '⑤ 나진~선봉 지역 시찰 사진'이다. 이 문제에 대해 참고서 '핵심 탐구'란은 "제시된 자료는 김일성의 유훈 교시로 다른 나라와의 경제 합작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변화를 모색하는 북한"을 '핵심 개념'으로 제시했다. 김일성의 유훈 교시란, 김일성이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경제 부문 책임 일꾼 협의회에서 행한 교시로 그가 생전 각종 모임에서 행한 보고, 결론, 연설, 발언 등을 일컫는 교시(敎示)와 함께 북한 각 분야 정책의 지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지호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김일성의 유훈 교시를 인용해 (학생에게)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고 대외적으로 교류할 의지를 가진 나라란 사실을 은연 중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교육자의 역할은 북한의 주장 이면에 존재하는 '행간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라며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미명 아래 그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편향적 태도"라고 말했다.
대한 교과서 집필에 참가한 바 있는 최헌철(서문여고·국사) 교사는 "교과서와 달리 참고서는 특별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북한 관련 부분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느냐를 놓고 (교과서 집필)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수능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출제 가능성이 없는 내용을 굳이 다룬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현직 교사 역시 "참고서엔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필자간 상호 검증 과정만 거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관계에 관한 질문"이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사실이란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므로 01번 문제의 경우 질문이 잘못됐다"며 "'북한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다고 북한은 주장하는가'라고 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참고서는 현직 교사 3인이 공동 집필한 것이다. 필진 중 한 사람은 휴직 중이어서 연락이 되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런 문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고 말한 뒤 "(참고서 내용이) 기억 나지 않는다"며 대답을 피했다. 취재에 응한 교사는 "학생이 북한 헌법을 보고 답을 하지 뭘 보고 답 하겠느냐"며 "해석에 관한 부분은 좀더 전문적인, 별개의 영역이라 여겨 남겨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수령은 이미 사망한 김일성"이라며 "죽은 사람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학생 스스로 비판할 수 있도록 가치 판단에 관한 부분은 남겨뒀다"고 말했다. 그는 "곧 발간될 개정판에서도 이 문제는 수정하지 않았다"며 "학생들이 (북한 헌법에 대해)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성출판사 측은 이후 전화를 걸어와 "3월 이전에 출간될 개정판을 제본하고 있는 중"이라며 "북한 헌법 관련(다봄 한국 근·현대사 234쪽) 01~02번 문제를 뺐다"고 말했다. 이 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참고서는 2005 대학 입시 수험서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의 하나다. 이 책의 개정판은 1월 12일 현재까지 시중 서점에 나와있지 않았다.
"주체 사상 일부만 소개해 오해 불러"
금성출판사 2005 수능 참고서 229쪽엔 김정일의 저술 '주체 사상에 대하여'를 인용한 주체 사상 관련 서술이 실려 있다. 또 디딤돌 출판사의 '수능 시리즈 사회탐구 한국 근·현대사' 192~193쪽엔 김일성의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와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문헌집'을 인용, 주체 사상에 관한 기술을 싣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해당 지문에 대해 "일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주체 사상의) 전체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지호 서강대 교수는 "주체 사상은 수령이 뇌수, 당은 수족, 인민은 세포로 비유되는 국가 유기체론"이라며 "당보다 높은 위치에 놓인 존재가 수령"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북한에서 주체 사상의 확립 과정은 곧바로 민주주의의 실종 과정"이라며 "주체 사상은 수령론으로 직결되는데, 이들 참고서의 지문·해설엔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들 참고서는 오히려 '북한의 현실적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는 북한측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학생들에게) 갖다 안겨 버렸다"고 말했다.
주체 사상의 핵심 내용은 ①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있고 ② 다시 그 중심에는 수령이 있으며, ③ 수령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후계자(김정일)라는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본지의 취재에 응한 한 참고서 필자는 "김정일의 저술 '주체 사상에 대하여'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것"이라며 "추후 심사 과정을 통해 (교과서에서) 빠지고 루이제 린저의 글로 대체됐지만 참고서에선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판에선 이 부분을 뺐다"면서 "학생들이 김정일의 글을 읽어봄으로써 북한의 후계자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므로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의 저술을 소개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희식 경제 개발'의 의미 외면
금성출판사 2005 수능 한국 근·현대사 참고서는 211쪽에 '5·16 군사 정변과 유신 체제'란 소제목을 달고, 그 아래 부분에서 '경제 개발과 장기 집권(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다루고 있다. 또 디딤돌 출판사의 '수능시리즈 사회탐구 한국 근·현대사' 181쪽에도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제일주의 정책을 다뤘다. 해당 참고서에 기술된 내용을 전부 옮긴다.
반면 '금성출판사' 224쪽과 '디딤돌 출판사' 192쪽에선 북한의 5개년 경제 계획(1957~1961)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연세대 유석춘 교수는 "박정희나 김일성이나 독재는 마찬가지였다"며 "하지만 박정희는 경제 개발이란 큰 열매를 맺었고, 김일성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박정희의 경제 모델이 중산층을 만들었고, 그것이 다시 경제 발전의 모태가 되지 않았느냐"며 "마이카 시대를 열어, 명절 때 귀향길이 자동차로 정체되는 현실이 경제 발전의 명백한 증거"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지난 해 가을 문제점으로 지적된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경우처럼, 이런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박정희식 경제 발전이) 오히려 당연한 일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독재를 겪었지만, 경제 개발에 실패했다"며 "성공 케이스인 박정희식 개발 모델을 중국마저 따라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해서 이를 무시한다면 대체 무엇을 평가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금성출판사 참고서의 저자는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과 북한의 천리마 운동을 직접 비교한 적 없다"며 "박정희식 경제 개발은 '경제' 단원에서 다뤘고 북한의 천리마 운동은 '통일' 단원에서 다뤘으며, 새마을 운동과 천리마 운동은 구성상으로도 수십 쪽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사장된 견해인 '갈등론' 시각으로 서술
이밖에도 주간 조선이 분석한 수능 참고서들 중엔 갈등론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지문이 수록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관련 문제들은 이 외에도 여러 개 있지만 지면 관계상 몇 개만 소개한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는 이들 문제를 살펴본 뒤 "사회를 갈등론적 관점에서 보는 시각은 1989년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이미 사장된 견해"라며 "소수 의견에 불과한 갈등론적 시각을, 마치 지배적 견해인 것처럼 소개했다"고 말했다.
학부모이자 수험생 입장에서 2005 수능을 직접 치른 김태웅(48) 동양문고 사장은 이들 참고서와 문제집에 대해 "전체적 흐름에 유의해서 보면, 사회를 부정하고 갈등을 부추기며 대립과 투쟁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부조리 가득한 불합리한 사회'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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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다음 북한의 헌법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1972년 개정된 헌법
1.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2.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가)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동 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사회주의적 생산 관계와 자립적인 민족 경제의 토대에 의거한다.
4.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나)조선 로동당의 주체 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인 지침으로 삼는다.
10.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하며 계급 노선과 군중 노선을 관철한다.
89.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주석은 국가의 수반이며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주권을 대표한다.
나) 1998년 개정된 현행 헌법
1.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2.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다)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 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정권이다.
3.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 사상인 주체 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4.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노동자, 농민, 근로 인테리와 모든 근로 인민에게 있다. (라)근로 인민은 자기의 대표 기관인 최고 인민 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 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9.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마)북반부에서 인민 정권을 강화하고,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을 힘있게 벌여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 통일,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01. 현재 북한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① 근로 인민 ② 노동당 ③ 시민 ④ 국가 주석 ⑤ 혁명가
02. 북한은 정권의 정통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자료의 밑줄 친 (가)~(마)에서 찾으면?
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마)
03 다음과 같은 김일성의 발언과 일치하는 것은?
"나는 앞으로 어느 나라든지 우리(북한)와 경제 합작 같은 것을 하겠다고 하면 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경제 합작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지만 경제 합작을 하여도 손해 볼 것은 없다."
① 닉슨의 중국 방문 사진
②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하여 깃발을 올리는 사진
③ 티토와 김일성의 사진
④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산가족들 사진
⑤ 나진~선봉 지역 시찰 사진